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수기] 조현병과 더불어 살아가기
[회복수기] 조현병과 더불어 살아가기
  • 마인드포스트
  • 승인 2018.04.2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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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회복수기는 경북지역에서 지내고 있는 한 당사자의 진솔한 이야기입니다.

 

 

1. 나의 투병생활

2004년 늦은 봄 나에게 찾아온 끔찍한 고통은 가족들로 하여금 나를 정신병원에 집어넣게 만들었다. 일 때문에 지쳐있던 나에게, 급히 찾아온 양성증상(환청,환각)은 쌓인 울분과 설움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렵게 입사한 직장에서 많은 일을 했지만, 결국 나에게 남은 건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꼬리표 밖에 없었다. 환청이 점점 심해지면서 망상에 사로잡히게 되고 현실을 부정하고 파악할 수 없는 기괴한 망상에 둘러싸이게 됐다.

망상과 환청에 시달리며 방바닥에 붙어 소리를 지르던 순간을 셀 수 없었다. 머릿속의 고통은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신체는 건강하지만 환청과 대화를 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하루 종일 반복되는 고통은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를 때도 있었다. 내가 미쳤다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자제력을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하고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어 2008년 재입원을 하게 됐다. 병원에서 구급약을 주사 맞고 약을 먹기 시작한 지 며칠 지나게 되니 내가 미쳤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와 비슷한 환자들이 병원에 수십 명이 있었고 그들도 나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 무기력함과 나약함

병원에서의 두 달 동안 적절한 약물치료를 받게 되니 병식이 생기고 현실을 인정하게 됐다. 퇴원을 상담하면서 앞으로의 삶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참으로 막막한 심정이었다. 그동안 듣기만 했던 이른바 '미친 놈'이 됐으니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갈 수는 있었지만 돌아온 집에서는 약 먹는 때만 기다리는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양성증상이 사라질 만하니 무기력해졌고 나약해진 나의 모습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냉대와 조롱 어린 시선, 누군가의 뜻 모를 비웃음이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고 분노와 좌절을 수없이 반복하게 됐다. 약에 취해 잠이 들면 이른 아침의 부지런함은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3. 재활의지

나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일어나자마자 집 밖으로 나갔다. 햇볕이 좋은 날이면 무작정 걸었다. 매일 걷기를 반복하면서, 체력이 회복되고 음성증상도 많이 줄어들었다. 음성증상이 줄어들자 일을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고 돈을 벌어서 자립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하지만 사회의 보이지 않는 장벽들은 나를 다시 일으키기에 너무나도 높아 보였고,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작은 일부터,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자.' 다짐하고 다짐했다. 그 무렵 자조모임을 알게 됐고 인터넷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하게 되면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4. 내일을 향해

자조모임을 통해 의사소통 훈련도 하고,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고통과 후회를 극복한 다른 사람들을 보니, 세상에서 나만 홀로 된 듯한 외로움은 사라졌다. 무리한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생각의 폭을 넓혔다. 그동안 돈을 벌 수 없었지만 마음의 창을 열어 따사로운 햇빛을 바라볼 수 있었다. 사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해가면서 스스로의 만족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매일 쌓아가는 작은 소망이, 스스로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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