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자, “정신장애 자식도 성인으로 대접을 해 주면 자식도 책임감을 갖고 성숙해집니다”
김숙자, “정신장애 자식도 성인으로 대접을 해 주면 자식도 책임감을 갖고 성숙해집니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1.09 0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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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자 서울정신보건가족협회 수석부회장 인터뷰
고등학교 때 첫 입원시키고 울면서 온 기억 생생
초기 증상으로 말도 없고 감정 표현도 없어
반드시 약은 복용해야…치유에 필수
무조건적인 자의입원 형태는 피해야
정신질환도 고혈압처럼 당당히 밝힐 수 있어야
인식개선 되지 않아 가족들이 숨으려 해
가족협회,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돼야
서울지부는 사무실 없어 이룸센터에서 회의
발달장애 가족처럼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가족이 당사자를 인격적으로 대우해 줘야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딸이 둘이었다. 아들 하나를 낳고 싶었다. 원하던 아들이 태어났지만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 무렵 몸이 마비되는 증상을 겪었다. 이상했다. 병원에서도 잘 모르겠다며 입원을 권유했다. 정밀 조사 결과 뇌혈관질환인 ‘모야모야병’이었다.

그녀는 결혼과 더불어 교편을 놓고 남편과 같이 약국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아이에게 신경을 더 써주지 못한 부분에 죄책감이 있었다. 그해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아들은 뇌수술을 했다. 고통이 지나갔나 싶었다.

그렇지만 아들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이상한 행동들을 했다. 잘 웃지도 않고 잘 먹지도 않고 감정 표현도 거의 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죽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기장에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적개심이 묻어나는 글까지 써놓았다. 비로소 남편과 그녀는 아들의 정신적 질환을 의심하게 됐다.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일 때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처음 아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병원을 나서던 날, 경기도 이천의 논으로 둘러쌓인 그 병원 길을 걸어나오며 그녀는 울었다. 살면서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적은 없었다.

이후 아들은 회복의 길을 걸었고 지금은 쌀을 도정하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마트에서 카트를 끄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다. 그녀는 그 순간이 좋았다. 돈도 돈이지만 아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것은 그녀에게 생을 살아가게 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인터뷰 도중 그녀는 자주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종교적인 언술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겪어야 했고 받아들여야 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삶이란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걸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현재 서울정신보건가족협회의 수석부회장으로 일을 하고 있다. 김숙자(73) 수석부회장을 만난 건 한파가 밀려온다는 8일 한 작은 카페에서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숙자 서울정신보건가족협회 수석부회장 (c)마인드포스트

-아드님이 몇 살 때 발병했습니까.

“사춘기 때요. 그때 우울 증세가 있었는데 치료가 미약하니까 나중에는 증상이 다른 걸로 옮겨갔나 봐요. 그래서 아버지를 죽이고자 하는 적개심, 아버지에 대한 나쁜 생각을 먹었던 거 같아요.”

-아버지한테 폭행을 당한 겁니까.

“아버지가 좀 보수적이고 엄했죠. 남편도 자기 아버지한테 ‘남자는 강해야 된다’는 파쇼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랐던 거 같아요. 아들이 예쁘지만 강하게 키워야겠다는 마음에서 그랬던 거 같아요. 나중에 아들이 정신질환이 생기니까 남편이 내가 저 아들을 데리고 한강에 가서 빠져 죽을 테니까 두 딸은 잘 키워라 (그래요). 내가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했어요.”

-부회장님이 초등학교 교사하셨죠. 어머니 입장에서 엄격하지 않았습니까.

“저도 첫애에게는 굉장히 엄격했는데 둘째, 셋째 내려갈수록 희박해지더라고요. 첫째애는 굉장히 엄격하게 했는데 셋째아이는 방임하다시피 (했죠). 어느 정도의 기준은 있었지만 그렇게 강압적인 건 없었어요.”

-정년 퇴임하신 겁니까.

“제가 결혼하고 나서 일이년 뒤에 첫째 아이 낳고 퇴임을 했죠. 그 후 남편하고 같이 약국을 운영하고.”

-아드님 초기 증세가 어땠습니까.

“초기에 말도 없고 잘 먹지도 않고. 근데 집안에 초상이 났잖아요, 초상이 났는데 그런 슬픔이 없어요. 그리고 말이 앞뒤가 맞지 않고. 조현병 증상하고 비슷한 거 같더라고요.”

-초상이 났다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든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사람이 슬픈 내색을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외부 사람이 와서 볼까 봐 부끄러웠죠. 장소에 맞는 표정이나 행동이 없었어요. 우울도 있었죠. 애가 초등학교 시절인데 죽고 싶다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일찍 그런 생각을 했었던 같아요.”

-아드님이 몇 번 입원했습니까.

“(고등학교 때) 한 번 했어요. 그 당시에 지금 다니는 교회를 나갔어요. 큰엄마가 ‘동서 그 교회 좀 나가봐, 그 교회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예배가 있어’ 그래요. 갔는데 구역 모임에서 어머니들 모임이 있고 환우들은 20대, 30대부터는 따로따로 모임을 갖더라고요.

우리 순장(구역장) 분이 한양대학교에서 정신과 간호부장하시는 분이었어요. 그 분이 ‘절대로 약은 필수입니다. 약은 끊으면 안 됩니다. 약은 꼭 잘 먹여야 합니다’ (하더라고요). 아들도 그 얘기를 들었고요.”

-처음에는 약 복용을 거부를 하셨네요.

“그렇죠. 처음엔 애도 약을 안 먹고 나도 적극적으로 그런 걸(케어를) 안 했는데 약물 복용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때부터 그냥 (약을 먹었죠). 약곽에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약을 넣어서.”

-그때 아드님이 몇 살 때였습니까.

“스물두셋 살 정도.”

-초반에 발병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입원했죠. 스물두세 살까지 약물 복용에 관심을 안 가진 거죠.

“그렇죠. 그때는 남편도 (작고해서) 없었고 하니까 약에 대해 알 기회도 없었고요. 근데 작은아버지도 약사인데 정신질환에 대해 여쭤봤죠. 그랬더니 약을 꾸준히 먹다 보면 뇌에서 약 먹은 상태로 인식을 하게 돼서 나중에는 약을 안 먹어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대요. (약을 끊을수 있다는) 희망적인 얘기였죠. 근데 지금은 아니죠. 내가 가족강사로서의 교육을 받으니까 약 복용이 필수라는 걸 알게 됐고 더 공부하게 됐어요. 애가 말을 잘 들어서 재발을 한 번도 안 했어요.”

-강제입원이었죠.

“제가 데리고 갔어요. 119가 아니니까 자의입원이라고 할 수 있죠. 전철 타고 이천에서 버스 타고 가서 거기서 또 택시 타고 데리고 갔죠. 얘는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죠. 가서 지내더니 저녁마다 전화를 하면서 엄마 말 잘 들을 테니까 제발 퇴원시켜달라고 그래요. 그래서 서울대학병원에 데리고 왔죠.”

-서울대학 병원에 몇 달 있었습니까.

“서울대병원은 입원은 안 했어요. 외래를 다니면서 약을 꼬박꼬박 잘 먹었죠. 그러면서 군대 문제가 생겼죠. 서울대병원에서 팰로우(전임의) 선생님한테 받아야 된대요. 그래야 병무청에서 인정을 해 준다내요. 그래서 그때 팰로우로 만난 선생님이 지금까지도 같이 하고 있어요.”

-입원 처음 시킬 때 감정이 어땠습니까.

“입원시켜놓고 올 때 (병원 근처가) 계단 논바닥이더라고요. 거기를 내려오면서 한없이 울었죠. 세상에 그렇게 울어본 적 없어요. 지금도 그 생각하면 눈물이 나려고 해요.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혼자 거기 입원시켜놓고 내려오면서 너무 안타깝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거예요. 병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거기서도 정신병이라는 얘기만 하지 병명도 확실하게 알려주지도 않고. 나중에 주치의가 정신질환 2급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아들이) 지하철 무료 혜택 받고 있죠. 그것만도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땅속으로 다니는 건 다 무료로 다니니.”

(c)마인드포스트
김숙자 서울정신보건가족협회 수석부회장 (c)마인드포스트

-미신을 통해 치유 받으려 한 적이 있습니까.

“저는 그런 생각 절대 안 했어요. 굿하고 어디 가서 물어보고. 그런 게 다 미신이라는 거. 소용이 없다라는 거. 그리고 그때 교회 다녔기 때문에 그런 건 절대 안 했어요.”

-미신으로 치료받으려는 가족들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은가요.

“결국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노인네들 데려다가 관절염 다 낫는다고 하는데 세상 사람들이 신경통이 다 낫는다면 노벨상감이 아니겠나. 그러게 생각하니까 믿을 수가 없죠.”

-강제입원 제도가 강화됐는데 일각에서는 강제입원 요건을 완화해 달라는 요구가 있습니다. 가족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일방적인 거 같아요. 강제입원을 안 하기 위해 지금 제도가 생겼잖아요. 근데 그 범주 안에 다 적용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 중에는 강제입원 시켜야 할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그걸 선별을 해서 해야 무리가 안 생기는 거 같아요. 그런데 급성기 때 어떻게 하겠어요. 그때 인권을 지키는 방향에서 강제입원을 유도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해요. 무조건 자의입원이다, 이건 말이 안 돼요. 강제입원은 때에 따라서는 필요할 수도 있어요.”

-보호자 동의 없이 환자의 퇴원을 정신건강복지센터와 보건소에 알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거 필요해요. 왜냐면 관리가 안 되잖아요. 그런데 보호자들이 싫어하죠. 인식 개선이 안 됐기 때문에 그래요. 고혈압이나 당뇨병 환자같이 생각하면 이것도 당당한 일종의 병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근데 왜 숨겨야 합니까.

오늘도 지하철 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막 싸움하듯이 저리로 막 걸어가더라고요. 장기입원을 못 하게 되면 퇴원시킨 다음에 후속처리가 없는 거예요. 걔네들이 약을 먹겠어요, 그렇다고 부모 말을 듣겠어요. 보호자라도 약을 철저히 책임감 있게 먹이고 해야 하는데 (퇴원하면) 해방됐다는 생각에 약도 안 먹고 아무것도 안 하고 점점 더 심해지겠죠. 약을 먹어야 하는 상태인데요. 그러니까 국가에서 한 가지 (정책을) 내놓으면 거기에 대한 보완책도 다 따라서 나와야 되는데 그런 게 너무 부족해요.”

-알리면 인권침해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그러면서 그걸 묶어 놓는데 그건 아니죠. 정신질환자들이 왜 알리는 걸 싫어하고 고지하는 걸 싫어하느냐. 결국은 인식개선이 안 됐기 때문에 남이 아는 걸 싫어하는 거죠. 근데 사회가 이 질환이 감기와 고혈압과 같은 병이야 그러면 왜 숨기고 고지하는 걸 반대하겠어요. 인식개선이 제일 우선인 거 같아요.”

-아드님이 일을 하면서 어떤 게 좋습니까.

“이번에 (이마트에) 주말 알바 갔는데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걔가 거뜬히 나흘을 하고 왔는데 그것도 여덟 시간이나. (쌀 도정하는 일은) 가봐야 대여섯 시간 되나. 9시 30반에 떠나서 4시에 퇴근을 해요. 실상 근무시간은 얼마 안 돼요. 그렇게 약한 아이로만 봤는데 얘가 해내더라고요. 어떤 사람이 아들이 대통령 되고 장관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저도 그런 기분이에요.

이마트 가서 주말 알바 한 것도 그렇게 기뻐요. 그 아이를 자꾸 격려해주고 용기를 갖고 자존감이 높아지게 해야죠. 그러려면 보호자들이 일방적이지 않고 대화법부터 고쳐야 돼요. 우리 아이가 36살이에요. 그러면 이 아이가 병이 없었다면 어느 집의 남편이에요. 어느 집의 사위이고 어느 집의 아이 아버지예요. 그러니까 그 아이가 아버지, 사위로서 함부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성인 취급을 하고 제대로 대접을 해줘야죠. 그렇게 대접해 줘야 저도 대접받는 걸 알겠죠. 이마트 가니까 서비스 교육을 한대요. 손님은 왕이다. 손님을 우선으로 해라. 카트를 끌고 갈 때도 차에 부딪히지 않고 사람들 다치지 않게 그런 교육을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너무 좋은 거예요. 집에서 어떻게 그런 걸 배우겠어요. 또 어디 가면 그렇게 자상하게 일러주겠어요.”

-취업을 원하는 정신질환자들이 많지만 수급비 때문에 취업을 꺼립니다. 해결 방안이 뭐가 있을까요.

“우리는 거기에 해당이 안 돼요. 아들은 수급이 해당이 안 돼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듣고 보니까 수급비 20~30만 원 주고 아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죠. 기초생활수급 받는 사람이 일을 해서 수급이 깎이면 얘네들이 일을 안 하잖아요. 일하면서 받으면 제일 좋긴 하지만 일 하면서 받는 게 얼마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멀쩡한 사람들을 실업자로 만드는 거예요.

급여의 한계선을 높였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벌어도 얘네들 60~70만 원 벌기 힘들어요. 그러니까 그걸 합해서 백만 원 정도. 그러면 그 한계까지는 높여놓고 그 안에서는 얼마든지 기초수급을 받아도 돈을 벌어 쓸 수 있게 해야죠. 그건 자기 노력의 성과니까. 나는 그걸 국가에 말하고 싶어요. 어느 정도 채워주는 것.”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피습 사망에 어떤 마음이 들던가요.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미안하고. 그 분이 우리 애들에게 굉장히 호의적으로 우리 편이었더라고요. 그런 걸 들으니까 더 마음이 울컥하면서 정말 너무 안됐고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환우 보호자로서 너무 미안했어요. 우리 아이가 한 건 아니지만 우리 아이가 한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놀라고 미안하고 정말 힘들었어요.”

-가족협회가 불화를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싶어요. 끊임없이 그래 왔는데 이번에도 중앙회 회장 선출하면서 그 과정에 너무 말이 많고 말썽이 많고.”

-무슨 말들입니까.

“부정적으로 이렇게. 아니 하여튼. 진짜. 일방적인지 몰라도 그 사람들 입장에서도 할 말이 있겠지만. 너무 그러다보니까 애들은 뒷전이에요. 어른들 그렇게 송사 사건 나고 싸움박질 하다보니까 너무 정말 진짜. 그래서 불편해요.”

-어떤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까.

“결론은 욕심이겠죠. 장(長)자리 한다는 데서 오는 돈과 관련된 것들.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또 안 좋은 사람들이 끼어가지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 분란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

-기존 A 회장은 조카가 아프다면서 중앙회 회장이 됐는데 범죄 혐의가 있어 나중에 탄핵을 당했습니다. 요즘도 그런 사건들이 있습니까.

“요즘은 정신보건가족협회에서 그렇게 할 거리가 없죠. 너무 가난해져서.”

(c)마인드포스트
(c)마인드포스트

-현재 중앙 정신보건가족협회의 최대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최대 문제가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비밀스러운 거. 중앙 가족협회가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세종시로 내려갔어요. 남쪽 사람들이 그걸 지방으로 가져가고 싶어 했었던 거 같아요. 이 기회에 가져가자고 해서. 자기들 뜻대로 된 거죠. 종합청사가 거기 있으니까. 소식을 잘 몰라요. 서울지부장도 가야할 때 아파서 못 갔나 봐요.”

-정신보건가족협회 내부 권력 싸움 때문에 환멸을 느껴 떠난 사람들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서울지부도 그랬고 옛날에. 오면 도움 되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맨날 회장 뽑는다고 난리고 송사사건 일어나고 하니까 진짜 왔다가 가버려요. 그런 형국인 거 같아요. 힘들어요. 사람이 안 모이니까.”

-서울시지부를 제기동에서 어디로 옮겼습니까.

“제기동 있다가 을지로 갔다가 그 다음에 없어졌다가 그 다음에는 겨우 성수동에 공동사무실 얻어서 주소를 거기다 해놓았어요. 서울지부를 어떻게든 살리려고 애를 쓰는데 마음같이 안 되네요.”

-각 지방의 지부들하고 모이기는 합니까.

“지방의 지부장들 모임은 이제 세종시에서 하겠죠. 그런데 활성화는 안 되는 거 같더라고요. 아직도 자리가 안 잡혔어요. 지방에는 지부장만 있지 회원들이 하나도 없는 그런 데도 있대요. 그런 거는 아니잖아요. 충청도 같은 데는 두 달에 한 번 모인다나. 기존에 있던 사람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구습이 답습돼서 신선한 새로운 계기가 없는 거 같아요.”

-중앙 정신보건가족협회하고 서울시 정신보건가족협회하고 관계가 어떻습니까.

“현재는 별로 안 좋은 상태죠.”

-중앙 정신보건가족협회가 국가로부터 예산을 지원 받습니까.

“그 다 끊겼죠. 옛날에는 있었어요. 옛날에는 인식개선 사업 같은 것도 3억 정도. 그러다가 끊겼죠. 그런데 예산을 옳게 제대로 다 썼으면 이 지경은 안 왔겠죠. 그때 인식개선 사업이 잘 됐다면 우리가 이렇게 어렵지 않았겠죠.”

-지금 국가예산은 하나도 지원 못 받고 있습니까.

“네. 왜냐하면 최모 회장이 그만두고 이모 씨가 직무대행 했는데 그가 제대로 직무대행 노릇을 못해서 더 오리무중으로 빠져나간 거 같아요.”

-예산을 누가 착복한 겁니까.

“예산을 착복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때 (사무실에) 복지사가 두 사람 있었어요. 이모 씨가 직무대행할 때 둔촌동에다가 우리가 사무실을 하나 얻어줬거든요. 그러면 그 사람이 경상도 사는데 직무대행이라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서울에 올라오고 해야 하는데 직무대행 노릇을 하나도 못 한 거예요. 회장 선거 때도 자기네 마음대로 뒤집었다가 무산시키고. 그래서 국가에서 평가하는 점수가 있었는데 점수가 미달이 돼서 복지사 둘을 다 못 쓰게 됐죠. 나중에는 한 사람은 사무직원으로 뒀는데 그렇게 유지하다가 결국은 없어졌죠.”

-서울시 지부는 어떻게 운영됩니까.

“서울시 지부는 지난달까지 한 달에 한 번씩 이룸센터에서 꼭 모임을 가졌어요. 사무실이 없으니까 이룸센터가 싸더라고요. 임원회의를 하고 그 다음에 일반회원들이랑 같이 정기월례회를 했죠. 그리고 지금은 두 달에 한 번씩으로 바뀌었어요. 임원들은 매달 모임을 갖고 일반 회원들은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걸로.

사업비도 뭐고 하나도 없어요. 매달 그날 오면 자기 낼 수 있는 만큼 거둬요. 그리고 임원들이 얼마씩. 십만 원 내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운영돼 고 있어요. 후원 받을 데는 하나도 없죠. 그래서 후원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 다달이 모여서 인증 사진도 찍고 해요.”

-가족협회가 정치적 시위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우리 단체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당연하죠. 중앙회랑 지부가 제대로 똘똘 뭉쳐서 대안을 가지고 나가야죠. 덮어놓고 가서 이거 한다고 해서는 안 돼요. 우리가 주장하는 바를 확실하게 제시를 하고서 정책담당자에게 요구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어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신장애인 비하 발언한 건 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고 잘못 본다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반대시위를 하고 우리의 의사를 나타내는 거죠. 발달장애인들 보면 우수한 보호자들이 많거든요. 근데 우리 정신장애인 계통에도 보호자들이 찾아보면 있을 거 같은데 표현을 안 해요. 나서려고 하지 않아요.

내가 시위에서 사진이라도 찍히고 어디 가서 얘기하면 아 저 집에 그런 환자가 있었구나 이렇게 돼버려요. 인식개선이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국가도 나서서 당뇨병 환자나 고혈압 환자같이 바라보도록 만들어야죠. 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도 있어야 되고.”

-일각에서는 가족협회가 의료권력의 편을 든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나는 그거는 아닌 거 같은데. 그거는 잘못 생각한 거 같아요. 이번에 얀센에서 어디를 통해가지고 중앙 정신보건가족협회로 5천만 원 후원금이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얀센이 정신과 약을 만들잖아요. 그 사람들은 우리한테 후원할 자격이 돼요. 왜냐면 우리가 그 사람들의 소비자니까. 약을 사 먹으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글쎄요.

어떤 의미에서 얀센에서 5천만 원을 후원했는지 몰라도 우리가 그것을 가져왔으면 잘 써야죠. 중간에서 엉뚱한 데 쓰지 않고. 그리고 국가에서도 절차보조인 하잖아요. 그럼 우리 환우들에게 돌아오는 예산 비중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게 돼요. 얼마 안 될 거라 생각해요. 너무 서운해요. 맨날 우리 환우들 이름 빌려서 정신질환자를 위해 뭐 한다고 해놓고는 실제로는 저 끄트머리에 있는 정신질환자들에게 얼마나 (이익이) 될까. 센터도 가보면 인건비가 예산의 90%예요. 그럼 10% 갖고 우리 애들한테 뭘 하겠어요. 이건 너무 잘못됐다. 분개해야 돼요.”

-가족협회 회원 되려면 어떤 자격이 있어야 합니까.

“회원 되려면 가족 중에 환자가 있어야 돼요.

-조카가 아픈 것도 회원 자격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조카가 아파도 들어올 수 있죠. 근데 정회원이나 준회원 그런 게 달라지겠죠. 정회원이냐 준회원이냐에 따라서 지부장 뽑을 때 선거권이 주어지잖아요. 그런 건 구분이 돼요.”

-정신장애인이 치유되기 위해서 가족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제일 중요하죠. 그러니까 인격적으로 대우를 해 줘야 돼요. 환자니까 너는 부족한 아이, 그렇게 하지 말고 그 나이에 맞는 대접을 해 줘야 돼요. 대화가 되도록. 짜증나지 않게 이해를 시켜야 돼요. 그러면은 환우도 자존감이 높아져서 함부로 하지 않고 조심하겠죠.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다라는 것. 아이한테 간접적으로 그런 책임감을 주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만약 아들이 아프지 않았다면 선생님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오늘 아침에도 생각을 했어요. 우리 아이가 태어나서 효자다. 지금도 효자예요. 그 아이로 인해서 내가 늦은 나이까지 활동을 할 수 있고 일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해요. 그러면 아이는 엄마가 활동을 하는 걸 좋아하는 거 같더라고요. 자존감이 생기고. 집에만 있는 엄마보다 나름대로 가족협회 들락날락거리고하면서 저도 좋은 거 같아요. 그래서 듣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이가 병이 생김으로 인해서, 환우의 보호자가 됨으로 인해서 내가 더 값진 삶을 살아왔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요.”

(c)마인드포스트
김숙자 서울정신보건가족협회 수석부회장 (c)마인드포스트

-종교가 부회장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저는 종교가 굉장히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아이도 짐이 아니고 부담이 아니고 너무 즐거운 거예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 평생에 애가 다 완쾌돼서 정상인과 같이 행동을 못 한다고 하더라도 제 사후에라도 하나님께서 늘 이 아이를 업그레이드 시켜가는 줄 믿습니다. 그걸 믿어요. 끊임없이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이 계시니까 그걸 믿으니까. 저는 그래서 교회와 일을 병행해서 열심히 바쁘게 살아야죠.”

-아드님한테 바라는 게 있습니까.

“이 사회 속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해요. 어떤 돈이 얼마 없는 사람이 그러더라고. 우리가 죽었을 때 (아이가) 노숙자 같이 살아갈까봐 걱정된다고. 그게 공감이 갔었어요. 정말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동안 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왜냐하면 사회도 변하고 국가에서도 노력을 많이 하는 게 눈에 보여요. 아직은 멀었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달라지고 변화하니까 희망을 걸어요.”

-정신장애인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안쓰러운 면이 많죠. 그런데 정신장애인도 굉장히 여러 가지더라고요. 능력이나 증상이 너무 천차만별이라서 약한 아이들한테는 자꾸 격려해주고 껴안아 주고 따뜻하게 해 줘야죠. 제때에 약 못 쓰고 오랫동안 만성적인 증상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걱정스러워요. 국가에서 빨리 저런 사람들을 잘 케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신장애인을 둔 가족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아들이라면 어느 집의 사위이고 우리 집에서는 아들이고 또 누군가의 아버지고 남편이에요. 그런 걸 생각할 때 우리가 그 아이한테 어떻게 대접을 해야 될까요. 그렇게 장가가서 가족을 꾸리고 있는 아들한테 얘, 쟤, 하대하면서 대접을 안 해 줄 수가 있겠는가요.

여자도 그래요. 여자도 우리 집에서는 딸이지만 어느 집 가면 귀한 며느리예요. 어느 남편의 아내이고 엄마고 며느리고. 그런 걸 생각할 때 함부로 할 수 없잖아요. 정말 걔 위치에 맞는 대접을 해야죠. 대화라든가 언행을 그렇게 해 주면 참 많이 좋아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그 아이도 엄마가 이렇게 나를 대접해주고 어른같이 잘 해주니 나도 책임감을 가져야지 (하겠죠). 철없이 굴 수 없죠. 그렇게 대접을 받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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