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단편소설] 아내와 이혼한 건 결국 잘한 일이었다
[당사자 단편소설] 아내와 이혼한 건 결국 잘한 일이었다
  • 전민 기자
  • 승인 2019.01.17 2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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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이야기의 세부사항과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는 모두 픽션입니다)

이혼 (c) BusinessMirror
아내와 이혼한 건 결국 잘한 일이었다 (c) BusinessMirror

단편소설: 아내와 이혼한 건 결국 잘한 일이었다

아내와 이혼한 건 결국 잘한 일이었다. 서로가 맞지 않는 기어처럼 삐그덕거렸는데 그걸 애써 외면해 온 결과가 이것이었다. 지금에 와서 후회해봤자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다. 이렇게 글로 쓸 수 있게 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무엇이 그렇게 싫었을까? 나한테 죽어버리라고 할 정도까지. 사실 난 아직도 모르겠다. 내 어떤 부분이 싫었을 것이고 그게 자신한테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나 보다. 그런데 난 어떤 면으로보나 그리 비호감형은 아니다. 회사에서도 인기가 좋고 무슨 일이 있으면 다들 날 찾는다.

내가 특별히 일을 잘 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여튼 무슨 일이 있으면 다들 날 찾는다. 그점에서 나는 특별히 소외감을 느낄 일이 적다. 무슨 여론조사를 해보면 직장에서의 소외감이 의외로 높은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던데 나는 그런 것을 느껴 본일이 거의 없다. 하여튼 난 직장에서 라이커블 가이(likable guy)다. 누구나 나한테 호감을 느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집에서는 어떤가? 아니 어떠했는가? 과거형이 맞겠지. 아직 아이가 없다는 걸 제외하면 그리 문제도 없었다. 아이는 집사람이 일년만 더 있다가 휴직을 신청하겠다고 해서 그때 가지기로 했었다. 나도 술을 줄이고 건강관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건강한 아기는 결국 아빠의 건강이 좌우한다나?

집사람은 조용한 편이었지만 가끔식 이유없이 신나하고 이유없이 가라앉는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별다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아내의 이런 조울증은 대학때부터 봐 왔던 거라 그 여자만의 개성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식 아주 가끔식 아내가 아내가 아니라 그냥 늘상 봐오던 여자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아내, 내 마누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여자로 보여지곤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괜히 슬펐다.

누군가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누군지는 확실치 않았다. 떠오르는 영상을 붙잡고 있을라치면 입이 한자나 나와있곤 했다. 나 스스로도 그런 나를 깨닫고 혼자 웃곤 했다. 난 정말 가끔식 이상한 행동을 해서 사람들을 웃긴다니까. 그래서 직장에서도 라이커블 가이다.

아내와 이혼 후 아직 짐정리가 덜 끝나서 아내는 내 집에 가끔 머물렀다. 그럴 때는 각방을 썼는데 가끔식 참을수 없는 욕정을 느끼고 아내가 잠든 방문을 열고 들어간 적이 있다. 그때마다 아내는 받아주었다. 그 점에 대해서 고마움을 느끼고 역시 내 마누라야 하고 흐뭇해했지만 왠지 아내가 무섭기도 했다. 무슨 검은 속이 있는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아내는 착했다. 그래서 나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더 이상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제일 곤란한 점은 아내와 내가 거의 동시에 일어나 거실로 나왔을 때다. 서로 눈꼽낀 얼굴을 보고 이제는 내 여자가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할라치면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물을 마시고 잘 잤냐고 물어보곤 했다. 나도 잘잤다고 얘기했지만 아내의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왠지 그 눈을 쳐다보면 한대 때리고 싶을 것 같았다. 아니 발로 배를 걷어차고 싶었다. 차라리 부억칼로 찔러 버리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나는 그랬다. 가끔식 누구를 죽이는 꿈을 꿨다. 누군가에게 죽는 꿈도 있었다. 아내가 결혼 전에 누군가가 자기를 찔러 죽이는 꿈을 꾼적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장인으로부터 결혼승낙을 받지 못해 이 결혼, 해 말아 이러고 있을 때였는데 나도 나지만 아내도 스트레스가 많았나 보다.

나는 아내를 다독거리고 그런 꿈을 꿀때가 있다고 나도 그랬다고, 그렇다고 누굴 실제로 죽이는 건 아니라고 안심시켰다. 그런데 아내는 도리어 화를 내는 것이었다. 말이 되는 소릴 하라고. 아내가 참 많이 힘들구나 싶어서 가만히 안아 주었는데 아내는 내 품을 거부했다. 그후로 아내를 잘 안지 않게 됐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아내가 거부했다고 아내를 안아보지도 못하다니. 나는 왜 이리 옹졸한가.

스스로를 비웃으며 회사의 정선씨를 생각했다. 정선씨는 29살인데 아직 혼자였다. 얼굴도 이쁘고 몸매도 좋은데다가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다. 근데 아직까지 싱글이다. 연애해본지가 언젠지도 기억안난다고 할만큼 정선씨는 사랑에 굶주려 있었다. 우연히 정선씨와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회식후에 집에 갈 택시를 잡지 못해 있는데 가버린 줄 알았던 정선씨가 내 옆에 있었다.

나는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그녀를 위해 택시를 잡아주겠다고 했는데 정선씨가 질색을 하는 것이다. 화도 좀 낸 것 같다. 그래봤자 유부남인데 내가 뭐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하지만 젊은 처녀로서는 그럴수도 있다. 나는 정선씨와 술이 먹고 싶어졌다. 왠지 모르지만 그러고 싶었다. 정선씨를 데리고 호프집으로 갔다. 의외로 정선씨가 잘 따라왔다. 오면서 몇번이나 집에 가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가자니까 잘 따라왔다.

맥주를 시켜놓고 잠시 앉아있었다. 도저히 술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정선씨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화장실에 갔다. 토할려면 토하자. 그리고 다시 마시면 되니까. 참 간단한 해결방법을 생각해내고 기분이 좋아졌다. 몇번 토하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정선씨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갔나? 화장실? 근데 핸드폰도 백도 보이지 않았다. 아까 기억에 분홍색 백을 들고 있는걸 봤는데.

천천히 맥주를 마시면서 정선씨를 기다렸다. 주위에 사람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 같았다. 혼자 술을 마시자니 좀 그랬다. 그래서 주인 아저씨에게 술을 청했다. 주인은 받지 않고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내가 다시 권하니 마지못해 받았다. 그러나 마시지 않았다. 기분이 좀 상했다. 게다가 정선씨도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정선씨 컴퓨터가 고장나면 내가 늘 봐주곤 했는데. 바탕화면에 뭔 그리 아이콘이 많은지. 시작프로그램도 잔뜩 쓸데없이 안고 있어서 컴퓨터가 느려졌던 것이다.

내가 일일이 정리해주고 삭제할 건 삭제하고 그렇게 해서 정선씨가 고마워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왠지 따듯한 느낌이었다. 정선씨가 원래 쌀쌀맞았다는 뜻은 아니고 그때 특별히 따듯하게 느껴졌다는 뜻이다. 정선씨와의 그런 추억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때 참 훈훈한 기분이 들었었다고. 그럼 정선씨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남자는 배관수리공이고 여자는 가정정화위원회장이라고. 늘 정선씨는 그런 말을 했다. 남자는 동굴에 들어가고, 여자는 파도고. 언제 한번 그게 무슨 말이냐 했더니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했다. SF 소설인지 화성, 금성 뭐라고 했는데 그게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참을 정선씨와의 일을 생각하며 술을 마시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혼 전의 아내다. 왜 안들어오냐고. 나는 야근을 하고 있다고 둘러댔다. 아내는 잠시 말이 없다가 알았다며 끊었다. 집사람과 정선씨를 비교해 보았다. 물론 정선씨가 더 이뻤지만 집사람이 더 매력적이었다. 정선씨는 아양을 떨 줄 몰랐다. 애교도 부리고 그래야 하는데 한번 정선씨더러 애교부려 보라고 하니까 굉장히 불쾌해 했다. 뭘 그거 갖고. 나도 불쾌해 지는데 그냥 넘어갔다. 정선씨는 다 좋은데 애교가 없어. 살랑살랑 할줄도 알아야지.

그날 밤, 맥주 삼천을 다 마시고 어딘가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집에 왔는데 그때 아내가 이혼하자고 한 것이다. 술 한번 먹고 외박했다고 이혼이라니. 난 웃었다. 아내는 웃지도 않고 기가막혀 하지도 않고 날 쳐다보기만 했다. 난 좀 미안해졌다. 진심으로 사과했는데 아내는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화가 났다. 뭐가 이래? 컵이 있길래 집어던졌다. 아내가 맞고 쓰러졌다. 피가 나오는것 같았다.

나는 겁이 나서 내 방에 들어갔다. 나중에 아내가 이마에 붕대를 감고 장인, 장모와 함께 나타났다. 장인도 장모도 내 탓을 하지 않았다. 의외의 관대함에 놀라면서도 아내가 여전히 미웠다. 그리고 아내는 짐을 싸고 가끔식 옆방에서 자면서 날 받아주고 그렇게 된 것이다. 난 그런 이상한 상태가 계속되는 게 신기했지만 이것도 아내의 조울증에 관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아내는 특별히 날 닥달하진 않지만 이렇게 엉뚱한 행동을 할 때가 있다. 그 점에서는 나와 같다. 나도 회사에서 정선씨한테 엉뚱한 소릴 하고 반응을 기다리는 게 재미있다. 아마 아내도 그런 스릴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어느날 아침, 일요일이었다. 5월이라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리고 반쯤 열어놓은 창문에서 아카시아 향기가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말로 할수 없는 황홀경 속에 빠져 있었다. 아내가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상하다. 아내는 어젯밤에 집에 없었던 것이다. 일요일 아침 일찍 뭐하러 왔을까? 아침이라도 해 주려고? 고마운 아내다. 조울증만 없으면 완벽할텐데.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몸을 쭉 늘이켰다. 맥이 빠졌다. 일요일이면 맥이 빠진다. 아무 할일도 없어지면 맥이 빠진다. 그럴때면 정선씨한테 엉뚱한 소리나 하며 놀고 싶어진다.

문이 열렸다. 내가 연 것은 아니다. 그리고 건장한 두 남자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순간 내가 직장에 다니면서 실업급여를 받았던 과거가 드디어 들통났구나 싶었다. 피할 길이 없었다. 나는 잠시 기다리라 하고 천천히 옷을 입었다. 서두를 것은 없었다.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지. 그때도 이렇게 데리러 왔었는데.

예전 머리 허옇던 노인이 생각났다. 그 양반은 어이없게도 내 죄가 없다고 했었다. 그럼 날 왜 잡아두느냐. 그말에 그 노인은 엉뚱한 소릴 했다. 난 지금도 그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 어쨌든 몇달간 감옥에 있다가 풀려나면 정선씨랑 다시 한번 맥주를 마셔야 겠다. 정선씨는 참 친절한 여자였다.

집앞에 짚차 한대가 서 있었다. 전에 봤던 그 차였다. 페인트로 ‘OO정신병원’이라고 써 있었다. 나는 괜찮은 기분이었다. 좀 창피했지만 어차피 인생은 한방이다. 아내도 한방이고 정선씨도 한방이다. 씨발. 날 괴롭히는 것들은 모두 한방이다. 한방이면 끝난다. 갑자기 욕이 하고 싶어서 하늘에 대고 욕을 했다.

옆에 두 남자가 내 팔을 잡고 있어서 아내의 목을 조르지 못했다. 정선씨가 있었다면 정선씨의 목도 졸랐을 것이다. 왜 나한테는 이런일만 일어나는 걸까. 난 라이커블 가인데. 회사에서는 최곤데. 갑자기 회사 임직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의 목을 조르고 싶어졌다. 난 목 조르는데는 일가견이 있다. 그렇게 해서 나도 죽일뻔 한 적이 있으니까. 모든게 다 싫어졌다.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되던지 알게 뭐냐. 어차피 인생은 한방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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