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 말합시다] 첫번째 시간 - 분열된 자기
[책, 읽고 말합시다] 첫번째 시간 - 분열된 자기
  • 전민 기자
  • 승인 2019.01.13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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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상이란 미친 듯한 세상에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적응한 것이다"
반 정신의학의 거목 로널드 랭의 '분열된 자기' 읽기
"정신증은 관계의 문제다"
고 이동식 박사의 의견과 맞닿아 있는 랭의 생각을 읽어보자

 

로널드 데이비드 랭 (Ronald David Laing) (c) TarihNeDio
로널드 데이비드 랭 (Ronald David Laing) (c) TarihNeDio

로널드 데이비드 랭의 ‘분열된 자기’를 읽으면서 생각나는 것들을 비정기적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 이 글은 서평도 독후감도 아니다. 단지 책 읽는 모임이 있다면 특정 문단이나 페이지, 장을 읽고 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시간으로 생각하며 글을 썼다. 독자 제하의 적극적인 호응을 기대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보통 인간들보다 조현병 환자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통찰 역시 이 책을 통해서 할 수 있었다. 전민

그러므로 나는 한 사람이 건전한 정신 상태라는 데 이의가 없는 경우라면, 건전한 정신이나 정신증의 여부를 두 사람 사이의 연대나 분열의 정도로 평가할 것을 제안한다. 한 환자와 나 사이에 일어나는 일치의 결여, 즉 불일치, 충돌은 그 환자가 정신증 환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해줄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 (중략) 건전한 사람과 정신증 환자 사이의 장애물이나 괴리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 시점에서 조금 더 엄밀하게 조사할 만하다.

이 부분은 매우 탁월한 통찰이다. 작고한 대한민국의 도정신치료학자인 이동식박사가 주창했듯이 ‘정신질환은 관계의 고장’이라는 점을 저자 로널드 랭 역시 다른 표현으로 같은 이야기를 한 것이다. 랭의 표현을 빌자면 ‘두 사람 사이의 연대나 분열의 정도’의 수준차이가 바로 정신증과 건강한 정신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크게 보자면 정신질환 아닌 사람이 없고 성인을 제외한 모든 인간은 다 노이로제 환자라고도 할 수 있다. 진정으로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성인(聖人, Saint)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남자가 우리에게 자신이 ‘가상 인물’이라고 말했다고 하자. 그것이 거짓말이나 농담이 아니고, 또 모호하게 얼버무려 말하는 것도 아니라면, 사람들은 분명히 그 사람을 망상에 빠진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 망상이 무엇을 의미할까? 사실 그 남자는 농담하거나 가장한 것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그는 자신이 몇 년 동안 실제 인물인 것처럼 가장했지만 더는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정신질환은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또한 건강한 정신이란 ‘순간순간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정신병에서 치유된 다는 것은 ‘매순간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순간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위에 제시된 ‘가상 인물’의 경우 그는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 그것은 자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상당부분 타의에 의해서, 보이지 않는 압력에 의해서 그렇게 적응되어간 결과가 ‘가상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자신을 고백할 수 있는 힘이 있음으로서 자기가 완벽하게 ‘가상 인물’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무대 위에서 배우의 실명과 개성을 드러내는 것은 연기가 아니다.

책 목차 중 일부
책 목차 중 일부 (c) 전민

 

그 남자는 평생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와 자신을 감추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갈팡질팡해왔다. 이 문제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발견했다. 우리에게는 비밀이 있고, 그것을 고백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 어른들이 처음에 어떻게 우리를 간파하고 들여다볼 수 있었는지 기억한다. 또한 우리가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고, 어떤 면에서 사람은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외롭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한 사실이 얼마나 큰 성취였는지 기억한다. 또한 우리 자신의 영역 안에는 우리의 발자국만 있을 수 있음을 안다.

위 문단에 등장하는 고백은 일찍이 자신에게 진실했던 문학가나 사상가들의 글귀에서 가끔씩 발견하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아무도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고 쟁취하는 것에 실패하고 스스로 포기하고 만다.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진정한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는, 그래서 얻을 수 없다는 그 사람 자신의 고백이 전제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자기 고백을 그런 식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 정신질환이 치료될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그 사람들이 속한 세계에서는 ‘할 수 없다’ 이지만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치료할 수 있다’라는 걸 끝끝내 인정하지 못한다. 이유는 그 사람들의 존재의 한계가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지 못한 채 포기하고 살기 때문에 그들의 세계에는 정신병 치유는 ‘있을 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일어난다고 해도 그들은 그것을 거부한다.

또 이 문단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아래 문단에도 나오지만 ‘진정한 사적 비밀은 진정한 관계의 기초가 된다’와 같은 식의 ‘누구나 비밀은 있다’라는 오래된 명제에 대한 것이다. 도발적으로 말한다면 조현병 환자들은 위와 같은 ‘누구나 비밀은 있다’라는 명제에 대해서 코웃음을 친다. 비밀을 가질 만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것은 대개 자신만 크게 생각하는 자기 존재의 수치 때문이다. 그러나 남이 볼 때도 그렇게 수치스럽게 느낄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 모두가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밀을 죽음이 올 때까지 혼자 간직하고 있어야 할 비밀은 사실 별로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밝혀지는 것이 수치이기 때문에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이 점에서 조현병 환자들은 훨씬 운신의 폭이 넓다. 그들은 자신에게서 이렇다 할 비밀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진작 깨닫는다. 수치라는 것은 자신에게 그런 것이지 남이 볼 때는 하나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사실은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이른 시기에 깨닫게 된다. 조현병 환자들이 비밀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아무도 그걸 묻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묻는 이가 없기 때문에 대답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아니, 발언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 속 진실을 말하고 싶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런 위치에서 결코 자신을 충분히 실현하지 못한다. 진정한 사적 비밀은 진정한 관계의 기초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조현성 성격장애 환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자신이 우리보다 더 많이 노출되었다고 느낀다. 즉 우리보다 더 타인에게 취약하며, 동시에 더 많이 소외되었다고 느낀다. 게다가 조현병 환자는 자신이 유리로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즉 타인이 한번 보기만 해도 자신은 산산조각이 나며, 환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깨어지기 쉽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사람이 경험한 것을 명확하게 추측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이 책의 저자인 랭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랭 자신은 조현성 성격장애 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실제로 타인에게 더 취약하며, 동시에 더 많이 소외되었다는 ‘진실’을 발견했으면서도 일부러 일반 독자들을 위해서 이런 표현을 쓴 것일까? 아니면 그 자신이 말하는 대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렇게 쓴 것인가?

물론 이런 ‘환자 개개인의 공통된 경험’에 대해서 지면을 할애하는 것이 이 책의 의도와는 다를 수도 있다. 그래서 랭 자신이 그 부분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이 아닌 듯한’ 뉘앙스를 풍기면서 이렇게 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이 사실을 밝히자면 조현병 환자들은 가족내 권력관계에서 늘 패배를 반복해왔던 사람들이다.

타인에게 취약하고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그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 리가 있겠는가?

책 내용 중 일부
책 내용 중 일부 (c) 전민

 

그 비현실적인 사람이 자기 은폐에 능한 것은 이 예민한 취약성 때문일 것이다. 그는 기쁘면 울고, 슬프면 웃으라고 배웠다. 호감을 느끼면 눈살을 찌푸리고, 불쾌하면 박수를 쳤다. 그는 ‘당신이 보는 모든 것은 내가 아니다’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이 모든 것 안에서만, 또한 모든 것을 통해서만 그는 (현실에서) 누군가가 될 수 있다. 이런 행동들이 그 사람의 진정한 자기가 아니라면 그는 비현실적이다. 즉 완전히 상징적이고 모호하며, 순전히 허상이고, 잠재적인, 가상 속 인물이다. ‘실제로’ 아무 것도 아닌 ‘신화적’ 인물인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이 한번 자신이 아닌 사람 흉내 내기를 멈춘다면, 자신이 되려고 했던 사람에게서 물러난다면, 그는 사람이 아닌 그리스도나 유령으로 나타날 것이다. 몸 없이 존재하기에, 그는 아무도 아니다. (중략) 그 비현실적인 사람은 자신의 ‘실존적 입장’에 대한 ‘진실’을 따라 산다. ‘실존적으로’ 진실한 것을 ‘실제로’ 진실한 것으로 여기며 사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실존적 입장’에 대한 ‘진실’을 따라 사는 것과 ‘실제로’ 진실한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어떤 이는 실존적인 의미에서 진실이라면 그 자체로 실제로 진실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랭은 아마도 위의 문단에 나오는 비현실적인 사람의 사례를 실제로 경험한 적이 있기에 이렇게 명확하게 구분지어서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사람은 완벽한 연기를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카메라가 꺼지면 배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배역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죽은 것이다. 이것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 비현실적 사람의 ‘실존적 입장’이라는 것은 자신이 연기를 하며 산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그는 ‘산다’. 랭이 말한 그 입장의 차이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자신이 연기를 하는 중이라는 것을 관객들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배우 자신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비현실적인 사람의 연기는 ‘연기가 아니다’. 관객들은 그 배우가 현실속의 누구를 연기하는 것인지 끝내 알 수 없다. 그의 연기는 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현실의 무엇을 반영하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는 전형적인 인간을 연기할 뿐, 현실의 인간을 연기하지 못한다. 그의 연기는 생명이 없다.

한 사람은 자신이 죽었지만 살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사람의 ‘진실’은 그가 죽었다는 것이다. (중략)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실제로’ 그리고 정말 ‘문자 그대로’ 죽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상징적으로 그렇다거나 ‘어떤 의미에서’ 또는 ‘말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사람은 진지하게 자신의 진실을 알리는 데 전념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공동의 진실을 재평가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미치는 것이다. 우리는 실제 죽음만 생물학적 죽음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조현병 환자는 자포자기한다. 아무 희망도 없는 것이다. 나는 여태껏 자신이 성부나 성모 또는 타인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조현병 환자를 본 적이 없다. 조현병 환자 자신은 신이거나 악마다. 또는 신에게서 멀어진 지옥에 있다. 어떤 사람이 조현병 환자를 두고 비현실적인 사람이라고 하거나 이 사람이 죽었다고 진지하게 말할 때, 그는 자신이 경험한 실존의 극명한 진실을 과격한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신이상이다.

자기 삶은 연기하는 사람으로서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것.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신이 ‘미쳤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살아있는 존재만이 ‘미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로널드 랭. 분열된 자기

1부 2장 '정신증을 이해하기 위한 실존현상학적 기초' 가운데 54-56페이지 참고.

 

참고문헌

산 연기 | Respect for Acting | 우타 하겐 지음 | 김윤철 옮김 | 퍼스트북 출판사 | 2015년 01월 20일 출간

현대인과 노이로제 | 이동식 지음 | 한강수 출판사 | 2012년 4월 출간

마인드포스트에서 소개한 '분열된 자기' 책 출간뉴스가 있다.

 

'광기: 하나의 미친 세상에 대한 완벽하게 이성적인 적응' (c) AZ Quotes
'광기: 하나의 미친 세상에 대한 완벽하게 이성적인 적응' (c) AZ Qu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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