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정신의학회 “사법치료명령제 도입은 정신질환 책임을 개인에서 국가로 이관하는 것”
신경정신의학회 “사법치료명령제 도입은 정신질환 책임을 개인에서 국가로 이관하는 것”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1.1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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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세원 추모 기자회견, 안전진료 위한 법·제도 마련돼야
응급입원에 대한 지정의료기관 체계 정비돼야
정신응급과 급성의 적정 치료 위해 수가 올려야
보호자 동의 없이도 외래치료 활성화해야
지역사회 기반 치료를 위한 준사법적 기관 설립
정신보건예산 OECD 평균인 5%까지 끌어올려야
대통령 직속의 국민정신건강위원회 설치해야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보호자가 관리하던 정신질환자 책임을 국가가 져야 하며 사법치료명령제 도입과 국가정신건강위원회를 법제화할 것을 요구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해 12월 31일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내담을 온 환자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이후 의료진의 안전 대책과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요청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학회는 “안전한 진료 환경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정부는 의료기관 내 안전보장을 위한 시설과 인력이 마련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자·타해 위험 상황에 대한 민감한 안정행정 대응, 응급정신의료, 급성재발기 집중치료로 이어지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며 “경찰과 보건행정체계가 공식적으로 임박한 위험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회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들은 급성 악화기에 원활한 진료를 받지 못하면 병식이 없는 환자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치료를 포기해 기초적 안전이 무너진다. 응급상황에 대한 조기개입이 필요한 이유다.

또 응급정신의료체계의 핵심은 ‘후송’이지만 지정의료기관 체계가 정비돼 있지 않아 현장에서의 경찰관 활동도 위축되고 있다.

학회는 “응급정신의료 체계는 신체적 치료와 함께 정신응급 진료 기능을 온전히 갖춘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구성돼야 한다”며 “이후 급성기 입원치료를 위한 정신건강의학과 안전병동의 설치를 필수로 하고 운영이 법적·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응급정신의료 체계를 재정비해 경찰과 119가 현장 대응과 후송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며 “권역별 주요의료기관에 정신응급치료를 위한 정신응급지정 의료기관의 설치 및 정신건강의학과 안정병실을 의무화해 정신응급과 급성기 치료는 중환자 진료에 준하는 관련 수가를 적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회는 중증정신질환자의 지역사회 기반 치료를 위해서는 외래치료 및 지역사회 관리 활성화 등의 대책을 요구했다. 특히 외래치료 신청은 보호의무자의 동의 없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해당 의료기관이 준사법기관에 신청해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을 가지고 집행해야 한다”며 “병원기반 사례관리를 지속적으로 관리해 탈락되는 환자들의 문제점을 파악해 행정입원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학회는 정신과 진료 의사들이 강제입원을 맡아오던 체계를 끊고 그 역할을 사법행정기관의 법적 판단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입원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으며 사법입원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해 지역사회 기반의 치료를 위한 준사법적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법치료의 경우 사법체계에서 입원 여부를 판단하는 제도로 선진국에서는 많이 채택하고 있다. 특히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거부할 때 가족은 이를 강제할 수 없으며 정신과 의사도 치료를 받도록 이를 강요할 수 없는 현실에서 치료권 보장을 위해서는 이 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학회는 “보호자의 동의 없이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국가가 치료비용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인력도 확보돼야 한다”며 “이는 사법입원과 마찬가지로 정신질환자의 치료에 대한 국가 책임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병원과 지역사회로 양분돼 있는 체계는 이론적으로 작동 가능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수의 정신질환자가 치료체계에서 이탈하고 있다”며 “보건복지부에서 시범사업으로 검토하고 있는 병원기반형 사례관리는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학회는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국가적 수준의 대책 마련을 위해 국가차원의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정신보건예산의 투자도 요구했다.

학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정신보건예산은 전체 보건 예산 대비 1.5% 수준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평균인 5.05%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학회는 “대통령 직속의 국민정신건강위원회(가칭)를 설치해야 한다”며 “또 정신보건 예산을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인 보건예산의 5%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학회는 이어 “상급의료기관에서 정신병동이 사라지고 있고 지역에서는 지역을 기반으로 정신질환자를 신속히 치료할 수 있는 응급대응 체계가 부재한다”며 “경찰과 지역사회서비스기관, 의료기관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책임을 질 수도 없는 공백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 학회 권준수 이사장은 “사법입원, 사법외래명령제 등 사법치료명령제는 정신질환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서 국가로 이관하는 것”이라며 “왜 환자를 법적으로 치료받게 하느냐는 말이 나오는데 법이 들어가야 환자들이 안전하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만큼 한국식 모델을 잘 만들면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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