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길 열려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길 열려
  • 임형빈 기자
  • 승인 2018.11.21 2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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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대화 하나가 생활의 원동력이 돼
자기만의 특기가 남들에겐 감동으로 전파

조현병 당사자 김직우(38) 씨는 오늘도 집을 나서 낮병원으로 향한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 겸 집안청소를 한 뒤 홀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작은 자취방에서 혼자 장을 봐 식사를 때우곤 했는데 어머니와 같이 지내며 작은 임대아파트도 마련했다. 모든 게 어머니의 관심과 지원 덕분이다.

“'어머니가 안 계시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참 끔찍한 상황이다. 이렇게 내 옆에서 같이 생활해주며 식사를 끼니 때마다 챙겨주시니 너무 황송하다. 조현병에 걸린 지 13년이 다 돼 가는데 어머니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생활은 상상하지도 못한다. 그냥 옆에서 일상적인 얘기, 금주의 화젯거리 등을 함께 얘기하면, 밖에서도 어머니와 같이 관심 써주시는 분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러면 힘이 난다.”

직우 씨는 남들이 보면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에겐 아주 특별하다. 조현병으로 사기가 저하된 자신에게 어머니의 관심이 크게 힘이 된다. 30분 동안 짧은 시간 대화를 나눠도 뭔지 모르는 감동의 시간을 맞는다.

이렇게 대화하는 것이 그에겐 하나의 치료 방법이다. 이 시너지 효과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이웃과 함께 인사하며 지낸다. 집 밖을 나와 낮병원까지 가며 이웃들 몇 명과 인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치료 과정의 하나다.

“제가 일부러 화제성 이야기를 먼저 꺼냅니다. 직우에게 ‘상쾌한 아침 잘 잤니?’하고 짧게 인사해도 걔 얼굴 표정이 달라집니다. 가볍게 식사를 한 후 신문기사 속의 화젯거리를 찾아내 심도 있게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 직우는 뭔가를 아는 듯 재잘재잘거리며 말을 해댑니다. 이렇게 아침부터 에너지를 충전시킨 후 밖의 생활을 하게 되면 무척 자연스럽고 힘이 난다고 말한답니다.”

직우 씨 어머니 손승연(60) 씨의 이야기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조현병 당사자에게 짧은 관심을 표현하더라도 그들은 감동 받는다. 그리고 오늘 ‘에너지 충전 받았으니 다른 사람에게 친절히 대하리라’고 다짐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당사자들은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아침이 힘들다. 약 기운 때문인지 다른 사람보다 1시간 가량 늦게 일어나 하루의 시작부터 스트레스가 쌓인다. ‘오늘도 지겨운 하루를 보내야 되나’하며 TV 리모컨부터 찾는다. 획일화된 방송에서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스스로를 깨우쳐서 가족들에게 관심을 가져보면 집안의 숨겨진 보석을 찾는 것 같은 감동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언니와 항상 등을 돌리고 살았어요. 제가 조현병에 걸린 후 더욱 더 예민하게 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언니가 씨익 웃으며 제 어깨를 툭 치며 농담을 던지는 거예요. 처음에 당황했지만 언니의 그런 모습은 매일 보게 됐어요. 그리고 저에 대한 간단한 칭찬부터 사소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절주절 됐어요. 저도 그 모습이 웃겨서 같이 대화를 나눴죠. 뭐 심도있는 대화가 아니라 여자들끼리 통하는 일상적인 이야기 같은 것이에요. 언니가 갑자기 달라진 것은 학교에서 ‘사랑하고 예민한 조현병 가족들’이란 특강을 듣고 뭔가를 깨닫고 저에게 관심과 대화를 시작한거예요. 지금은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언니가 됐지만요.”

조현병 당사자 김채린(24.여) 씨의 이야기다. 진리는 평범한 것 가운데 있다 한다. 너무 멀리서 보석 같은 진리를 찾으려 하지말고 가까운 집안의, 아니 같은 방안의 침대에서 진리를 찾아 같이 감동의 순간을 배가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저는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이 행복합니다. 공원에서 산책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아두면 나까지 힐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산천초목의 모습은 저에겐 감동의 순간이죠. 어느 날 센터의 당사자들과 공원으로 산책갔는데 프로필 사진 한 장씩만 찍어 달래서 아무 생각 없이 촬영했는데 그들 한 명, 한 명의 표정이 다 달랐습니다. 기쁘면서도 뭔가 사연이 있는 표정, 시크한 표정, 화사한 표정 등 전 그날 당사자 한 명, 한 명을 달리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들도 소중한 존재 뭐 그런 느낌이랄까요.”

조현병 당사자 고은우(40) 씨의 소감이다. 그는 20대에 조현병이 발병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갖다 카메라 촬영에 관심을 갖게 됐고 어렵게 독학으로 카메라 전문학원 과정을 이수해 지금은 지역신문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워낙 그림 그리는 것과 사진 촬영을 좋아해 자기만의 기술을 연마했다. 처음에 직장에 관계된 사진만 찍어대다 센터의 사례관리자가 당사자에게 관심을 갖고 촬영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언에 혼쾌히 승낙해 결국 본의 아니게 센터 행사담당 사진기사가 됐다.

처음에는 당사자들이 사진 찍히는 것을 거부해 당황했지만 센터 직원들의 설득으로 하나하나 사진의 주인공이 됐다. 어느 날 센터의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독사진들을 한 장씩 찍자고 해 10대부터 60대 당사자들의 사진 촬영을 하게 됐다.

어린 친구들은 캐릭터 복장을 하고 와서 찍기도 했으며 중년인들은 중후한 표정으로 화실의 주인공이 돼 갔다. 이날 60대 여성 당사자가 있었는데 화장을 곱게 하고 와서 사진을 찍게 됐는데 뭔가 답답한 것이 걸린 것처럼 불안해했다.

그렇지만 평상시 촬영처럼 넘어갔는데 그녀의 이름은 송윤희(60) 씨로 40대에 우울증과 조현병에 걸려 오랜 시간 동안 투병 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와 떨어져 살았다. 어느날 윤희 씨가 보이지 않아 그녀의 안부를 묻게 되었는데 사례담당자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그녀가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은우 씨는 깜짝 놀라 뭐라 말이 안 나왔다. 며칠 후 그녀의 딸이 찾아와 영정사진이 없는데 혹시 촬영한 사진이 있는가 물어봤다. 은우 씨는 순간 곱게 화장을 하고 찍은 사진이 있다고 해 그것을 주자 딸은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어머니와 찍은 사진은 어릴 때뿐이라며 그 후 사이가 나빠 떨어져 살았는데 이렇게 고운 사진을 얻게됐다며 몇 번이나 고맙다고 했다.

“저는 그때 그분이 그렇게 갈 줄 몰랐습니다. 평소에도 말이 없어서 안부 인사만 하고 지냈는데 왜 그때 곱게 화장을 하고 나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야 사진 찍는 기술밖에 없었죠. 특별히 잘 찍어드려야지 하고 심도있게 촬영했는데 그게 이 세상의 단 하나뿐인 영정사진이 될 줄 몰랐습니다. 사람의 인연과 우연은 하늘도 어쩌지 못한다 했는데 따님에게 크리스마스의 선물이 되었는가 봅니다.”

은우 씨는 그때 상황을 담담히 이야기 했다. 그에겐 사진촬영하는 기술이자 취미가 있었다. 그냥 감정가는대로 렌즈에 담아 셔터를 눌러댔다. 그날 송윤희 씨의 일이 있은 후 그는 카메라를 신중히 다루게 됐다. 꼭 필요할 때에만 찍자. 그렇지만 지금 순간이 필요할 때 이 기술을 제공하자는 다짐의 명분이 됐다.

조현병 당사자들의 작은 이야기들은 일반인들의 소중한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 자의이든 타의이든 세상사를 함께 살아가는 그들에게 작은 초점의 스토리가 소북히 쌓여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감동의 책장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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