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부모님들 어떻게 견디십니까?
정신장애인 부모님들 어떻게 견디십니까?
  • 임형빈 기자
  • 승인 2018.11.15 0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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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은 현대인들에게 평생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될 문제다. 각종 문화와 정보와 지식이 홍수를 이루는 이때 정신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는 요즘. 정신질환은 우리를 자각하게 한다.

직장 내에서 흔히 겪는 번아웃 증후군, 우울증, 관계망상은 직장인의 힘든 어깨를 짓누른다. 마음의 감기라는 우울증은 남녀 구별하지 않고 연약한 심리상태를 함부로 휘저어 이유없는 울음, 슬픔, 저주에 놓여 한판 살풀이를 하게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지럽혀 놓는 망상은 직장은 물론 가정 내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만들어 주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런 질환을 현대인은 가슴앓이 하듯 앓지만 인생의 친구와 같이 동행하는 정신질환자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그리고 그들 주위의 가족들, 특히 부모들의 심정은 까맣게 타들어간다. 당사자를 지켜봐야 하는 부모, 그들의 고통을 함께하는 부모, 이웃들로부터 냉대당하는 부모, 바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래도 품안의 따뜻한 내 새끼

“우리 아이가 조현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세상이 무너져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다니고 싶어하던 대학 입학을 눈앞에 두고 자신만의 아픔을 간직하다 내게 고백했을 때 가벼운 우울증인줄 알았는데 조현병이라니요. 학교 가는 것을 힘들어 해서 힘내라고 격려해 주었는데 담임선생의 분풀이 학습지도로 우리 애가 환청에 시달린다니 가슴 아픕니다. 그렇지만 초기 조현병이라 호전될 수 있다니 희망을 가지고 아이를 품을 것입니다.”

조현병 당사자 딸을 두고 있는 한경희(48.여) 씨의 말이다. 그녀의 딸은 학교 교사아 되는 것이 꿈이다. 학교 다닐 때부터 유아아동학에 관심을 가져 동네 아이들을 그렇게 좋아했다. 학교를 갔다오면 딸 세진(17)은 간식거리를 싸들고 동네놀이터에 가 아이들에게 동화구연을 해주곤 했다. 세진은 그것을 좋아했다.

대학교도 교대를 가겠다는 목적을 두었다. 그런 그녀가 담임선생의 교육 지침이 틀렸다고 당당히 항의했다가 그걸 빌미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나고 들어온 것이다.

그후 무슨 건수가 생기면 담임선생은 그녀를 불러다가 개인 한풀이하듯 호되게 교육 아닌 교육을 시킨 것이다. 세진은 그래도 선생을 이해한다며 학교 생활을 계속하다 얼마 전 사람들이 자신에게 비난하는 소리, 시비거는 소리에 시달리게 돼 휴학을 고려 중이다.

“그래도 소중한 내 딸입니다. 외동딸인 그를 조현병에 놓아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1년 휴학한 뒤 전국 관광명소란 명소를 다 다녀 딸에게 심적인 여유감을 줄 생각입니다. 그리고 좋은 책도 많이 사 줘서 딸 아이의 꿈을 이루게 할 것입니다. 연약한 민들레 같은 아이지만 초기 조현병은 호전이 될 수 있다니 희망을 가지고 아이의 헝클어진 꿈을 다시 싸매 푸른 하늘을 마음껏 보게 할 것입니다.”

경희 씨는 총명했던 세진의 모습을 다시 아련하게 그려보면서 그녀의 희망에 어머니의 삶을 더했다.

최종국(35)씨는 사회인 기업에 다니다 우울증이 심해져 잠시 직장을 쉬고 조현병 치료에 매진 중이다. 그는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금년 초만 해도 회사의 분위기 메이커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지만 절친한 회사 동료가 갑자기 사직서를 낸 후부터 웃음도 없어지고 감정의 기복이 많이 생겼다.

그후 조울증의 기미도 보여 회사 직원들과 자주 다투고 집에 들어와서 고성을 지르고 문을 열어놓은 채 지나가는 사람에게 심한 욕을 해대는 불상사가 생겼다. 집에서 어머니와 자주 다투며 언성을 높이며 차마 하지도 못할 말을 그녀에게 해댔다.

“내가 참고 이해하야지 하면서도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렇다고 싸울 수도 없구요. 종국이가 조현병을 앓은 지 15년이 넘습니다. 초기 때부터 내가 병원에 데려가 치료받게 했습니다. 요즘은 불면증이 심해져 약의 강도를 세게 처방했더라구요. 예전에는 집의 집기를 다 부수고 난리를 피웠어요. 한 2년 동안은 얌전해졌는데 다시 포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입원시킬 수도 없고 집에서 쉬면서 나와 함께 교회 다니며 진정시키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어머니 임성무(60.여) 씨의 하소연이다. 그녀는 종국 씨가 잘 때마다 머리맡에 성경책을 펼쳐놓고 기도를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역사를 전정시켜 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녀는 그를 위해 카메라기술학원을 수강해 놓았다. 그래도 안정이 될 때 카메라 촬영을 좋아하는 종국 씨를 위해 기술이라도 배워두면 앞으로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란 희망을 걸고 수강신청을 한 것이다.

종국 씨는 몸이 약해 자주 열병이 난다. 이때 어머니는 하루종일 그의 곁을 지키며 병수발을 든다. 찬 수건으로 정성껏 종국 씨 몸을 닦아 주면서 말이다.

"가슴 아픈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어릴 때에는 그래도 어머니라며 바싹 붙어 애교를 부릴 줄 알았죠. 이제 30대 중반이고 성인이라 내 뜻대로만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를 포기하면 우리 종국이는 어디로 가겠어요? 거리를 해매다 지쳐 쓰러지겠죠. 하지만 어미인 제가 그를 붙들어서 많이 진정시켜 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회사에 복귀시켜 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 조현병 당사자 부모들은 모두 다 가시나무새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외면해도 부모는 그렇게 못해

“정신장애연대가 바른 소리를 내야합니다. 우리들끼리 아무리 악을 써도 다른 당사자들의 부모들이 관심 없다 하면 일이 되지도 않죠. 다른 신체나 발달장애인들은 잘 움직입니다. 그들의 부모들이 현장을 뛰어다니며 적극적인 연사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정신장애 당사자들은 고지식해서 한 목소리를 내기가 힘듭니다. 당사자들이 직접 움직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우리 부모들이 그들의 목소리가 돼야 합니다. 우리가 바로 당사자이니까요.”

조현병 당사자 아들을 둔 장복영(50) 씨의 이야기다. 정신장애인들의 복리후생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를 상대로 좀 더 많은 당사자에게 복지의 혜택과 취업의 보장을 알리고 있다.

그의 아들 장기자(25)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조현병을 앓았다. 심한 망상과 환청에 시달리다 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기도 하고 병원 입원 생활도 몇 차례 가졌다. 그는 작년에 겨우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지역센터의 도움으로 바리스타 자격증에 도전하게 됐다.

그리고 합격해 센터 추천으로 시내의 한 카페에 직원으로 채용됐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조현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불이익을 당하고 수모를 겪었다. 그리고 직원들 월급날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일했는데도 봉급이 일반인 직원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화가 난 기자 씨는 항의했다. 카페는 필요없다며 그를 해고했다. 현재 정부의 장애인에 대한 복지지원 정책에 정신장애인들은 제외되었거나 열외된 상태다. 다른 신체장애나 발달장애인들의 월급은 장애인 최저임금(150만원)이 보장돼 있다. 그들의 강력한 한 목소리 내기에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복리후생을 튼튼히 해주고 지원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신장애인들은 그들의 정신 세계를 신뢰하고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각종 사업과 복지혜택에서 제외된다. 정신장애인들의 기본적인 월급은 50만 원 선이다. 그것도 일을 제대로 못하면 그 수준도 보장받지 못한다. 정신장애인들의 안정적이지 못한 정신건강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이유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해고된 정신장애인들의 부모들이 단체를 만들어 집단시위를 했다.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사회에서 이유 없이 배제되고 차별 받어야하는 아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한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처음엔 우리 정신장애인들이 뭘 하겠느냐는 것이죠. 부정적인 시각이 커서 서로 협력이 안 됐습니다. 그러다 한 명, 한 명 설득해 우리 부모들이 관심을 가지고 적극 나서면서 당사자들의 인권 현황을 알려야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신질환, 이 질병 하나로 지치고 사회적으로 소외되는데 왜 나서야 되냐고요? 그렇지만 우리 자식들 일입니다. 지금부터 당사자와 가족들이 현장에 뛰어들어 우리의 특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모두가 모른다고 외면을 해도 우리 당사자 부모들은 할 수 있다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야 합니다.”

장복영 씨의 작은 외침은 정신장애인을 자녀를 둔 아버지의 외침에 불과한 게 아니다. 국민의 한 사람이지만 그동안 외면돼 왔던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돌아봄으로써 그들들의 자리를 찾고, 인간 존엄을 회복해야 한다는 작지만 작지 않은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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