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55 Steps' "정신과약물치료의 권리에 대한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외침"
[리뷰] 영화 '55 Steps' "정신과약물치료의 권리에 대한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외침"
  • 송승연
  • 승인 2019.02.11 21:0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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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약물에 대한 도그마에 돌을 던지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비판과 증명이 허용되지 않는 교리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는 이를 ‘도그마’라고 부른다. 그리고 정신장애인에게 정신과약물이란 존재는 일종의 도그마로 작용한다. 자신의 신체, 건강, 일상생활 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의 선택권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자기결정권은 이 성역에서 자연스럽게 배제가 된다. 당신은 그냥 닥치고 주는 대로 먹으면 되는 것이다. 이 절대적인 도그마를 어기는 자는 ‘이단’이 될 수밖에 없다.

55 steps
55 steps

이 도그마에 다소 무모할 수 있는 도전을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1985년 샌프란시스코 세인트메리정신병원에 입원 중이었던 ‘엘레노어 리즈’다. 헬레나 본헴 카터(엘레노어 리즈 역), 힐러리 스웽크(콜레트 휴즈 역)가 출연한 영화 '55 Steps'는 매우 특별한 주제인 정신장애인의 '권익옹호', 특히 강제적 정신과약물복용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권리(혹은 약물치료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권리, 고지된 동의에 대한 권리)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 영화는 1987년 캘리포니아에서 실제로 일어난 판결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엘레노어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로 이 판결을 이끌어하는 주요 인물로, 콜레트는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변호사로 등장한다. 55 steps는 흥미로운 법정드라마이면서, 두 인물의 관계에 초점을 둔 버디무비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쉽사리 주목하지 못했던 강제입원 후 환자가 겪게 되는 또 다른 억압인 강제적 약물치료와 관련된 ‘자기결정권, 절차적 권리’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신장애인 권리에 대한 당사자 목소리의 중요성

수십 년 동안, 다양한 소수자 집단은 존중과 권리를 위해 투쟁해왔다. 어떤 집단들은 상징적, 문화적 보상을 성공적으로 달성했고, 어떤 집단들은 덜 성공적이었다. 특히 북미와 유럽을 비롯해, 이제는 한국에서도 성소수자의 권리가 확대된 것은 일반적으로 성공사례로 인용된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정신장애인은 존중과 권리, 정체성에 관한 담론에서 등장하지 않고 있으며, 광기와 관련된 언어는 여전히 의료 패러다임이 지배적이며, 당사자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있다.

“날 여기(정신병원) 가둘 때, 그들에게 말했어요. 저는 여기 있고 싶지 않아요. 그는 괜찮을거라고 말했어요.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았어요. (중략)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과 그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죠.” 엘레노어가 자신을 도와주러 온 변호사 콜레트를 만났을 때 처음 하는 말이다. 이처럼 자신의 언어가 지속적으로 부정당하는 현실에 굴하지 않고, 엘레노어는 자신이 복용하고 있는 정신과약물에 대해 철저하게 기록했다. 약물을 복용한 시간, 복용한 용량, 그리고 약물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 등에 대해서 오랫동안 적어왔다. 엘레노어는 자신이 꾸준히, 그리고 꼼꼼히 기록한 노트 수십 권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 약들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하는지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어. 그래. 내가 틀렸다고 말해봐.” 영화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단지 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엘레노어의 외침을 묵살하는 것이 당연한가? 그녀의 주장이 틀렸다고 우리는 과연 단언할 수 있을까?

정신과약물은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부정적인 측면 또한 공존하고 있다. 영화 55 Steps에서 이는 정신과약물이 신체적 손상에 미치는 부작용으로 묘사된다. 엘레노어는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자신의 허락 없이, 언제나 자신의 동의도 없이 항정신병약물이 투여되었다고 증언하며, 이로 인해 자신의 시야가 흐릿해지고, 발 두 쪽 모두 부어올라 걷는 것도 어렵게 만들었다는 신체적 손상을 지적한다. 이와 더불어 영화에서는 투여와 관련된 디테일한 부분도 짚어주는데, 예를 들어 알약뿐만 아니라 주사로 투여가 이루어지는 부분이다. 엘레노어는 강제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저항할 생각조차 못한다고 자조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약을 삼키지 않으면 주사바늘로 위협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녀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만약 내가 강제로 누군가를 내팽개치고, 팬티를 벗기고, 주사바늘을 꽂아 넣었다면 난 감옥에 갔을 거야.”

그리고 이러한 부작용(신체적 손상)으로 인해 발생되는 2차적 가해 현상도 언급되는데, 예를 들어 약물로 인해 발이 부어서 걷기 어려워지면 병원 직원들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화를 냈고, 약물로 인해 손 떨림, 경련이 일어나면 이는 지금보다 ‘더 미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아이러니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일종의 의원성(iatrogenic, 의료행위에 원인이 있는) 손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지속적으로 약물을 복용하지 않으면 더 많은 발작이 일어나는 상황이 나오는데, 이 또한 의원성이다. 질환 때문이 아니라, 병이 원인이 아니라, 약물로 인한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계속해서 약물을 먹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온 것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참혹한 장면은 카테터(catheter, 체내에 삽입하여 소변 등을 뽑아내는 도관)를 삽입하지 않고서는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는 엘레노어의 모습이 나올 때이다. 콜레트가 의료기록을 검토한 결과 심지어 멜라릴(Mellaril)이 엘레노어의 뇌와 방광에 손상을 줄 수 있음을 병원에서는 인지하였지만, 그녀의 방광이 이미 너무 많이 손상되었다는 근거로 약물이 투여된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콜레트는 ‘화학적 강간(chemical rape)’이라고 표현한다. 환자의 손목이나 발목을 끈 또는 가죽 등으로 고정시키면서 신체운동을 제한하는 행위를 신체적 강박(physical restraint)이라 지칭하며, 화학적 약물의 주입으로 환자의 행동을 제한하는 행위를 화학적 강박(Chemical restraint, 예를 들어 약물로 환자를 멍하게 만들기도 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현상)이라 부른다. 여기에 더 나아가 콜레트는 엘레노어 리즈에게 약을 투여할 때 사용한 강제력, 그리고 약물이 그녀의 신체(예컨대 자궁 등)에 끼친 영향 등을 근거로 강간의 한 형태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화학적 강간’. 너무나 충격적이고 무서운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두려움을 뚫고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 고문 및 기타 잔혹한, 비인간적, 굴욕적 처우 또는 처벌에 관한 UN 특별 보고관(Méndez, 2013)은 UN CRPD를 통해 강박, 격리, 강제적 약물복용과 같은 관례적 정신과적 관행은 ‘고문’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관례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그런 것인지 우리는 다시 한 번 숙고할 필요가 있다.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우리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강제성’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병’에 대한 ‘치료’는 선택이며,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사람들은 폐암에 걸렸을 때 혹은 매우 아픈 경우에도 ‘치료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죽음을 의미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큰 수술을 받기로 결정할 때, 동의서에 서명해야 한다. 독감 예방 접종을 요청할 때조차도, 우리는 동의서에 서명해야 한다. 그러나 오직 정신병원에서만 결정은 항상 타자의 선택이다. 그리고 만약 환자가 거부한다면, 전문가의 선택을 강제하기 위해 폭력이 사용된다. 그리고 이는 영화에서 엘레노어 리즈의 사례를 통해 자세히 드러난다. 덧붙이자면, 강제가 정당화되는 기저에는 ‘병식의 결핍(lack of insight)’, ‘질병불각증(anosognosia)’와 같은 정신의학적 무적의 논리가 있다. 쉽게 말해, 강제적 치료에 저항하고, 환자가 싸우려고 하는 것은 그의 질환의 ‘징후’를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다른 글을 통해 자세히 논하도록 하겠다.

그렇다면 선택의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영화에서는 1심부터 주대법원까지 가는 3심까지의 치열한 법적 공방을 통해 이를 고찰한다. 첫 번째 쟁점은 정신과약물 부작용에 관한 것으로, 정신병원 측에서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비자의적 단기입원 환자의 경우 치료 기간이 3일에서 17일 정도로 짧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엘레노어 측은 수많은 단기입원을 경험하며, 반복적으로 이러한 약물에 노출되는 엘레노어와 같은 환자들은 ‘누적효과’를 가지게 되며, 결국 얼마나 오랫동안 복용했는지 알기가 힘들어지고, 그래서 가장 최소용량으로 복용한다고 해도, 엘레노어 리즈와 같은 환자를 벼락 끝으로 몰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엘레노어가 당시 복용하던 약물의 주 부작용인 지연성 운동장애의 경우 정신장애인 유병률이 최대 50%이며, 안면뒤틀림, 호흡 문제, 그리고 입 밖으로 혀를 늘어뜨리게 하기 때문에 혀를 깨물지 않기 위해 치아를 발치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의 권리, 동의의 문제는 중요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정신장애인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약물치료에 대해 의사와 대화를 나눌 권리가 있으며, 약물의 선택에 대한 권리가 필요하며, 이는 거부가 아니라, ‘거부할 수 있는 권리’에 관한 것이라 강조한다. 그리고 이 권리에는 ‘협의’가 들어가 있고, 협의에는 의사와 환자 간 ‘소통’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의사와 환자의 소통이 증가되는 ‘협력적 의사결정’ 과정을 형성하는 것이며, 이는 영화에서 정신장애인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의사에게는 의사의 업무를 맡기는 것, 즉, 정신과약물치료 시 있을 수 있는 위험과 이득에 대해 설명하는 것. 그리고 권리가 있는 환자에게 선택이라는 환자의 업무를 맡기는 것으로 설명된다.

자발적 치료 참여와 치료적 관계

영화 55 Steps는 정신과약물치료와 관련되어 당사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속 한 전문가는 의사와 환자가 함께 치료를 진행할 때 ‘치료적 관계’가 확실히 개선되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한다. 예를 들어 환자가 퇴원 한 후, 주치의를 신뢰하는 경우에만 정신과약물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병원 바로 밖에 쓰레기통이 있는데, 환자들이 퇴원하면서 나가는 길에 약을 버리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저는 그런 일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강제로 약물치료든, 혹은 어떤 행위를 강제로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부정적 결과가 도출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세인트메리정신병원 측이 정신과약물을 입원과 동시에 즉각적으로 투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신과약물의 즉각적인 투여가 진단을 방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즉 ‘부작용’이 ‘정신증적 증상’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약물치료에 대해 전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발적 치료 참여를 통한 긍정적 치료적 관계 형성은 “의사들이 ‘치유자’로서 그들의 진정한 역할을 더 잘 수행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권리의 평등이 필요하다

인권변호사로 나오는 콜레트와 정신장애인 당사자인 엘레노어의 연대의 과정은 진정한 소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영화에서 뒤늦게 밝혀지지만 콜레트 또한 소수자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아메리칸 인디언(원주민) 정체성이다. 이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 개념과 연결이 된다. 교차성은 블랙 페미니즘에서부터 비롯된 개념으로, 페미니즘이 젠더억압(남성 대 여성)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여성 집단을 살펴보니 인종 억압(백인 대 흑인)이 존재하고 있었다. 흑인여성들은 성차별과 더불어 인종차별이 추가되는 이중 억압에 시달린다고 본 것이다. 교차성은 모든 사회적 현상을 이분화 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을 지향한다. 콜레트와 엘레노어를 보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성과 광기’,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 등의 이분법적 구도에서는 연대가 쉽사리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콜레트가 원주민으로서 겪었던 억압과 차별의 경험이, 엘레노어가 정신장애인으로서 경험한 억압과 차별과 교차되면서, 연대의 끈이 형성된 것을 보여준다.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능력이나 체력의 차이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평등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리히텐베르그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곧 능력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권리의 평등이 더욱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지혜와 힘이 불평등한데 거기다 권리마저 불평등하다면,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받는 폭압은 더욱 커져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젠더, 장애, 섹슈얼리티, 인종, 민족, 빈곤, 계급,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비이성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광기의 문제. 이는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특히 정신병원에 입원되는 정신장애인과 같이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권리의 평등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그리고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 권리의 평등을 실현하는 것 그 자체가 ‘치유’일 수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인 '55걸음'은 엘레노어와 콜레트가 자기결정권에 관한 판결에 참여하기 위해 처음 법정에 올라가는 계단의 걸음 수를 의미한다. 그들이 개척한 길,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걸어갈 길.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진정한 권리의 쟁취를 향한 한 걸음을 이 영화는 단호하게 보여주고 있다.

 

송승연 정신건강사회복지사 (c)마인드포스트
송승연

 

송승연 활동가는...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박사수료. 정신건강사회복지사로 현장에 있었으며,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비당사자 활동가로 근무함. 현재는 정신장애인 권익옹호 관련 연구 및 강의 등을 하고 있습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주체적 운동세력으로 확장되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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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2019-02-13 11:53:10
아니면 유투브 동영상 번역이라도..... 부탁! 드립니다 ^^-♡

권혜경 2019-02-13 11:48:40
이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되었나요?

인랑제수민 2019-02-13 03:14:42
좋은글에 감사합니다. 약물선택도 존중되야 하며 의사도 선택하고 병원도 내맘대로 결정하고 입퇴원도 내결정에 맡겨주는 치유의 천국이 되었으면 한다. 응급입원만 있고, 다른 모든 절차는 당사자와 절차보조인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해주자.
결정권갖고 평등누리며, 건강권 주거권 노동권 정보접근권 여가생활문화권 등 사람답게 살권리를 누리면 조현당사자도 치유재기한다.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할 때 몸마음이 빛나며 이웃 대인관계도 좋아진다. 내가하는 일이 보람되고 남에게 혜택주는 자부심은 자존을 넘어 기쁨으로 빛난다.
약물이 중요하다 인정하지만 그 속에 부작용 또한 인정해야 한다. 당사자들은 자기몸의 부작용 합병증을 누구보다 잘안다. 말하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이 원망스러울 뿐이며 위축된 삶을 살수밖에 없다.자유가치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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