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우리를 ‘탄식(歎息)’하게 하지 말라”
“언론은 우리를 ‘탄식(歎息)’하게 하지 말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12.28 19: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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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이미지는 두려움이라는 허구로 조작돼
언론이 민감한 존재론적 공포를 이용해 기사화
사회적 대안 제시 없이 정신장애인을 비난
마인드포스트 창간 6개월…침묵하지 않을 것
정신질환은 두려움으로 소환된다. 페이지뷰가 늘어날수록 선정성은 더 강화된다.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이 같은 보도태도는 반복된다 (c)아시아경제
정신질환은 두려움으로 소환된다. 페이지뷰가 늘어날수록 선정성은 더 강화된다.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이 같은 보도태도는 반복된다 (c)아시아경제

그래. 당신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이제는 지친다. 우리를 범죄인으로 추정하지 말라는 그 말을 하는 게 환멸스럽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보도되는 정신질환자, 아니면 조현병 환자에 의한 사회적 범죄들을 마치 사회적 규범과 안정이 심하게 훼손시켜 버린다는 위기의식에서 기자들 당신들은 기사를 끄적이는 것인가. 아니면 관행과 관습에 기대 정신질환자를 격리시키려는 이데올로기에 기꺼이 동의하도록 만들기 위해 기사를 생산하는 것인가.

아시아경제는 28일 ‘환청·환청·환청…잇단 정신질환 패륜범죄로 세밑 뒤숭숭’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생산했다.

이 신문은 수원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다뤘다. 하나는 아버지와 누나를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된 이모(42) 씨 사건이다. 이씨는 경찰조사에서 “환청을 듣고 그랬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사건은 역시 수원에서 발생했다. A(24) 씨는 지난 27일 외할머니와 어머니, 여동생에게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한 혐의로 체포됐다. 존속살인미수 혐의다. A씨는 “가족들로부터 감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마지막 하나는 지난 6월 20일 경기도 부천의 집에서 부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피의자 B(30) 씨는 경찰 조사에서 “부모를 죽여야 나의 영혼이 산다는 환청이 들려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노컷뉴스와 뉴스1도 비슷한 형식의 기사를 29일 내보냈다.

물론 이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인정한다.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훼손하고 부정한 이는 어떤 경우에도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런데 그 많은 패륜적 가족 범죄들 중에 왜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사건에 대해서만 언론은 이토록 집중하는 것일까.

지난 2015년 범죄 발생건수는 177만1390건이었다. 이중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는 6천890건이었다. 전체의 0.39%다.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는 전체 강력범죄의 2.63%였다.

그리고 이런 데이터를 기자들의 왜곡된 기사 하나하나에 대응하기 위해 제시하는 것도 이제는 지겹기는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이 같은 객관적 통계를 내세우지 않는 한 언론은 끊임없이 정신장애인들의 범죄가 매년 8천여 건에서 9천여 건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보도를 낼 것이기에, 그리고 그 기간 일반인들의 범죄 건수는 190만 건에서 200만 건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채 정신질환에만 고착된 수치로 시민을 공포에 빠트리게 만들 것이기에 통계를 들이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자들의 시선은 늘 정신질환을 범죄의 형식으로 바라본다. 이를 텍스트화 했을 때 시민사회는 정신질환자를 격리하고 배제하는 데 기꺼이 동의하게 만든다.

우리 정신질환자들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어떤 치료적 환경이 필요한지를 묻지 않고 기자들은 범죄에서 끌려나오는 정신질환을 두려움으로 이미지화해 조작해 버린다. 기자들, 당신들은 우리 정신장애인들이 모두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로 들어가는 걸 바라는 것인가.

미디어는 두려움을 조작할 줄 안다. 정신장애인은 그 두려움의 약한 고리다
미디어는 두려움을 조작할 줄 안다. 정신장애인은 그 두려움의 약한 고리다 (c)연합뉴스TV

만약 기자, 당신의 가족이 이 같은 질환에 걸렸을 때 당신은 가족을 무조건 매도할 수 있는가. 어쩌면 당신은 정신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 구조의 취약성, 혹은 정신건강사업에 쓰이는 적은 예산, 강제입원이 불러오는 왜곡된 입원 형태,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정신요양시설의 문제, 정신병원의 구조적 제도적 억압의 실태, 생물학적 질병을 넘어선 사회심리적 장애 등을 공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기자들 당신들과 가족과는 상관없는 이들이 이 질병에 걸려 앓아누웠다면 당신은 어쩌면 이 정신장애인들을 비난할 가능성이 크다. 나태하고, 움직임을 극도로 거부하고, 폭식하거나 잠만 잔다든가 하는 모든 것들이 정신장애를 가진 이들의 게으름의 상징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안에 숨겨진 약물의 문제와 개인적 특이성을 제거한 채로 말이다.

마인드포스트는 지난 6월 11일 아주 작은 발걸음으로 그 창간을 알렸다. 우리를 빼고 우리를 말하지 말라고 세상에 요청했다. 그리고 짧은 기간 정신장애를 왜곡하는 형태의 기사와 드라마에 문제의식을 던졌고 항의했다. 몇 군데에서는 편견을 인정하며 사과하기도 했다.

창간한 지 6개월만에 모든 사회적 편견과 억압의 구조를 타파하기는 어렵다는 걸 우리도 안다. 그리고 한 번의 편견에 대한 항의로 이 사회가 더 정의로워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이 세계에, 정신장애를 사회적 배제와 억압의 틀로 바라보는 시선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오늘, 이 같은 기사를 생산하는 언론이 있는 한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정치적으로 담론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자들에게 요청한다. 더 이상은 신화에 기초해 조현병과 정신질환의 이미지를 조작하지 말라.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늘 부족한 인력과 예산구조, 정신병원에서 나온 당사자가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 인프라의 문제, 강제입원을 왜 엄격하게 했어야 했는지의 그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 영국의 정신보건 지출액이 일인당 278달러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45달러에 불과한 이야기를 정책적으로 기획해서 보도해 주길 바란다.

더 이상 말초적이고 허구적 두려움을 생산하는 보도를 자제해 달라. 우리가 이런 왜곡된 기사 하나하나에 대응하기 위해 통계를 제시하고 정신장애인 대부분이 가진 비폭력적이고 온순한 태도들을 우리가 해명하도록 하지 말아 달라는 의미다. 그것은 하나의 ‘지겨움’이다. 그것은 곧 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의 ‘탄식’일 수도 있다. 어쩌면 정신장애를 겪는 우리 모두의 탄식이자 지겨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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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 2018-12-31 19:12:16
단지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선정적인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
언론으로서 의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고 단지 표면에 나타난 증상만을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 현재 대다수 언론의 모습이 아닐까?
이런 보도태도는 결국 언론인들 스스로에게 양날의 검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