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델의 집 당사자 연구_한일 국제학술교류 워크숍] “당사자 연구는 현실과 현장에 인간의 대화를 활용하는 것”
[베델의 집 당사자 연구_한일 국제학술교류 워크숍] “당사자 연구는 현실과 현장에 인간의 대화를 활용하는 것”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05.02 2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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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연구하고 대화를 시작해야
자기 스스로, 그리고 함께 회복하기
당사자 연구는 실패가 소중한 보물이 되는 연구
당사자 한일 국제학술교류 워크숍 열려
무카이야치 교수(왼쪽)
무카이야치 교수(왼쪽)

 

“삿포로 우라카와는 바다와 접하고 있다. 35년 전 정신장애인 자립을 위해 사업을 시작한 게 다시마였다. 조현병, 알코올중독자들과 같이 다시마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함께 고생하며 판매했다.”

2일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신언임홀.

무카이야치 홋카이도 의료복지대학교 교수가 당사자 자조 클럽인 ‘베델의집’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370여 명의 청중들이 숨을 죽이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무카이야치 교수는 다시마를 판매하는 가운데 일어난 두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키요 씨는 다시마를 팔다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 괴로워서 누워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님들이 다시마를 판매하고 있었다. 키요 씨가 깨달은 건 병이 나쁠수록 다시마가 잘 팔린다는 거였다.”

한바탕의 웃음이 홀을 가득 채웠다. 무카이야치 교수가 말을 이었다.

“켄상 씨는 다혈질적인 분인데 다시마 하청 일을 할 때 하청 주는 사장과 싸워서 거래가 중단된 적이 있다. 우리는 저 분 덕에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그런데 그 회사가 파산해버렸다. 그것을 계기로 하청을 그만두고 스스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토 시는 예전에 공무원이었다. 공황상태 때문에 관청 일을 그만두고 베델에서 8년째 근무 중이다. 전의 직장과 업무가 다르고 패닉 현상은 그대로다. 여전히 방황하고 병을 갖고서 베델의집에 근무하고 있다.”

무카이야치 교수는 “기본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바로 베델의집에서는 자신의 고생을 편하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라고 답했다.

“베델의집에서 당사자 연구는 2001년 시작됐다. 계기는 폭발을 멈출 수 없는 청년에게 함께 연구를 하자고 해서 시작됐다. 그렇게 제안하자 병원에서 폭발을 일삼던 친구가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러분도 어떡할지 모르는 상황에 부딪혔을 때 던져보라, 연구해 볼까 하고.”

그는 “이것이 당사자 연구의 모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밥이 없는 현실과 마주했을 때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는 상태에 빠졌을 때 거기 있는 사람들과 함께 연구해 보라. 그 말을 함께 공유하고 그렇게 말을 던졌을 때 문제가 해결이 안 돼도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무카이야치 교수는 곁에 있는 당사자 이토오(48) 씨에게 “당사자 연구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토오 씨는 “방황하는 고생 이외에도 베델의집의 에너지가 넘쳐도 에너지가 다운된다. 그런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분석해서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것처럼 스스로 방법을 개척해 왔다”고 답했다.

무카이야치 교수는 역시 곁에 있던 세리타(43) 씨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세리타 씨는 “그냥 생활 과제이자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울증 당사자다.

세리타 씨는 “증상이 폭발했을 때의 현상을 데이터로 수집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당사자 연구를 하고 있었다”며 “이렇게 하다 보니 자해를 안 하고 우울증 막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칼로 손을 베면 금방 낫는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병도 똑같은 작용으로 치유할 수 있다. 그래서 내게 데이트를 수집하는 일은 호흡하는 일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무카이야치 교수는 구마가야(41) 씨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구마가야 씨는 현재 도쿄대 첨단과학기술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구마가야 씨는 “저에게 있어 당사자 연구는 실패가 소중한 보물이 되는 연구”라고 언급했다.

“평소에는 실망하거나 침체하기도 하는데 당사자 연구 시작하면서 실패가 연구 소재가 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왔다. 혼자서는 연구가 안 되는데 함께 연구를 하다 보면 사람들과 유대가 형성돼 좋다.”

아야야 사츠키 씨(43·여) 씨에게도 같은 질문이 던져졌다. 그 역시 도쿄대학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진단명은 자해 스펙트럼. 특히 의사소통 장애를 겪고 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집단 기준과 다른 신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때 당사자 연구를 만났다. 내가 남과 뭐가 다른가 연구하고 있다. 가령 워크숍에 참여하면 한 조가 되라고 지시가 내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어렸을 때부터 한 조에 들어가지 못하는 마지막 한 사람이 되고 있다. 그런 지시가 내려지면 무섭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런 식으로 날마다 의문점을 연구하면서 당사자 연구를 통해 자신과 사회를 알게 됐다.”

무카이야치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알코올의존증 환자 이야기를 참조해서 스스로 자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게 우라카와 활동이었다. 이야기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동료들과의 이야기 이상으로 자기 자신과 대화를 되찾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과 대화를 함으로써 스스로도 회복한다는 걸 경험하게 된다. 키워드는 자기 스스로, 그리고 함께이다.”

그는 이어 예를 하나 들었다.

“여러 목소리에 흔들리는 고생을 하는 사람이 있다. 여러 목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휘둘려 고생하는 동료에 대해서는 약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동료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들여오는 소리와는 싸움면 안 된다.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다. 환청 소리와 싸움을 하면 더 악화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말의 내용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여러 소리를 듣다가 ‘쟤 싫어’라고 하면 ‘싫어’가 뇌에 저장된다. 주변 사람들의 말의 내용이 환청의 내용에 중요하게 반영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사회 분위기, 경쟁심, 증오 같은 세계의 형상들이 당사자 증상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무카이야치 교수에 따르면 당사자 연구를 통해 발견된 지식이 정신과 상담 치료에 적용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예전에는 병을 가진 당사자에게 연구자가 연구하고 전문가의 지식을 적용하는 형태였다. 지금은 연구자와 전문가, 가족이 함께 연구하는 이미지가 형성돼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병을 회복한 이들의 경험을 임상에 활용하는 움직임도 시작되고 있다. 당사자가 만드는 척도에서 모두가 함께 만드는 척도로 변하고 있다.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한 명을 선발해서 이 원칙을 바탕으로 대화를 거듭했는데 지금 회복 중이다. 신기한 일이다.”

그는 “당사자 연구를 한 마디로 하면 현실과 현장에 인간의 대화를 활용하는 방식”이라며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거기서 대화를 시작하는 것, 어떤 현실과 마주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말했다.

 

당사자연구 시간.
당사자연구 시간.

 

무카이야치 교수의 연구 설명 후 당사자 연구가 진행됐다.

참여자는 한국의 조현병 당사자들인 양은혜(29·여) 씨와 김경롱(47) 씨, 조현경(40·여) 씨였다. 일본 측에서는 이토오 씨, 세리타 씨, 아야야 씨, 구마가야 씨가 참가했다. 무카이야치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양은혜 씨는 자신의 고생 명을 ‘미운 오리 새끼’라고 했다. 그는 중학교 때 집에서 어떤 서류를 발견했다. 입양아라는 사실이 적힌 서류였다. 친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은 충격이었다. 자신이 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라 여겼다. 그리고 병이 찾아왔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스티그마(낙인)에 시달렸고 환청은 그를 더 힘들게 했다. 그렇지만 당사자 연구를 하면서 그는 스스로 “변했다”고 말했다.

“소망나무(양 씨가 이용하는 사회복귀시설) 언니들이 있었고 그들이 내가 더 이상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 당사자로서 가치 있는 존재라 생각했다. 그리고 저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생을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비슷한 분이 있다면 일어서는 것을 도와줄 것이며 저도 한 사람의 당사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다.”

이토오 씨가 부언(附言)을 했다.

“나도 초중고 때 왕따를 당했다. 대학에서 병에 걸렸다. 베델의집에 오고난 뒤에 나와 비슷한 동료들이 많아 구원받은 느낌이었다. 고생 네임이 미운 오리 새끼인데 여러분도 아시지만 이 동화의 마지막은 백조가 돼 날아가는 것이다. 앞으로 양씨가 멀리 도약했으면 좋겠다.”

무카이야치 교수가 양씨에게 화이트보드에 백조를 그려보라고 권했다. 양씨가 날아가는 백조를 그렸다. 청중들의 환호가 터져나왔다.

아야야 씨가 말을 이었다.

“나는 가족 문제는 없지만 신체적 특징이 가족들과 연결되지 않고 유대감이 없었다. 궁금한 것은 버려진 존재, 쓸모없는 존재 경험을 했을 때 신체 특징을 알려달라.”

양씨는 “몸의 특징은 없는데 나 자신에게 세뇌를 많이 했다”며 “나는 이 세상에 암 같은 존재라고 자주 생각해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답했다.

무카이야치 교수는 “양씨의 이야기를 듣고 설명하는 말을 되찾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언급했다.

김경롱 씨는 환시와 환청, 두통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사람 얼굴이 무섭게 보이고 가끔은 화장실에서도 그런 사람 얼굴이 보여 무섭다고 한다. 죽은 사람의 얼굴도 나타난다고 했다.

무카이야치 교수가 화이트보드에 그 얼굴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김씨가 둥근 얼굴을 그리고 그 안에 생채기처럼 선을 그었다.

“저 얼굴이 무엇을 의미하나?” 무카이야치 교수가 물었다.

김씨는 “죽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 죽어서 나타나는 얼굴로 생각된다. 어떤 때는 좀비로 보이고 어떤 때는 죽은 사람 얼굴로 보인다”며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있는 느낌도 든다”고 답했다.

무카이야치 교수는 “우라카와 베델의집에 가면 좀비가 있고 유에프오를 타는 경우도 많다. (그 느낌은) 우라카와에는 지극한 평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런 증상이 심하면 외출하지 않고 은둔하는데 김씨는 (밖으로) 나간다”며 “굉장히 병과 잘 사귀고 있구나 생각된다”고 평했다.

조현경 씨는 자신의 고생명을 ‘거북이 타이머 눈치 유발형’이라고 소개했다.

“병력은 11년 됐다. 머뭇거리기를 반복해서 점심시간에 정해진 시간에 배식 받으라는 핀잔과 눈치를 받는다. 그리고 식사 이후 식기 반납 때 식기 세척팀이 설거지 완료했는데 왜 식기를 이제 반납하나며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래서 배식을 안 받고 식사를 못할 경우도 있고 늦게 가서 반찬이 떨어져서 식사를 못할 때도 있다. 식사 담당자에게 왜 미리 식사를 하지 않느냐는 소리를 꾸준히 들었다. 설거지하는 사람이 이렇게 늦게 반납하려면 본인이 직접 하라는 핀잔을 들으며 설거지를 한 적이 있다.”

무카이야치 교수가 물었다. “거북이 타이머로서 좋은 점은 무언가?”

조씨는 “좋은 점은 일을 꼼꼼히 정확하게 할 수 있고 시간을 맞춰야 하는데 그런 게 힘들어서 눈치를 본다”고 답했다.

그때 청중 중의 한 명이 큰 소리로 외쳤다. “조현경 씨가 빨라졌다.”

무카이야치 교수의 질문. “시속 얼마에서 얼마로?”

청중이 “40킬로에서 80킬로로”라는 답변이 들어왔다.

무카이야치 교수는 “그건 일본에서는 속도 위반”이라고 답했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무카이야치 교수는 조씨에게 당사자 연구를 하면서 깨달은 점을 물었다.

조씨는 “머뭇거리는 게 줄어들어서 조금 식사를 빨리할 수 있고 자신감이 생겼다”며 “아직 80킬로는 아니어서 더 노력해야겠다”고 답했다.

무카이야치 교수는 “이제는 조씨에게 조금 더 천천히 하라고 말해줘야 겠다”고 말했다. 다시 청중 속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는 ‘즉석 앙케이트 조사’를 했다.

“조씨가 더 빨라져야 하는지 그렇지 않은 지 질문하겠다. 이대로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달라.”

10여 명이 손을 들었다. 웃음이 흘러나왔다.

무카이야치 교수가 물었다. “손 든 사람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조씨는 “좀 더 빨라지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답했다. 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 워크숍은 제2회 한·일 국제 학술교류로 청주복지재단, 청주정신건강센터, 충북대학교 장애지원센터, 혜원장애인종합복지관이 공동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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