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주, “보건소와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동료지원가, 가족상담가를 상근시켜야 해요”
이홍주, “보건소와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동료지원가, 가족상담가를 상근시켜야 해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12.19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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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 관련 상담 매뉴얼 없어서 혼자 공부
심리 쪽은 스스로 답답해서 찾아본 게 계기돼
입원 시설 등을 보건소와 센터가 공유해야
정신질환에 대한 약물 정보 가족이 잘 알아야
종교는 아내 회복에 대한 기대를 높여줘
정신장애인의 복지시설 이용에 제한 많아…개선해야
최소약물 복용으로 목표를 정해야
치유는 당사자 말을 들어주고 인정해주는 것
가족들이 정치적 투쟁에 힘을 모아야

 

아내는 11살 연상이었다. 그리고 그는 시각장애인 2급이었다. 어느 날 고향 전남 나주의 어느 공간에서 아내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도움을 청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자신과 대화를 좀 하자고 했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그녀와 이후 서울로 올라와 동거에 들어갔다. 가족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이라 장애인고용공단 쪽을 통해 일자리를 얻었고 전자 반도체 공장, 미원 포장 회사, 시세이도 화장품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는 아내가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걸 알게 됐다. 아내는 자신을 의심했다.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 같은 의부증이었다. 세 번의 강제입원이 있었다. 첫 입원 때 그는 아내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도움을 청할 곳도 보건서와 정신건강복지센터 외에는 없었다. 답답했다.

도서관에서 조현병과 관련된 책을 읽었고 자료를 모았지만 중요한 도움을 얻을 수는 없었다. 만약 아내가 초발 증상을 보였을 때 보건소에 동료지원가나 가족지원가가 있어서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아내는 좀 더 일찍 회복되고 자신도 정보부족으로 힘들어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국가는 정신장애인들 예산에 대해 무심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정신장애인 가족들의 정치적 힘이 너무도 미약하기 때문에 정부가 이들의 삶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정신장애인 단체들의 단합된 힘과 정치적 투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아내는 조금씩 회복됐고 그는 그 작은 회복의 순간마다 감사를 드렸다. 이제는 아내와 약을 줄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조금씩 약을 감량해 가면서 마침내 클로자핀 두 알로 살아갈 수 있기를 그는 바란다. 그는 아내의 회복의 결정적 요인은 ‘사랑’이라고 말했다. 현재 그는 금천구 정신건강복지센터 가족모임 회장과 패밀리링크 가족강사 서울시지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기자는 얼굴도 본 적 없는 그에게 연락해 인터뷰를 요청했고 그는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이홍주(40)씨를 만난 건 17일 길목에 플라타너스 잎새가 떨어져내리던 오후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홍주 패밀리링크 서울지부장 (c)마인드포스트
이홍주 패밀리링크 서울지부장 (c)마인드포스트

-아내는 몇 살 때 발병한 겁니까.

“저랑 살면서 초반에 일 년 가량 저 모르게 약을 먹었나 봐요. 아침에 내가 (직장) 나간 다음에 먹었든가 아니면 또 퇴근하기 전에 먹었든가. 저는 몰랐어요. 눈치도 못 챘고. 어느 날 (집에) 약이 떨어져 있는 거예요. 저는 특별하게 제가 먹는 약이 없으니까 약국에 가서 물어본 거죠. 이 약이 무슨 약이냐니까 정신과 약인 거 같다고 해서 그걸 또 정신병원에 가서 물어봤더니 정신분열증 약인 거 같대요. 내가 아내한테 물어봤죠. 그랬더니 나중에 그걸 말을 하더라고요.”

-그때 처음 입원하신 겁니까.

“입원은 나중에 한 거고요. 제가 직장 다녔는데 (아내가) 환청이 들리니까 나를 오해를 하는 거예요. 자기 놔두고 밖에서 여자를 만난다든지, 아니면 자기 돈을 다 쓰고 다닌다고 망상을 해서 저한테 당장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증상이 올라오니까 제가 처형을 불러서 입원을 얘기했죠. 아내는 병원 응급차 오니까 안 가겠다면서 나를 손톱으로 긁고 베개로 때리고.”

-강제입원 됐습니까.

“네 그때 강제입원.”

-몇 번 입원한 겁니까.

“저를 만나가지고 3번 정도 입원했어요.

-다 강제입원이었습니까.

“네 저하고 있을 때 두 번 했고. 한 번은 친정어머니 집에 갔다 온다고 했는데 거기서 증상이 올라와서 엄마가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고 자기가 친딸이 아닌 것 같다 막 원망하다가 엄마가 그럼 가라 너 내 자식 아니다 했어요. 이게 환청하고 접목을 시켜버리니까 어머니가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경찰 불러서 근방 병원에 데리고 갔어요. 첫 번째는 집에서 처형들하고 한 거, 두 번째는 저하고 같이 간 거고 어머니가 세 번째.”

-처음에 입원하실 때 감정이 어땠습니까.

“뭐랄까, 믿는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니까 내가 앞으로 이 사람하고 살아야 되는 건지 딴 길을 찾아서 새로운 삶을 살아야 되는지 이런 걸 많이 고민했죠.”

-처음 발병하면 가족은 당혹해하고 현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선생님도 그랬습니까.

“맞습니다. 저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니까 혼자 고민하고 어디 가서 물어볼 데도 없었고. 하도 답답해서 도서관에 가서 정신분열증 관련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제가 사는 곳의 보건소를 한 번 갔어요. 와이프가 환청이 있기 때문에 침을 맞으면 괜찮다는 말을 듣고 갔는데 와이프가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요. 그래서 정신과적으로 아프다 그랬더니 정신건강복지센터 전화번호를 주더라고요.

그래서 가게 됐고 와이프도 그때부터 계속 다니고 있어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가족들이 처음 당했을 때 기관을 연결해줄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정신건강복지센터 가 봤자 복지센터 치매해야지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심도 깊은 상담이 안 돼요. 기본적인 것만 물어보는 거예요. 밥을 먹느냐, 약을 먹고 있느냐. 그거는 실제 큰 도움이 안 되거든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환자들이나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매뉴얼 같은 게 있으면 좋겠어요. 입원 시설 같은 경우 지역에 있는 것들을 보건소에서 공유를 해 주는 거예요. 꼭 정신보건센터 안 가더라도 그런 것들을 전화해 보고 상담할 수 있는 곳. 재활시설이나 입원시설 이런 것. 입원 시설 아니면 그냥 주간시설이나 재활시설들요. 그런 시설이 없잖아요.

한국정신사회재활협회 홈페이지 들어가면 알 수 있겠지만 일반 가족들은 모른단 말이에요. 그런 걸 복지부나 지자체가 (매뉴얼을) 만들어서 보건소라든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같이 공유해주면 좋잖아요. 근데 진짜 답답해요.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모르고 아는 거라고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인데 거기는 심도 있는 상담이 안 되고 결국은 가족이 책임을 져야 돼요. 내가 알아서 케어를 해야 되고 약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되고. 하도 답답해 하고 있으니까 금천구 정신건강복지센터 가족계획 담당자님이 이런 교육이 있으니 패밀리링크 한번 받아 봐라. 그래서 받아본 거고요.

그때부터 조금씩 정신질환에 대해 알게 되고 아, 이런 증상이 있구나, 약물이 있구나라는 도움이 된 거죠. 그 전에는 책 외에는 대책이 없었어요. 정신과에서 의사 선생도 깊이 있게 안 해 주잖아요. 약 잘 먹죠. (질문하고) 나가야 돼요. 물어볼 시간도 없어요. 그게 가장 답답해요.”

-미신이라든가 이런 걸로 치료를 모색했던 적이 있습니까.

“그런 건 없었습니다. 아내가 치료할 방법이 없으니까 제가 정신장애 책을 읽고 직접 케어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니면 센터. 근데 센터 사례담당자는 3개월에 한 번씩 와요. 와서 기본적인 거 체크만 하고 가는 거예요. 잘 있는가, 약은 잘 먹고 있는가. 크게 도움이 안 돼요. 저는 기독교를 믿기 때문에 미신에 대해 생각 안 했어요. 교회는 같이 오래 다녔어요.”

-아내가 병식이 없을 때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처음 입원할 때 저도 모르고 지식이 없잖아요. 안 되면 병원에 같이 가서 상담하자, 선생님한테 가자, 약을 조절하자 이런 식으로 했었어요. 패밀리링크 교육을 받은 뒤에는 대화법에 관한 책을 공부해요. 그런 걸 하다보니까 조금 대화가 되는 거예요.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니까. 반복해서 들어주고 조금만 잘하면 칭찬해 주고. 옛날에 안 했던 걸 조금 잘하면 아 잘했네 이렇게 (해 주고요). 음식도 맛있어 이렇게 해주니까 본인도 용기가 난 거 같아요. 자기를 인정해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가 봐요.

그래서 본인이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옛날에는 귀찮아서 안 했는데. 샤워 같은 것도 귀찮아서 안 하려 했는데 제가 비교를 해서 얘기했어요. 센터에 가서 냄새가 나는 친구들을 봤을 때 어때 하니까 옆에 못 있겠대요. 근데 당신도 그렇게 있으면 냄새가 나잖아, 깨끗하게 있으면 친구들이 당신을 만나려고 하고 얘기를 하려고 하니까 하루에 한 번씩 씻자. 그렇게 이해를 하니까 서로 이야기가 좀 돼요.”

-슬하에 아이는 있습니까.

“저는 없습니다. 저는 와이프가 아프다보니까 지금 16년 정도 됐거든요. 2002년부터니까. 그래서 일단 먼저 아내를 위해서 자녀는 포기하는 게 나을 거 같고. 자녀까지 케어할 수 있는 힘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이 고민했죠. 가족들은 자녀에 대한 것도 고민을 많이 합니다. 왜냐면 유전적인 부분이 없다고 해도 있지 않습니까. 당뇨라든지 고혈압처럼. 그런 부분도 감안했기 때문에 많이 고민했고 내가 아내를 위해서 양보를 하자 그렇게 생각했어요.”

(c)마인드포스트
이홍주 패밀리링크 서울지부장 (c)마인드포스트

-강제입원이 많은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강제입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좀 복잡하잖아요. 의사가 1차 진단하고 2차 진단까지 하는데 의사가 서로 반대하는 경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건 말이 안 돼요. 절차도 까다롭게 해놓으니까 급할 때 이용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 서류를 언제 다 준비합니까. 까다롭고. 그래서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죠. 급할 때 물에서 먼저 건져야지 빠진 다음에 밧줄을 던지면 뭐합니까. 급할 때 우선 입원할 수 있게 해 주고 그 다음에 후순위로 서류를 하든가 해야지. 서류 먼저하고 환자는 나중에 들어와라 이건 아니라는 것이죠.”

-혹시 정신병원에서 아내께서 부당한 일을 겪은 일은 있습니까.

“아내한테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처음 들어갔을 때 증상이 올라와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독방에 넣어서 묶어버렸대요. 말 안 들으면 폭력적인 것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독방에서 안정이 되면 그때 나오게 했다, 거기까지는 제가 들었습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의 문제가 있다면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입·퇴원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어놓고 가족들 이용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잖아요. 서류를 다 준비해야 되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예 이용도 못하잖아요. 정신과 의사가 이 사람 입원 필요 없습니다 하면 필요한데도 못 하잖아요. 그건 말이 안 된다는 거죠. 가족들 피부에 와 닿는 매뉴얼 같은 시스템이 있어야 되는데 재개정이 필요하다 생각해요.”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이 입원을 까다롭게 한 이유는 과거에 굉장히 많은 인권침해가 있었잖아요. 재산 문제 때문에 정신병원에서 못 나오게 만들어버리는. 그거를 엄격히 하기 위해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었거든요. 근데 선생님이 말한 건 정신건강복지법이 다시 만들어져야 된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렇습니까.

“인권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인권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 사람들이 무조건 (병원에) 안 들어간다고 해서 사회에서 잘 회복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와야 되는데 무조건 밖으로 내 보내고 네가 알아서 해라, 그게 인권입니까. 그건 아니잖아요. 밖에서 병원에 들어가서 해 주는 것도 인권이잖아요. 내가 아프고 지금 약을 먹어야 되는 게 인권을 보호해주는 거지 밖에 나가서 네가 알아서 약 먹고 주사 맞아라 하면 그건 아니라는 거죠.

인권에 해당되는 매뉴얼을 만들어서 이 사람이 진짜 인권침해를 당했는가 안 당했는가를 평가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인권 하나를 가지고 전체를 다 묶어버리면 다른 급한 사람들은 이용을 못하잖아요. 나는 급해 죽겠는데 내가 알아서 다 찾아먹어라. 제가 처음에 당했던 것처럼 다 알아서 다녀야 되잖아요. 약을 찾아야 되고 병원을 찾아야 되고.”

-만약 초발 정신장애인을 가진 가족이 있다면 어떤 도움 되는 말씀을 해주고 싶습니까.

“저도 그랬지만 초발자들은 보호자들이 힘들어해요. 가족들이요. 제가 하고 있지만 패밀리링크 가족교육에 잘 참여하고 질환에 대한 약물을 가족들이 알아야 돼요. 가족들이 참여해서 공유를 해야 돼요. 환우들과 정보를 같이 하는 거죠. 약에 대한 걸 같이 이야기를 해 준다든지 이 약이 어떤 거라는 걸 환우도 알고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래야 내가 급하고 아플 때 그걸 먹을 수 있게 해 줘야죠. 항상 제가 환우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이 약을 먹었을 때 약 이름하고 부작용이 뭔지를 알고 먹으라는 거예요.”

-패밀리링크 강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패밀리링크는 환우 당사자와 가족이면 참여를 할 수 있고요. 3단계로 나눠져요. 기초 과정, 지역심화 과정, 중앙심화 과정 이렇게 해서. 기초 과정은 당사자 가족들이 들어오는 거고요. 지역심화 과정은 기초 과정을 이수한 분들이 대상입니다. 중앙심화 과정은 지역심화 과정을 이수하신 분들이 거기서 가족강사 테스트를 봅니다. 테스트 통과를 하면 자격증을 드리고 그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지금 제주도까지 10개 지부가 있습니다.”

-테스트는 어떤 테스트를 합니까.

“일반적인 강의 테스트 있잖아요. 패밀리링크 주제가 12개가 있는데 그 중에서 12번째 마지막 거는 총 정리하는 거니까 11개를 가지고 10분 안에 자기경험을 담아서 얘기를 하는 겁니다. 주제를 가지고 자기경험하고 교재 내용을 접목시켜서요.”

-주제는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습니까.

“1과 같은 경우에는 정신질환에 대한 이야기. 2권 누가 나를 이해해줄까, 의사소통의 방법. 3과는 정신치료 약물에 관한 것들. 4과는 함께 하는 의사결정. 5과는 위기관리 등.”

-초급부터 중앙심화 과정까지 얼마 정도 기간이 걸립니까.

“기초 과정은 매년 패밀리링크 주최 기관에서 공지하는 내용을 보면 3월에서 9월까지 수행을 합니다. 그리고 10월에서 11월까지 지역심화 과정을 시행하고요. 그리고 내년 3~4월에 중앙심화 과정을 합니다. 1년 정도 소요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아내가 첫 발병했을 때 이렇게 행동할 걸 하는 후회가 남는 부분이 있습니까.

“처음에는 모르니까 무조건 처형한테 정신병원 이야기를 했어요. 처음에는 아내하고 많이 싸웠어요.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하잖아요. 본인이 환청 때문에 오해를 하고. 직장이 9시에서 6시잖아요. 거기 다녀오면 밖에 딴 데서 연인을 만나고 온 것처럼 오해를 하고. 나 혼자 자기를 버리고 가는 거 같은 느낌도 들고. 저는 아니다 직장 다닌다. 전화해봐라 해요. 전화도 직장에 많이 해서 제가 미안해서 회사를 나왔어요. 아내가 전화를 너무 많이 해요.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니까 본인이 확인하고 싶은 게 있잖아요. 그래서 오전에 한두 번하고 오후에도 두세 번 해 버리니까 사모님이 너무 힘들어하는 거예요. 뭔 전화를 이렇게 많이 하냐고. 내가 거기에 대해서 편견이 있기 때문에 말을 못하죠. 아내가 아파서 제 도움이 많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그래요. 근데 그게 한두 달이면 괜찮은데 거의 일 년 가까이 해 버리니까 제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사정이 있어서 그만 두겠습니다하고 나왔어요.”

-지금 하시는 일은 뭡니까.

“지금 아내 때문에 특별하게 하는 건 없어요. 가족강사를 좀 많이 하고 있고. 패밀리링크 전체 지부장들하고도 같이 얘기를 해서 소통하자 이렇게 하고 있고. 직장은 없어요.”

-아내는 기초생활수급권자인가요.

“네 저도 같이.”

-생활은 됩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아내가 처음에 정신건강복지센터 갔는데 완전히 폐인처럼 말도 없고 가만히 있으니까 회복이 안 된다 그럴 정도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됐다고 하지만 그래도 제 손길이 필요한 상태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은 일할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수급자를 떠나서.”

(c)마인드포스트
이홍주 패밀리링크 서울지부장 (c)마인드포스트

-커피 바리스타, 이미지메이킹 2급, 안전지도사, 정보처리기능사, 정보기기운영기능사, 캘리그라프지도사 등을 땄는데요. 이런 자격증을 딴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처음부터 자격증 따려고 한 건 아니었고요. 아내가 여성이다 보니까 옷 같은 걸 많이 궁금해 하잖아요. 옷이 맞냐 안 맞냐 이렇게. 인터넷으로 찾아보니까 이미지 메이킹 같은 게 있더라고요. 그때는 대충 봤어요. 근데 아내가 계속 그런 걸 궁금해 하고 또 커피에 대해서도 아내가 하고 싶다 해서 혹시나 하게 되면 내가 따라다니면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땄어요).

심리 같은 건 내가 답답하니까 하는 거고. 정보처리기능사, 정보기기운용기능사 등을 딴 이유는 아내가 증상이 올라오면 주위에 있는 걸 들어요. 위험한 것들을 든단 말이에요. 근데 제가 무조건 제압해서 병원에 데리고 가야 되는 건지 궁금하잖아요. 그런 장애인들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잘 진정을 시킬 수 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제가 직접 당하니까. 어디 없나 했더니 이런 게 있어서 따 놓으면 괜찮겠다 해서 따 놓은 거예요.”

-심리상담사 1급, 가족심리상담사 1급, 아동심리상담사 1급, 노인심리상담사 1급, 미술심리상담사 1급, 음악심리상담사 1급, 분노조절상담지도사 1급 등 많은 심리 자격증을 땄습니다. 이걸 따면서 아내에게 도움이 됐습니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음악은 옛날에는 그냥 틀어주면 됐는데 지금은 아내한테 맞는 음악을 맞춰준다 그럴까요. 아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맞춰주는 거죠. 아내도 옛날에는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음악을 듣고 기분이 좋아지니까 혼자서도 음악을 틀면 중얼중얼하면서 따라도 부르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미술 같은 것도 그냥 같이 그리는 거예요. 같이 그려보면 (증세가) 대충 나오잖아요.

이 상태가 좀 많이 다운 돼 있는 거 같다. 그걸 보면서 제가 같이 외출하면서 기분도 올려주고. 그러니까 아내가 말을 못한 거를 그림을 통해서 알게 되는 거죠. 이 친구가 기분이 많이 올라왔다 그러면 좀 내려주고. 심리 같은 나머지는 내가 답답해서요. 답답해서 아동도 뒤져보고 심리도 뒤져보고 가족도 뒤져봤죠.”

-예를 들면 유전적인 거요.

“네. 당뇨처럼 가족력은 있지만 정신 쪽이라고 해서 이 사람이 꼭 정신과적인 게 있다 이런 건 아니라는 거죠. 저도 그게 답답해서 뒤져본 거예요.”

-상담사 1급 따려면 보통 몇 개월 걸립니까.

“저는 정식 대학교는 아니고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민간 자격증 있잖아요. 그 과정에서 얼마 정도 교육을 이수하고 자격증 응시를 해서 합격하면 되죠.”

-아내를 케어하면서 하시던 일들은 다 중단됐던가요.

“솔직히 말하면 엄두가 안 나요. 다니고는 싶죠. 수급자 이걸로는 생활하기는 힘들어요. 백여 만 원 좀 넘는 거 갖고. 아내가 많이는 아니지만 회복이 됐는데 거기서 다시 옛날로 돌아갈까봐 가장 겁나는 게 그거에요. 이만큼 했는데 조금 더 올라와야 될 텐데 하다가도 (잘못되면) 제가 또 옛날처럼 힘들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를 케어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합니다).”

-지금 아내 분은 하고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죠.

“중간 중간에 분식점 같은 데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커피 갖다 주세요 하면 다른 사람은 네 하고 갖다주잖아요. 자신은 느리니까 거기서 나오지 말아라 해요. 왜 그러냐면 다른 사람들이 두 개 할 때 와이프는 하나를 하는 거예요. 느리니까 약 때문에. 그리고 앉아 있고 하니까 주인이 답답해하는 거죠. 그래서 2~3번인가 (직장 다녔어요). 그 다음부터는 제가 못 나가게 했어요.”

-보통 몇 개월씩 일했습니까.

“몇 개월이 아니라 거의 주 단위에요. 오래 못해요. 거의 한달 안짝. 일주일 안짝. 본인이 하고 싶어도 사장이 답답해 하니까. 급하게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종교가 선생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어디 말할 수 없는 게 있잖아요. 형제한테 말할 수 없고 친구한테도 말할 수 없는 걸 그나마 교회에 가서 말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좀 도움이 됐어요. 그러니까 내 말에 누군가는 반박 없이 불평 없이 들어주잖아요. 그러면 속이 시원하고. 그렇게 하면 복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언젠가는 나을 거 같은 기분이 들어요. 내 아내가 언제 회복되는 그런 기대는 있었죠. 어디 기적이 나서 내일이라도 다음 주라도, 아니면 한 달 후에라도 나을 거 같은 그런 거 있죠.”

-정신장애인들은 결혼을 할 엄두를 못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결혼을 바라봐야 할까요.

“저는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내년에 제가 가족강사들하고 하고 싶은 게 그거에요. 여자 친구든 남자친구든 일단 집에서 꺼내는 게 회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로 사진을 교환해서 남자하고 여자하고 만나기 불편하면 여자는 여자끼리 연결을 해 주는 거예요. 친구를 연결해 주는 거죠. 그래서 서로가 좋아하게 되면 사진을 봤으니까 이야기를 하고. 환우끼리는 통하는 게 있잖아요. 그렇게 만나게 해서 밖으로 나오게 하고 같이 센터 다니면 그 다음부터는 회복의 단계로 갈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년에 우리 패밀리링크 서울지부 가족들과 하려고 합니다.”

-서울지부의 회원은 몇 명입니까.

“서울지부요. 지금은 29명 정도. 근데 활동 안 하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여성정신장애인이기 때문에 더 억압받고 차별받은 기억은 있습니까.

“여성장애인이어서 억압받는 건 모르겠고 정신장애에 대해서는 그런 건 있었어요. 주민센터라든지 생활시설 같은 곳에 갔는데 처음에는 이용할 수 있대요. 근데 정신장애인이라고 할인 받으려고 복지카드를 내니까 안 된대요. 정신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거예요. 수영을 하려고 했는데. 제가 항의를 했더니 그냥 이용하시라고 해서 이용을 하게 됐던 경우가 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처음엔 주민센터도 장애를 막 따졌어요. 아내가 요가를 하고 싶은데 정신장애라고 하니까 다른 사람에게 피해갈 수 있으니까 대기상태로 빼 버리는 거예요. 그럼 난 억울하잖아요. 나도 시각장애인이지만 나는 헬스가 되는데 아내는 정신장애라고 해서 요가를 못하게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담당자에게 말 했어요. 내 아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안 주게 각서를 쓰겠다 했더니 처음에는 고민하더니 일단 해보시라고 해서 일 년을 했어요. 문제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 게 힘들어요. 여성이든 남성이든 정신장애인이 이용하는 데 너무 제한이 많다는 거예요.”

-회복되기 위해서는 어떤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동료지원가, 가족지원가를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배치를 시켜서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도록 복지부가 지원해줘야 하다는 거죠. 가족강사도 있잖아요. 복지부에서는 생각도 안 하고 있잖아요. 활용을 안 하잖아요. 보건소에 가서 직접 상주를 해서, 그게 계약직이든 상근이든 간에 앉혀서 누가 왔을 때 바로 상담할 수 있어야 가족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거기서는 정신건강복지센터만 알려준다 말이에요.

저는 그 지원가들을 활용을 하면 충분히 된다고 생각해요. 환우가 왔을 때는 동료 환우가 가서 내가 취업하는 데 이게 도움이 되더라. 바리스타면 바리스타가 도움이 되더라, 이렇게 할 수가 있잖아요. 그런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거죠. 가족들도 가족활동지원가들이 개인병원이 이런 게 있고 대학병원은 이런 장단점이 있다. 아니면 증상이 올라왔을 때 이렇게 하는 게 도움이 되더라. 서로 정보가 공유가 되고 케어가 되는데 그 자체가 지금 아무 것도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부가 할 수 있는 인력들이 있는데 활용할 연구도 안 한다는 거죠. 가족이나 동료지원가 이런 사람들과 자리를 마련해서 이야기하고 그걸 활용하라는 거죠.”

-아내에 대해 어떤 부분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아내와 항상 이야기를 해요. 약 먹고 힘들어하고 그러니까 당신이 먹는 약 두 가지만 목표로 하자고. 약은 끝까지 먹어야 된다는 걸 아내도 알고 있어요. 한 십 년 되니까 병식이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자기도 먹어야 된다는 걸 아니까 제가 아내한테 클로자핀 두 가지만 먹을 정도로 목표를 정하자고 했어요. 약을 감량하는 걸 목적으로 하니까 아내도 약 먹는 거에 대해 귀찮아하면서도 그 희망이 있기 때문에 같이 하는 거죠.”

-당신에게 치유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치유요.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당사자 말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인정해주는 거요. 잘한 부분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고 그러다보면 이 사람도 자기에 대해서 자존감이 높아가니까 좀 살아보려고 하는 거 같아요. 본인도 저 사람이 나를 인정해주고 한 사람으로 대우해주는 거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거 같고.

무시하는 것보다 당신이 아프니까 무슨 말 하지 마, 당신 말 틀렸어가 아니라 당신 말도 맞는데 한번 그렇게 해볼까 해서 안 되면 그때 당신이 이렇게 틀렸네 이렇게 해야지(라고 해줘야죠). 잘했으면 잘했다고 해 주고. 저는 그렇게 했어요. 아내 말을 들어주고 칭찬해주고. 그게 사랑이죠. 사랑해주고 칭찬해주고. 그게 필요한 것 같아요. 약은 필수고 거기에 따라가는 게 사랑하고 칭찬.”

-정신과 약을 거부하는 정신장애인들이 있습니다.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습니까.

“일반적인 사람도 힘 드는데 그 분들도 많이 힘들겠죠. 하루에 한 번 먹든지 두 번 먹든지. 당뇨라든지 고혈압 있는 분들도 약을 끝까지 먹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 될 거 같아요. 내가 정신장애인이라서 먹는 게 아니라 당연히 고혈압이 있어서 먹는 것처럼, 혹은 감기 오면 먹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그 대신 약이 많으면 전문의와 상담해서 최소용량으로 줄이는 방향으로 목표를 설정해 놓고 하시면 그렇게 힘들지 않을 거 같아요. 감량을 해 가면서 목표를 설정해 놓고요. 그러면 그런 목표가 있으니까 먹어도 힘들지 않을 거 같아요. 제 경험으로는 그래요. 저도 덜 힘들고. 어떤 목표를 바라보니까.”

(c)마인드포스트
이홍주 패밀리링크 서울지부장 (c)마인드포스트

-지금 아내는 몇 알 먹고 있습니까.

“아침에 열 알. 저녁에 열네 알. 중요한 거는 몇 가지가 안 돼요. 클로자핀하고 항우울제 약하고 안정제하고 변비약이 많이 들어가 있고요. 중요한 건 클로자핀, 썰피디 이런 거거든요. 나머지는 부작용 때문에 변비약 아침에 두 개 저녁에 두 개 들어가 있고. 우울증이나 기분이 다운될까봐 그 약도 두 알 들어가 있어요.”

-부작용은 없던가요.

“약을 먹으면서 제일 중요한 건 침을 많이 흘리니까 베개에다 수건을 깔아주기도 하고요. 또 잠을 많이 자잖아요. 몸이 쳐지고. 더 심한 건 뭐냐면 하지쪽으로 다리가 찌릿찌릿하대요. 다리가 전기 오는 것처럼 찌릿찌릿. 주치의에게 말했더니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약은 없대요. 신경외과로 갔어요. 거기서 그게 하지불안증후라고 하더라고요. 그 약을 저녁에 두 알씩 먹거든요. 그런데도 증상이 조금은 있어요. 제일 많은 건 침 흘리는 거. 그 다음에 잠자는 것. 그 다음에 잘 때 떨리는 거.”

-금천구 정신건강복지센터 가족모임 회장입니다. 어떤 일을 주로 하십니까.

“가족들 있을 때 회의 진행하고 가족들 연락도 해 드리고요. 나이 드신 분들 행사 있으면 안내도 해 드리고 같이 가 주고. 가족교육뿐만 아니라 정보 같은 게 있으면 카톡을 통해서 공유도 해주고 그런 걸 하고 있어요. 인원은 50명 정도.”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겁니까.

“아니요. 옛날에는 여섯 번 모였는데 지금은 예산이 줄었나 봐요. 그래서 3개월에 한 번씩 분기마다 만나요. 모이면 정신과 전문의라든지 저희 가족강사들 모셔서 강의하고 거기서 평가하고 제가 공지할 건 공지하고. 같이 이야기할 것도 나눠보고 질의응답하고.”

-대부분 가족이겠죠.

“네 다 가족. 그리고 환우들도 와요. 왜 그러냐면 불안해 하니까 같이 오라고 그래요.”

-만나면서 치유가 됐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있어요. 교육을 통해서 약에 대해서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고요. 그리고 자기만 힘들 줄 알았는데 가족강사를 이야기를 들으면 저렇게 힘든 사람이 있었구나 공감하죠. 우리 금천구에서 요번에 패밀리 강사가 된 사람도 있고요.”

-당사자가요.

“아니요 부모님이. 패밀리링크에도 전국적으로 요번에 세 명의 여성 당사자분이 가족강사가 됐어요.”

-조현병 당사자요.

“네. 세 분 여자분들. 당사자예요. 결혼하신 분도 있고.”

-정신장애인 이전의 아내와 정신장애인 이후의 아내는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이게 됐는가요.

“환자인 당사자를 인정 안 했을 때는 내 위주로 생활이 돌아갔는데 이제 아내가 당사자 환우다 이렇게 보니까 모든 포커스가 아내에게 맞춰지는 거예요. 생활주기가 아내로 맞춰지는 거예요. 밥 먹는 시간, 약 먹는 시간도 아내에게 맞춰지고요. 옛날에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먹었거든요. 생활 패턴이 내 중심에서 아내 중심으로 넘어갔어요.”

-선생님에게 아내는 어떤 의미입니까.

“옛날에는 많이 힘들어서 케어하기 힘든 존재였는데 지금은 많이 케어가 되니까 같이 이겨줘서 고맙고요. 옛날에는 많이 힘들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싸우고 그랬으니까요. 증상 때문에 싸우고 병원에 입원하는 걸 반복하다보니까 힘들다고 많이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약을 꾸준히 먹고 자기가 이기려고 하고. 회복하려고 노력해주는 거 있잖아요. 힘들었던 게 지나니까 지금은 조금씩 남편 아내의 역할을 만들어가는 거죠. 좀 늦었지만.”

-정신장애인을 둔 가족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예산을 감액할 수 있는 게 정신장애인 쪽이라 그래요. 왜 그러냐면 투쟁을 안 하니까. 정신장애인 가족들이 제일 투쟁을 안 한대요. 그러니까 정신장애인 분야 예산을 감액할 수 있는 거죠. 가족들이 왜 그러냐면 사회적 관계가 있기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또 부끄러우니까 안 나오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시위를 한다거나 국가에 어떤 요청을 할 때도 정신장애인이 제일 안 모인다는 거예요.

저는 이제는 가족들이 모여야 할 시기가 됐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서 지자체나 정부에 우리 정신장애인 가족들도 힘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되고 그래야 거기서도 저 사람들을 무시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겠죠. 중요한 건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라든지 가족과 관련된 정신장애인 모임들이 있잖아요. 그런 모임들도 본인들만 생각할 게 아니라 힘을 모아야 된다는 거예요.

정신장애인 가족 자기들만 힘을 갖고 권력 투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이제는 힘을 모아야 해요. 힘을 모아서 복지부나 국회를 찾아가서 시위를 하고 가족들은 거기에 따라주고 해야죠. 부끄러워서 안 나오고 그거는 이제 그만하자는 거죠. 발달장애인도 서울시에서 예산 많이 받고 있잖아요. 그 사람들 부모들은 안 부끄러워서 거기에 나갔겠습니까.

부모들이 많이 깨어나야 돼요. 가족협회나 단체들이 필요한 거를 국가에 요청하고 또 가지고 올 수 있는 그런 많은 행사들을 주관해야 돼요. 그래야 국가와 지자체도 생각이 바뀌어서 우리 정신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겠나. 또 그렇게 하다보면 보건소 등지에서 가족강사라든지 동료지원가라든지 가족지원가들을 정책적으로 고려할 거 아닙니까. 가족들이 힘을 안 쓰니까 아예 그런 생각도 안 하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투쟁을 해야 되고 힘을 모아야 되고 단체들도 자기들 권력만 갖고 있지 말고 가족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거를 해야죠. 가족협회라든지 그런 단체에서 그걸 만들어주고 부끄럽다 하지 말고 떳떳하게 얼굴을 내놓고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올 한 해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를 사랑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올해의 마지막 인터뷰였습니다. 내년 1월에 더 알차고 충실한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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