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봄은 결국엔 참 눈부시더라는 이야기 - Part 1
그 해 봄은 결국엔 참 눈부시더라는 이야기 - Part 1
  • 전민 기자
  • 승인 2019.01.03 2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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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년 전 그 해 봄날에 일어난 이야기

 

이 글은 마인드포스트 시민기자 전민 씨가 자신의 병원생활과 회복을 기록한 수기입니다. 과거 병적 징후의 시간들을 소환해 현재의 나를 다시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치유의 길일 것입니다. 전민 기자의 글은 총 3회에 걸쳐 마인드포스트에 게재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c) VideoBlo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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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있는데 누가 깨웠다. 아버지였다. 그 옆에 젊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 둘이 서 있었다. 둘 중 한 남자가 말했다.

- 전민씨 갑시다.

가자는 말에 나는 선뜻 옷을 차려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인지 대충 직감했다. 거실로 나오니 삼촌과 고모가 와 있었다. 아버지가 혼자 감당이 안 되서 동생들을 불렀나 생각했다. 두 사람은 나를 아무 말 없이 쳐다보았다.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아까 그 체격좋은 두 남자가 양옆에서 내 팔을 잡았다. 범죄를 저지르고 잡혀가는 느낌이었다. 그래 그럴 만하지. 집을 나오니 아침햇살이 눈부셨다. 4월 말이었다. 목련이 필 무렵. 길가엔 막 세차를 마친듯한 산뜻한 지프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칼로 위협하는 행동을 해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 대학에 입학한 지 한 달. 그 동안 학교에 간 날짜는 얼마 안 되고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와 음악으로 때웠다. 고등학교 3년을 외톨이로 보낸 후 대학에 들어갔으니 적응할 리가 없었다. 또 다시 외톨이 생활을 하게 되자 학교에 안 가고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앞으로의 내 미래가 암담했다. 군대를 가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 막막하게 느껴졌다. 내 삶은 희망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어머니가 최초 원인 제공자이다, 그러니 어머니에게 그 이유를 캐물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엄마가 그냥 순순히 자백할 리 없다. 그러니 과도는 위협용이었지, 실제 사건을 저지를 생각은 아니었던 거다.

나는 내가 이렇게 암담하고 희망 없는 어둠의 세월을 보내왔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부모의 무책임함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무튼 과도를 들고 나타난 아들을 본 아버지, 어머니 입장에서는 꽤 충격이 컸을 것이다.

이동하는 차안에서는 별 대화를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드디어 나는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한 것이다.어릴 때는 우등상장도 곧잘 타고 반장도 하던 내가 중학교 때 서울로 전학오면서 인생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혔고 다시 이식된 땅에서는 좀처럼 적응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운이 좋게 들어가게 되었으나 술과 담배로 찌든 대학생활에 대한 거부감과 고등학생 때와 도무지 다를 게 없는 이른바 '교수'들의 강의라는 것의 수준, 거기에 야간반의 특성상 실업계 학생들끼리 어울리는 분위기속에서 내가 외톨이가 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나는 한 순간에 '꿈많고 열정있는 젊은 지성인'에서 '갱생의 여지가 없는 미치광이중의 한 명'으로 문OO정신병원에 데뷔를 하게 된 것이다.

그리 크지 않은 개인병원이었다. 병동문을 열고 난생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그 세계를, 내가, 난생 처음으로 나 혼자서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란. 참. 그러나 신입환자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너도 이 곳에 들어온 이상, 정상적인 삶은 물건너갔다. 너도 우리와 똑같은 존재일 뿐이야'

병원은 병원 특유의 냄새와 분위기가 있다. 거기 오래 있었던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어떤 알 수 없는 패배감과 절망감, 인간으로서 인간이라고 불릴 만한 요소를 박탈당한 느낌.

나를 데리고 온 보호사 중 한 명이 내게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라고 명령했다. 왜 '명령'이냐면 내게 옷을 갈아입을 '탈의실'을 제공하지도 않았고 아니면 탈의실 비슷한 그 무언가를 제공하려는 최소한의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서 서 있는 자리에서 바로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를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런 모멸감을 주는 '명령'은 쉽게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군대라면 가능할 일이다.

근데 지금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여자환자들 방에서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다는 점이다. 환자들을 다 내보내긴 했지만 왜 굳이 그래야 했는지? 정말 탈의실조차 없는 가난한 병원이었나? 여자환자들은 문 틈새로 새로 온 환자를 힐끔거리며 구경하기도 했다. 나는 정신질환자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또 다른 '정신병자'였던 것이다. 그 후에 다른 남자환자가 입소했을 때는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상황에서 환복을 하는 것을 봤었다. 확실히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자 내 관물대를 지정해주면서 개인 물건을 잘 정리해두라고 보호사(인지 조교인지)가 명령했다. 그렇다. 또다시 나한테 '명령'을 했다. 내 관물대에 내 물건을 어떻게 두건 무슨 상관인가? 그런데 그 보호사(인지 군대조교인지 정말 헛갈리게 만드는 그 남자)는 나에게 관물대의 개인물품 정리 여부는 곧 '정신건강의 척도'를 나타낸다고 알고 있던 모양이다. 그리고 자기 물건에는 이름을 써놔야 한단다. 심지어 팬티에까지도.(뭐야! 이건 군대잖아!!!)

초반의 이상하다 할 정도의 폭발적인 관심은 어느새 사라지고 환자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 이 알 수 없는 열패감의 근본은 바로 이것이었다. 어떤 희망도 욕망도 없는 사람들의 집합소, 욕망을 거세당해버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이 곳에서는 어떤 종류의 열정도 기대할 수가 없다. 그냥 세상에서 패배한 사람들, 생존경쟁에서 계속해서 져온 사람들이 최후로 여기에 모인 것이다. TV가 나오는 거실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 밖에 할 일이 없었다.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어 오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정신병원의 묘사처럼 서로에 대한 소개, 새로 온 사람에 대한 관심 이런건 없었다. 그들은 자기자신에게조차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니까.

한 중년여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무슨 일로 여기 왔냐고? - 친구를 못 사귀어서요 - 그 한마디에 여자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이 정신병동에서조차 나는 외톨이였다. 이 사실이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조차 관심을 받지 못하는 존재. 그러나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두가 모두에게 외톨이였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되었다.

보호사들은 유리가 쳐져있는 그들만의 '감시소'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이들이 나선다. 고함과 함께. 그러면 모두가 숨을 죽이고 이 보호사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보호사는 병동 내에서 신과 같다. 만약 말을 안 듣거나 반항한다면? 그때는 결박당해서 집중치료실이라는 곳에 갇히게 된다. 세상 그것보다 불쌍한 사람 아직 본 적이 없다.

길거리에서 밥을 빌어먹는 노숙자도 자유는 있다. 자기를 왜 잡아왔냐며 흥분하는 환자를 구타한 후 결박실로 데려가서 팔다리를 묶고 기저귀를 채우고 일명 '코끼리 주사'를 맞히는 것을 본 적 있다. 자신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며 소리를 지르던 환자가 결박당한 채로 악을 쓰다가 약 기운에 지쳐 잠들어가는 걸 지켜보면서 이들에게 자유의지라는 것이 보장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들에겐 항의할 자유가 없는 것이다.

컴플레인이 있다면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합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놓고 상식적으로 맞는 말이라면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러나 애초부터 강제입원 자체가 정당하지가 않다. 환자인 이들이 거대 병원을 상대로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자신의 주장의 정당성을 주장하기에 환자 자신들은 너무 '초라하다'. 그들이 하는 얘기는 정신병자의 망상에 불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저녁시간이 되었다. 배식을 받고 나서 남자들은 자기 숙소에 가서 밥을 먹는다. 그런데 밥을 먹을 때도 정해진 순서에 따라 열을 맞춰 앉아 먹어야 했다. 웃기는 건 '밥상'이 없다는 거다. 식판을 걸쳐놓을 '밥상'이 없어서 숙소바닥에 식판을 내려놓고 허리를 굽혀서 밥을 먹어야 한다. 입원생활 동안 가장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낀 게 이것이었다. 이 병원은 병원비가 싸다고 해서 아버지가 소개를 받고 나를 입원시켰다고 나중에 들은 바가 있다. 그런데 아무리 병원비가 싸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갖출 것은 갖춰야 하지 않는가?

밥은 잔반없이 다 먹어야 한다. 보호사들이 계속해서 지적을 한다(쉽게 말해서 갈군다). 식사가 끝나고 나면 흡연자들이 한쪽에 모여서 담배를 피운다. 환기시설이 없다.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우면 옆에서 그냥 다 같이 마셔야 한다. 보호사들은 그때만큼은 환자들과 얘기도 하고 농도 하고 그런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장이 특전사 출신이었다. 그래서 병원을 그렇게 군대식으로 만들어놨는지도 모르겠다. 자기 딴에는 그게 치료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잠은 열 시에 재우고 아침 여섯 시면 일어나야 한다. 늦잠은 허용되지 않는다. 하루에 한 번씩 인원 점검이 있다. 입원 초기에 내과 진료를 받았고 원장을 두 번 정도 면담했다. 면담을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면담하는 게 괴로웠다.

한 가지 잊어버릴 수 없는 일화가 있다. 정말 충격적이고 지금도 그 퍼포먼스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그 자의 행위...

첫날 밤 취침 점호를 받기 전이었다. 침낭 위에 앉아있었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봤다. 같은 숙소를 쓰는 이십대 환자가 내 뒤에서 바지를 내리고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지금도 그 녀석의 거대한 남근이 생각난다. 왜 내 뒤통수에 대고 자위행위를 한 것일까? 나는 보호사에게 달려가 상황을 신고했고 보호사는 그 환자를 구두경고했다. 다행히 그 후로 그 환자는 나에게 아무런 위해도 끼치지 않았다. 그냥 아침 기상만 되면 메트리스를 층층이 쌓아놓기를 기다려 잽싸게 그 위에 올라타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만족하는 녀석이었다.

이로써 첫째밤이 지나고 둘째날이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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