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 "당사자 동료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확인했어요"
[우리 이야기] "당사자 동료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확인했어요"
  • 임형빈 기자
  • 승인 2018.11.15 1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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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당사자 이현철 씨 인터뷰

우리 이야기 (c) 마인드포스트
우리 이야기 (c) 마인드포스트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자.’ 이 모토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매일 다짐합니다. 사람들에게 앙심을 품지 말고 친절을 베풀고 살아야 한다는 멘토의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 동네 주민들, 직장 동료들에게 항상 먼저 인사를 합니다. 웃는 얼굴에 사랑의 덕이 전달되길 원하면서요. 스피드한 시대에 여유를 가지고 사람들을 돕는 마음으로 살면 풀리지 않던 내 인생의 길이 술술 풀릴 것 같습니다.”

이현철(36) 씨는 당사자로서 가져야 할 덕목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현재 이음병원에서 식당 보조일을 하고 있다. 벌써 5년째다. 점심시간 한 시간 전부터 무거운 밥차를 옮기는데 힘들어 하지 않는 모습이다.

조현병 당사자 이현철(36) (c) 마인드포스트
조현병 당사자 이현철 씨 (c)마인드포스트

여성 동료 직원이 아프면 주방 일을 도맡아서 깨끗이 마무리 한다. 또 당사자들에게는 먼저 다가가고 먼저 웃음을 보낸다. 병으로 생이 짓눌린 이들을 그는 그렇게 미소로 위로한다.

그는 이음병원에서 일하기 전 1년 동안 전단지 돌리기와 빨래방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거기서 자연히 사회복귀 훈련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아버지(67)와 같이 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당신께서는 고령의 나이인데 아직도 건물 청소일을 하면서 저에게 손을 벌리지 않습니다. 항상 제가 안쓰러웠는지 내 손을 잡아 줄 때면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져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지 다짐을 하게 됩니다. 저야 볼것이 없는 당사자이지만 그래도 친구들에게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어느 날 현철 씨 때문에 우리 아들이 일터에 나가게 됐다는 격려를 들을 수도 있는 거구요. 우리 당사자들이 자꾸 움츠러들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와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가정에서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부모와 지식 간의 사랑, 형제 간의 사랑, 또 신뢰와 믿음, 희망이 있는 가정에서는 그 누구도 낙오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흔히 조현병 당사자가 있는 집안이 슬픔과 절망만 있는 걸로 오해를 종종 한다. 하지만 당사자가 치유되어 간다면 가족은 그 작은 사실에도 감사해할 줄 안다. 사랑이 모든 허물을 덮듯 가족도 당사자에게는 든든한 후원자이고 당사자는 가족에게 위로의 대상이 된다.

“집안에 사랑이 충만하면 다음 세대에서 사랑의 열매가 열린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남을 배려하고 예의를 갖추며 자기 일에 충실하는 가족의 구성원이 되고 싶습니다. 실천하는 철학관이 중요하죠. 작은 일이라도 내가 중심을 갖고 실천한다면 사회적으로 좋은 예가 되리라 믿습니다. 아버지의 일하는 모습이 늘 제게 작은 울림이었는데 그걸 통해 저도 일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현철 씨는 25살 때 조현병을 갖게 됐다. 환청이 찾아왔고 환시가 보였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혼자만의 섬에서 그는 자기 안의 생채기와 대화를 하며 보냈다. 용인정신병원에 두 번 입원했을 때 그는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면의 수치심과 분노는 수시로 찾아왔다. 그랬다. 고통은 모습을 바꾸어가며 그를 엄습했다. 20대 후반의 어느 날, 이음병원에 8개월을 보내고 퇴원했을 때 그는 마냥 이렇게 지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병원에서 운영하는 낮병원에 능동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회복은 그렇게 찾아왔다.

현철 씨는 낮병원 재활 프로그램에 부지런히 참여했고 이를 본 병원 관계자의 도움으로 식당보조일을 하게 됐다.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당사자들을 사귀게 됐고 자신에게 삶의 의미를 가르쳐준 멘토도 만났다.

“당사자에게 배울 점이 참 많습니다. 처음엔 말들이 없어 그러려니 하고 지냈는데 어느 날 한 친구가 말을 건네왔어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놀랐죠. 그래서 진지하게 사귀게 됐는데 그를 통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도리를 깨우치게 된 거예요. 그 사람의 소개로 당사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열린 마음으로 다가오니까 저도 철문 같았던 마음이 열리는 거예요. 지금은 그들의 충고와 도움으로 하루하루 사는 것이 즐겁습니다. ”

그의 회복의 길에는 사람의 '개입'이 있었다. 낮병원의 정모 과장(여)은 현철 씨 사례 관리자인 덕분에 인간적으로 그를 잘 대해 주었다고 한다. 자신이 남성이라 거리감을 가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정 과장이 먼저 다가와 인생 문제를 함께 의논했고 재활 의지도 심어주었다. 그는 그녀를 신뢰한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그녀에게 찾아가 의논을 한다.

그런 그도 가끔씩 복용하고 있는 약의 부작용을 겪는다. 입이 마르고 물을 많이 먹는 부작용인데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약의 농도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잡아주었으면 하는 욕구도 있다.

부모님이 이혼한 상태라 현재 현철 씨는 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다. 그래도 가끔씩 어머니로부터 안부전화가 오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부모님이 다시 합쳤으면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가지만 사적인 일이라 깊이 개입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래도 이번 김장철에 어머니가 어버지 집으로 와서 함께 김장을 담글 예정이라고 한다. 그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깁니다. 좋은 예든 나쁜 예든 다 떠나서요. 죽고 나면 사람은 가져가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단지 남는 것은 이름 석자. 그래서 저는 많은 사람들, 특히 당사자들을 도와주고 배려해주고 싶습니다. 삶을 가치있게 사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더불어 살면서 천천히 인간의 정을 느끼는 것, 사랑을 느끼는 거죠. 이렇게 사람이 앉아 쉴 수 있는 작고 소박한 벤치가 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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