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연구] 커피 마시며 겨울 아침을 맞다
[당사자연구] 커피 마시며 겨울 아침을 맞다
  • 전민 기자
  • 승인 2019.01.27 21: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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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형식으로 쓴 당사자와 가족관계의 심리 분석

밤새 꿈을 꾸었다. 꿀 때는 생생한데 깨고 나면 기억이 없다. 깨는 순간 찰나의 기억만 남는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꿈의 세계는 눈을 뜨고 의식이 활동을 시작하는 순간, 자취를 감춰버린다. 무의식이 본능과 자유의 장이라면 이 인식의 세계는 억압과 제재로 만들어지는 불합리의 세계다. 이런 세계에서 무의식은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다.

나는 밤새 꾼 꿈을 애써 기억해보려 했지만 잘 기억나지 않았다. 꿈을 복기하는 것도 잠깐, 의식의 세계에서 어젯밤 보려다가 못 보고 잔 베트남-일본 전 축구경기 결과가 궁금해졌다. 머리맡의 스마트폰을 열고 검색해봤다. 결과는 베트남의 패배. 약간 실망감을 느끼며 포털 사이트 기사를 훑어본다. 도대체 내가 읽고 싶은 기사는 없다. 누굴 보라고 이런 광고를 해대는 걸까?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말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읽는 것은 선택이다. 관심이 있으면 읽을 것이고 없으면 지나칠 것이다. 포털 사이트를 보면 어떻게든 자기 글을 읽게 만들려고 번쩍이는 옷을 입고 잔뜩 화장을 한 연예인 무리가 떠오른다. 이렇게 글은 또 소비되고 버려진다. 무엇을 위해서?

자리에서 더 꾸물럭거리고 싶기도 했으나 이미 잠이 달아난 뒤다. 일어나서 자리를 갠다. 운동을 너무 과하게 해서 허리며 무릎이 좋지 않다. 체중을 줄이려면 운동보다 먹는 걸 줄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한다.

어머니가 주방에서 음식을 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짐짓 명랑한 척 장난을 걸어본다.

"야옹!"

그러나 엄마는 아무 말이 없다. 늘 그렇다. 무뚝뚝한 것도 아닌데 정다운 것도 아니다. 나는 재차 시도해본다.

"야옹!"

역시 엄마는 음식만 만들고 있다. 그렇다. 엄마는 삐친 것이다. 삐친 상대가 누구이겠는가? 아버지다. 엄마는 요즘 자기 남편에게 화가 잔뜩 나 있다. 그 역폭풍을 내가 대신 맞고 있는 것이다.

"밥 먹어라."

엄마의 말 한마디가 왠지 기분이 나쁘다. 역시 언제나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밥 먹으라는 말투가 말이다. 뭔가 화가 났는데 그 기분 나쁜 것이 밥 먹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밥을 먹고 싶어지지가 않는다. 늘 이런 식이다.

밥을 말없이 먹는다. 엄마는 자기 기분이 좋지 않으면 먼저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말을 걸어도 잘 대답하지 않는다. 그냥 침묵으로 무시해버린다. 자기 기분이 좋지 않으니 건들지 말라는 뜻이다. 어린아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상대는 내 엄마다. 엄마가 이렇게 어린애처럼 구는 것은 정말 맘에 들지 않는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담배를 한 대 피러 나간다. 밖에 나가니 생각보다 날씨가 춥지 않다. 아침 햇살이 아파트단지 여기저기로 들어서고 있다. 한 여자아이가 호랑이 옷을 입고 뛰어간다. 연극이라도 하는 것일까? 문득 우리 조카가 저런 옷을 입으면 참 귀엽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카가 보고 싶다. 어릴 때는 아빠라고 부를 정도로 날 따라다니던 녀석이 어느새 컸다고 또래들하고만 논다. 아이들이 단지에 많아졌다.

젊은 엄마들이 서로를 부르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어린이 집 차량들이 왔다갔다한다. 단지에 어린애들이 많이 뛰놀았으면 좋겠다. 노인네들만 있는 단지는 왠지 우울해보이고 텅 빈 것 같다. 죽어가는 생명체 같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소리지르는 동네는 그 자체로 활기가 살아난다. 사람이 사는 것 같다.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가 설거지를 하고 있다. 나는 또 짐짓 명랑한 척 장난을 건다.

"설거지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역시나 아무 말이 없다. 결국 나는 취조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왜 또 골이 났는지 말이다. 왜 아들에게 그 화를 대신 내고 있느냐는 말이다.

결론은 역시나 아버지. 아침에 나간 아버지가 또 뭔가 듣기 싫은 말을 엄마한테 하고 간 모양이다. 아버지는 엄마 맘을 모른다. 같은 남자가 봐도 정말 바보같다 싶을 정도로 여자 마음을 이해할 줄을 모른다. 철없는 십대 소년같은 아버지다. 아직도 철들려면 멀었다. 여전히 어린애에 불과한 아버지를 엄마는 여전히 믿고 사랑한다. 둘이 잘 맞는 한쌍이다.

나는 엄마한테 그 말이 하고 싶다. 엄마가 이렇게 자기감정을 드러내고 있으면, 쉽게 말해 골을 부리고 있으면 그게 나한테 향하는 감정이 되어버린다. 실제로 나는 나 때문에 화가 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이건 내가 죄의식이 있어서 그렇고 그런게 아니다. 그냥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든다. 아버지 때문에 화가 났는데 엄마는 그 화를 간직하고 있으면서(containing) 그대로 만만한 사람에게 투사한다(projecting). 그게 나한테 오는 것이다.

사실은 엄마가 다른 사람한테 화가 났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만만한 아들에게 그 감정을 쏟고 있는 것이다. 이 부당함을 엄마한테 말해서 이해시키고 싶다. 그러나 엄마는 들을 마음이 아니다. 엄마는 늘 나의 진실한 소리에 귀를 닫아왔다. 책임은 엄마한테 있다. 그리고 이런 놀음에 더 이상 나는 참여하고 싶지 않다. 아무래도 따로 사는 게 답인 것 같다.

엄마는 내가 '야옹'거리는 것이 아직도 어린애 짓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어린애 짓을 건강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엄마는 그 어린애 감정을(골부리는 것) 억압하면서 자기를 괴롭히고 아들도 괴롭히고 있다. 이건 엄연한 사실이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숙한 어린아이인 아버지가 그 감정을 이해할리가 없다. 도리어 아버지는 엄마한테 대접받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니까.

내가 대접받고 싶으면 그만큼 남을 대우해줘야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말로는 잘 알지만 사실은 자기가 하는 행동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한 엄마는 그 감정을 골부리는 것으로 대신하고 그 답답한 감정을 내가 대신해서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병리적인 가족관계를 더 이상 이어나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는 떠나야겠다.

커피물을 받아서 끓이고 믹스를 잔에 타고 물을 붓는다. 스푼으로 저어준다. 내 책상으로 와서 컴퓨터를 켠다. 커피를 마시며 아까 오전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성시경의 노래를 플레이시킨다. 오늘은 성시경이 내 플레이 리스트에 올라올 모양인가 보다. 겨울아침의 긴 햇살이 창밖에서부터 방안으로 들어온다. 나름 괜찮은 아침이다. 밖은 춥고 안은 따뜻하다. 성시경의 발라드가 얼어붙은 내 마음을 녹여준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겨울아침을 맞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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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제수민 2019-01-28 01:36:23
난 짜증내지 않았나 화내지 않았나 분노하지 않았나 반성해봅니다. 아침 일상을 참 잘 쓰셨네요. 나도 오래전 가정이 있을 땐 님처럼 그리 지냈는데. 20년전 깨져 버렸네요. 알콜릭 우울 자기애적 인격장애를 그땐 모르고 내가 가정을 폭파 ㅠ
가족을 떠나겠다는 거 반대야요. 식구니까 화낼수 있죠. 좁은 인간관계 은토리이기에 더 할퀴고 아웅다웅할 수 있죠. 긴병을 같이 해온 부모님, 그 증상을 글로 승화하는 전민님이 부럽습니다.

가까이 있는 분께 잘해야 되겠다 내가 다짐해보는 새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