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신병상 과도하게 많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선진국도 한때 압도적 병상수 가져…지역사회 케어 변화 계기돼
‘임세원법’은 입원 과정의 절차상 복잡성을 줄인 게 특징
적시에 치료받아서 건강해질 권리 강조돼야
가족의 인권적 측면 그간 배제당해 와
정신장애인의 고(高)자살률 선진국과 비슷…병의 속성 때문
우리나의 정신병원이 과도하게 많은 것은 아니며 자살률 또한 선진국인 핀란드에 비교해 비슷한 수준이어서 치료의 잘못이라고 몰아붙일 수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유제춘 을지의과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글을 올렸다.
유 교수에 따르면 선진국 정신병상수는 인구 1천 명 당 0.5~1병상이고 우리나라는 인구 1천 명 당 1.8병상이다. 우리나라가 꽤 높은 편이고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유 교수는 그러나 “미국의 경우 1950년대 주립정신병원들의 병상이 60만 개까지 증가했고 최근 13만 정도까지 줄었다는 보고가 있다”며 “서구 선진국들도 대략 인구 1천 명 당 3병상 정도까지 증가했던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의미로 “병상이 늘어나면서 정신질환을 앓던 사람들을 방치하지 않고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치료하면서 만성화되고 황폐화되는 환자가 적어졌다”며 “이것은 병상이 줄어들면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지역사회에서 관리를 받게 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병상이 많아지면서 국가와 지역사회가 이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됐고 국가적 대책으로 자원을 마련하게 됐다는 게 유 교수의 지적이다. 따라서 그는 “과도하게 많은 병상은 분명 문제가 많은 것이었지만 그로 인한 변화의 시발점도 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아직 병원으로도, 지역사회 정신보건 서비스로도 연결되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는 환자들이 무시 못 할 만큼 많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우리나라의 정신병원이 그렇게 과도하게 많은가. 쉽게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과 관련해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 만들기가 이 법 개정안의 핵심적 부분으로 추정한다”며 “법 조항들을 살펴보면 입원 과정의 절차상 복잡성을 줄인 게 큰 부분이고 기존 법으로 입원하지 않았을 환자를 입원시키도록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사회 정신보건 서비스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고 복지적 측면이 추가되지 않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며 “법으로만 규정되기 어렵고 사회적 공감대를 토대로 제도와 정책이 달라져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번에는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또 “법 개정안은 ‘적시에 잘 치료받아서 건강해질 권리’를 강조한 것으로 전체를 다룬 게 아니라 한 부분을 강조해 다룬 측면이 있다”며 “일방적으로 강화됐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법 개정에 반대하는 측면도 있다. 이해가 되는 부분”이라고 적었다.
그는 정신장애인과 같이 살아야 하는 가족들의 인권의 문제도 제기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가족 인권이 다른 나라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우리나라의 가족 연대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족이 환자를 독립적 존재로 받아들이지 못해 처음에는 발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병으로 인한 부담이 커져도 놓지 못한다”며 “반면 환자들도 독립적 존재로 서기보다는 가족을 지원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의존하기도 하고 가족의 일방적 결정으로 입원 등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받게 된다”고 분석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가족의 인권적 측면은 그간 소홀히 다뤄져 왔다. 가족은 환자를 일방적으로 부양해야 하는 부담을 벗어나지 못하고 증상적인 측면에서 가족에 대한 피해망상이 심해 가족을 위협하고 공격하는 환자에 맞서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결국 그저 약이나 잘 먹고 증상이 좀 나아지기를 바랄 뿐 극심한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유 교수는 “지역사회 정신보건서비스도 제대로 제공되지 못해 왔던 상황에서 가족은 악화된 환자를 입원시키는 것밖에는 달리 보호받을 길이 없었다”며 “유병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족은 환자에 대한 마음을 접고 포기 혹은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환자는 완전히 버려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
그러면서 “이런 차원에서 법 개정안에 보호의무자 개념을 없애기로 한 것은 필요했던 일”이라며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경우에 입원 절차가 용이해지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또 “증상이 심해지지 않도록 지역사회 정신보건 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되도록 하는 것이 동시에 시행돼야 할 것”이라며 “성인이 된 이후에는 가족으로부터 독립해 스스로 살아가도록 가족 문화도 달라져야 한다”고 적었다.
비자발적 입원에 의한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장애인의 사망률이 비정신장애인에 비해 유독 높은 부분에 대해서도 그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조현병 환자들이 발병 이후 커다란 장애를 갖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의 잘못된 입원 치료의 환경과 강압적 치료 방법 때문일까, 아니면 병이 갖는 본질적 특성에 의한 부분이 더 큰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입원 치료 환경이 달라져야 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문제는 조현병의 본질적 심각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라며 “조현병 환자들이 심각한 삶의 어려움에 직면하는데 이것을 치료의 잘못으로만 한다면 (그것이) 공정한 것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정신의료 선진국인 핀란드의 경우 조현병 진단을 받은 환자의 퇴원 후 1년 내 자살률은 일반 인구의 60배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조현병 환자 자살률과 일반 인구의 자살률도 핀란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결론은 조현병은 심각한 질병이고 병에 걸린 사람과 가정의 삶에 극복하기 힘든 부담을 주는 질병”이라며 “이런 사실은 전세계에 걸쳐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치료가 달라져야 하고 특히 장기입원이 과도하게 많다는 점에서는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당사자계는 의사들의 자기합리화 논리라며 반발했다.
권오용 한국정신장애연대 사무총장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인구가 있는 캘리포니아의 경우 8천 병상 수준이고 1인 평균 7일 미만 (입원)"이라며 "범죄인 외에 비자의입원은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또 정신장애인 당사자 A씨는 "당사자의 마음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의사들의 논리"라며 "유리한 것만 편집하는 기술자,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기술자들이 정신과의사를 하는 한 이 비극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