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없는 국가 ‘이탈리아’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하는가?
정신병원 없는 국가 ‘이탈리아’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하는가?
  • 송승연
  • 승인 2019.01.18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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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코 바자리아 (c) Franca and Franco Basaglia Foundation
프랑코 바자리아 (c) Franca and Franco Basaglia Foundation

커뮤니티케어와 이탈리아 모델

“1978년부터 첫 입원은 즉시 금지한다. 재입원은 1981년까지는 가능하다.”

이탈리아에서 1978년 제정된 정신보건개혁법 ‘법률180’의 첫 번째 조항의 내용이다. 법률180이 불혹의 시기를 맞이하는 동안, 이탈리아 정신건강시스템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우리가 이탈리아 모델에 대해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바라보든 간에, ‘프랑코 바자리아(Franco Basaglia)’와 ‘민주정신의학회(Democratic Psychiatry)’가 주도한 개혁과정은 정신의학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사건 중 하나이며, 1978년 이후 40년간 이탈리아가 구축한 지역사회정신건강시스템은 커뮤니티케어 구현과 관련되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사례 중 하나다.

이탈리아 모델이 대중의 주목을 끄는 이유는 정신병원의 ‘존재’가 필수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정신과병상수가 감소하면 강제입원과 자살률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 등이 있었지만, 이탈리아는 병상수가 급격히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제입원 또한 확연하게 줄어들었고(2015년 전체 입원 중 5% 미만), 자살률 또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1978년 10만명당 7.1명, 2012년 6.3명. Barbui et al., 2018).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우리는 여기서 이탈리아 정신보건개혁의 주요 목적을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목적은 정신병원 폐쇄가 아니었다. 바로 정신장애인도 다른 환자들,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시민’으로서 대우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Burti, 2016).

바자리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신병원 폐쇄는 환자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짜 문제를 더 나은 방향으로 돌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탈리아의 정신병원 폐쇄는 끝이 아니라, 개혁의 시작점이었다. 광기의 본질을 외면하고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직면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탈리아 정신보건개혁 40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이 독특한 경험을 살펴보는 것은, ‘커뮤니티케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작금에 최적의 시기일 수 있다.

정신병원을 대체한 지역사회정신건강시스템

이탈리아 정신보건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병원 중심의 시설화 정책을 대체할 수 있는 지역사회정신건강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1960년대 말 지역사회서비스 및 예산을 확충하지 않은 채 탈원화를 진행했고, 결국 퇴원한 정신장애인 대다수는 노숙인이 되거나, 영리시설에 집단으로 재수용됐다(Scull, 2017). 그러나 이탈리아에서는 법 성립 후부터 커뮤니티케어 체제를 서서히 정비하고 확충했다.

[그림 1] 베로나남부(South-Verona) 정신장애인 케어서비스 변화추이 (단위: 성인 1,000명 당 비율, 출처: Tansella et al., 2006)
[그림 1] 베로나남부(South-Verona) 정신장애인 케어서비스 변화추이
(단위: 성인 1,000명 당 비율, 출처: Tansella et al., 2006)

[그림 1]은 1979년부터 2003년까지 이탈리아 베로나 남부지역 정신건강서비스이용에 대한 종단 모니터링 결과를 보여준다. 정신병원 폐쇄로 인해 병원중심서비스가 지속적으로 감소하지만, 지역사회중심서비스(외래서비스, 주간서비스, 가정방문, 주거서비스 등)가 서서히 증가하면서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GHPW: 종합병원정신과병동에밀리아로마냐(Emilia‑Romagna)주 정신보건서비스 제공 추이(출처: Fioritti, 2010 재구성).
* GHPW: 종합병원정신과병동
[표1] 에밀리아로마냐(Emilia‑Romagna)주 정신보건서비스 제공 추이
(출처: Fioritti, 2010 재구성).

[표 1]은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주의 정신보건서비스자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 1978년 대부분의 자원은 정신병원에 할당되어 있지만, 1993년 비율이 반전됐고, 2008년에는 다양한 지역사회서비스로 자원이 확충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08년 정신과 병상 수는 제로가 되었고, 민간병원 병상수도 감소했다. 반면에 주거서비스, 특히 지원주택(Supported Housing, 개인의 욕구에 맞추어 개별적 지원을 제공하는 형태의 주거)의 경우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자원의 변화는 탈시설화 이후 ‘병원’을 대체할 수 있는 커뮤니티케어 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정신장애인의 치료와 관련된 서비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또한 지역사회 내에 구축하였으며 거점은 지역사회정신건강센터(CMHC)가 됐다. 특히 주목할 것은 위기상황 때 활용되는 응급병상(일종의 쉼터 개념)이 CMHC 내에 만들어 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이 응급병상을 ‘병원(hospital)’이 아니라 ‘환대(hospitality)’라고 지칭하며,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을 ‘환자(patient)’가 아니라 ‘손님(guests)’이라고 부른다(어떤 용어를 사용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 언어가 우리의 프레임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내 정신건강센터는 정신과의사(평균 4명), 임상심리사(평균 2명), 사회복지사(평균 2명), 간호사(평균 7.7명)로 구성돼 있어 지역사회에서 케어를 제공할 수 있다(Forti, 2014).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주의 경우 4개의 센터가 있으며, 각 센터마다 4~8명이 묵을 수 있는 공간(1인실, 2인실 등)이 있고, 평균 체류기간은 1.5일이라고 한다(内山繁樹·塚田尚子, 2015). 이러한 커뮤니티케어는 정신장애인이 위기상황에 놓여도 삶의 연속성이 단절되는 ‘시설화’로 향하지 않게 해준다. 가급적 집에 머무르거나, 아니면 단기적으로 CMHC 내 ‘환대’에 ‘손님’으로 머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정신장애인과 전문가는 동등한 권력관계에서 협상하고 의사결정을 함께함으로 당사자의 권리를 보장하며, 이는 일반적으로 강제입원보다는 자의입원으로 결과가 도출된다고 한다(Mezzina, 2016).

‘일’.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

이탈리아 지역사회정신건강시스템에서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회적 협동조합(Social cooperatives)’으로, 78년 이후 정신장애인 지역사회통합과 관련하여 이탈리아 전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표 2>는 사회적협동조합 변화 추이로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표 2] 이탈리아 사회적협동조합의 성장(출처: Mattioni & Tranquilli, 1998; Leff & Warner, 2006)
[표 2] 이탈리아 사회적협동조합의 성장(출처: Mattioni & Tranquilli, 1998; Leff & Warner, 2006)

사회적 협동조합은 일반적으로 지역사회에서 농업, 건축, 청소, 재봉, 호텔 운영, 레스토랑, 홈케이터링 등의 사업을 운영하는데, 여기서 정신장애인은 비장애인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고, 모든 조합원은 동등한 권리(투표권 등)를 가지게 된다. 이는 본질적으로 정신장애인 지역사회통합을 도모하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 협동조합을 통한 ‘일’은 정신장애인 자립 도모 뿐 아니라 가족 돌봄부담을 경감시키는 것에도 목적이 있으며, 지역사회 경제발전에도 효과적이었다(Davidson et al 2010). 이 과정에서 정책적, 제도적으로 보완이 이루어졌는데, 예를 들어 1991년 제정된 법률381(사회적협동조합법)은 사회적협동조합이 최소 30%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하도록 하여, 정신장애인 일자리를 보장했다. 그리고 지방정부는 많은 사업을 협동조합 시행 초기에 아웃소싱 함으로써 성장의 출발을 도왔다. 이러한 국가차원의 지원은 현재 많은 부분 사라졌고, 오히려 협동조합이 많은 이윤을 창출하여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 관계 회복을 위한 지역사회시스템

1978년 이후 개혁 초기(지역사회시스템이 완벽하게 구축되지 않은 시기) 가족들은 실제로 특히 주거서비스 부족과 관련하여 돌봄의 부담을 표출했다. 그러나 조금씩 지역사회서비스가 구축되면서 가족의 부담은 훨씬 감소됐고, 가족은 법률180의 폐지보다는 개혁의 완전한 이행을 지지했다(Magliano et al. 2002). 이는 가족과 당사자 개개인에게 책임을 두기보다, 구조에 초점을 맞춰야 함을 시사한다. 사적영역(가족)에 모든 돌봄과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할 수 있으며, 이는 당사자에게도, 그리고 가족에게도 깊은 상처를 재생산할 뿐이다.

이탈리아 모델은 공적영역(국가)에서 주거 등의 지역사회정신건강서비스 체계를 구축했고, 트리에스테의 경우 정신보건예산 중 94%가 지역사회에 투여되고 있다(Mezzina, 2011). 이 중 18%는 2005년 시행된 개인보건예산제(Personal Health Budgets)에 할당되고 있는데, 이는 당사자의 욕구를 반영하여 서비스에 대한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변화를 살펴보면, 보다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지원주택’으로 예산이 대거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났다(Ridente & Mezzina, 2016). 이는 당사자가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게 드러내 주는 사례다. 당사자의 욕구를 반영하는 것,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는 것은 주체적 시민으로 살아가게 만들면서, 동시에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에도 기여할 수 있다.

지역사회 중심의 시스템은 ‘병’이 아니라 ‘사람’에 초점을 두게 만든다

트리에스테 CMHC 직원은 ‘환자가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도 가급적 정신과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함께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장 유효한 치료법’이라고 말한다(内山繁樹·塚田尚子, 2015). 지역사회중심체계는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구축함으로써 정신장애인의 ‘병’보다 ‘삶’에 초점을 두게 만든다. 당사자의 강점과 긍정적인 부분에 주목함으로써 정신장애인을 한 ‘사람’으로 이해하고, 전문가도 동등한 한 ‘사람’으로 마주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탈리아 모델은 동시에 다양한 도전에도 직면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립정신병원이 모두 폐쇄되면서 전체적 병상 수는 크게 감소했지만, 민간병원 병상 수는 유지됐고(참고로 이탈리아 개혁 반대파는 국립정신병원이 폐쇄되면 환자가 민간영역으로 유입되는 ‘변형된 시설화’를 우려했지만, 예상과 달리 민간영역이 성장하지는 않았다), 현재 이탈리아 급성병동의 경우 민간이 54%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는 북부와 남부의 격차가 존재하는데, 급성병동의 경우 남부는 공공병상이 부족하고, 민간병상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북부에 비해 남부의 강제입원 비율이 약 2배 정도 높은 것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De Girolamo et al., 2007; 이 연구자들은 직원/환자 비율(공공 1.44명-5.17명, 민간 0.45명) 등이 이러한 현상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또한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인해 이탈리아 NHS 예산은 8년 연속 동결됐고, 이는 전체적으로 약 15% 예산이 감소된 것으로 추정된다(Fioritti, 2018).

그럼에도 우리는 이탈리아 모델의 철학과 가치를 깊게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 모델은 단순히 ‘정신병원 폐쇄’를 넘어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자리아는 정신병원에서 환자의 권리에 대한 의도적 침묵과 무시를 느꼈다고 한다. ‘자유가 치료다’라고 주장한 것은 정신장애인을 무능력한 존재로 간주하지 않은 것이다. 어디서 살지, 누구와 살지, 무엇을 먹을지, 무슨 일을 할지, 어떤 약물을 복용할지, 어떤 서비스를 이용할지 결정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 정신장애인의 낙인, 편견, 심지어 혐오까지 존재하는 현실이 버겁긴 하지만, 우리는 이탈리아 모델을 참고하여 자유가 치료, 권익옹호가 치료, 복지가 치료, 그리고 그 이상으로 상상력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 이탈리아 모델에 대한 보다 더 자세한 정보는 다음의 논문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이용표, & 송승연(2017), 이탈리아 정신보건개혁의 정책적 함의, 한국장애인복지학, 35: p. 209-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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