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시점 : 옥탑방 일기장을 마무리하며.
마음 날씨 : 우리를 가둔 프레임을 파괴하라.
나는 조현병 환자다.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조현병 환자다. 가끔 증상으로 괴로워하고 2주일에 한번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는다. 하지만 난 세상 그 누구보다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갈 곳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있고 지금도 좋아하며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 일을 하며 보람과 성취감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아침마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마시는 아메리카노가 맛있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북한산의 절경마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또한 내 곁에는 귀하고 소중한 사람들이 많다. 내가 조현병 환자인 것을 알면서도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많다. 한창 아팠던 20대 때, 새벽마다 나의 전화를 받아 주었던 사람들이 있어서 수많은 밤을 버틸 수 있었다.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던 대학교 동아리 선후배들, 날 걱정해주고 위해서 기도해 주었던 교회 목회자분들과 청년들, 그리고 함께 밥 먹고 차 마시고 영화보고, 문자와 통화를 주고 받는 소중한 친구들. 그들이 있었기에 난 조현병 환자라는 상황 속에서도 누구보다 큰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언론 기사 보도와 주고받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를 불쌍하거나 위험한 존재로 볼 것이다. 마음과 정신력이 약해서 남들도 흔히 겪는 상처에도 병원과 약에 의존하는 불쌍한 사람, 또 누군가는 묻지마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잠재적 범죄자라고 손가락질 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더 불쌍하고 위험한 사람들이다. 왜곡된 프레임에 갇힌 진정한 피해자들은 우리가 아닌 그들일 것이다. 언론과 사회의 프레임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도 같은 프레임의 기준에 갇히게 된다.
그 프레임은 말한다. “성공하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판검사나 의사 타이틀을 달아야 한다. 또한 명문대와 대기업이라는 번지르르한 곳에 소속되어야 한다.” 약육강식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누군가를 이기고 올라서야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 그들이야 말로 언론과 사회가 만든 최대의 피해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조차 사치로 여긴다. 그들이 선택하는 기준은 숫자다. 수능 점수와 학점, 토익 성적과 스펙, 그리고 나이에 따른 연봉과 아파트 평수에 맞추어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판단한다.
그들에게 행복이란 인생의 만족도와 가치, 꿈과 성취가 아닌 오직 숫자로 나타나는 결과물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도 없다. 결국은 결과물이 중요한 것이며 타인은 물론 자신의 삶과 행복조차도 기꺼이 희생하게 만든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월요일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듯 회사에 출근한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게 상처 받으며 숫자를 위해 조직의 부품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내가 진정 바라는 일과 직업, 꿈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세상의 가치관대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곤 빨리 금요일 밤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한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5일을 그렇게 불행하게 보내고 주말을 기다리는 것이다. 누군가는 퇴사를 꿈꾸고 누군가는 이직을 준비한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지 못한 이들은 제대로 된 꿈조차도 갖지 못한다. “요즘 카페가 돈이 된다더라, 푸드 트럭이 인기라며?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까?” 자신의 꿈과 상관없이 쉽고 안정적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것이 인생의 비전이고 꿈이라면 얼마나 가엾은 인생일까?
이런 프레임을 만드는 언론사의 기자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들 역시 언론인으로서 바른 소리와 올바른 시선으로 사회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명을 잃은 지 오래다. 그저 자극적인 기사와 내용으로 클릭수를 늘리는 것이 데스크로부터 받은 숙제라면 그 밑에서 일하는 기자와 작가들이 더 불쌍한 사람들 아닐까?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겠다는 초심을 포기하고 위에서 명령하는 대로, 클릭 수에 따른 광고효과와 언론사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야 말로 불쌍한 직업이라 생각된다. 그들은 조현병 환자들에 대해 불쌍하다거나 위험하다고 주장할 수 없는 입장에 서있다.
그렇기에 우리 조현병 환자들은 왜곡된 프레임에 맞추어 사는 것이 아닌, 왜곡된 프레임을 깨기 위해 살아야 한다. 세상의 프레임은 우리를 연약하고 불쌍한, 혹은 위험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 프레임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한없이 불행하고 우울해진다. 왜곡된 프레임에 속지 말라.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으며 또한 해낼 수가 있다. 우리는 그 프레임을 파괴할 때, 삶이 의미 있고 스스로도 행복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과감히 도전하고 배우며 실천하라. 우리의 행복은 세상의 시선과 프레임이 정하는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결정하는 것이다.
- '바울의 가시' 작가 겸 옥탑방 프로덕션 대표 이관형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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