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 존재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고영,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 존재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1.17 0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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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 함께하는의원 원장 인터뷰
지금, 여기에서의 삶에 최선 다하는 게 중요
생산적 활동을 통해 독립적인 나를 찾아가는 길
지역사회 생활공동체 네트워크 만들고 싶어
면담하고 약주는 게 다가 아니라 가치 찾도록 도와야
코하우징은 공동생활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수단
노숙인 상담하면서 자립할 때 가장 보람 느껴
동의입원 없애고 자의입원으로 바뀌어야
당사자운동 활성화돼야 편견 사라질 것
포괄수가에 의한 차별은 인권유린
정신장애는 영구 장애가 아니라 일시적 현상일 뿐
인간과 생명체 모두 건강한 공동체가 꿈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그는 1984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의대생이었다. 최루탄이 일상화된 세계에서 그는 인문학적인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했다. 인간의 정신과 사회에 대한 목마른 관심. 그가 정신과를 택한 이유도 사회와 연관시킬 수 있는 어떤 무기로 봤기 때문이었다.

당시 대학은 그를 소외된 자와 빈자(貧者)의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상계동 판자촌에서 학생 진료를 했고 농촌에 가서도 진료를 봤다. 종교적으로도 회의해야 했던 시절. 그는 마침내 ‘신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유물론자가 됐다. 정신을 치유하는 게 목적인 정신과 의사가 유물론자로서 신과 윤회의 가설을 부정해 버린 것이다. 남은 건 사람 속에서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아픈 정신을 치유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든 건 어쩌면 정해진 삶의 수순이었을 것이다. 프로그램도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꾸려나가도록 했다. 그와 의료진은 그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도우미 역할만 했다. 당사자들은 그가 바라는 자주적이고 책임감을 가진 인간으로 성숙해 나갔다. 약도 필요하다면, 또 충분히 검증됐다면 끊도록 유도했다. 약물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물의학적 사유를 그는 거부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가는 ‘생활치료’였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성남으로 갔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간호사가 있는 데스크 저 뒤로 ‘행운이 아니라 행복입니다’라는 문구가 들어왔다. 그가 만든 사회적협동조합 ‘함께하는’의 제1미션이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고 그 대가로 또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 그리고 지금, 현재의 삶에 충실하기. 그가 바라는 정신장애인의 삶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가져야 할 도덕적이고 윤리적 정언명령일 수도 있다. 고영(55) 함께하는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을 찾은 건 한파가 찾아온다는 16일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고영 함께하는의원장 (c)마인드포스트
고영 원장 (c)마인드포스트

-정신과 의사를 구체적으로 선택한 동기가 뭡니까.

“인간관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질병만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과정 속에서 병도 없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과를 (택했어요). 학교(고려대 의대) 다닐 때부터 정신과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죠.”

-인터뷰 준비 하면서 선생님이 인문주의자 아니면 사회주의자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철저한 유물론자죠. 신도 만들어졌다 생각하고.”

-정신과와 안 맞지 않나요. 유물론자가 정신의학을 이야기하는 게 잘 조합이 안 됩니다.

“윤회(輪廻)니 신이 있니 그런 부분들을 배척하는 거고요. 유물론은 대상에 대한 중요성들을 강조하는 거기 때문에요. 정신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표현도 하고 생각도 하는 거죠. 정신과에서 유물론을 배제하는 건 아니니까요.”

-유물론자로서 당연히 종교는 없으시고?

“그렇죠.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가 아니라 신은 없다라고 생각하죠. 우리 당사자들한테도 항상 얘기하는 건데 지금 현재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 중요한 거지(라고 얘기해요). 자꾸 내세를 위해서 천국가기 위해서 그런 거 보다는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가끔 쓰는 용어 중에 ‘생활치료’라고 해서 생활을 잘 하는 치료가 중요한 거죠. 약 안 먹겠다, 약 줄여 달라 그러면 충분한 근거만 있고 잘 지내면 바로바로 줄여주거든요. 약을 먹는 이유도 생활을 잘 하기 위해, 잘 살기 위해, 재미있고 보람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거니까요. 활동도 생산적인 활동, 어차피 가만있어도 시간은 가는데 내가 거기에서 의도를 갖고 계획 하에 움직이는 활동을 생활 속에서 만들어내는 게 필요하죠.”

-내담자 중에서 약을 완전히 끊은 경우도 있습니까.

“네. 가끔씩 오죠. 본인이 정신건강 교육시간에 재발 경고 징후들을 배우잖아요. 약을 안 먹고 있는 상태에서 예민해지면 본인이 와요. 그래서 자기 얘기하고 좀 안 될 것 같으면 한두 달분 약을 먹어보자 그러면 약 먹고. 그 다음에 다시 약을 안 먹고.”

-잘 살고 잘 먹고 잘 놀기 위해, 그렇게 살기 위해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어떤 삶을 지향하십니까. 무위도식입니까.

“무위도식은 아니고요(웃음). 우리 미션 원(1)에 ‘행운이 아니라 행복입니다’가 있어요. 그냥 얼떨결에 나한테 행운이 떨어져서 돈이 생기고 하는 게 아니라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통해서 얻는 걸 행복이라고 얘기하거든요. 그러니까 첫 번째 미션이 의미가 커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생산적인 활동을 통해 독립적인 나를 찾아가는 거기 때문에 잘 먹고 또 잘 먹으려면 그만큼 노력을 해야 되겠죠. 잘 놀려면 그만큼 여유를 가져야 되고. 그래서 무위도식이 아니라 내가 노력한 결과물로서 나타나게 하는 겁니다.”

-협동조합과 사회적협동조합의 차이가 뭡니까.

“협동조합 안에 하나의 분류체계로서 사회적협동조합이 있는 거죠. 협동조합은 수익사업 위주로 사람들이 모이는 거라면 사회적협동조합은 비수익사업(이죠). 저희가 하는 사업이 돈을 벌려고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수익을 내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사회적협동조합은 아무리 많이 벌어도 번 돈만큼 또 쓰게 되는 식의 비수익 사업인거죠.

궁극적 목표가 당사자들이 지역 내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 생활 공동체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수익이 난다면 그것을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합니다. 수익이 났으니까 배당을 해주거나 그런 개념은 없어요. 사회적협동조합은 그게 특징입니다.”

-‘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은 ‘당사자 결사체’라고 했습니다. 당사자주의로 봐도 무난할까요.

“그렇게 하자고 천명한 거죠. 예전에는 1박2일 어디로 놀러가더라도 치료진들이 다 계획 짜고 했는데 요즘은 저희는 뒤로 싹 빠져서 가자 그러면 쫓아가면 되는 거니까(웃음). 스스로 마음을 내서 자발적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당사자주의라고 볼 수 있죠.”

-지금 조합원은 몇 명 정도 됩니까.

“246명 정도요.”

-모두 정신장애인이나 정신장애인 가족들입니까.

“사회적협동조합은 다중 이해자 관계로 구성돼 있어요. 그래서 생산자는 당사자가 한 40% 정도. 그리고 직원 조합원은 6명, 그 다음에 후원조합원이 있어요. 그렇게 생산자, 직원, 후원, 자원봉사조합원, 소비자조합원. 소비자는 조합원이 되면 (함께하는) 식당을 싸게 이용할 수 있고 (함께하는) 농장에서 나오는 물건들이 있으면 할인혜택이 있고 먼저 살 수 있고.”

(c)마인드포스트
(c)마인드포스트

-2013년 식당 ‘함께한상’, 2014년 ‘함께신나는카페’, ‘카페 뚜띠’를 열었습니다. 아직 운영되고 있습니까.

“다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것 외에 다른 사업유형은 있습니까.

“지역에서 꼭 필요한 게 뭐냐. 먹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함께한상’은 공동식당의 개념이에요. 값싸게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끔 하는 거고요. 자는 공간은 ‘담쟁이’라고 해서 여자담쟁이 남자담쟁이가 있어요. 공동생활가정으로 운영하고 있고요. 함께하는의원을 개원하면서부터 주거시설은 공동주거를 했었어요. 그게 12년 됐는데 국가의 보조금을 받는 걸로 전환한 거는 이제 2년 됐어요.”

-그 전에는 어떻게 운영하신 겁니까. 회원들 월세로 운영됐던 겁니까.

“제가 집을 전세로 얻어서 썼던 거고요. 생활비는 지금도 똑같은 비용으로 받고 있는데 공동으로 생활하다보면 비용이 적거든요.”

-전세금은 선생님이 내신 거죠.

“네. 그렇죠.”

-고생하셨네요.

“아니요. 필요에 의해서 한 거니까.”

-다른 사업 유형 중에 실패한 부분도 있었습니까.

“목공소를 했었어요. 취지는 버려지는 가구들을 리모델링하고 우리 당사자들이 목공을 배워서 운영을 하게끔 하려고 했는데 그게 여의치 않았어요. 계속 월세 내는 게 부담스러워서 지금은 농장(화성시 소재)으로 옮겼어요. 실패한 거죠. 나중에 여건이 되면 다시 이쪽으로 나오게 될 겁니다.”

-농장에서는 뭘 만듭니까.

“엽채류들. 상추, 부추 그런 것들. 저희들은 자연농법 그대로 하거든요. 화학비료는 쓰지 않고 살충제, 제초제 전혀 안 쓰고 천연으로 지역에서 얻어낼 수 있는 걸로만 해요. 배추로 김장도 하고 현재는 화성시 로컬푸드에 저희들이 납품을 하고 있어요.”

-마음만 치료하는 게 아니라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나가는 것도 함께 도와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돈도 들어가야 되고 에너지도 많이 소비될 수 있는 활동일 건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부모한테 효도 안 하고 싶은 사람 있을까요. 효도하는 방법의 차이겠죠. 저도 정신과 의사로서보다 한 인간으로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살고 있는 거죠. 나보다 공부 못 한 사람 있으니까 내가 잘 한 거죠. 나보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만 있으면 내가 공부를 못한 게 되겠죠.

마찬가지로 사람답게, 그리고 자신의 삶을 보람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냥 약만 주고 면담으로 끝나는 게 아니죠. 생활 속에서 뭔가 실천되고 활동으로 이어지고 가치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계속 느꼈는데 자연스럽게 된 거 같아요.”

-유엔 장애인위원회가 정신장애라는 용어를 사회심리적장애로 규정하자고 합니다. 동의하십니까.

“그거는 스티그마(낙인)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어떻게 불리든 관계없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전에는 정신분열병이라고 했다가 지금은 조현병으로 바뀌었는데 이름이 바뀐다고 뭔가가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실질적으로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게 더 중요한 거고요.

저희들 장점이 그거 같아요. 동네사람들이 저희 당사자들에 대해서 멀리 하지 않는다는 거죠. 서로 인사하고 지내고. 저희가 바로 옆에 평생교육센터가 있거든요. 지역주민들도 와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개방을 해 놔서 주민들이 바리스타 교육도 받고 하다보니까 서로 같이 접하는 시간이 많아졌죠. 그러면서 이상한 존재가 아니구나, 무서운 존재가 아니구나 하면서 아주 격의 없이 서로 인사하고 먹을 거 있으면 같이 먹자라고 하는데 그게 더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경험이 태도를 바꾼 거네요.

“그렇죠.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회복지 쪽에서도 실습생들이 오면 처음에는 삐쭉삐쭉하지만 갈 때는 서로 친해져서 가고요. 그런 것들이 더 필요하죠. 사회심리적장애로 이름 불리어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꾸 격의 없이 만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토대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반정신의학 사상은 선생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진료실에 들어와서 딱 나가는 순간 라벨링(꼬리표)을 하는 거죠. 오히려 그것 때문에 당사자들이 더 힘들어한다면 어떤 게 문제라고 하기보다 이러이러한 부분들이 걱정이 된다라고 하는 오픈 다이얼로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을 선호해요. 실제로 치료해보면 진단이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럼 뭐가 중요합니까.

“정신과에서는 어떤 게 부족하냐 어떤 게 더 과잉이냐라고 하는데 그냥 정도의 차이다(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부족한 게 있거든요. 남들보다 잘하는 부분이 있고. 부족한 걸 채워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접근해야지 병이니까 약을 먹자 (하거든요). 약을 먹어서 좋아지는 사람들이 많지만 약이 전부는 아니라고 하는 게 생활치료거든요. 그래서 약을 세게 쓴다 해서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고 생활자로는 약을 낮출 수도 있는 부분이고요.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에게 영향을 끼친 사상가들이 있습니까.

“제가 학교 다닐 때 서클이 ‘생명경외클럽(Veneratio Vitae Clue)’이었어요. 슈바이처가 만든 건데요. 가장 영향을 많이 나한테 줬다라고 하면 노자(老子)가 아닐까 생각해요. 슈바이처에 대해서는 인류애를 가지고 생명을 경외해야 한다는 부분이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제국주의의 문제점들을 옹호해주는 역할도 없잖아 했거든요.

그래서 양면이겠지만 어떤 게 옳다 그르다 하는 게 아니라 그 존재를 인정해주는 부분들이 훨씬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톨스토이 정도. 왜냐면 아나키즘이 저한테는 좀 맞는 거 같거든요. 톨스토이는 마지막에 노숙하다가 죽었잖아요. 그런 것처럼 뭔가 가지려고 하는 거 보다는 정신을 우위에 두고 인간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얘기했던 부분들이 와 닿고 그걸 실천하려고 하고 있죠.”

-고전 비평에서는 노자도 아나키스트라고 하더라고요. 노자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습니까.

“옳고 그름으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게 노자 사상의 커다란 축이거든요. 있는 그대로,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자연의 힘. 그 다음에 자연의 이치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부분들이 굉장히 좋았어요.”

-사회적협동조합 ‘함께하는’은 의사나 프로그램 진행자가 안내자의 역할을 하고 정신장애인 스스로가 교육의 주체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교육의 주체가 되면서 뭐가 변했습니까.

“자발성을 가지게 되니까 자기결정을 하고 자기책임을 지는 거죠. 일반적으로 환자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려주길 바라고 그걸 결정내려 준 걸 하다가도 힘들면 ‘봐, 내가 하기 싫다고 그랬잖아’라고 하면서 자기 책임을 안 지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내가 결정했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행동을 하고 거기에 대한 결과도 본인이 오롯이 지고요. 안 되면 어떤 게 문제였나 하고 대책을 세우고 그걸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들이 달라진 거라고 봅니다.”

(c)마인드포스트
고영 원장 (c)마인드포스트

-바리스타 양성하면서 한 명이라도 이해를 못하면 그 부분을 다시 설명해주고 그러면서 시중 학원보다 학습 기간이 몇 배나 오래 걸린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까.

“왜 바리스타 학원 교육을 하냐면 당사자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해야 되기 때문이라고 얘기하거든요. 바리스타 학원 많잖아요. 그런데 거기서는 진도 쫙 나가고 못 따라오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하죠). 그렇지만 우리는 함께 가는 거기 때문에 이해할 때까지 (해야죠). 그만둔 분들도 있기는 있어요. 그러면 어쩔 수 없지만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계속 이해할 때까지 또 익숙해질 때까지 하죠. 우리는 몇 명을 교육했느니 어디에 합격했느니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살아가게끔 하는 것 때문에.”

-저 같으면 속이 터져서 못할 것 같은데요.

“속이 터지는 분도 있죠(웃음). 근데 그걸 이해하고 시작하는 거기 때문에 화나기보다는 오히려 안쓰러움이 더 많죠. 그리고 진심은 통하는 거라고 마음이 통하게 되면 본인도 잘 안 되는 부분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하는 부분들이 속을 답답하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짠하게 만들어요.”

-교육하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에게 바라는 게 뭡니까.

“본인이 본인의 생각을 가지고 계획 하에 생산적 활동을 통해서 지역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돈을 많이 벌고 안 벌고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기초생활수급비만 가지고도 살 수 있다고 한다면 본인이 자기중심을 갖고 본인이 생각한대로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봐요. 그렇게 살게 하고 싶어요. 살았으면 좋겠고.”

-코하우징(공동주거) 개념의 주거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기존 공동생활가정이나 중간집과 어떤 부분이 다릅니까.

“공동생활가정이 영어로 하면 그룹홈이고요. 공동주거라고 하는 건 코하우징. 공동생활가정은 시설의 범주니까 치료진도 개입할 수 있고 위기개입도 할 수 있죠. 그런데 코하우징은 같이 사는 거예요. 같은 뜻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본인들한테 맞는 규정을 만들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죠. 결국은 하나의 가족을 만드는 거죠.

유전적으로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가족처럼 생활할 수 있는 거. 그리고 그걸 통해서 공동생활에서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생활 방법이기 때문에 특히 우리 당사자들한테는 필요한 거 같아요. 혼자 있으면 위축돼서 생활 리듬도 깨지는데 공동생활에서는 일정 부분 함께 해야 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겠죠. 공유의 개념이 들어가기 때문에 코하우징이라고 합니다. 코하우징의 개념은 슈퍼바이저가 없는 거죠. 감시자가 없죠.”

-노숙인을 대상으로 매월 둘째 주, 넷째 주 화요일에 정신과 진료를 해 준다고 하셨는데요. 노숙인에 눈을 돌린 계기가 있었습니까.

“제가 정신보건센터장을 했었는데 지역사회 정신보건사업하고 홈리스하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업이었어요. IMF 터지고 김대중정부 때 노숙인들이 급증했잖아요. 문래동의 자유의집이라고 노숙인 센터가 있었어요. 한 2천 명 정도 수용하는 곳인데 거기서 노숙인 정신건강센터를 했었고요. 그러면서 거기서 노숙인 알코올센터도 하고 정신건강센터도 하고. 거기서 센터장으로 일했죠. 그리고 성남에서는 안나의집이라고 거기에서 또 진료하고.

그때는 정신건강센터의 사업으로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다들 적극적으로 안 해서 제가 센터를 그만 두고도 그걸 했죠. 또 개업해서도 그 일을 하다보니까 계속하게 된 거죠.”

-이들을 상담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치료를 받으면 좀 안정이 되면서 현실 판단 영역이 좋아지고요. 그러면서 노숙하다가도 여름에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아서 그해 겨울에는 노숙하지 않고 고시원에 있는다든지 그러면 보람이 있죠. (노숙자들이) 대인관계 힘들어 하고 사람들을 멀리하려는 성향이 있거든요. 그런 분들이 자기 나름대로 일하고 돈을 모아서 주거가 좀 불안정하긴 하지만 그렇게 방법을 찾아간다고 하면 저한테는 보람으로 다가오죠.”

-그들에게 정신분석이 아니라 인문학적 사유를 던져주신 거네요.

“노숙인 쪽에서도 인문학적 접근 방법으로 교육들을 많이 하거든요. 강의도 하고. 저는 근데 정신건강을 다루면서 필요한 부분들을 격려해주는 거니까.”

-정신건강복지법을 의료계에서도, 정신장애 시민단체에서도 개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입장입니까.

“저는 개정돼야 한다고 봐요. 동의입원 없어져야 돼요. 동의입원 제도 없어지고 자기가 결정하게끔 해야죠. 저는 그렇게 봐요. 이번에 임세원 교수(지난해 12월 31일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의사가 내담 온 정신과 환자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편집주) 사망에서도 나오는 문제인데 본인이 치료받고 있지 않는 상태에서 문제가 생기면 본인의 문제죠.

치료를 받고 있으면 심신미약 상태를 인식하고 그런 일이 안 생겼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입원도 스스로 결정하는 자의입원만이 있어야 된다고 보고요. 응급입원이나 그런 거는 일시적으로 하긴 하겠지만 가족이나 후견인에 의한 동의입원은 없어져야 된다고 봐요.”

-외래치료명령제와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퇴원 후 인적사항을 고지하는 법안이 발의됐거든요. 자기결정권을 해친다는 반발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외래치료명령제는 당사자가 그거를 받고 안 받고를 선택할 수 있어야 된다고 봐요. 미국에서도 음주운전을 하다 걸리면 교도소 갈래 알코올 교육 받을래 (그러거든요). 그게 공동체 치료거든요. 치료공동체에 들어갈래 아니면 교도소 갈래라고 선택하는 거죠.

문제가 있는 거 같은데 외래치료를 받으실래요 아니면 그냥 형을 받고 살래요, 그런 식으로 돼야 된다고 봐요. 그래서 사건화되지도 않았는데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거는 문제가 있고요. 범죄가 발생했을 때는 일반인하고 똑같이 처벌 받게 하는 대신 외래치료명령제 등은 하나의 선택사항으로서 필요하다 생각해요.”

-정신과 전문의 2인의 진단, 입원적합성심사를 없애자는 의견도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정신과 의사를 못 믿어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거 같고요. 다양성을 갖는 건 필요하겠죠. 2인 아니라 3인이 필요하면 할 수도 있는 거고. 정신감정 같은 경우에도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2인이 보게 돼 있거든요. 좀 더 객관적 지표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그 방법이 입원을 어렵게 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문제가 있죠). 자의입원을 하면 2인 진단이라는 건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스스로 입원하겠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건 제가 볼 때는 옥상옥에 불과하지 않나 싶어요.”

-강제입원은 폐지돼야 한다?

“네.”

(c)마인드포스트
고영 원장 (c)마인드포스트

-임세원 교수 피습 사망 사건을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어떤 상황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건 강제입원이 낳은 결과라고 보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임세원 교수를 살해한 피의자가) 5년 전에 강제입원을 당했었고 3주 정도 있다 퇴원을 했단 말이에요. 그리고 나서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가 2년 전에도 와서 나 정상이다라고 써달라고 했대요.

그러니까 치료의 장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처음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통해서 치료받지 못하는 상태로 끌고 가지 않았나 (싶어요). 자발적으로 내가 이렇게 힘드니까 치료를 받아야지 하는 쪽으로 가야 되는데 어떻게 보면 강제입원의 부작용이지 않았나 (싶어요). 임 교수 같은 경우는 학교 후배인데 안타깝게 생각하는데 아무리 좋은 안전장치를 해도 또 벌어질 수 있는 부분인데요.

자발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분위기, 본인이 선택하게 하고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죠. 그러니까 치료 받으면 좋아진다라고 하는 걸 대전제로 하는 건데 치료받지 않고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 거는 중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들이 만들어져야죠. 결국은 제가 봤을 때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치료를 한다고 해서 그게 과연 좋아지겠느냐 하는 거예요.

소를 물가까지는 끌고 갈 수 있지만 물을 먹는 건 소인데. 그러니까 치료 당사자가 이건 나한테 절실해 필요해라는 생각을 통해서 해결이 되는 건데 억지로 너 가서 치료 받으라고 해서 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죠.”

-임 교수 사건 이후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더 노골화되는 느낌입니다.

“같은 맥락이지만 저는 우리 당사자들을 식구라고 하는데 우리 식구들 중에 쟤가 또 무슨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아요. 또 한 측면에서는 대학병원에서 한 2시간 기다리고 3분 (면담) 보고 그런 시스템에서 과연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가 제대로 형성이 돼 있었을까 (의문이 들죠). 치료자와 환자가 계속 친밀하게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준다면 문제는 자연스럽게 없어지겠죠. 또 지역사회 내에서 당사자들이 당사자운동 차원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 결국 편견도 없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은 한 내담자를 몇 분 정도 면담하십니까.

“필요에 따라서 1~2분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가 있고 얼굴 표정이 안 좋다 그러면 10~20분도 하고 어떤 때는 한 시간도 하고 그러죠.”

-고무줄이네요.

“고무줄이죠(웃음).”

-정신요양시설 입소자의 65%가 입소한 지 10년이 넘는 이들이라고 합니다. 개방형 사회복귀시설로 만들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정신보건법이 1995년에 처음 만들어졌을 때 정신요양시설을 7년간 유예를 하고 없애자고 했었어요. 그게 유야무야 넘어갔죠. 처음에는 없애기로 하고 정신보건법이 만들어진 건데 그 7년의 유예 기간 동안에 슬그머니 들어온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당연히 없어져야 되는 거라고 보고요. 예전에는 정신병원도 물 좋고 경치 좋은 지역사회 밖에 있었지만 지금은 지역사회 내로 다 들어오잖아요.

그런 부분들도 개방형이어야 되는 것도 맞고 지역사회 내에 그런 것들이 만들어져야죠. 개인의 생산적 활동들, 본인이 필요로 하면 활동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약하지 않고 신체의 자유를 제약하지 않는 시설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병원은 다 폐쇄돼야 합니까.

“가능하다면 (폐쇄) 했으면 좋겠어요.”

-대안이 있습니까.

“이탈리아가 정신병원이 없다고 하는데 사실 정신과적 상태가 안 좋으면 그냥 일반병원에 입원해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따로 정신병원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건 문제가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안 좋으면 저희는 입원실을 20병상 하다가 폐쇄하고 지금 낮병동만 하고 있는데요. 위기 관리실 비슷하게 만들어서 상태가 안 좋으면 집중관리하고 되도록이면 신체적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 쪽으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폐쇄하면 좋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고민해 주는 건 맞죠.”

-의료급여 수가는 건강보험의 64%수준입니다. 대형병원에서는 의료급여환자를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건 명백하게 인권유린이죠. 정신과 의사로서 사실 고민을 많이 하는 부분이에요. 지금 외래 오면 약값을 보존을 해주니까 좋은 약들을 쓰는 체계가 됐지만 예전에는 외래도 포괄제였기 때문에 좋은 약을 쓰고 싶어도 못 썼거든요.

저는 그 약을 쓰면서 어떤 때는 진료를 하면 할수록 손해인 경우가 많았어요. 신약들을 쓰다 보니까. 그분들한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든 받는 돈은 똑같아요. 그 당사자들한테 비싼 약들을 쓰면 다 합해 보면 받는 금액보다 더 약값이 더 비싼 경우가 있죠. 그럼 손해죠. 그랬는데 지금 외래는 그렇게 (행위별 수가가) 돼서 좀 괜찮은데 입원은 아직도 포괄(수가)제로 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되면 외래에서는 좋은 약을 쓰다가 입원하면 또 싼 약을 쓰고 싶은 욕구들이 생기게끔 할 수밖에 없죠. 그런 것들은 인권유린이라고 봐요.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도 궁색한 변명이고 똑같은 인간으로서 동등한 대우를 해야 되는 게 맞는 거죠. 최저임금이 올라가는데 기초생활수급비는 올라가지 않거든요. ‘최저로 살아가라’라고 하는 부분이고 아르바이트해서 통장으로 돈이 들어오면 깎아버리고 ‘너는 최저로 살아가는 인간이야’라고 딱 못 박는 거하고 똑같거든요. 그런 것들이 다 인권유린이라고 봐요.”

(c)마인드포스트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은 선생님한테 어떤 의미입니까.

“저를 제가 정신과 의사이다보니까 저를 밥 먹고 살게 해 주는 대상이라고 얘기할 수 있나요(웃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나 정신과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게 정도의 차이에 불과한 거고. 정신이 완벽해진다고 하는 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관리하는 거죠.

의사 생활을 하면서 계속 느끼는 건데 우리 당사자들이 굉장히 맑고 순수하기 때문에 관리만 잘 하면 충분히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봐요. 증상이 있다 할지라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신장애는 영구적으로 장애가 되는 건 아니고 일시적인 거라고 얘기해요. 유럽에서는 임산부도 일시적으로 장애인에 속하거든요. 임신했을 때는 행동 등이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장애 범주에 넣어서 혜택을 주지만 출산을 하면 장애인에서 벗어나요. 일시적인 거란 거죠. 정신장애에 대한 저의 생각은 영구적인 게 아니고 일시적인 거라는 거예요. 관리의 부분이죠.”

-결론이 관리만 잘 하면 된다. 관리 못하면 나빠진다라는 걸로 결론이 날 수 있겠네요.

“사례관리는 도움을 받는 거잖아요. 사례관리가 케이스 메니지먼트잖아요. 대부분 건강한 사람들은 셀프 메니지먼트(자기관리)죠. 자기 스스로가 관리하는 거요. 셀프 메니지먼트를 잘 할 수 있게끔 하는 건데 그게 문제가 생겼을 때는 사례관리도 받죠. 그러니까 일시적으로 도움을 받는 거지 계속해서 받아야 될 이유는 없다라는 거죠.”

-공동체에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공동체는 굉장히 문제가 많이 있거든요. 지역사회 정신보건 사업에서도 핵심 사업이 뭐냐면 ‘리컨스트럭션 오브 커뮤니티(Reconstruction of community)’에요. 커뮤니티를 재구축하자라고 하는 건데요. 자본주의가 인간 중심의 사회라기보다는 능력 위주로 가는 사회기 때문에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가 만들어져야죠. 그러니까 인클루전(inclusion·통합)이죠. 다 수용하는 체계로 공동체가 만들어져야지 능력 없는 사람은 제외되는 거, 그건 산업혁명 이후의 시설이잖아요. 그런 사고체계가 문제이기 때문에 건강한 공동체, 모든 인간과 생명체, 더 나아가서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수용하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게 필요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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