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원법 특집] 다시 J씨에게...우리가 이깁니다
[임세원법 특집] 다시 J씨에게...우리가 이깁니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2.10 2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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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포스트는 십 년 후 더 성숙해질 것
임세원법은 존엄의 훼손…발의안들 통과 막아야
정신장애인운동은 본질상 인간해방적 운동
정신장애인 타자화하는 법적·제도적 이데올로기에 저항

J씨에게

여여(如如)하신지요

지난 설날은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저는 어머니 병환이 깊으셔서 병원에 계신 관계로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영화를 한 편 보았고 나머지 시간은 서점을 들렀고 뜻없이 거리를 걸어다녔습니다.

그리고 집에서는 오래 묵혀둔 시작(詩作)들을 하나씩 정리했습니다. 간추리다 보니 어떤 시는 20년 전에 쓴 것도 있더군요. 20년이라니.

제 나이 서른 중반 때 누군가 제게 말하더군요. 십 년이라는 세월은 금방 가버리는 거라고요. 김수영 시인이 그랬지요. 십 년이란 시간은 한 사람의 슬픔을 잊게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요. 그 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J씨

<마인드포스트>가 창간된 지 이제 7개월에 접어들었습니다. 아주 긴 시간을 뛰어온 같은데 이제 겨우 7개월밖에 되지 않았더군요. 문득 시간의 현기증을 느끼게 됩니다. 그 시간 동안 <마인드포스트>는 언론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 왔습니다. 일부 언론 매체들은 자신들의 정신장애인 편견 보도 관행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혀오기도 했습니다. 문득 그런 ‘성과’들을 내면서 한편으로는 <마인드포스트>가 가지는 사회적 책임에 대해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척박했던 정신장애인들의 인권은 이제 사회적 의제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31일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가 내담자인 정신장애인의 흉기에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와 정신장애인 운동계 관계자들은 임 교수의 빈소에 조화를 놓고 왔습니다.

그때 빈소에서 만난 정신과 의사분들은 오히려 정신장애인인 우리를 위로했습니다. 이렇게 화해할 수도 있는 것이구나. 정신과 의사와 정신장애인은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이고 서로의 약한 고리를 믿음으로 지지해주는 상호적 관계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정신과 의사들과 적대적일 이유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응급 상황에서 우리를 진료할 분들은 바로 그들이니까요. 우리는 다만 우리를 옥죄고 있는 차별적 법률들과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원이 가진 폭력적 본질에 대해 거부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폭력성의 근본 고리를 해체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권리와 존엄을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J씨

임세원 교수 피습 사건 이후 정치권과 의료계는 정신장애인들의 삶의 의미를 교란하는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신과 진료실에 비상벨과 비상대피로를 국가 비용으로 설치하는 것을 비롯해 외래치료명령제와 사법입원 채택 등 무려 33가지의 개정법안들을 정치권에서 발의했습니다. 미디어 또한 이 상황에 가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모든 법적 집행의 강화는 근본적으로 정신장애인은 위험한 존재라는 부정적 인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정신장애인이 어떤 욕구와 욕망을 갖고 있는지, 저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법적 장치를 강화하기보다 정신장애인의 모임과 정신장애인 권리옹호의 부분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두고 예산을 강화해야 하는 것에는 외면하고 있는 것이지요.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원에 투자하는 막대한 예산을 정신건강복지센터의 활동과 위상 강화, 정신장애인 자조모임에 지원한다면, 그래서 정신장애인이 법적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 필요성에 의해서 강가에 가서 물을 마실 수 있게 할 수는 없는 걸까요. 그런 주체적인 치유가 아닌 억지로 목에 줄을 매단 채 물가로 끌고 가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왜 우리는 이런 본질적 질문을 외면한 채 오로지 정치적 강제와 법적 강화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J씨

다시 시인 김수영은 “우리의 적(敵)은 늠름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왜 늠름하지 않을까요. 그 늠름하지 않음은 ‘잔꾀’에 능하다는 것이고 우리로 하여금 적의 실체성을 흐리게 만들어버려 투쟁의 동력을 잃어버리게 하는 단면은 아닐까요. 김수영 시인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의 싸움을 이토록 힘겹게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적이 당당했으면 합니다. 법과 정치적 강제 뒤에 숨어 자신들의 이득을 가져가기보다 정치적 공론의 장에서 함께 토론하고 그 적됨의 명징성을 통해 화해의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요. 늠름하지 않고 숨어 있다면 우리의 싸움도 그만큼 힘겨워질 건 당연할 것입니다.

이 같은 현재의 정세에서 정신장애인 단체들이 하나씩 모여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번 일명 ‘임세원법’이 정치권에서 강화되면서 정신장애인의 인권과 정치적 권리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힘을 모으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과정에 <마인드포스트>도 함께 하려고 합니다. 오랫동안 길들여지는 데 익숙했던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의 역사적 투쟁을 옹호하는 것입니다.

적은 당당하지 않습니다. 적은 필연적으로 정치적·법적 둘레에 숨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싸움을 힘들게 만들어도 반드시 맞서야할 실체라면 우리는 더 크게 목소리를 높이겠습니다.

J씨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요. 이제 시작이지요. 너무 긴 시간 우리는 억압당해 왔고 법적 강제에 짓눌려 왔습니다. 다시 우리가 타자화되어버리는 현상은 막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곧 왜곡된 강제성이 강화된 ‘임세원 법’을 막는 데서 출발할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법의 발의와 통과만을 막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 안에는 인간의 존엄이 훼손되는 모든 사회정치문화적 억압을 없애는 정치적 투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미셸 푸코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미쳤다고 주장하는 세계를 향해 우리가 정치투쟁을 벌일 수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프랑스에서의 68혁명과 반정신의학운동의 동력은 약화됐지만 그 혁명과 운동의 방향성은 이제 우리가 잡고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에서의 정신장애인 운동은 반정신의학과 68혁명의 의미를 포괄하고 있으며, 정치적 운동과 주류 사회문화적 담론의 해체를 동시적으로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투쟁의 과정이 곧 정신장애인의 정치적 해방운동이며 그 해방이 온전하게 완성될 때 우리를 규정했던 정신과 이데올로기와 법적 제도적 장치들 역시 동시적으로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J씨

오랜 기간, 긴 싸움이 있을 겁니다. <마인드포스트>는 그 투쟁의 역사를 기록해 나가겠습니다. 모든 정신장애인은 해방돼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해방을 영속적으로 담보하는 정치적 법적 제도적 장치들은 근본적으로 그 폭력성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를 타자화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거부. 정신장애인운동은 그 사상적 기반에서 출발한다고 감히 말해야겠습니다.

김수영 시인이 말한 ‘그 십 년’이 흐른 뒤 정신장애인의 정치적 세력화는 얼마나 진행돼 있을까요. 낙관적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이 싸움은 우리가 이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갓 7개월에 접어든 <마인드포스트>도 그 기간 성숙해져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여여(如如)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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