[박종언 만남] 윤관식, “정신장애인에게 최고의 복지는 ‘취업’이라는 걸 확신했어요”
[박종언 만남] 윤관식, “정신장애인에게 최고의 복지는 ‘취업’이라는 걸 확신했어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11.01 0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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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식 ‘착한청년들’ 대표 인터뷰
정신질환은 고쳐지는 게 아니라 관리하며 살아가는 것
아들은 취업하면서 건강이 급격히 좋아져
기치료 같은 미신적 행위는 치유에 도움 안 돼
사회적기업 만드는 게 마지막 꿈
청년 일자리 100개 만들면 천 개로 확대될 수 있어
부모는 정신질환에 대해 정확히 알고 국가에 요구해야
발달장애 영역은 부모들이 국가에 요구하며 이뤄낸 성과
강제입원은 입원 2주일만 지나면 퇴원시켜야
부모는 모임과 단체에 참여해 목소리를 내야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발병했다. 첫 징조로 웃지를 않았고 모든 것에 염증을 냈다. 지인의 소개로 정신병원을 찾았고 이윽고 아들은 창살 너머로 들어갔다. 첫 입원에 대해 그는 말할 수 없는 당혹감을 느낀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진 것일까.

게다가 IMF가 찾아왔다. 현대중공업에서 ‘기름밥’을 먹으며 살았고 이후 작게나마 개인사업을 살뜰하게 이끌어왔지만 IMF로 빚만 수억 원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들의 발병이 아니었다면 평생 인연도 없었을 복지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게 마치 천직처럼 즐겁다고 했다.

현재 그는 정신장애인들-그는 이를 활동장애인들이라고 명했다-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착한청년들’이라는 비영리단체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아들도 많이 회복돼 사회적 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정신장애인의 회복의 바로미터는 바로 ‘일자리’라고 말했다. 그 일자리가 인간에게 존엄과 자부심을, 가족에게는 평화와 존중을, 국가적으로는 국가예산의 절감을 주는 일석삼조의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다. ‘착한청년들’을 통해서도 그는 많은 일자리를 정신장애인들에게 제공하고 싶어 했다. 윤관식(70) 대표를 만난 건 부쩍 쌀쌀해진 31일 오후였다. 성수동 그의 사무실에서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윤관식 '착한청년들' 대표 (c)마인드포스트
윤관식 '착한청년들' 대표 (c)마인드포스트

-처음 아드님 발병이 어떻게 시작된 겁니까.

“처음에는 일단 웃지를 않아요. 그리고 학원도 안 가고 싶어 하고. 평소에 의욕이 없고 누워만 있고요. 아들이 낚시를 굉장히 좋아해서 기분전환할 겸 해서 낚시를 가자고 해도 흥미를 느끼지 않는 수준으로 바뀌더라고요. 나는 학생이니까 피곤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죠. 한 열흘 쯤 지나니까 지인(知人)이 충남 천안의 한 병원을 소개시켜줘요. 거길 가니까 서울의 A병원으로 다시 소개해줘요. 천안에서 운전해 올라오는데 애가 문 열고 뛰어내리려고 할 정도라고요. 그래서 달래서 A병원에 가서 상담하니까 바로 병동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라고요. 그리고 2주 있다가 오라고 그러고. (아들이) 쇠문이 쫙 있는데 들어가 버리니까 기분이 정말 이상하더라고요.”

-기분이 어떻던가요.

“비참하다 그럴까. 당혹스럽다 그럴까. 그랬죠.”

-강제입원이었습니까.

“상담을 하니까 입원을 하라고 해서 우리는 사실 충격적이었죠. 우리는 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잖아요. 정신병이라고 하면 사회가 아직도 편견이 심해요. 정신장애인들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고 상종을 안 하고 싶은 사람이고 잠재적인 범죄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20년 전에는 더 했다 말이죠.”

-아드님 병명이 조현병입니까. 몇 번 정도 입원했습니까.

“조현병이죠. 한 열 번 정도.”

-아드님이 발병하기 이전과 이후의 삶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완전히 바뀌었죠. 처음에는 감당을 못하겠는 거예요. 그리고 아버지잖아요. 아버지는 우리 아들이 감히 그런 정신질환에 걸렸겠나하면서 공부도 안 하잖아요. 시간도 없고 살아가는 데 바쁘고. 두 번째는 사전 지식이 전혀 없잖아요. 처음에는 A병원에 있을 때 아이를 빼냈어요. 왜 빼냈냐면 아는 사람이 기치료하면 된다고 해서. 그래갖고 기치료 하는데 한 900만 원 집어넣고. 모르니까. 그러다가 B병원 입원하고 다시 C병원 가고 D병원 입원하고.”

-발병 이전과 이후의 삶이...

“지금은 내 모든 활동이 정신장애인들이 어떻게 하면 좋아지고 잘 살 수 있을까로 완전히 바뀌었어요. 완전히 다른 세계로 온 거에요. 내가 옛날에는 기계에 관한 기름쟁이였잖아요. 그 세계에서 복지쪽으로의 다른 세상에 와서 지금 살고 있는 거예요. 완전히 삶이 바꿨죠.”

-바뀌니까 어떻습니까.

“내가 진작 알았다면 복지 쪽에서 삶을 처음부터 살았으면 좋겠다. 사명감 같은 것도 생기고요. 신체장애인들은 루즈벨트처럼 대통령도 하잖아요. 동사무소 가면 소아마비 환자도 복지 담당을 하고 있어요. 근데 정신장애인은 취업률이 1% 이내라고 생각합니다. 취업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집에 다 있어요. 이게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고. 그런데 내가 우리 아들이 건강이 좋아지는 과정을 쭉 보니까 취업을 하면서 급격히 좋아지더라고. 그래서 정신장애인에게 최고의 복지는 취업이라는 걸 확신했어요.”

-아드님이 왜 정신병원에 보냈냐고 원망하지는 않던가요.

“들어갈 때는 원망하지만 나올 때는 그렇지 않아요. 안에 있는 동안 설명을 하잖아요. 네가 이렇게 해서 약물을 먹어야 되는 거고 고혈압 환자가 약을 먹는다고 평생 환자로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 네가 약물의 적정 수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걸 조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을 하면 나중에 나올 때는 조절이 되잖아요. 자신이 약을 조절을 못해서 밖에 나와서 잘못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걸 자기도 인식하니까 괜찮다고 얘기를 해요.”

-원망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처음에 입원을 시키고 나올 때는 원망이고 뭐고 그런 데 대한 개념이 없었죠. 당황하고, 내가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있는 거지? 나 자신도 어떻게 판단해야 될지 모르는 거죠.”

-아까 기치료 하셨다고 하는데 굿 같은 미신적인 걸로 치료하려 한 적은 없습니까.

“다 해봤어요. 기치료 했죠. 천도제 지냈죠. 누가 교회 좀 다녀보라고 해서 애 데리고 6개월씩 열심히 다녔죠. 그 뒤에 누가 절에 가보자고 추천해서 6개월간 충청도에 있는 절에 애엄마하고 내려가 있었죠. 나는 일주일마다 가고. 굿은 안 해봤어요.”

-기치료가 뭡니까.

“머리에 손 대고 자기 기운을 넣어준대. 그래서 그 사람한테 좋은 거 사주고 돈도 주고 이랬죠. 정신질환이 어떤 건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던 거죠. 당뇨, 고혈압 이런 건 치료하면 나을 수 있어요. 근데 세포성 질환 이런 건 영원히 안 낫는 그런 질병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에. 그때는 누가 이야기하면 갈 수밖에 없는 거였죠.”

-종교가 선생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지금은 나는 아무 종교 없어요. 나는 종교가 나쁘다고 생각은 안 해요. 하지만 내가 교회를 다녀보니 정신장애인이 교회를 감으로써 좋아진다는 사실은 느끼지 못했어요. 내가 유명한 교회를 몇 군데를 다녔어요. 그런데 거기 가면 애들 모아 놓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죄악시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그렇게 됐다는 편견을 조장하는 역할을 하는 걸 교회에서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종교인들은 아주 무지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안 가는 거예요.”

-아드님 현재 생활은 어떻습니까.

“지금 회사에 잘 다니고 있어요..”

(c)마인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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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을 하십니까.

“사회적 기업에 다녀요.”

-월급이 나오는 겁니까.

“그렇죠. 50만 원. 전에 우체국 다닐 때는 60만 원 정도 받았거든요. 거기서 일을 하면서 애가 자존감이 생기고 급격히 좋아지는 걸 봤어요. 그래서 취업이, 일자리가 건강에 좋은 거구나 생각했죠. 복사지 등을 만드는 회사에요. 지금은 아침 9시 정도에 나가서 저녁에 5시에 끝나면 집에 한 6시쯤에 오죠.”

-아드님이 자기 삶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습니까.

“처음에 거기 들어갈 때 35만 원 준다고 하더라고요. 거기는 발달장애인들이 많은 회사에요. 복지사가 좋아지면 부서를 얼마든지 옮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갔는데 볼펜하고 스위치 조립하는 데에요. 근데 거기에는 발달장애인들이 6~7년 일하고 매달 35만 원 받는 애들이 있더라고. 2달 만에 복사지 하는 데로 옮겨주더라고요. 상태가 다르다는 거죠. 좋다는 걸 인식한 거죠.”

-아드님이 어떤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까.

“내년에 제가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최저임금만 받아도 다들 행복하다고 해요. 그래서 최저임금 정도를 받는 일자리를 만드는 게 내 목표예요. 아들도 이 일을 같이 하면서 팀장 정도나 하면서 꾸준히 살았으면 좋겠다 생각해요. 애도 그렇게 생각하고.”

-결혼은 생각하십니까.

“결혼하고 싶다고 얘기하죠. 수입이 돼야 결혼을 할 거 아니에요. 최저임금 정도, 150만 원 정도 받아야지 그래도 결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약 아드님이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았다면 선생님은 어떤 삶을 살았을 것 같습니까.

“그랬다면 나는 복지라는 자체를 전혀 알지를 못했겠죠. 저는 우리 청년들하고 봉사를 올해 60회 정도 나갔어요. 근데 가끔씩 펑크가 날 때가 있어요. 그러면 같이 간 청년들하고 한강 옆에서 강남 쪽을 이렇게 바라봐요. 그러면서 ‘저기 사는 사람들이 과연 자원봉사라는 걸 알까’하고 물어보죠. 그 잘 사는 사람들이 자원봉사에 대해 어떻게 알겠습니까.

나는 복지라는 영역에 들어오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나한테도 맞고. 지금 내가 돈을 얼마나 벌어서 뭘 하고 싶을 거예요. 내 인생을 정리하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 청년들이 취업을 해서 잘 살 수 있는 일을 내가 만드는 거예요. 내년에는 청년 일자리 100개 정도 만들고 그게 본보기가 되면 1천 개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정신질환이 고쳐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정신질환은 고쳐지는 게 아니라 관리를 하면서 평생 살아가는 거다. 약을 적절하게 먹으면서 기능이 약간 떨어지지만 일을 하면서 자신의 영역에서 잘 살아가는 게 저는 치료라고 봅니다. 완전히 싹 고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적정 수준의 관리만 하면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사회는 정신질환 걸린 사람은 잠재적 범죄자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최종적인 책임은 국가가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신질환자들은 사회적 편견도 있고 관리 상태가 열악하기 때문에 취직을 못해요. 국가는 정신질환자들로 인해서 퍼붓는 의료비가 2조 원이에요. 이 애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월급을 준다면 일조 원 정도는 절감할 수 있다 생각해요.

국가가 무슨 사건만 터지면 어떻게 몰아쳐서 누구한테 뒤집어씌워서 마무리 짓는 걸로 끝이지 이 사람들한테 뭘 해줬냐는 거죠. 그룹홈을 보면 한 달에 30만 원씩 내면서 거기서 살잖아요. 왜 그러겠어요. 얘들이 돈을 벌어오면 부모가 환영을 하지 내보낼 거 같아요. 내보낼 이유가 없죠. 돈벌이 안 하고 집에 드러누워 있으니 진절머리가 나죠. 부모도 삶의 질이 있잖아요. 또 사회생활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내보내는 거예요.

그런데 애가 돈을 벌러 아침부터 나가요. 그럼 가족 생활의 질이 좋아지죠. 그 다음에 부모가 돈벌이를 할 수 있죠. 애는 돈을 버니까 자존감이 높아져요. 또 돈을 버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요. 친구들도 생기잖아요. 친구들하고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거 사 먹기도 하면서 건강이 더 좋아지죠. 우리가 약을 먹는 이유가 뭡니까. 한 가지예요. 환청 망상 생기지 말라고 먹는 건데 환청 망상 생기는 그 시간에 일을 하잖아요. 그리고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는데 그게 생길 시간이 없죠.

집에 있으면 약을 200미리 먹는 사람이 천 미리를 먹어도 망상 환상은 더 생겨요. 그러면 의사는 약을 더 줘. 그럼 몸이 망가진단 말이에요. 결국 정신장애가 누적이 되고 폐인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약을 덜 먹고 일을 하면 국가 재정도 좋아지고 일석이조의 효과가 생긴단 말이에요. 만약 애가 기초생활수급자면 기초수급비 50만 원을 줘요. 근데 애가 일을 해서 70만 원을 벌어요. 그럼 기초생활비를 안 준단 말입니다. 국가로서는 120만 원의 이익이 생겨요. 국가가 50만 원을 벌고 들어가는 겁니다.

우리 아들이 치료받는 돈은 내가 지출을 안 합니다. 국가 재정으로 줘요. 낮병원을 봐요. 한 달에 30만 원 들어가면 일 년에 300만 원이 넘어요. 그런데 일을 하면 낮병원 안 다니는 걸로 국가가 매달 30만 원을 벌어요. 그 다음에 지역사회 건강을 준단 말이에요. 이것만 계산해도 국가에 엄청난 이익을 주는 거예요.”

-요즘 조현병 관련 사건사고가 발생하면서 격리시켜야 한다는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국가나 사회, 의사들이나 전문가들의 책임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더 큰 거는 부모님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는 부모가 정확하게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국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전문가도 제대로 안 가르쳐줘요. 그런데 말은 다 해줘. 그 속에 답은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와 닿지 않는다는 거죠. 정신질환이 뭔지, 정신질환을 낫게 하는 게 뭔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왜 국가가 책임이 있는지를 정립을 딱 해줘야 한단 말이에요. 내가 그 모델을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사람은 이익을 줘야지 제대로 듣습니다. 언론은 무지하기 짝이 없어요. 정신과 의사들이 전문가이긴 하지만 아무런 보탬을 안 줘요. 병원은 5분에 한 사람씩 쳐내야지 월급을 준다고요. 의사들이 몰라서 그렇게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연구를 해요? 연구를 안 합니다. 연구할 시간이 없어요. 그럼 누가 연구해야 합니까. 국가 시스템이 해 줘야 되는데 부모들이나 이익단체에 있는 사람들이 요구를 해야 된다는 거죠. 정확하게 요구를 해야 국가가 알아먹어요.”

-정신장애인을 둔 가족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신질환에 대한 교육 모임에 제대로 참여를 해야 해요. 지금 보면 정신건강복지센터나 병원에서는 일방적인 교육만 시켜요. 그게 아니라 당사자가 요구하는 교육, 당사자가 질문하는 교육, 답변을 줄 수 있는 교육을 시켜야 된다는 거죠. 부모들이 요구를 해야 돼요. 그런데 그런 모임이 없어요. 나는 내 시간과 돈을 한 달에 50만 원씩 투자해서 3년째 봉사하고 있거든요. 사람들이 이익이 될 때만 오지 이익이 없으면 안 와요. 장애인고용공단하고 장애인개발원 홈페이지 보면 발달장애인 영역이 60%를 차지합니다. 왜 그렇겠어요. 죽을 지경이니까 부모들이 머리도 깎고 투쟁해서 얻은 결과입니다.

근데 정신장애인 단체는 3명, 5명 모여서 ‘나도 살고 싶어요’ 하면서 현수막 들고 있으면 아무도 안 와요. 신체장애인들은 10명 휠체어 끌고 나오면 전경이 50명이 쫙 깔립니다. 사회가 (정신장애에 대해) 관심이 없는 거예요. 상종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럼 5명 갖고 뭘 하겠어요. 서울시청에 500명이 가서 시위 하든지, 보건복지부에 천 명이 가서 데모를 해야죠. 근데 모여요? 안 모인다는 거죠. 그럼 결국 누가 해줘요. 아무도 안 해줘요.”

-정신장애인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일자리요. 딱 결론은 그거예요. 지금 교육을 시켜도 다 졸면서 들어요. 그런데 만약 일자리를 주면요 그 일자리 가운데 왜 이런 교육이 필요한지, 왜 모여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이야기하면 귀에 쏙쏙 들어와요. 이익을 주는 사람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거죠.”

(c)마인드포스트
(c)마인드포스트

-정신건강복지법의 어떤 부분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입원하는 이들은 공포감이 있어요. 아, 내가 들어가면 못 나오겠구나 하는 공포심이 말이죠. 그럼 무조건 2주 이상은 병원에 입원을 못 시키게 해 놓으면 돼요. 지금 들어가면 3개월, 1년 잡아놓고 있잖아요. 클로자핀 250미리 정도면 대부분 사람들이 약이 딱 들어요. 그렇게 상태가 괜찮아지는 데 3일에서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강제입원이 까다로워졌습니다.

“강제입원이 나쁘다고 하는 건 당사자의 입장이잖아요. 부모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어요. 애가 공격적으로 나올 수 있을 때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을 보호자들은 모르는 거예요. 그럼 강제입원 시키고 싶을 때도 있단 말이죠. 그럴 때 국가가 2주 이상 입원은 안 됩니다 정해놓으면 아이에게 설득할 수도 있는 거죠.”

-3년 전, 67세 때 사회복지학부 복지시설경영학과에 편입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애들한테 일자리를 주려면 복지에 대해 알아야 되고 그 다음에 복지시설경영학이 도움이 될 거 같아서 간 거예요. 사회복지사는 2급 자격증이 있지만 쓸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앞으로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하고 싶으십니까.

“앞으로 3년 내에 최소 500개에서 1천 개 정도의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일자리를 줄 테니까 나에게 모여라는 게 아니라 취직을 하는데 나를 플랫폼으로 활용하라는 거죠. 만약에 천 명 정도의 일자리가 생기면 파급 효과를 엄청납니다. 일단 천 명이 나에게 오면 5천 명의 가족의 힘이 나에게 와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방편이 되겠죠. 국가적으로 보면 국가 경쟁력 높아지죠, 생산성 높아지죠, 복지 예산이 확 줍니다.”

-비영리민간단체 착한청년들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습니까.

“2015년 시작해서 2017년 비영리단체로 등록했습니다. 사업 목적은 취약 장애인 가정에 주거환경 개선이죠. 간단하게 말해 희망 대청소예요. 희망대청소를 하면서 이 청년들이 나와서 봉사에 참여하면 건강이 좋아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회 복귀 체험. 근데 아무도 안 나와요. 그러면 돈을 주면서 사회복귀체험을 시키면 좋아지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걸 가지고 일자리를 만들면 되겠네 하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시작한 겁니다.”

-청소를 하면 일 인당 얼마씩 급여가 주어집니까.

“1만5천 원 줘요. 내년에는 목표가 3만~5만 원입니다.”

-이게 매일 청소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매일 하는 걸 목표로 하는 거예요. 내년에 할 일은 이 아이들을 아예 월급쟁이로 만드는 거예요. 목표는 최저임금 150만 원인데 일단은 내년에 취업을 통해 60~80만 원 정도 주고 싶습니다. 이들이 정식으로 150만 원 받을 수 있게 하는 게 제 목표예요. 일하러 와서 가만히 서 있어도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됩니다. 일단 오는 연습을 하게 되고 또 돈을 줘요. 그럼 그 사람이 자존감이 생기고 가족에게 환영을 받아요. 그럼 건강이 급격하게 좋아집니다. 내가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약을 아무리 늘려도 집에 있으면 안 좋아집니다. 그런데 나오면 좋아집니다.”

-정신장애인 가족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가족들이 정확하게 알고 정신질환에 대해서 제대로 교육을 받으세요. 두 번째는 정확하게 받으세요. 그리고 세 번째는 모임에 참여를 하세요. 제대로 알지 못하면 10년, 20년 허송세월을 보냅니다. 이 병을 정확하게 알면 이 세월을 버는 거잖아요. 모르니까 굿하고 뭐하고 시행착오를 거치고 난 뒤에 알게 되면 가족으로서는 시간과 경제적으로 손해고 애들은 장애가 누적돼 버린단 말입니다. 그걸 정말 부탁을 하고 싶어요. 내가 그 시행착오를 그렇게 겪어왔기 때문에 말하고 싶은 거죠.”

(c)마인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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