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 정신질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망합니다
[우리 이야기] 정신질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망합니다
  • 임형빈 기자
  • 승인 2019.01.17 2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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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가게 물려받아 가장 역할하며 조현병 치유
신앙을 통한 나눔과 낮아짐으로 정신장애 이겨내
우리 이야기 (c) 마인드포스트
우리 이야기 (c) 마인드포스트

추위가 절정으로 치솟고 있는 요즘, 미세먼지 한파의 영향으로 여유로웠던 사람들의 마음이 처마 밑의 고드름처럼 세밀해졌다. 연말에 광풍처럼 몰아쳤던 정신질환자의 범죄의 여파는 당사자들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새해에는 아무 사고 없이 우리의 꿈을 이루어 나가길 기원했던 그들은 가족이나 이웃들에게 고개를 바로 들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에겐 잘못이 없다. 매체들이 정신질환자에게 족쇄를 채우자고 떠들지만 다수의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은 새해의 소망을 품고 꿈을 위해 노력하고자 결의한다.

비록 지금은 소수의 당사자들이지만 그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소망을 이루어 나가는지 들어보는 것도 그들과의 소통의 시작일 것이다.

소소하지만 작은 시작으로 행복

당사자 김윤형(25) 씨는 조현병을 앓은 지 7년째다. 한참 꿈이 많던 고등학교에 정신질환이란 병을 맞이하게 됐다. 그냥 친구들과의 작은 오해로 벌어진 일이겠지 생각했는데 친한 친구의 고자질로 담임선생에게 심한 체벌을 받은 후 순간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시간이 해결해주겠지하며 넘겼다.

그때부터 친구들과의 관계에 오해와 불신이 연속적으로 생기고 편안했던 학교 생활이 지옥이 되어 급기야 환청까지 들려왔다. 병원에선 1년 휴학을 권하고 꾸준한 약물치료로 완치될 수 있다고 진단했지만 어린 나이에 “내가 왜 정신질환이냐?”며 반항하다 병의 체증에 허덕이게 됐다.

그 후 휴학을 하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지만 간간히 터지는 병의 질환은 그를 괴롭게 했다. 그렇게 수년을 보내다 할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병이 많이 순화되었다.

“할머니와 병약한 어머니, 여동생과 사는데 어머닌 항상 누워 계시고 할머니께서 저의 뒷바라지를 다 해주셨습니다. 작은 과일가게를 하는 할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장사를 준비하시고 여동생과 저의 밥상을 차려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할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이 제 병을 조금씩 낫게 만들었고 집에서 할머니와 깊이 대화할 때마다 할머니의 인생 여정의 힘이 가족들에게 있다고 느꼈습니다. 지금은 저도 새벽에 일어나 할머니 가게에서 일손을 돕는데 할머니의 눈가에 맺힌 작은 눈물방울에 감동을 느껴 장손으로서 내가 가게를 책임져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할머니는 조용히 웃기만 하십니다.”

윤형 씨는 그동안의 자기 태만을 반성하며 새벽과일 장사를 준비한다. 새벽에 농장에 직접 가 신선한 과일을 실어 가게로 온다. 그런데 할머니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어 걱정이 많아졌다. 그는 할머니를 집에 쉬시게 하고 홀로 나와 장사를 하게 됐다.

처음엔 조현병을 가진 당사자로 긴장이 되고 겁도 났으나 지금껏 지켜준 할머니에게 효도하는 시간이라 생각해 용기를 얻어 과일가게 문을 연다.

“할머니의 세밀한 장사 수완은 항상 날 감탄시켰지만 지금은 아파서 쉬시고 계시니 내가 적극 나서게 된 것입니다. 가게가 워낙 작아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데 단점이 있지만 수십 년 동안 장사해 온 할머니의 손자로서 작지만 만족하고 즐겁게 일해 가장의 역할을 할 겁니다. 이렇게 일을 시작하면 아나요? 내가 한국에서 제일 큰 과일 체인점을 열게 될 줄요? 기대해 주세요.”

작은 믿음이 열정의 씨앗이 되어

우효광(38) 씨는 당사자이며 전도사이다. 그는 교회에서 항상 웃는 얼굴로 성도들을 맞이한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할렐루야 어서 오세요”라며 손을 내민다. 성도들은 그의 내민 손을 피하지 않고 마주 잡으며 주일인 일요일 아침 기쁘게 인사한다.

그는 교회엣 허드렛일부터 차량봉사까지 성도들의 편안한 믿음 생활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제일 힘든 것은 말씀 준비. 아직 영성있는 사역자가 되지못해 30분 설교를 위해 무려 4시간을 투자한다. 여러 권의 신앙 서적과 주석을 참고로 여기저기 성경의 말씀들을 참고한다.

땀 흘리며 노동하는 것처럼 그에겐 말씀 준비란 큰 고역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이 순간을 있게 해 준 하나님과 목사님, 가족을 위해 이 정도쯤이야 밭에 농사를 짓는 농부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완수한다.

효광 씨는 20대에 조현병에 걸렸다. 그때에도 신학을 공부했지만 사명감이 없어 출석 일수만 채우는 신학생이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늘 긴장의 순간을 맞이 했지만 넉살좋은 그의 성격으로 이겨냈다. 항상 자기 편이었던 어머니의 사랑이 위태로웠던 그의 이성의 끈을 지탱해 주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효광 씨는 어버지의 핍박이 더욱 심화되고 만족스럽지 못한 학교생활, 친구들과의 잦은 다툼이 전초가 되어 정신질환 진단을 받게 됐다. 처음에 잦은 분노감 때문에 감정 조절을 못 해 술을 마시게 됐고 불안정한 가정의 압박에 스트레스 질환이 심해져 병원에 몇 차례 입원하게 됐다.

이후 잦은 아버지와의 다툼에 집을 나오게 되고 서울로 상경해 직장생활을 하게 됐다. 그렇다고 정신질환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병이 더 심해져 서울에서 장기입원을 하게 됐고 그런 그는 수도 없이 자기를 자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날 병원에 심방 온 목사님 내외가 교회 성도로 보이는 환자 앞에 성경책을 두고 말씀하는 것이었습니다. ‘탕자의 회심’이라는 말씀은 저의 가슴에 작은 감동을 주어 그 목사님이 다시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방문하시면 환자의 옆 자리에 체면불구 끼어앉아 은혜를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그런 나를 측은히 여기셨던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교회 연락처를 가르쳐주며 언제든지 방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의 기분은 가슴이 방망이질하는 것 같았습니다.”

퇴원을 앞둔 효광 씨는 집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권고를 뒤로한 채 무작정 목사님의 교회부터 찾았다. 도봉구에 위치한 교회는 20명의 성도가 나오는 개척교회였다. 그는 그런 외관에 실망치 않고 영육간의 강권함을 위해 교회 문을 두드렸다. 목사님은 그를 친절히 맞이 해주었고 그에게 교회 다닐 것을 권했고 효광 씨는 기쁘게 응했다.

교회가 작아 봉고차가 있었지만 전문기사가 없었다. 그는 목사님에게 자기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쓰고 싶다고 말했고 그는 쾌히 승낙했다. 당사자인 효광 씨 첫인상에 신뢰가 간 목사님은 그를 봉고차 차량봉사자로 사역하게 한 것이다. 그는 교회 자투리방에 기거하며 새벽기도를 오는 성도들을 태워 교회로 데려다 주었다. 새벽 여명이 비치기까지의 기도시간은 그의 숨겨진 사명감을 일깨우게 됐고고 옛날에 배웠던 성경 지식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는 평신도로 교회 성경학교의 주일교사로 봉사하게 됐다. 그는 신학교에서 배웠던 모든 지식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아이들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도 만들어 성경학교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목사님은 사회자원봉사로 요양원 봉사를 하고 계셨는데 거기에 효광 씨를 동참케해 어르신들을 성심껏 섬기게 했다.

조용히 지켜보던 목사님은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전도사로 임명해 사역을 완성케 했다.

“정말 그때는 하늘로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전도사가 되다니요. 이게 꿈인가 싶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보여 자꾸 눈물만 났습니다. 저는 당사자지만 많이 노력을 할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꿈과 희망이 있다면 신께서 모른 체 안 한다는 것을 널리 알릴 것입니다. 지금도 성경공부를 하고 있지만 당사자로서 소망과 책임감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우린 사회의 소수자이지만 사회가 원할 때에는 대중의 주역으로 떠오른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효광 씨는 당사자로써 전도사의 사역을 하고 있는데 자부심을 나타내며 앞으로 맡겨진 사역을 위해 당당히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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