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그의 폭력은 우리의 폭력이고 그의 죄짐은 우리의 죄짐입니다"
"죄송합니다, 그의 폭력은 우리의 폭력이고 그의 죄짐은 우리의 죄짐입니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1.01 2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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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임세원 교수 사건에 마인드포스트 ‘사과’
임 교수 살해한 피의자 박씨는 인간존엄 훼손...옹호할 생각 없어
인간의 존엄이 훼손되지 않는 세상 향해 나갈 것

J씨에게

여여(如如)하신지요. 다시 한 해 시작됐습니다. 한때는 우리에게도 ‘통곡의 벽’이 있다면 보따리 싸갖고 가서 사나흘 쓸쓸하게 울다 오고 싶었던 날들이 있었는데요. 질풍노도 같았던 청춘이 지나가니 이제는 방을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으로 삶의 통증을 위로하게 됩니다.

오늘 오후에 교회에 가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불 다 꺼진 그 공간에서 나는 물었습니다. 무엇을 당신에게 요청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그 요청을 물었습니다. 내 마음 안에는 불이 다 꺼진 듯 쓸쓸한 오후의 바람이 지나갔습니다.

J씨.

나는 당신에게 지난날들의 위로와 아울러 새해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은 더 정의로운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을 확인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자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생(生)은 이상한 방향에서 바람소리를 내며 뒤틀려왔습니다.

어제, 그러니까 2018년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재직하는 임세원(47)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자신이 진료하던 내담자 박모(30) 씨의 흉기에 쓰러져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날 저녁, 우연히 들여다본 스마트폰에서 그 사건 경위를 읽은 후 저는 깊은 모욕감과 수치심에 몸을 떨어야 했습니다. 마치 그 피의자 박 씨가 나 자신인 것 같은 두려움도 함께였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많은 이들이 임 교수를 추모하고 있었습니다. 그 안의 댓글에는 ‘정신병자들’이 사회를 아무 문제없이 돌아다니는데 대해 노여워하는 비난성 글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어쩌면 마인드포스트를 알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 말해 보라. 이제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목청껏 외치던 너희 마인드포스트는 말해 봐라. 이렇게 위험한 정신질환자들을 사회가 보듬어주고 포용해주어야 한다고 너희들은 외쳤지 않느냐. 너희들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백해무익한 버러지들이다. 아무 이유 없이 너희들은 사람을 죽이지 않느냐. 그러면서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고 하면 소리 높여 인권을 외쳤지 않느냐. 이 끔찍한 결과물이 너희가 바라던 인간으로서의 행동이라고 생각하느냐. 입이 있으면 말해 보라.”

J씨.

지금의 저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한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고 생명을 부정한 이는 어떤 경우에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범죄심리학에는 모든 사건에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임 교수를 살해한 저 피의자 박씨는 어떤 범죄의 ‘동기’가 있었던 걸까요. 교수가 자신을 마음대로 조종한다고 망상했을까요. 아니면 ‘죽이라’는 환청을 들었던 걸까요. 의사가 자신을 상처 주는 말을 했을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을까요. 도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흉기를 품고 의사를 만날 생각을 하고 그를 해칠 생각까지 한 것일까요. 폭력을 피해 뛰어나가는 의사를 쫓아가면서까지 흉기를 휘둘러야 했을까요.

인간이 인간을 존엄성을 부정한 저 행위에는 어떤 동기와 이유가 있었던 걸까요. 나는 저 피의자 박씨를 만나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저지른 저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정신장애인들은 다시 막다른 골목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지금 이 순간, 나는 분노합니다. 피의자인 그를 향해 가슴 저 안에서 터져나오는 욕설을 쏟아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없습니다. 나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눈 막고 귀를 막고 싶을 뿐,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것이 더 나를 아프게 합니다.

J씨.

그들은 말합니다. 너희, 정신질환자들, 정신병자들은 격리돼야 한다고. 너희 정신병자들은 바보들의 배를 타고 어디 무인도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너희 정신병자들은 정신병원 철조망 안에서 나와서는 안 되고, 죽을 때까지 그 병원에서 살아야 한다고. 너희 정신병자들은 너무나 위험한 동물적 존재들이기 때문에 인권을 논해서는 안 된다고. 너희 정신병자들은 이성이 포섭할 수 없는 흉기에 불과하므로 총살시켜야 한다고.

그들은 또 묻습니다. 마인드포스트는 그 잘난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얘기했는데 이 사건에 대해 어떤 할 말이 있는지. 너희들의 인권타령이 무고한 한 의사를 희생하게 만들었는데 이에 대해 말해 보라고.

그 질문에 대해 저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정신장애인이 저지르는 범죄율은 비정신장애인들(일반인들)이 범하는 범죄율의 0.4%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를, 그 구차한 해명을 지금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정신장애인들은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죽일 정도로 연약한 성품을 갖고 있다는 윤리적 도덕적 해명도 역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세상이 던지는 정치적 돌팔매질에 몸을 맡기고 서 있을 뿐입니다.

잘못했습니다.

J씨.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입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잘못했습니다.

피의자 박씨의 도덕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는 바로 우리 정신장애인이 짊어져야 할 고통이 돼 버렸습니다.

J씨.

미치광이는 대낮에 횃불을 들고 길이 어둡다, 길이 어둡다라고 중얼거립니다. 그리고 ‘신은 어디에 있느냐’고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진리가 어디에 있느냐고요. 그러자 사람들이 말합니다. ‘신이 어디로 갔을까. 소풍을 갔을까, 마실을 나갔을까’라고요. 그러자 미치광이는 사람들을 향해 말합니다. ‘신은 죽었다. 신을 우리가 죽였다. 그 누구도 아닌 우리가 말이다. 네가 죽인 것이며 내가 죽인 것이며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미치광이의 절규는 신의 죽음을 공동체의 집단적 살해로 규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의 죽음에 대해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신을 죽여서 우리가 신의 지위로 올라간 것일까요.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신과 아버지를 살해한 것은 아버지와 신의 권력을 찬탈할 것이며 그것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아들들(인간)은 아버지를 추모하는 제사를 열면서 그 죄의식을 탈화시키는 것이지요. 그 죄의식은 우리 아들들(인간)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윤리적 파토스가 돼 버린 것이겠지요.

J씨.

저 피의자 박씨는 인간의 존엄을 살해했습니다. 저 죽음에, 우리 공동체는 잘못이 없을까요. 지금 공동체는 우리 정신장애인들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정신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저 돌팔매질을 온몸으로 맞아야 한다는 겁니다. 왜?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공동체의 잘못은 없었을까요. 우리를 이성에 포섭될 수 없는 자로 규정해 끊임없이 철조망 쳐진 정신병원으로 끌고 가려고 했으며 그 안에서 상상할 수 없는 폭력적 훈육으로 우리를 길들이려 한 것에 대해서는 공동체는 책임이 없을까요. 죄 없이 정신적 병이 있다는 이유로 정신요양시설에 들어가 10년, 20년을 보내야 하는 게 윤리적으로 타당한 지를 질문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감금과 폭력에는 이를 외면한 공동체의 잘못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더 나은 치료적 환경을 만들어주고 우리를 공동체의 삶에서 배제하지 말고 구성원으로 그 말을 들어주었다면, 혹은 지역사회에서 치료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사회적 인프라를 만들어주기를 국가에 요청하고 이를 관철시켰다면 우리 정신장애인들은 존엄을 갖고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가둠과 격리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삶의 이면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함께 만들어냈다면 어땠을까요. 끊임없이 ‘정신병자’를 위험한 타자로 만들어버린 언론이 태도를 바꿔 정신장애인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이들의 욕구를 듣고 사회적 타협점을 만들어갔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정신장애인을 이토록 ‘천민적 위치’에 머물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J씨.

저는, 그렇지만 그 어떤 이유로도 용서될 수 없는 상황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의 죽임은 우리의 죽임이었고 그의 폭력은 우리의 폭력이었으며 그의 죄는 우리의 죄가 되었고 그의 정신적 착락은 우리의 정신적 착란이 되었습니다. 이해받을 수 없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 앞에서 저는 깊이 절망하고 있습니다.

교수님과 공동체에 사과드립니다. 그 말뿐입니다. 공동체가 마인드포스트에 해명을 요구할 수 있는 ‘정신병자의 범죄와 죽임 앞에 너희들의 인권이 무슨 의미냐’는 질문에 지금은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J씨.

그렇지만 이렇게 한 걸음을 다시 뗍니다. 우리에게 던져질 정치적 돌팔매질을 온몸으로 맞으며 우리는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와 공동체의 타자로 위치해온 우리들은 이렇게 하나의 사고가 발생하면 이렇게 ‘죄인’이 되어 버립니다. 죄송합니다. 피의자 박씨에 대해 법은 관용 없이 처벌해 주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더 걸어가야 존엄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요. 마인드포스트가 외쳤던 다름이 차별이 아니라 공동체에 포섭될 수 있는 긍정이 됐을 때 세상은 한 걸음 더 진보한다는 그 진리를 저는 여전히 믿고 싶습니다. 오늘은 홀로 술을 기울여야 되겠습니다.

여여(如如)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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