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문강 “부모와 가족이 힘을 쏟은 만큼 치료의 결과는 반드시 나타납니다”
윤문강 “부모와 가족이 힘을 쏟은 만큼 치료의 결과는 반드시 나타납니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1.31 01: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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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문강 심지회 아버지모임 대표 인터뷰
사회적 편견은 우리 스스로 만들고 있어
당당하게 모임 만들고 편견 해소 캠페인도 벌여야
숨지만 말고 단체 만들어 정부에 요구해야
조현병은 가족 협력 없이는 치유되지 못해
구더기 있다고 장독을 깨버리는 오류 범해선 안돼
정신건강복지법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좋아질 것
조현병은 부모 잘못도 당사자 잘못도 아닌 질병 인식해야
가족이 잘 케어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 있을 것
정신장애인 단체에 정부가 예산 지원해야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아들은 중학교 때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고 그림만 그렸다. 인문계 진학보다는 전문대학이라도 가서 기술을 배우면 배곯지 않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영등포공고 디자인과로 아이를 보냈다. 아이가 발병한 건 자신의 욕심 때문이었을까.

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발병했다. 공고가 가지는 특수한 선후배 관계에서 오는 폭력적 스트레스, 선생에게 당한 폭력 등이 아이의 병을 만들어버린 거라 그는 생각했다.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부산상고를 나온 그는 30년 동안 은행에서 일했다. 지방으로 내려가 근무하던 그때, 아들은 첫 발병해 병원에 입원했다. 경찰이 부모 동의 하에 아이를 정신병원에 보낸 것이다. 그는 부모로서 죄책감을 느꼈다. 괜히 공고로 아이를 보내 이런 병을 만들어버렸다는 죄의식. 그리고 왜 하필 이런 운명을 자기가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다행히 아들은 급성기를 넘기고 바로 퇴원했다. 그래서 그 상태가 그대로 유지될 줄 알고 약도 끊어버렸다.

재발은 그렇게 찾아왔다. 이후 그는 은행을 퇴직하고 아들의 치유에 모든 것을 걸었다. 최선을 다해 케어한다면 아들은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도 가졌다. 그리고 실제 그 노력 이후 아이는 회복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은 서울의 사회적기업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월급도 190만 원이나 타면서 말이다.

돈만 쓰고 잠만 자고 맥없이 살던 아이가 회복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고 돈을 벌어오는 데 좋아하지 않을 부모가 있겠는가. 그는 마흔이 넘은 아들이 결혼까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욕망은 참기로 했다. 결혼 후 이혼을 할 수도 있고 그럼 아이에게 더 큰 마음의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들은 직장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고 더 큰 병이 재발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냥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행복하고 감사하게 살면 된다는 걸 그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현재 그는 조현병과 정신장애를 가진 자식을 둔 부모 모임인 ‘심지회’에서 아버지모임 대표로 일하고 있다. 자신의 치료 과정과 케어 과정을 부모들과 정보를 나누고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윤문강(76) 선생을 만난 것은 날이 온화하게 풀린 30일 오후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윤문강 심지회 아버지모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윤문강 심지회 아버지모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아들이 발병 당시 어떤 행동을 했던가요.

“아들이 중학교 때 공부는 안 하고 매일 만화만 그리고 있더라고요. 공부에는 취미가 없는 거 같아서 영등포공고 디자인과에 넣었어요. 그림을 좋아하니까 공고라도 보내서 취직이라도 쉽게 하자. 제가 실수를 했다 할까, 잘못 판단했다 할까 싶어요. 그 실업학교가 인문계 학교보다 군기가 센가 봐요. 선배들이 때리고 왕따시키고 하니까 우리 애가 희생자가 된 것 같아요.

졸업반 때 졸업 작품 만든다고 며칠 합숙하고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봐요. 그땐 선생이 때려도 폭력으로 인정도 안 했거든요. 거기서 갑자기 발병해서 얘가 남의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도망갔어요. 절도죄로 걸린 거죠. 경찰서 잡혀가서 보니까 분열증이 생긴 거예요.”

-아들의 병을 인지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습니까.

“그 전에도 약간 증세가 있었겠죠. 우리는 그런 데 상식이 없었고 또 우리 집안에 그런 정신병력을 가진 사람도 아무도 없어요. 집사람이 큰 교회 전도사이기 때문에 밤낮으로 바쁘거든요. 그래서 관심을 못 가지다가 아들이 스트레스가 폭발했나 봐요. 경찰이 (오토바이 절도죄로) 구속시키려는데 딱 보니 정신분열증이에요. 병원으로 바로 입원시켰죠.”

-아들이 조현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심정이 어땠습니까.

“제가 휴가를 내서 병원에 가보니까 강제로 철장 같은 곳에 가둬놨더라고요. 보니까 막 끄집어 내 달라고 그러고, 나가면 잘 하겠다 그러고. 다시는 그런 짓 안한다고 그러는데. 정신분열증이 이런 거구나 그때 실감이 됐죠. 의사가 퇴원시킬 때까지는 어쩔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냥 그대로 (뒀어요).

나는 지방에 근무하고 있으니까 아내에게 맡겼는데 급성이라서 그런지 빨리 좋아지는 게 참 신기하더라고요. 딱 2주 만에. 재발만 안 했으면 그걸로 완쾌됐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6개월 만에 재발했거든요. 이건 약을 먹으면 낫는 병이 아니더라고요. 약 먹으면 잠만 자고. 주변 회원들 얘기 들어보면 똑같아요. 자고 먹고 동물처럼 사는 게.

그래서 은행을 그만둬야겠다 생각했어요. 아내한테 맡겨놨다가는 안 될 것 같고. 평생 은행에 있었기 때문에 돈도 있고 그만 두면 시간도 충분히 있었으니까요. 애가 그림을 좋아하니까 그림학원, 만화학원, 또 재활학원을 보냈죠. 한 군데만 해서는 하루 일과가 안 되니까요. 최소한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올 수 있는 걸 찾으려고 엄청 뛰어다녔어요. 장애인 디자인학교가 있어서 거길 보냈는데 친구도 사귀고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일단 애가 학교 같은 데 가서 하루 종일 있다 오니까 가족들은 일단 편하잖아요.”

-조현병임을 처음 알게 됐을 때 심정이 어땠습니까.

“저는 두 가지죠. 내가 그때 공고를 안 보냈으면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죄책감. 그리고 왜 하필 우리 애한테 이런 병이 생겼나. 가족 병력을 보니 처갓집에 친척이 그런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뭐 운명이다.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자 했죠.

재활도 하고 학교도 보내고. 폴리텍이라는 기술대학에도 보내고 만화학원에도 보내고. 아이가 하고자 하는 건 내가 다 보내줬어요. 돈이 문제가 아니니까. 그런데 마음이 아픈 건 가정이 어렵고 한부모 밑에 있는 아이는 그렇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럴 때 국가가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하는데.”

-미신으로 치료하려 한 적이 있었습니까.

“전 기독교 신자라 미신을 믿지 않는데 사실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가면 아무리 신앙이 좋다 해도 뭐든지 해 보고 싶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점쟁이를 찾아간다든지 굿을 하고 하는 건 아니지만요. 경기도 파주에 어느 목사님이 병을 잘 고친다고 해서 그분 교회를 찾았어요. 파주에 일주일에 세 번씩 갔죠. 거기 갔다왔다하면 하루가 걸려요. 거기 3년 정도 매달렸어요.

애가 만화 수집광이에요. 방이 가득할 정도로. 제가 몰래 몰래 버렸거든요. 그런데 그걸 알고 만화책 찾아내라는 거예요. 이미 쓰레기장에 버렸는데. 그러니까 며칠간 밥도 안 먹고 학교도 안 가고. 제가 진짜 힘들었어요. 그래서 그 만화책을 찾아온 적이 있어요. 인부들 시켜서 쓰레기장 다 뒤졌어요. 그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그건 진짜 밤에 칼로 덤빌 때보다 훨씬 힘들어요. 전혀 대화가 안 되더라고요.”

-아들은 몇 번 입원했습니까.

“두 번이죠. 한 번 입원하고 육 개월 뒤에 또 한 번.”

-둘 다 강제입원이었습니까.

“물론이죠. 힘들었어요. 그때는 119나 소방서에 요청해도 병원에 얘기하라 그래요. 그리고 병원에 갈려니까 동네사람들이 다 알아버리고 들통이 나버렸죠. 강제입원하는 것도 그렇게 힘들더라고요.”

-어떻게 강제입원했습니까.

“통제가 안 되니까 입원 안 하고는 어떻게 할 수가 없죠.”

-아드님 치료 과정에서 스스로 잘못한 부분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일까요.

“저는 애가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다 해 주겠다 했죠. 돈도 많이 들어갔는데 특별히 후회되는 건 없어요. 공고를 내가 보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은 있어요. 항상 미안하죠. 그건 진짜 미안합니다.”

-아들은 지금 뭐하고 있습니까.

“지금 정립전자라고 광진구에 있는데 한 직원이 백 명 정도 되는 곳이에요. 서울시 사회적기업인데 장애인만 근무하는 게 아니고 일반 비장애인도 근무해요. 여의도에 정신장애인협회 찾아갔더니 (그 회사에) 추천을 해 주더라고요. 그런데 다섯 명 추천하는데 우리 애는 여섯 번째 추천을 해 주더라고. 다섯 명 합격에 후보는 대기자로 놔두는 거죠. 조현병 환자들은 일을 오래 못 한대요. (협회에서) 기다려라, 그러면 넣어줄 테니까. 그래서 나중에 들어갔어요.”

(c)마인드포스트
윤문강 심지회 아버지모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이 어떤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까.

“애가 나이가 마흔 넘어 가니까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사는 걸 봤으면 제일 좋겠는데 그걸 고민하고 있어요. 다른 욕심은 없어요. 왜냐하면 그 회사가 정년까지는 보장해주거든요. 그런데 장애인법에 의해서 취직한 사람은 월급이 최저임금 수준 이상은 안 올라가더라고요. 승진도 안 시켜주고. 임금도 190만 원으로 제한되더라고요.

지금 9년차거든요. 그게 얼마나 억울합니까. 만약에 다른 회사에서 한 9년 다녔으면 월급도 올랐을 테고 계장이나 대리쯤 됐을 텐데요. 그런데 이거는 장애인이라는 특별 케이스로 들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장애인협회 물어보니까 그쪽에서 그래요. 그거는 법을 바꿔야 된다고.”

-자식이 정신질환을 가지면 가족들은 죄책감을 가지거나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조언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저는 그런 경험을 한 번도 안 해 봤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다 하면 하늘도 감동해서 일이 잘 이루어진다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신념으로 (살아왔어요).

이게 다른 병하고 달라서 부모가 50살 정도 됐을 때 발병하는데 부모는 금방 육십 살 되고 칠십 살 돼버리거든요. 체력적으로 떨어지고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안 되잖아요. 전 경제적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별 고민을 안 해 봤어요. 부모들이 수입도 없고 돈은 자꾸 들어가고 하면 얼마나 절망이 될까. 그렇다고 큰 바위 같은 앞에서 탄식만 하고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 애처럼 취직을 해가지고 한 달에 190만 원 벌어오고 하는 건 사실 쉽지는 않거든요. 그렇더라도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오지 않겠나.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열심히 하다가 포기하고 엄마한테 알아서 하라고 그러는 경우가 있잖아요. 부부간에 힘을 합쳐야 되는데 어느 한쪽이 미뤄버리면 안 되죠. 의사 선생이 그러더라고요. 부모와 가족이 힘을 쏟은 만큼 결과는 반드시 나타난다고요.”

-아들의 정신병원으로 인해 선생님이 깨달은 게 있습니까.

“하나님에 나한테 시련을 통해 그런 걸 준비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이게 없었더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겼겠죠. 예를 들어 이혼을 했을 수도 있고. 이혼을 하면 더 불행해질 수도 있는 건데. 아내와 다투기도 했지만 우리가 아들을 위해서 더 이상 싸워서는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옛날에 당신이 그때 아이를 공고에 안 넣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그거 백날 얘기해 봤자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받아들여야죠. 지금은 좋은 대학 나와도 실업자가 되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 아이는 직장생활도 하고 친구도 만나지 않나. 그래서 우리가 어느 정도 타협을 했어요. 이건 최악은 아니고 최선도 아니지만 중간쯤 가는 거 아니냐. 그러니 이 정도로 우리가 살고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해요.”

-사회가 보여주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적 시선을 느낄 때가 있습니까.

“우리가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스스로 위축돼서 자꾸 숨기잖아요. 그게 가장 슬픈 일이잖아요. 친척간 대소사 있으면 애를 데리고 가지도 않고 투명인간 취급하잖아요. 우리가 전과자도 아니고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우리 애들 책임도 아니고 이건 병인데 그걸 가지고 우리 스스로 위축돼 버려요.

그거는 비합리적인 사고다. 우리가 숨긴다고 해서 남이 도와주는 건 아니죠. 비정신장애인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인데 우리는 비장애인의 세계에 갖다 놓고 비교를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편견을 우리 스스로 만든 거예요. 당당하게 모임도 많이 만들고 캠페인도 하고 그래야죠. 그렇게 싸워야지 이건 숨어서 해결이 안 되거든요.”

-심지회는 2003년 만들어졌습니다.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겁니까.

“(처음 만들어질 때) 저는 없었어요. 지금의 회장이 10년 전에 만들었어요. 그 분 딸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고 나중에 조현병으로 중복장애를 가졌는데 그 분이 젊었을 때부터 아이 장애 재활에 올인했더라고요. 그 분이 어머니들 모아가지고 자조모임으로 한 것이 시작이죠.”

-그 분이 회장입니까.

“네 지금도 회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습니까.

“저도 한 6~7년 전에 우연히 그런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듣고 참여했죠.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데 거기 가서 발표도 하고요. 그래서 참가하고 하는 차제에 작년에 엔지오(NGO) 서울시 민간단체로 등록도 했더라고요 심지회가.

그런데 이사들끼리 의견 충돌이 있어서 해산하게 됐어요. 회비도 잘 안 들어오고. 그래서 그만 두고 그냥 옛날처럼 어머니들 몇 명 모여가지고 하자 그런 합의를 했어요. 그래서 을지로에 있는 심지회 사무실에 일주일마다 상담을 나갔는데 가 보니까 이게 파산하게 돼 있었어요.

그래서 아버지들 몇 분 연락해서 어머니들이 십 년 동안 했고 서울시 등록까지 했다. 이걸 그만 둬버리면 10년 한 게 허사가 되니까 우리가 좀 도와서 살리자. 그래서 몇 분 힘을 모아서 지난해 12월에 총회를 했어요. 그래서 이사를 남자 반, 여자 반으로 하고요. 회장은 이 분이 일 년만 더 하기고 했죠. 이 분 다음에 아버지가 회장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공금도 내면서 살렸어요.”

-심지회는 어떻게 운영됩니까. 국가 지원을 받습니까.

“엔지오 비영리단체로 등록하니까 서울시에서 사업계획서를 내래요. 사업계획서를 내면 예산을 배정해 주겠다고. 사업계획서 1천500만 원 신청했어요. 우리가 회비를 받아서 운영하지만 사업은 사업대로 지원을 받고 서울시 감사도 받고 그렇게 해야죠.”

-예산은 아직 못 따신 거죠.

“네. 3월 16일에 예산 확정해준대요.”

-심지회가 정신장애인 권리와 관련해 정치집회나 시위를 한 적은 있습니까.

“10년 동안 많이 했더라고요. 정신건강복지법 재작년 통과할 때 국회 앞에서 시위하고 서명운동 하고. 단독으로는 못하고 여러 장애인 단체하고 합쳐서 했어요. 시위하는 데는 우리 회비 모아서 했어요.”

-심지회 회원들은 가족과 함께하는 교육 프로그램 ‘패밀리 강사’로 등록돼 있다고 하더군요. 회원이 되려면 그 강사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합니까.

“전부는 아니고 일부만요. 그건 직접 심지회와 관련된 건 아니고 개별적으로 자기가 자격증 따가지고 활동을 하고 있는 거죠.”

-선생님도 패밀리강사입니까.

“저는 패밀리강사 강의는 수강은 했는데 강사는 등록을 안 했어요.”

-심지회 카페에 들어가보니 회원수가 97명이더군요. 예상 외로 적었습니다.

“그 전에 심지회가 500명이나 되는 회원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운영하던 부회장이 나가버렸어요. 그 부회장 개인 카페를 우리가 빌려서 심지회 모임을 했거던요. 소유는 부회장 거죠. 그런데 갈등이 생기니까 부회장이 탈퇴해 버린 거예요. 그 회원들 다 가져가버리니까 카페가 없어져 버린 거죠. 그래서 부랴부랴 새로 하나를 만들었어요. 아직 회원이 97명 수준이에요. 몇 달 안 됐어요.”

-심지회에 참여하려면 어떤 자격이 필요합니까.

“자격은 없습니다. 정회원이 있고 특별관리 회원이 있거든요. 회비를 내면 정회원이 되고 가족 중에 환우가 있어야 회원이 됩니다. 일반 사람들은 특별회원이나 후원자로는 되는데 정회원은 안 되죠. 그렇게 돼 있습니다.”

(c)마인드포스트
윤문강 심지회 아버지모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심지회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뭡니까.

“우리 정관에도 나와 있습니다마는 우리가 우리 권리를 찾지 못하는 건 우리 가족들의 책임이라는 거죠. 단체를 통해서 정부에 건의도 해야 하는데 우리가 자꾸 숨잖아요. 또 가족들이 조현병에 무지해서 치료도 못 받는 사람들도 많아요. 조현병 환자가 20만 명 된다는데 실제 등록한 사람은 10만 명도 안 돼요. 이렇게 무지하고 애들 치료도 제대로 못하니까 이 문제를 드러내 놓고 정부에 요구해서 우리 권리를 찾자는 거죠.”

-정신장애인을 둔 부모나 가족들이 정신장애인 권리 옹호를 위한 시위나 정치적 집회를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다른 장애인하고 우리 조현병 가족들하고는 너무나 구조적으로 다른 면이 있어요. 정신장애인은 사회 활동을 못하는 장애인이잖아요. 그러면 가족들이 해야죠. 다른 장애인들은 자기가 직접 하잖아요. 발달장애는 부모들이 젊기 때문에 힘이 있고. 우리는 부모가 나이 들어서 애들이 발병해서 본인도 못하고 부모도 나이가 많아서 못하잖아요. 이러니까 다른 데하고 힘의 차이가 나는 거죠. 그래서 단결이 안 되더라고요.”

-임세원 교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가족으로서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지난해 12월 31일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의사가 내담온 환자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편집자 주)

“우리가 가족으로서도 그분과 유가족들한테 정말 미안하고 사죄해야죠. 그런데 그 환자가 치료를 정상적으로 받은 사람이라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데 1년 동안 병원에 나타나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나 가지고 (범행을) 했기 때문에 가족 책임이 100% 있다고 보거든요. 가족도 사정이 있겠지만 우리가 애들을 제대로 간호 안 하면 언제라도 이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거죠. 그게 끔찍하더라고요.

저도 그렇고 가족 안에서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거든요. 나도 우리 애가 식칼을 들고 왔다든지 그런 경험이 있는데 그 환자도 가족들한테 그런 끔찍한 행동을 했을 거예요. 그게 밖으로 튀어나온 거죠. 의사가 그러더라고요. 조현병은 의사가 책임을 질 수가 없습니다. 가족이 50~70%의 책임이 있다고. 가족이 협조를 안 하면 하버드 의과대학 나온 사람이라도 안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 외래치료명령제와 퇴원 시 보건소와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인적 사항을 통지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처음 들어보네요.”

-입원 결정 유무를 법원 판사가 하도록 하자는 법안도 발의됐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도 발의한 거는 한 번도 조사를 안 해 봤고 우리가 교육도 한 번도 안 해봤거든요. 그건 교육을 해야죠.”

-우리나라 정신보건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그저께 정신의학자 어빙 고프만의 ‘수용소’라는 책을 읽었어요. 시설에 강제로 구금돼 있는 사람들에 관한 책인데 거기 보면 미국이 의료적으로 잘 돼 있다 해도 이건 한국하고는 너무나 똑같더라고. 정신병원에서 인간의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의사들이 마음대로 통제하는 게 우리나라와 똑같지 않나 생각해요. 정신병원에 가더라도 빨리 기한을 단축해서 나와야죠. 그리고 자타해의 위험성이 없는 사람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건 범죄행위라는 거죠. 그 책에서 그렇게 써놨더라고요.

우리한테 주는 경각심은 우리 부모들도 힘드니까 아이를 병원에 집어넣어버리는 걸 반복해요. 오죽해서 병원에 넣겠습니까마는 정신병원에서 인격이 아닌 물건으로 다뤄진다는 건 미국 환자들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 애들의 얘기예요. 언제 우리 애들에게 닥칠지 모르는 일이다 생각하니 잠이 안 오더라고요.”

-정신병원을 다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정신병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구조적으로 바꿔야죠. 뭐가 잘못됐으니 싹 없애버리고 하는 건 아니죠. 우리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독을 깨버리는 것과 똑같잖아요. 독을 깨버리면 간장이 없고 우리가 음식을 못 해먹잖아요. 구더기 한 마리 나왔어요. 그러면 독을 부셔버려요. 그럼 어떻게 반찬을 만들어요. 똑같은 거예요. 잘못된 것은 바꿔서 계승을 해야지 이건 아주 극단주의, 공산주의 아니면 민주주의. 그 중간은 없다 그거잖아요. 사회민주주의도 있는데.”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이후 강제입원이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어떤 입장이십니까.

“의사 두 사람의 사인을 받아 와라, 본인의 정신이 황폐하지 않는 이상 본인의 동의를 받으라 하죠. 그런데 동의를 해줄 환자가 별로 없겠죠. 아무리 제도를 잘 만들어도 악용할 수 있는 거고 제도가 그렇더라도 사람이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좋아질 수 있죠. 우리는 너무 이거 아니면 저거다라는 사고를 하니까 사회적으로 시끄럽고 문제가 잘 안 풀리잖아요.

정신병은 병 중에서도 특이한 병인데 이걸 병이라 하기도 그렇고 장애라 하기도 그렇고 참 애매한데 이런 거는 가족들의 컨센선스(합의)가 이뤄져야죠. 단지 공무원, 정신과 의사, 인권 운동가 몇 명 모여서 이렇게 합시다 한다고 해서 그게 제대로 될까요.”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와서 살려면 어떤 정책적 노력들이 필요합니까.

“우리가 시스템은 있더라고요. 그룹홈도 있고 단계별로 돼 있는데 그런 단계를 제대로 거쳐서 정상적인 직장까지 연결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거든요. 대부분 건너 뛰어가지고 집에 와 있으면 이게 또 나빠져서 또 폭발해 버리고. 법적으로 과정을 잘 밟도록 해서 취직할 때도 가산점도 주고 해야죠. 병원에 있는 아이를 갑자기 집에 데려다 놓으면 사고 칠 가능성이 많거든요.

체계적이고 단계적으로 해야지 직장에 가더라도 오래 버틸 수 있는데 갑자기 퇴원해 가지고 직장에 넣어도 적응 못 해요. 우리 정신과 애들은 (직장에서) 1년을 버티는 경우가 10% 밖에 안 돼요. 직장에서 버티지 못하고 자꾸 나가버리는 거예요. 다리 하나 없고 팔 없는 사람들은 열심히 잘 하는데 왜 똑같은 장애인인데 너희들은 제대로 일도 못하고 하냐는 거죠.”

(c)마인드포스트
윤문강 심지회 아버지모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초발 정신장애인을 둔 가족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습니까.

“항상 얘기하는 거지만 이것이 우리 잘못은 절대 아니고 또 애들 잘못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참 운이 나빠서 그랬다 할까요. 그렇게 생긴 병인데 가족들이 잘 간호하고 잘 참고 이렇게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타나요. 물론 확률은 떨어지지만요.

그러나 10%라 하더라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0% 안에 넣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상태가 좋아도 내가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관리를 제대로 안 하면 10% 안에 못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10% 안에 넣을 수 있는 거는 보호자와 가족들의 책임이 있다고 봐요. 우리가 재산을 많이 물려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죠.

나는 그런 얘기를 해요. 엄마 아빠가 맞벌이를 하다가 한 사람이 그만두면 수입이 반으로 줄어들겠지만 애를 살리는 게 더 중요한 거라고요. 사실 생활비 적게 쓰고 자동차 탈 거 전철타고 버스 타도 다니고 해도 애를 살리는 게 중요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부모들은 애하고 같이 영원히 가지 않잖아요. 그러면 일을 포기하고 아이를 살리는 게 더 중요한 거지 맞벌이한다고 애를 제대로 간호하지 않으면 돈은 좀 모일지 모르지만 애의 장래는 놓치는 거잖아요. 난 그렇게 항상 얘기해요.”

-아들을 돌보면서 어떨 때 행복하던가요.

“글쎄 요새 월급날 되게 빨리 오더라고요(웃음). 애는 월급날이 되게 느리게 온다고 생각하겠지만요.”

-통장을 아버지께서 관리하십니까.

“아니 엄마한테. 맨날 돈만 쓰던 놈이 돈을 벌어오니까 기분 안 좋은 부모가 없겠죠. 그러니까 얘도 철이 들었는지 엄마가 저렇게 좋아하니까 내가 좀 힘들지만 보람이 있다는 거죠. 지난 20년 동안 돈도 쓰고 망신도 많이 당했지만 그래도 내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즐거움이 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반드시 우리가 한 만큼 돌아와요. 만약에 그게 안 오더라도 그렇게 함으로써 부모가 후회는 안 하거든요. 난 그래서 제가 한 지난 일들을 후회 안 해요.

그런데 사람이 욕심이 있어요. 애가 담배를 피우니까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다. 나도 담배 끊으려고 클리닉에 가서 해 봤는데 부작용이 오는 거예요. 의사가 그래요. 의지가 강한 사람도 담배를 못 끊는데 그거까지 애한테 요구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라고요. 그래서 나도 담배 끊는 걸 포기해버렸거든요. 포기할 건 포기하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면 되지 않나 생각하죠.

아들이 결혼을 하면 좋겠지만 결혼은 책임감이 따르잖아요. 결혼할 수는 있지만 이혼도 할 수 있잖아요. 이혼은 더 큰 상처가 오거든요. 그리고 환자이기 때문에 상처가 크고 더 병이 나빠지면 직장도 못 다닐 수 있잖아요. 그걸 생각하니까 그냥 결혼도 좋지만 하루하루 건강하게 사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닌가. 그래서 결론을 내렸어요.”

-정부가 정신장애인과 가족들에게 무엇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정부에 우리 애들 책임지라 그렇게 할 수는 없고요. 정신병원 퇴원했을 때 필요한 정책들을 정부가 강제규정으로 해서 실행하면 애가 재활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겠나 생각해요. 심지회라든가 이런 단체에 지원을 해 주면 부모가 나서서 잘 할 수 있겠죠. 부모들이 제일 잘 알 거 아니에요. 공무원은 근무 시간에는 하겠지만 근무 끝나면 잊어버리거든요. 우리는 24시간 할 수 있죠. 그러니까 그런 단체에 정부가 지원을 해야 된다 생각하죠.”

-정신장애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평생 짊어지고 가는 병이 많잖아요. 고혈압이라든지 당뇨라든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에 자기가 컨트롤할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환자가 컨트롤을 못하기 때문에 의지적으로 못할 때가 많잖아요. 그래서 환자가 됐잖아요. 그거는 대체 누가 해 줘야 될 거 아니에요. 안 해주면 더 망가지니까.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보호자이고 가족인데 가족이 소홀이 하면 우리 애들이 정말 기댈 데가 없잖아요. 아무리 정부가 좋은 시설과 호텔에서 살게 해 줘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자기 힘으로 돈을 벌고 돈 번 거를 쓸 줄도 알고. 그렇게 만드는 게 가족들한테 달려 있어요. 가족이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어요.

결혼을 했는데 다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결혼이라는 게 운명적인 만남이기 때문에 내가 이게 싫다고 포기할 수 없는 거고요. 그래서 힘들더라도 끝까지 이 병을 짊어지고 가는 데까지 가는 거야. 그 길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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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제수민 2019-01-31 04:42:07
아들보다 하루 더 살기를 원하는 아버지 어머니. 그들이 심지회이다. 재산을 상속해주려 해도 금치산이라 상속도 못한다. 긴병에 지쳐가는 노부모들 속 까맣게 타들어간다. 윤회장은 그속에서도 서명을 주도하고 노익장을 다하신다.
참아버지로 일하시는 분도 있으니 우리 조현인도 자기관리 약물치료 일자리갖기로 일어나자.
오래된 단체일수록 기득권에 흔들릴 위험이 많다. 자기개혁 혁신으로 늘 새롭게 조현정책에 발빠르게 대처하고 분열보다는 통합, 연대의 통일 대오를 가져야한다. 조현 팀은 연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