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운영 "응급입원은 치료라는 미명으로 짓밟는 행위...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
설운영 "응급입원은 치료라는 미명으로 짓밟는 행위...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2.20 0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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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운영 정신건강가족학교장 인터뷰
정신질환에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 가르쳐주는 곳 없어
정신질환에 대한 사적 교육 시스템 부재(不在)
국가정책이 오로지 약물에만 집중돼 있어
평생 약을 먹어야 되는 시스템으로만 가고 있어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다는 것도 알려주는 곳 없어
퇴원하면 갈 곳 없어…재활과정이 생략돼 있어
인격 존중해주고 평등하게 대우해주면 치료 효과 커
정신건강 소비자는 당사자와 가족…의사·전문가가 주인 행세
정신건강 정책·정신건강 의료 문제점 알아야 주장도 할 수 있어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지역사회 정신건강 서비스의 본부가 돼야
국가는 정신질환자 인격체 아닌 생물학적 질환자로만 규정
국가 예산이 의료모델과 치료입원으로 다 들어가는 틀 바꿔야
응급입원은 하위법이 헌법 질서 무너뜨리는 초헌법적 발상
치료라는 미명으로 정신질환자 정보 공개는 안 돼
난동 부리는 정신질환자 제압 합헌…장기구금은 기본권 침해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그는 34년간 경찰로 공직을 수행했다. 안산경찰서 상황팀장을 끝으로 공직을 벗어날 때까지 그는 누구보다 성실한 아버지였고 든든한 시민의 봉사자였다.

40대 중반일 무렵 중학교 3학년이던 큰애가 조현병 스펙트럼이 찾아왔다. 영문을 몰랐고 좀 있으면 나아지겠지 생각했다. 의사는 조현병이라고 했고 약을 먹이고 관리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이의 증상은 더 커졌다.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할 수 없다는 판단에 전남 영광의 대안학교에 아이를 입학시켰다. 그의 말대로 “겨우 졸업을 시켰다.” 대학은 포기했고 기술을 가르치면 좋지 않을까 해서 인천의 한 기술전문학교에 보냈다. 아이는 말이 없었고 주위에서 보기에도 이상한 행동을 했다. 원했던 자격증은 따지도 못했다.

그는 조현병이 대화가 되는 조현병이 있고 대화가 되지 않는 조현병이 있다고 했다. 아들은 대화가 되지 않는 조현병이었다. 무엇을 이야기해도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뭘 원하는지 말을 하면 부모로서 도와주겠다고 해도 아이는 침묵했다. 그 대화의 적극적 시도가 아이를 더 지치게 만든다는 걸 안 건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였다.

2016년 12월 경찰을 떠난 그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아이의 재활에 모든 것을 걸었다. 아이를 따라 정신건강복지센터를 다녔고 우리나라 정신건강 역사를 학습하고 정신재활의 시스템과 정책들을 공부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느낀 건 “참담함”이었다.

지역사회에 아무런 자원을 투자하지 않고 정신병원에만 국가 예산을 허비하고 있는 국가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가 느낀 건 하나였다. 정신보건 영역의 소비자이자 주인인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보건의료 정책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것. 그 무지가 요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철회하게 했고 국가는 이를 쉽게 무시하고 관행대로 정책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지난해 3월 수원 지역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이 참여하는 정신건강가족학교를 창립했다. 그는 현재 교장으로 있다. 무엇보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정신적 깨어있음”을 응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병과 재활과 사회적 회복 등을 주요 주제로 일주일에 한 번씩 강사를 모셔와 강의를 시작했다.

설운영(64) 정신건강가족학교 교장을 만난 건 아침에 눈이 내렸던 19일 수원의 한 조용한 카페에서였다.

설운영 정신건강가족학교 교장 (c)마인드포스트

-아드님은 몇 번 발병하고 몇 번 입원했습니까.

“입원은 한 번 했어요. 25살 정도에 증세가 심했어요. 증세가 완화가 됐고 여전히 약을 먹고 있는데 회복됐어요. 회복이라는 건 약으로 된 게 아니고 자기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고 이해해주는 아이 외삼촌 때문이었어요.”

-병이 있을 때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대응이라는 게 딱히 있는 게 아니고 그냥 알아가는 거죠. 조현병이 그래서 약을 먹어야 되는구나. 그런데 더 이상 배우지 못 한 거죠. 병원에서 얘기해주나요, 아니면 누가 얘기해줘요? 가족의 역할을 체계적으로 배워야 하는데 하나도 못 배웠어요. 지금도 현실은 마찬가지죠. 그래서 그냥 약을 먹이고 빨리 사회로 나갈 수 있게 좋은 걸 해 주는데 그게 애한테는 역으로 작용한 거죠. 듣기 싫은 거죠. 그러니까 역할이 안 되는 거죠.”

-아드님 케어(돌봄)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나요.

“우리나라는 정신질환에 대한 사전 교육 시스템이 없어요. 예를 들어 학교 때 정규과목에 학습 프로그램이 있고 이런 증상이 있을 때 어떻게 대처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데가 없다는 거죠. 또 하나는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접근하는 게 너무 약물에 의존한다는 거죠. 약으로 시작해서 약으로 끝난다는 거죠.

그럼 대안은 무용(無用)하냐. 아니거든요. 서구에서 약물 치료 시스템은 50~60년대 얘기예요. 회복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잖아요. 미술치료, 상담치료, 특화된 학습 프로그램 등이 개발돼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면 차단하고 무시하고 약만 주는 거죠. 그러면 약을 먹어서 사회적 회복이 될까요. 아니죠. 그렇다면 다 회복돼서 자기 역할을 해야죠.

90% 이상이 약을 수십 년째 먹고 있고 증상이 고착돼 있는 상태거든요. 평생 약을 먹어야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가고 있다는 거죠. 이건 회복이 아니죠. 영원히 정신질환을 가지고 가는 거예요. 이런 시스템이 문제예요.”

-아드님 케어하면서 특별히 조언을 받거나 도움을 받은 단체나 센터가 있습니까.

“없어요. 정신건강복지센터에도 4년 전부터 나갔는데 그때도 내가 경찰이니까 경찰병원 정신과 의사한테 그런 센터가 있다는 걸 우연히 듣고 가게 된 거에요. 몰랐어요. 센터 가면 우리 애보다 상태가 떨어진 애들이 많아서 적응이 힘들겠지만 거기 가서 프로그램도 받고 마음의 위안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간 거예요.”

-그 센터를 알게 된 게 4년 전이란 말입니까.

“네. 한 4년.”

-그럼 그 전의 10년은 전혀 모르고 계셨다는 겁니까.

“그렇죠. 그 전에는 정보를 누구도 제공을 안 해 주잖아요. 병원에서도 그런 얘기 안 해 줘요. 그나마 있는 건 정신건강복지센터밖에 없는데 그런 것에 전면적으로 정보가 차단된다는 거죠. 가족이 알아서 찾아보든가 말려면 말라는 거죠. 약만 지어주면 끝나는 거고. 병원의 입장은 다 그래요.”

-아드님의 조현병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을 거 같습니다.

“확실히 달라졌죠. 그 세계를 몰랐잖아요. 조현병이라는 질환과 질병을 둘러싼 국가 정책서비스, 또 정신보건의 실상에 대해 알게 된 거죠. 우리 애가 아니었으면 전혀 몰랐죠. 알 필요도 없고. 근데 자꾸 알아가니까 깊이가 생겨요. 점점 넓게 보여요. 파악이 어느 정도는 끝났는데 매우 실망스러웠고 참담했어요.”

-뭐가 그렇게 실망스러웠습니까.

“정신장애인은 타 장애 영역의 처우 개선이나 복지에 비해 현저하게 뒤떨어지고 돌봄에서 제외돼 있다는 거죠. 국가 시스템은 한 가지밖에 없어요. 그냥 병원 가서 약 먹고 의사하고 상담하면 사회생활할 수 있어. 국가는 그런 입장이에요. 병원 시스템으로 다 가는 거죠. 병원 시스템은 입원 시스템이에요. 상태가 안 좋으면 강제입원도 법적으로 만들어서 함부로 하고.

그러면 병원에서 퇴원했을 때 이 사람이 갈 데가 있냐 하면 답이 없어요. 복지센터가 있지만 그 기능을 못 하고 있죠. 우리나라에 240개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어요. 그런데 거기에는 정신질환 사례관리, 중증질환자 관리뿐만 아니라 아동 정신건강, 재난 관리, 알코올 관리 등 복합적인 업무를 다 집어넣고 있잖아요. 근무 인원도 몇 명 안 되고 사례관리도 집중할 수 없고 서비스도 제대로 못 해요. 프로그램만 진행하는 거죠.

그리고 갈 데가 없어요. 병원에서 나오면 재활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사회에 적응할 텐데 이 과정이 생략돼 버린 거죠. 약만 먹고 병원에 누워 있다가 사회로 나오면 전과자가 사회에 나와서 적응 안 되듯이 막막한 거죠. 올데갈데도 없고 집은 가난하고. 그러면 집에서 구박받고 쫓겨나죠. 안 그러면 병원으로 재입원하거나 길바닥에서 노숙을 하거나 범죄를 저질러서 감옥을 가든가 하겠죠. 참담하죠. 대한민국 현실이 병원만 집착하고 병원 의료모델만 고집을 한다는 거죠.”

-아드님은 평창에서 삼촌의 택배사업을 도우며 마당을 일구고 채소를 가꾸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습니까.

“작년 5월에 거기 갔으니.”

-아드님이 그런 생활 하는 게 치유라고 생각하십니까.

“회복의 일환으로 봐요. 약물에서 할 수 없는 게 뭐죠. 내가 의지를 갖는 거예요. 다시 나 자신을 찾고 목표를 세우고 내 결정권을 강화시키고 자기 통제력을 찾는 거죠. 이건 약으로 할 수 없어요. 우리 애의 경우 재활 기간이 아니라 자기 외삼촌을 좋아해서 (치유됐어요). 외삼촌이 우리 애가 인곤인데 ‘인곤아, 정신적으로 아픈 거 그럴 수도 있어. 괜찮아. 아무 것도 아냐. 누구든지 그래. 뭘 그걸 가지고 그래. 약 먹을 때 먹고. 사회생활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걱정 말아라’ 해요. 자기를 이해해주는 거예요.

일반 사람들은 어떻게 보죠. 가족까지도 심지어는 차별로 보고 있잖아요. 그런데 삼촌은 그렇지 않아요. 대등하게 대해주고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우스개도 하면서 하니까 그게 좋은 거야. 그러니까 잘 맞아. 삼촌 일을 따라다니면서 도와주고 배우고 사회생활도 배우고. 그게 좋은 거야.”

-아드님이 어떤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까.

“보통의 삶이죠. 그냥 보통 사회인으로써 평범한 삶이 회복이거든요. 그 이상 욕심내면 안 되죠.”

설운영 정신건강가족학교 교장 (c)마인드포스트

-수원시 정신건강치유센터는 여전히 주민들과 대립 중입니까.

“수원시장이 특별한 마인드가 있는 게 정신건강이에요. 정신건강에 대해 선도적으로 수원시가 모델을 하나 만들자. 정신건강 수도 수원이라고 캐치프레이즈가 있어요. 이건 처음이에요. 지금의 시설들이 열악하니까 이걸 통합해서 통합 치유센터를 하나 만들자. 단순히 알코올센터, 아동센터, 자살예방, 성인 이렇게 묶어서 통합하는 의미를 넘어서 전체 수원 시민들의 정신건강 문화를 증진하기 위한 문화공간을 만들자는 거거든요.

7층짜리 건물을 올릴 계획인데 여기에 모든 정신건강에 관련한 일반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을 만드는 거예요. 300억 원 들여서 짓는 건데 여기에는 국비가 일 원도 없어요. 순전히 수원시 자비죠.

그런데 짓는 장소에서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 초등학교가 있어요. 학부형들이 반대를 하는 거죠. 이 학부형들도 처음에는 시위를 안 했는데 건물을 지으면서 헐리게 되는 상인들 몇몇이 학부모들을 선동한 거예요. 중독자들, 정신질환자들 다 몰려온다고 불안을 증폭시킨 거야. 학부모들이 데모하고 공청회하고.

그래서 수원시가 수원시민갈등조정위원회를 만들었어요. 이 학부모들이 행정소송도 벌였는데 묘하게도 수원행정법원에서 수원시가 패소를 했어요. 패소 이유는 주민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미비했다는 거였어요. 이런 문제는 판사의 재량권이 강해요. 판사가 이 시설을 혐오 시설로 보느냐 아니면 전체 수원 시민의 문화 공간 시설로 볼 것이냐에 따라 달라져요.

이 판사는 혐오 시설로 본 거에요. 제대로 된 판사라면 그런 판결 안 내렸을 거예요. 이건 공익적 시설로 봐야죠. 법익 균등상 비례의 원칙에 의해서 이 법익이 더 크니까 건물을 세움으로써 희생되는 학부형들의 불안감보다 전체가 득을 보는 수원 시민의 권익이 훨씬 크다는 거죠. 그런데 판사가 혐오시설 프레임으로 본 거예요. 그래서 시가 주민들 여론조사부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결정했죠). 왜냐하면 항소하면 뒤집어지기 힘들어요. 수원시도 포기해버리고 싶은 거야. 내가 수원시에 주문하는 게 수원시장 직을 걸고 이건 반드시 실천해라. 정신건강 수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이건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했죠.”

-정신건강가족학교는 어떤 조직입니까.

“내가 정신건강 쪽으로 활동하다 보니까 문제점을 느꼈어요. 정신건강의 주역은 소비자고 소비자는 당사자와 가족이죠. 소비자가 주역이 돼서 정신건강증진 정책의 결정권을 행사해야 해요. 그런데 소비자가 뒷전에 밀려나 있죠. 모든 건 의사 그룹과 복지부 관계자들이 정신건강정책을 끌고 나가고 있어요. 소비자가 무시당하는 거예요. 왜 그렇죠. 지식이 없고 이론적인 전개가 없고 체계적으로 접근을 못했다는 거죠. 그러니까 무시당하고 배척당하는 거예요.

정신건강 정책에 대해 알아야 하고 정신건강 의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아야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너무 모르는 거야. 이런 거를 가르쳐 주는 데가 대한민국에서는 어디에도 없다는 거예요. 그 동안 정신질환자 가족이나 당사자한테 가르치는 건 증상 관리하고 약 복용이에요. 그 다음에 사회생활 잘 할 수 있도록 가족이 원조하는 방법. 거기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있어요.

가족은 의료 증상 관리 역할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정책을 만드는 사회적 역할이라는 가죠. 이 역할은 그 동안은 없었어요. 이걸 다시 찾아야죠. 가족학교를 세운 것도 가족이 모여서 같이 공유하고 가족 역할을 찾도록 만들어주기 위해서죠. 이건 수원에서 처음 시작한 겁니다.”

-국가로부터 예산이나 도움을 받습니까.

“내가 수원시장을 만나서 정책 브리핑을 했어요. 정신건강 수도로서 같이 가려면 시민단체의 역할과 수원시의 역할이 분담돼야 한다. 우리 이런 역할을 할 테니까 수원에서 이런 역할 하세요. 나는 가족학교를 하겠다. 지원해 달라. 시장이 오케이했어요. 수원시장 직속의 행복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어요. 거기서 장소도 제공해 주고. 강사비, 간식비, 식비, 레크레이션비 등을 지원하죠.”

-회원이 몇 명 쯤 됩니까.

“작년에 250명 정도 교육을 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1학기 2학기 8회씩 나눠서 했고. 교육 대상은 가족과 당사자인데 서울정신건강 가족들도 많이 왔고 성남, 용인 이런 데서도 참여했어요.”

-한 학기에 몇 달 정도 교육하십니까.

“한 학기가 7월을 분기점으로 해서 8회, 8회씩. 주 1회. 한 달에 4회잖아요. 한 학기에 8회. 그 다음에 방학하고 하반기에 8회 해서 끝냈어요.”

-정신장애인 당사자도 교육의 교수가 될 수 있습니까.

“물론 될 수 있죠. 어려움을 극복한 내 체험기를 당사자가 말하는 게 굉장히 좋아요. 앞으로 체계적으로 강사 선정을 할 거에요.”

-정신건강복지법 제35조에 국가와 지자체가 정신질환자의 평생교육 지원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정신장애인가족협회에서 그동안 많이 국가에 요청을 했어요. 그럼 보건복지부는 항상 알았습니다 그러잖아요. 그런데 지원해 주는 건 없었어요. 얀센 이런 약물회사에서 지원을 받아서 패밀리 교육을 했는데 체계적이지 않고 증상관리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거죠. 국가에서 그런 걸 지원을 안 해줘요. 보건복지부는 말로는 다 해준대요. 항상 고려하겠습니다, 예산 한번 짜보겠습니다 그래놓고 끝이야. 법령만 그렇게 돼 있어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가면 어른 정신질환자에게 초등학생 볼 만한 그림책을 제공하거나 10년 동안 같은 심리치료 프로그램만 하는 등 서비스 질이 매우 낮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십니까.

“같아요. 우리 가족 몇 명하고 당사자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카페에서 한 시간 정도 토론하는 자조모임이 있어요. 20명 정도 나오는데 제가 거기 부회장이에요. 계속 나가요. 왜냐면 당사자들하고 얘기를 하고 싶기 때문에 나가는 거에요. 나는 당사자들이 뭘 원하는 지 잘 알아요. 거기서 나온 얘기가 그거에요. 도대체 센터 나가면 뭐하냐. 초보적인 프로그램 그림 그리기, 글 쓰기 이런 것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이에 도대체 뭡니까. 지겨울 정도라는 거죠.

도대체 센터에서 하는 일이 있냐. 당사자들이 비판을 해요. 그럼 기초반, 중급반, 심화반으로 나누든지 오래 한 당사자들은 거기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해라. 강사도 구닥다리가 아니면 참신한 사람이 와서 제대로 강의하고 교육하든지. 그런 건 없고 맨날 되풀이만 되는 거예요. 결국 예산 문제에요. 예산 테두리 안에서 하다 보니까 회원이 초등학교 수준의 프로그램을 하는 거죠. 그래서 당사자들이 프로그램 참석을 안 해요.”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나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봐요. 1995년에 정신보건법 만들어지고 그 다음에 정책적으로 만든 게 센터였어요. 이게 늘어나서 240여 군데 됐는데 나는 이걸 혁신적이고 혁명적이라고 봐요. 대한민국에만 있는 특이한 거다.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정신건강 쪽의 공적 시설을 지역사회에 뿌려놨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하지만 만들어 놓은 취지와 기대, 거기에 맞춰 발전해 나가는 걸 보여주지 못했다는 거죠. 실망스럽다는 거죠.

결국은 예산 문제입니다. 1년에 센터에 5천만 원 줘봤자 인건비밖에 안 돼요. 늘려준 건 인력 몇 명뿐이에요. 초기에는 네뎃 명이 센터를 시작했고 지금은 열 명 정도 늘어났죠.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지역사회의 정신건강 서비스의 본부가 돼야 한다는 거죠. 서구에서는 의사도 2명 정도 상주하고 정신건강간호사, 심리상담사, 임상심리상담가, 상담전문가, 미술치료와 특화치료 전문가들이 이 안에 다 들어와요.

그래서 정신건강에 대해 다학제적으로 연구하고 병원하고 연계해서 지역사회 시설로 뿌리내릴 수 있는 센터가 되는 것이 이상적이죠. 그런데 지금 기능은 뭐죠. 그냥 잡다한 영역에서 중증질환이 하나의 일부로서 형식적인 사례관리만 하고 마는 거예요. 이게 과연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요.”

설운영 정신건강가족학교 교장 (c)마인드포스트

-국가가 정신장애인에게 우선적으로 무엇을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단 프레임의 문제로 봐요. 국가는 정신장애인에게 무엇을 해 줘야 하는가에 앞서 정신질환과 정신보건을 보는 관점부터 바꿔야 해요. 그래야 뭘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오는데 지금 같은 관점에서는 의미가 없어요. 국가에서 아무리 정신장애 치유에 대해 예산을 늘려주고 해도 결국 그 예산들이 어디에 쓰이냐면 정신의료 환경 개선, 병원 증설, 입원의 강화, 약물 쪽으로 돈이 다 다 들어가요. 깨진 독에다 물붓기식이죠.

예산이 의료모델과 치료입원으로 다 들어가는 이유는 틀이 있어서죠. 무슨 틀이냐면 국가가 바라보는 정신질환에 대한 관점은 두뇌 세포의 이상, 뇌세포 호르몬 전달 물질의 과분비로 인한 뇌의 불균형 상태로 보는 거예요. 생물학적으로 보는 거죠. 온전한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환자로서 보는 거에요. 이 관점을 바꾸라는 거죠.

정신질환은 단순히 호르몬 분비 이상보다도 더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이 있다는 거죠. 트라우마라든가 감성, 주변 환경의 불균형 이런 것이 밀접하게 연계돼 있는 거예요. 근데 국가에서는 생물학적으로만 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병원에만 쏟아붓는 거예요. 의사를 더 만들어내고 병원 시설 좋으면 다 나을 거다. 이 시스템으로 가는 거죠. 그렇다면 누가 좋겠어요. 병원 외에는 갈 데가 없는 정신장애인들이 죽는 거죠.

국가가 지역사회 정신건강 시설을 방치했기 때문에 정신장애인들은 떠돌다가 정신병원에 들어갔다가 범죄 저지르고 악화되니까 의사까지 살해하는 게 결국 수면으로 떠오른 거예요. 이번 임세원 교수 사망 사건도 그랬잖아요. 앞으로 보세요. 정신건강으로 인한 범죄가 더 많이 생길 거예요. 병원에서가 능사가 아니라는 거죠. 국가가 관점을 바꿔야 해요. 국가가 정신장애인이 재기하고 자립할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관점을 인정할 때 국가 예산이 제대로 들어가는 거예요.”

-응급입원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신건강복지법 제50조에 응급입원은 이렇게 돼 있죠. 누구든지 자타해 위험성이 의심이 있다고 생각되면 신고를 할 수 있고 경찰관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서 의사한테 데려와서 입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초헌법적이고 탈법적이라는 거죠. 이건 뭐지.

대한민국에서 이런 게 만들어질 수 있나. 하위법이 최상위법 헌법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초헌법적 발상으로 법령을 제정한다는 게 말이 되나. 이건 질병이 있건 없건 치매환자건 중독자건 누구든지 기본권이 있는 건데. 기본권 보장은 헌법에서 다 보장해 놓았잖아요. 거주·이전의 자유라든가 신체의 자유라든가 프라이버시권 인간존엄의 자유를 헌법으로 천명해 놓았는데 이런 것들이 다 무시된다는 거죠. 왜? 실제적인 범죄도 아니고 단지 자타해 위험이 있다는 것만으로 해서 강제동행, 감금이잖아요. 비자의입원은 감금이라고 봐요.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고 제한하는 이런 것들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겠나. 헌법에 기본권 침해 조항은 제37조 2항에 국가안보, 공공질서유지, 공공복리 딱 세 가지인데 이 세 가지에 어느 것도 해당이 안 돼요. 그럼 정신질환 질병이 있는 자는 예외다 이런 규정이 있나요. 없어요. 똑같은 기본권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이게 무시되고 있는 현실에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진다는 거죠. 질환자니까 괜찮아. 끌고 가도 돼. 그 사람들은 치료하면 되니까. 이렇게 합리화를 시킨다는 거죠. 치료라는 미명으로 짓밟는 거예요. 이건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현재의 정신보건전달체계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정신질환 문제는 전 국민의 0.4%로 보고 있어요. 우울증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포함해서 1%로 봐요. 그리고 술로 인한 중독도 1%. 그 다음에 신체장애, 치매, 각종 질병 이런 것들의 형평성을 맞춰서 정부가 예산을 까는 거예요. 파이를 쪼개는 거죠.

너희 정신질환 문제만 그렇게 주장하지 마라. 다 똑같이 아프고 힘들다. 너희만 더 줄 수도 없다. 국가가 이런 형평성의 논리에 갇혀 있어요. 나는 말하는 게, 형평성만 가지고 말하지 말라에요. 정신질환자들의 복지는 그동안 사각지대에 있었어요. 장애인들이 평등하게 갈 때 우리는 제외됐단 말이야. 똑같이 평등선에 맞추자는 거죠.

우리가 더 달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그런데 국가는 그런 걸 무시해요. 그냥 너희는 1%도 안 돼. 35%의 치매가 더 중요해. 그러면서 치매에 어마어마한 지원을 해 주잖아요. 자살예방 사업도 자살을 10으로 보면 중증정신질환은 2 정도. 국가는 그 비율을 그대로 맞춰가는 거예요. 이거 변할 거 같아요. 안 변해요. 정신보건의 전파라는 것은 내가 볼 때는 무의미하고 지금은 바텀업(bottom-up)이 필요해요. 밑에서부터 올라가는 거죠. 업바텀(up-bottom)은 위에서 내려오는 건데 기대할 수 없죠. 위에서 보건복지부가 아무리 지침 만들고 해도 그렇게 할 의지가 없어요.”

-정신병원 퇴원과 동시에 인적사항을 본인과 보호자의 동의 없이 보건소와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알리는 법안의 발의됐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법적인 문제를 검토해야 해요. 정신질환의 질병에 대해서 정보공유는 이렇게 포장될 수 있어요. 대다수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정보 공유가 돼야 한다는 원칙론이 있어요. 하지만 거기에는 함정이 있죠. 이건 심각한 기본권의 침해에요. 이거는 그런 명목으로 포장해서 갈 수가 없다는 거죠. 왜냐하면 내가 정신질환과 이력 경력을 알리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건 필히 나한테 손해를 가져와요. 사회적으로 반드시 손해를 가져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리고 싶지 않고 조용히 상담하고 하고 싶은 거예요. 그것조차도 안 하는 사람들 많아요. 왜냐하면 이득이 없고 낙인 효과만 불러오니까. 그런데 이런 것에 대한 선택권의 자유를 묵살시키는 거죠. 이건 프라이버시권과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거예요. 헌법상의 기본권 침해에요. 있을 수 없는 거죠. 왜 이런 원칙론적인 문제들이 거론이 안 되는 걸까요.

정신질환자들이 아무리 발언권이 없고 가족들이 무식하다고 해도 이런 건 주장할 수 있어야죠. '이거는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생각해라. 안 그러면 우리 인정 못 한다. 헌법 테두리 안에서 다시 해.' 이런 식으로 전면적으로 가족들이 보이콧해야 해요. 사실 이건 말도 안 되는 겁니다. 그건 치료라는 미명으로 될 수도 없어요. 다른 방법도 많아요. 왜 공개해야 되요? 나도 모르게 내 정보가 돌아다니는데.”

설운영 정신건강가족학교 교장 (c)마인드포스트

-장기입원 문제는 여전히 논란입니다.

“우리나라가 두 가지 기록이 있어요. 입원 병상수가 8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올라오고 있어요. 정신보건법 만들었을 때 그때 3만 병상이었는데 지금은 8만 병상을 넘어가고 있어요. 앞으로 10만 병상까지 올라갈 거예요. 앞으로 일본을 앞질러 갈 겁니다. 세계최고의 상승률이죠. 그 다음에 장기입원이라는 게 있어요.

우리나라 (입원 일수가) 210일에서 240일인데 세계 평균 입원일수가 35일 정도 돼요. 우리나라가 이렇게 갈 수밖에 없는 특별한 여건이 있다는 거에요. 그건 국가 시책적으로 의료모델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미국의 예를 들어보면 어떻게 제한하느냐면 수가로 제한해요. 하루 입원하면 100만 원 수가 책정해주고 이틀 입원하며 70만 원, 사흘 입원하면 50만 원. 한 달 입원하면 없어요. 그러면 병원에서는 무조건 빨리빨리 내보내야 돼. 하루라도 지체되면 병원에서 손해예요. 그러니까 급성기에 일주일 정도 입원하면 지역사회로 내보내는 것이 정례화돼 버렸어요. 안 그러면 병원들 문 닫아야 돼요. 이건 강력한 국가 시책이라는 거죠. 수가가지고 조정하는 것.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못하죠. 병원에 입원한 정신장애인들은 갈 데가 없으니까 5년, 10년 입원해 있어요. 이건 장기입원의 병폐예요. 근데 여기에 대해서 누구도 문제점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왜 그렇죠. 시스템이 돼 버린 거예요. 우리나라에는 정신병원이 1400개가 넘어가고 있어요. 급증해요. 왜? 돈벌이가 되니까. 가장 쉬워요. 약만 주면 되니까. 의사가 고통 느낄 필요도 없어요. 이렇게 쉬운 돈벌이가 돼요.

한 해 동안 5조 원의 약물시장이 형성돼 있는데 자본의 논리에 따라 계속 병원이 생기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 시스템에 대해서 누가 브레이크를 걸 것이냐. 정신건강 예산을 갖고 먹고 사는 사람들, 병원 종사자, 시설장들 이런 것들이 제도화 됐고 시스템이 돼 버린 거예요. 이 사람들 밥벌이가 돼 버린 거예요. 어떡하라고. 국가도 이젠 손 못 대요. 이런 것들에 돈이 엄청나게 쏟아붓는다고요. 그러니까 국가에서는 지역사회에 뿌릴 만한 그런 예산도 없는 거예요.”

-강제입원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강제입원도 결국은 기본권의 침해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내가 원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원하지 않는데 국가에서 잡아간다. 이 논리는 굉장히 순진한 거예요. 치매도 곱게 치매가 오는 경우가 있고 아주 고약하게 오는 경우가 있어요. 고운 거는 밥 잘 먹고 깜빡깜빡 잊는 얌전한 치매가 있는데 어떤 치매는 발로 걷어차고 욕하고 난동을 부리죠.

정신질환도 똑같아요. 얌전한 질환이 있고 난동성 질환이 있단 말이에요. 이건 부인할 수 없어요. 그럼 이 사람들에 대해 헌법만 찾고 내버려둘 거냐. 이 문제는 헌법 제37조 2항의 질서의 침해 문제로 봐야 합니다. 기본권을 제한하는 건 국가 안정보장, 공공복리, 질서유지 차원에서만 제한합니다. 그러면 정신질환자가 난동을 부릴 때 제한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장기적인 구금은 아니예요. 보세요. 정신질환자가 난동을 부렸어요. 강제로 제압해야 해요. 그리고 일시적으로 억류시키거나 피난시키거나 분리 조치하거나 수용시키거나 할 수 있어요. 이건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나와 있어요. 하지만 이런 것이 지속되면 안 된다는 거죠. 이때부터는 기본권 침해에 들어가요. 긴급 진단이 끝났는데 특별한 이유 없이 마냥 한 달 두 달 강제로 입원시킨다는 시스템은 굉장히 문제가 많고 기본권 침해에 들어가요.”

-현재의 정신건강복지법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신건강복지법의 가장 큰 문제는 입·퇴원에 관한 문제입니다. 모든 법은 그 법을 만든 법익이라는 게 있어요. 형법상 절도죄는 재물의 소유권이라는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거예요. 살인죄는 사람의 생명이라는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서죠. 또 상해죄는 사람의 신체 보호 법익이 있어요.

정신건강복지법의 법익은 정신질환자들의 복지를 위한 법익이 아니고 그렇게 포장하고 이름만 달았지 사실은 사회방위법이에요. 즉 정신질환자로부터 안전하게 사회를 유지하고 국민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입원 시스템을 강화하고 강제입원 조항도 집어넣고 여러 가지 불합리한 것들을 넣어서 버무려서 만든 사회방위법이라는 거죠.

우리 정신질환자 법익이 아니에요. 일반 사람들의 법익이에요. 말로만 정신건강복지법이지 복지가 아니에요. 그리고 나머지 복지 규정은 뭐죠. 전부 선언적이고 임의적인 규정이란 말이에요.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렇게 해 놓으니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그것이 가장 큰 문제죠.”

-가족이 치료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약물은 집을 지을 때 건축의 토대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나는 항상 의문점을 제기해요. 정신질환에 걸리면 감기 걸리면 감기약 먹듯이 무조건 볼 것도 없이 무조건 약을 먹어야 되는가.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한 의문점이 있어요. 선진국의 사례를 비교해 봐요. 선진국에서 약물은 하나의 자유 선택으로 돼 있어요. 모든 게 정신질환자의 의사를 존중해요.

내가 약을 먹어야 치료가 되겠다는 심리적 트라우마가 있으면 약을 먹어야 돼요. 하지만 내가 약을 안 먹고도 버틸 수 있으니 약 먹이지 마세요, 이러면 의사를 존중해 주는 게 자주권 보장이거든요. 우리나라는 그런 게 보장이 돼 있나요. 무조건 병원 들어가면 약부터 먹이죠. 그런데 약을 먹는 건 쉬운 일인데 약을 끊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언제든지 끊으면 재발돼요. 한번 먹기 시작하면 먹어야 돼요. 그 다음부터 오히려 약이 끌고 가는 거예요. 왜? 약을 안 먹으면 내가 일상생활을 못해요. 이렇게 돼 버리는 거예요. 이건 심각한 약물의 폐해라고 생각해요.

선진국에서는 약을 먹일 때 한 달 정도를 기간을 둬요. 경과를 지켜보고 심리 상담하고 인지행동 치료 들어가고 전문가들이 고민을 해요. 이 사람에게 약을 먹여야 되나. 왜냐하면 약 먹이는 문제가 쉬운 문제가 아니거든요. 한번 먹으면 계속 의존하게 되고 약물에 복종하게 되니까 자기 자신을 상실할 수 있다는 거죠. 약물에 허점이 있고 좋은 점도 있어요. 가장 문제는 약물이 내 스스로의 결정권을 약화시키고 통제력을 약화시키고 사회적 기능을 뺏어간다는 거죠. 중독하고 똑같은 거예요.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심도 있게 고찰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우리나라 모든 정책은 약부터 먹이고 본다는 거죠.”

설운영 정신건강가족학교 교장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과 가족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가장 안타까운 게 우리 정신장애인 가족들이 가슴이 새까맣게 탈 정도로 한이 맺혀 있어요. 너무 고통스러운 시련을 겪고 있어요. 지금도 겪고 있고 앞으로도 겪을 거예요. 우리도 선진국이라면 국가에서 돌봄 시스템이 들어와야 돼요. 정신질환에 걸리면 국가에서 개입을 해야 돼요. 가족이 겪는 정신적 고통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고통 받고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낙인찍히죠. 이런 것을 국가가 돌봄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여야 해요.

국가가 생활비도 지원해주고 약물 치료에 따른 보조금도 지원해 주고 혜택을 줄 수 있는 국가가 돼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신질환에 걸리면 가정 책임, 개인 책임으로 떠넘겨요. 너희가 늙어 죽을 때까지 데리고 가. 병원 잘 만들어 놓았잖아. 병원 가서 약 먹으면 되는데 뭘 그래. 국가가 돌봄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거죠.

죽을 때까지 지팡이 짚고 늙은 부모가 휘청휘청거리면서 다 늙은 정신장애인 애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 데리고 다녀야 되는 게 얼마나 참담하냐고요. 그럼 국가가 책임을 이행해라. 복지? 말만 하지 말고 보살피고 커뮤니티 케어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 하는데 국가가 이를 다 배제시키고 있다는 거죠. 가족은 힘들다. 살림 다 거덜나고 식구들도 따돌림 당하고 사회적으로 낙인찍히고 내가 내 배로 애를 낳았다는 죄 때문에 죽을 때까지 끌고 다닐 수밖에 없는 이 비참한 현실을 언제까지 대한민국은 보고 있을 거냐.

그렇다면 정신건강의 소비자인 가족이 일어나 권리를 주장해라. 없던 권리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히 국가에서 해야 할 복지와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가족들은 지금 뭐하고 있습니까? 그냥 국가에 예산 더 주세요, 뭐 좀 고쳐주세요, 이런 요구만 하는 거예요. 나는 정신건강가족학교를 통해서 가족이 국가정책의 본질적인 문제점인 의료재활 시스템만을 고집하는 대한민국의 문제점, 정신건강 서비스에서 제외된 가족의 참담한 현실 이런 것들을 알려주는 거죠.

가족이 나서지 않으면 절대로 바뀌지 않아요. 정신보건법 1995년 만들어진 이후로 뭐가 바뀌었습니까. 가족과 당사자가 잠자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에서 그냥 가는 거예요. 이거를 변화시키려면 언론도 아니고 의사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에요.

가족이 바로 당사자이니까 당사자가 당당하게 요구를 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요청을 할 때 국가가 귀를 기울인다는 거죠. 그리고 권리를 주장하려면 왜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해요. 가족들이 그걸 아직 모르고 있어요. 그냥 혜택만 받기를 원하는 거죠. 해 주겠지, 해 주겠지 하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혁신도 아니고 쇄신도 아니고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비자인 주인은 안방에서 쫓겨나고 그 안방에 정신의료 계통의 손님들만 가득하다”며 “권리를 찾는다는 건 내 집을 찾는 것이고 이제부터라도 우리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깥으로 아침의 눈은 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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