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의 복지선택 폭을 넓혀주는 게 국가의 책임”
“정신장애인의 복지선택 폭을 넓혀주는 게 국가의 책임”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11.08 2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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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자립생활 정책·실천 토론회 열려
日, 보호작업장 통해 동료 운동 활성화
당사자 의사가 존중되는 탈시설화로 가야
서구정신장애운동, 온건화됐지만 여전히 긴장상태
양천IL, 신체·발달·정신장애 포괄…각 특수성 ‘고민’

사람사랑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주관한 ‘정신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한 정책과 실천’ 토론회가 8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이 토론회는 2018 장애주류화 정책의 가능성과 전략 과제를 주제로 한 장애정책박람회의 한 세션으로 진행됐다.

주제 발표에 나선 일본 리츠메이칸대학교 다테이와 신야 교수는 “일본의 정신장애 실태를 보면 여전히 의료가 개입하고 의료가 판단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신야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이 “의사들의 정치력과 힘이 정신장애인 당사자에 비해 훨씬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의 정신병원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 정신병원과 관련된 관계자들의 힘이 약해지지 않는 이유를 주제로 현재 책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신야 교수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신체장애인에 한해서 사용할 수 있던 개호제도(활동지원제도)를 점점 정신장애인과 지적장애인들도 이용할 수 있는 패러다임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야 교수는 “일본의 경우 정신병원을 퇴원해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상담사업이 있는데 이 상담사업이 잘 된다면 지역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건데 그렇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사업이 기능을 하지 못하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그 사업에 돈을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신야 교수는 “돈이 있는데 정치력이 있는 정신병원이나 의사들한테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의미”라며 “이 돈을 잘 배분한다면 지역사회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지원 사업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의 피어(동료)모임이나 자조모임이 활발한 이유로 보호작업장 제도의 적극적 이용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은 보호작업장은 일을 하지 않더라고 거기에 참여만 해도 돈을 주는 구조다. 월 1만엔(10만 원) 정도의 노동비를 지급한다.

신야 교수는 “보호작업장에 가서 일을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작업장이라는 공간을 잘 활용해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피어활동을 해 왔다”고 설명했다.

김도희 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탈시설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에 대해 인권친화적이냐 수용시설처럼 운용할 것이냐가 아니라 좀 더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설에 편중돼 있는 국가 예산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 서비스 전달체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기존 조직을 어떻게 체질개선할 것인지 등을 탈시설화의 본질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내가 어디에 살지, 누구랑 살지를 결정하고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지를 결정하고 그 선호도와 의사가 존중되면서 사생활이 보장되는 보편적 가치들이 존중되는 것이 탈시설이 가야 할 가치이자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탈시설 절차에서 공급자 중심으로 돼 있는 것을 수요자 중심으로 바꾸고 탈시설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집의 제공, 지원정착금 지급 등 실질적 자원을 연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원주택의 경우 집만 주는 것이 아니라 복지서비스가 함께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렴하게 혹은 무료로 집을 주는 것으로 국가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주거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진정한 주거권, 프라이버시가 존중되는 주거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지원주택이 시설이나 그룹홈과 다른 개념은 계약자가 시설이 아니라 당사자라는 점이다. 이는 주거권의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의 상징적 역할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난 9월 국회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은 정신질환자의 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이를 취득하려면 정신건강전문의에게 시험에 응시해도 좋다는 소견서를 받아야 한다. 약사법은 기존 자격정지에서 면허취소로 처벌의 수위가 높아졌다.

김 변호사는 “이는 직업자유의 침해하는 것”이라며 “사회복지사업법이나 약사법의 소관은 보건복지부이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정신장애인의 취업의 자유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법을 강화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신장애인들이 법률행위를 할 때 본인의 의사결정 능력이 있다면 본인의 의사대로 해야 하며 부족한 부분은 부족한 만큼만 조력을 하는 게 필요하다. 그렇지만 현행 법체계는 성년후견제도를 두고 있지만 의사결정의 지원이 아니라 이를 대체하는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특정후견이나 임의후견처럼 제한은 덜하면서 본인의 잔존 의사결정 능력을 최대한 많이 존중할 수 있는 제도들이 많이 활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의 후견제도는 법원을 통해야 하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문턱이 높다”며 “절차는 간소하게 비용은 저렴하게 하면서 후견제도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신장애인의 사회복지기관 이용을 제한하는 장애인복지법 15조에 대해서도 그는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 법 15조가 장애인복지시설 서비스를 받는 것만 제한하고 있는 것처럼 돼 있는데 실제로는 이 규정에서 파생된 관행적 제도들이 작동하면서 정신장애인이 복지서비스는 무조건 정신건강복지법에서 받으라는 형국으로 운영돼 오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이 같은 문제는 관련 법을 관할하는 보건복지부 내 소관 부처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복지부 내 장애인정책과와 정신장애인정책과, 정신건강정책과 등으로 얽혀 있으면서 정작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외면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중복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복지부는 내놓고 있는 상태다.

김 변호사는 “정신장애인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가서 서비스를 받을 건지 장애인복지관에 가서 서비스를 받을 건지는 자기가 결정할 문제”라면서 “그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다. 중복수혜를 받을 가능성도 적고 이를 국가가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삼호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소장은 서구 정신장애 운동의 전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의 과정을 공부하면서 소비자(consumer), 생존자(survivor), 엑스 페이션트(ex-patient)라는 개념에 주목했다. 왜 이토록 여러 가지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걸까?

윤 소장은 “이들의 정치적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생존자는 급진적 운동가, 소비자는 온건한 운동가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18세기 영국에서는 ‘도덕치료’가 등장한다. 기존 수용시설에서 억압적으로 인권이 침해당하는 것에 대한 대안적 사유로 이들에게 좀 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치료를 하자는 일종의 계몽운동의 일환이다. 그러나 이 치료 방식도 문제로 지적됐다.

“정신병원에서 인간적으로 치료하게 하자는 게 도덕치료인데 그러니까 정신병원이 확 늘어나 버렸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신병원에 남아 있는 이런 치료법은 이 같은 도덕치료에 기반해 있다. 감금하는 패러다임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 거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에 전문가가 개입하면 연대의 의미에서 조직이 더 강화될까. 윤 소장은 “당사자 운동에 전문가가 들어가면 그 조직은 망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당사자 운동가 클리퍼드 비어즈는 급진적 운동을 펼쳤지만 독일의 정신의학자 마이러를 만나면서 투쟁보다는 설득에 치중하는 등 정신장애인 운동에서 벗어나 버린다. 또 1940년대 뉴욕 락랜드주립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의미인 와나(WANA)를 조직해 운동을 진행하지만 여기에 전문가들이 개입하면서 당사자들은 회원으로 전락돼 버렸다.

1960년대 들어 ‘반정신의학’이 하나의 흐름으로 나타난다.

반정신의학이라는 용어를 만든 남아공 출신의 정신의학자 쿠퍼와 스코틀랜드 출신 레잉은 급진 좌파로 정신병을 하나의 ‘사기’로 정의했다. 반면 이 시대에 등장한 자유주의자 토마스 샤츠는 저인병원을 신화로 규정하고 정신병의 실체 또한 인정하지 않았다. 쿠퍼와 레잉, 샤츠는 정신과 환자의 고통을 사회적 원인으로 봤다는 데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정치적 이념은 급진과 온건으로 나뉘었다.

서구 정신장애 운동은 1970년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의 출현, 이후 1980년 온건화로의 노선 변경됐다.

윤 소장은 “1980년 정신장애인 소비자 개념이 나타나고 정신보건시스템의 폭력적 구조가 잦아들면서 정신장애 당사자와 정신보건시스템이 서로 협력하는 단계로 나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장애) 운동가들은 정신의학이 이윤을 추구하는 분야이고 환자와 퇴원환자의 자기결정을 낙인화하고 훼손한다”며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양상은 온건화됐지만 아직 정신보건시스템과 정신의학, 정신장애인들이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강인영 사람사랑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팀장은 정신장애인의 자립생활 실천 현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는 200여 개의 IL센터(자립생활센터)가 있다. 그는 2000년 이후 IL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데는 장애인 당사자를 주체로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원금이 많아서도 아니고 운영비가 많아서도 아니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함께 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IL센터들이 급증했다. IL센터가 갖는 운영 원칙은 모든 장애유형의 포괄, 장애인 권익옹호, 풀뿌리 운동 지향, 탈시설에 집중된다.”

현재 양천IL센터에는 세 개의 서포터 그룹이 공존한다. 신체장애인,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토론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 전체를 포괄할 것인가는 여전히 고민이라는 게 강 팀장의 설명이다.

강 팀장은 “현재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한자연)에서 동료상담 양성 과정을 하고 있는데 그 부분에 정신장애인에 대한 고려해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이들을 교육 과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유진 사람사랑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당사자 활동가는 “양천센터에 활동하면서 다양한 장애 유형의 당사자들과 만남을 통해서 역동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며 “신체장애 당사자들이 업무를 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자립이 스스로 모든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은 공적 자원을 활용해서 사업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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