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살아갈 수 있어요”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살아갈 수 있어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2.25 22: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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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신장애인복지협회 주최 직업재활 강의 열려
취업을 통해 당사자에서 지역사회 일원으로 역할 바뀌어
증상을 가지고 있지만 일을 하는 것이 재활의 철학
사회기술은 옆 동료에게 말을 건네는 것에서 시작
정신장애는 삶의 부분에 불과…전체로 보면 위험해
과거는 의미 없어…지금 상황에서 삶을 봐야
당장 취업 안 되더라도 가족은 기다릴 줄 알아야
퇴사하면 다시 취업하면 돼…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야

“취업하면 스트레스 많아요. 그러나 스트레스 없이는 성장하기 힘들어요. 재발이 포인트가 아니라 성장을 했다는 것에 포인트를 둬야 합니다.”

25일 오후 2시 을지로의 중구 구민회관. 100여 명의 참석자들이 숨을 죽이고 문경진 서초열린세상 작업지원팀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한국정신장애복지협회가 주최한 이번 강의에서 문 팀장은 취업을 통한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취업하면 재발할 수 있지만 취업을 통해 정신병적 증상이 감소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문 팀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강의를 이어갔다.

“취업을 하면 정신과적 부분에 대해 내가 감지를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증상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입원 횟수도 처음에는 한 달, 그 다음에 1-2주하다가 어느 순간 외래치료로 갑니다. 다시 일해야 하니까 빨리 나으려는 동기부여도 되고요.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어깨가 올라가요. 내가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존재로 바뀌는 거예요.”

그것뿐일까. 문 팀장은 “취업을 하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자기 정체성이 형성된다”며 “정신장애 당사자로서의 삶에서 지역사회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이 바뀐다”고 조언했다.

정신장애를 이유로 취업을 꺼리는 당사자들도 있다. 어떤 당사자는 치유된 후에 취업을 하겠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문 팀장의 답변은 이랬다.

“정신장애를 다 나아서 취업하는 것이 아니에요. 증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병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 정신재활시설의 철학입니다. 증상이 줄어든 게 아니라 스트레스 상황에서 내가 얼마나 극복할 수 있는지 대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할까를 고민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문 팀장은 취업을 등산에 비유했다. 등산은 천천히 정상으로 오르는 행위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되면 힘들고 짜증이 나서 내려가려고 한다. 그런데 그 단계를 넘으면 정상에 와 있게 된다. 정상에 오르는 그 순간, 다양한 것을 보면서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그 성취감 이후 다시 내려가는 작업이 기다린다.

“다시 내려가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죠. 그렇지만 다시 내려가면 오늘 하루는 끝납니다. 취업은 그렇게 힘들었다가 괜찮았다가를 반복하는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약물 관리와 사회적 관계는 어떻게 조정해야 할까.

“약물은 보조적 역할을 합니다. 약물 관리를 꾸준히 하는 것이 성공적 취업을 하기에 좋습니다. 사회기술, 별거 아닙니다. 옆의 직장동료에게 말 한마디 건네는 것. 그 정도 선이면 됩니다. 직장은 여러분들이 얼마나 일을 잘하고 있느냐를 보는 거지, 대인관계 잘 하기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

문 팀장은 조현병이 어떤 병이라고 물으면 배운 대로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본인이 어떤 증상을 갖고 있는지를 물으면 거기에 대해 명쾌하게 답하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자기 인식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인식을 하면 변화가 생깁니다. 재활시설 주간활동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예요. 그 시간이라도 지키려고 하면 여러분들이 모르는 사이에 관리되고 습관화될 수 있습니다.”

그는 결국 나머지 삶의 부분을 교정하고 바꾸는 것은 개인의 인식변화가 동반돼야 한다고 했다.

“30~40대면 인생이 아직 40년 남았는데 정신장애인으로 살 것이냐, 내 삶에 집중해서 살 것이냐를 물어보고 싶어요. 삶이 너무 힘들다? 그래요. 삶은 힘들어요. 그렇지만 보람도 있지 않을까요. 삶에 집중해야 해요. 정신장애는 삶의 부분에 불과해요. 이걸 전체로 해버리면 약물과 병원에 취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돼요.”

그렇다면 혹시 우리 정신장애인들은 정신장애라는 그 낙인 뒤에 숨어 있는 건 아닐까. 힘들고 괴로울 때 ‘나는 정신장애가 있어서’라는 말로 모든 것을 합리화해버리고 싶은 것은 아닐까.

문 팀장은 “나를 찾지 못했기에 회복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정신장애 뒤에 숨어버린다”고 분석했다.

“발병하면 치료를 해야 하고 치료받기 위해 약을 먹어야 합니다. 다음 단계는 사회생활이 무너져버립니다. 사회생활이 무너졌다는 건 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죠. 그래서 재활이 필요합니다. 회복되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정신장애 증상 뒤에 숨어버리는 거예요.”

명문 대학을 나와 대기업을 다니다 발병한 이가 있었다. 그는 주간재활시설을 다니며 자신의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직업은 발병 이전에 다니던 회사 수준의 사무직이었다. 그의 구직은 옳은 판단일까.

“대기업을 다녔던 기준으로 직장을 찾으면 힘들어집니다. 병으로 무너진 상황에서의 삶은 이전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되고 지금을 봐야 합니다. 지금의 자신의 모습에서 무엇을 할지를 고민해야 해요. 과거의 내가 어떠했다가 아니라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봐야 해요. 가족 역시 당사자가 예전에 뭐했다라고 말하면 안 돼요. 과거는 의미가 없어요. 지금 상황에서 봐야 해요.”

문 팀장은 가족이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성인일 경우 성인으로 대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인은 성인에 맞게 스스로가 필요한 것을 찾으려고 해야 해요. 엄마한테 뭐 해줘 하면 성인이 아니죠. 가족들도 다 해 달라고 해서 다 해주면 계속 받기만 하는 사람이 돼 베풀 줄을 모르게 돼요. 성인이라는 관점에서 성인 대접을 해줘야 합니다.”

그는 “가족이 당장 취업을 안 한다고 당사자를 비난하면 안 된다”며 “시기가 올 때 그때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포기하면 안 된다. 언젠가는 취업할 거라는 희망을 가족이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직장생활에서의 스트레스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스트레스는 회피하는 게 아니라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전조 증상을 느끼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스트레스는 위기이면서 성장의 과정입니다. 이것을 넘는 순간 성숙하고 도전할 힘이 생깁니다. 취업하면 재발할 수 있어요. 포기해버리면 성장을 못하고 가족도 포기하게 돼요. 도전하려는 노력을 가져야 해요. 어떤 일이든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국의 정신장애와 관련한 비영리기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차가 고장나면 60분 안에 고칠 수 있지만 마음이 고장나면 적어도 18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여러분의 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사회복지사와 정신재활시설은 정책적 변화를 위해 노력을 해야 해요. 빨리 취업하라는 게 아니라 마음을 어루만지며 기다려주면서 강점을 파악해 지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최남정 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 직업재활팀장은 취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지적했다.

“사업주들이 정신장애인과 일하면서 제일 힘들어 하는 건 무단결근입니다. 아침에 나오지를 않아요.”

왜 그럴까?

“이유는 나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환청 때문입니다. 부모들이 볼 때 회원이 게으르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무조건 회사 안 나가는 경우는 환청이나 망상 때문일 확률이 더 커요.”

부모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직장 동료 중에 가장 협조적인 동료가 있을 겁니다. 가족은 그 연락처를 갖고 있어야 해요. 직장에는 연월차도 있으니까 사업주에게 월차 얘기를 하면 됩니다. 그것도 힘들면 사회복지사에게 전화하세요. 도움을 요청하면 돼요.”

무단결근의 끝은 결국 ‘퇴사’라는 게 최 팀장의 결론이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 최 팀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다시 취업하면 됩니다. 걱정할 거 없어요. 영원히 취업 못하는 경우는 없어요. 어느 날 아들이 직장을 안 나가겠다고 하면 부모는 복장이 터집니다. 그러나 별일 없어요. 다른 데 취업하면 돼요. 회사를 안 나가는 이유를 물어봐야 해요. 반드시 이유가 있어요. 당사자가 이러저러해서 나가고 싶지 않으면 사직서 쓰고 그만 두면 돼요. 심각하게 안 받아들이면 됩니다.”

최 팀장은 일이 힘들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대신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로 직장을 떠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이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직장 동료들 중에 나를 좋게 보는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나는 혼자인 거 같지만 나에게 눈을 맞추는 이가 반드시 있어요. 모르면 질문하면 됩니다. 그래도 못한다고 하면 매뉴얼을 만들어줄 수 있어요. 요청을 하세요. 요청을 해야 담당 사회복지사도 지원을 해줄 수 있어요. 괜찮다. 별일 없다 (말해 줘요). 어려움이 생겼을 때 힘들다고 말을 해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렇다면 대인관계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대인관계는 자꾸 사람들과 만나는 거예요. 취업자 자조모임, 회사의 경우 동아리가 있고 회식도 있어요. 참여하세요.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아요. 내가 먼저 말을 건네면 그 말이 두 배 세 배가 됩니다. 가만있으면 안 돼요. 나의 노력이 필요해요. 제일 좋은 건 솔직한 거죠.”

최 팀장은 “취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정신질환이라는 증상이 있다는 말보다 나는 병이 있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안다고 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내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떤 증상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으면 돼요. 예전의 것은 잊어버리세요. 지금 현재의 내가 중요해요. 현재의 내가 쌓여서 미래의 내가 되는 거죠. 과거의 나보다 현재에 집중해야죠. 약을 안 먹으면 거의가 재발을 해요. 저희들도 어쩔 수 없이 약을 잘 드시라고 말해요.”

취업 지원을 했을 때 어떤 당사자는 사흘 일하고 그만뒀고 다시 다른 직장에서 보름을 일하다 그만뒀다. 다른 직장으로 가서는 한 달 일하고 그만뒀고 또 다른 직장에서는 석 달을 일하고 그만뒀다. 그는 직장을 유지할 힘이 없는 것일까.

최 팀장은 “(내적 힘이 강해지면) 한 달 월급을 받게 되고 꾸준하게 일하게 된다”며 “그렇게 직장을 돌다가 이제 정착해서 4년째 일하고 있는 이도 있다”고 조언했다. 어쩌면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긴 취업·퇴사를 거듭하면서 어느 순간 당사자는 자신의 일을 받아들이고 근무하게 된다는 게 최 팀장의 설명이다. 월급을 받아서 순식간에 다 써버리고 돈을 꾸러 다니는 이도 3-4개월 그것을 학습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겁니다. 속도는 다를 수 있어요. 발병하고 5년 안에 취업하면 빠르지만 부모가 생각할 때는 늦을 수도 있겠죠. 기다려줘야 해요. 나만의 속도를 찾는 것. 한 번에 취업해서 20년 가는 게 어디 있겠어요. 취업을 하면 정신병자에서 세금을 내는 근로자로 바뀌게 된다는 걸 아셔야 해요.”

최 팀장은 강의 마지막에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내 곁에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살아갈 수 있어요. 그게 부모님일 수 있고 직장 동료거나 사회복지사, 혹은 지나가다 만난 동료도 될 수 있죠. 어쨌든 세상에는 나를 이해해주는 이가 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을 찾는 것이 필요해요.”

긴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번 강의는 한마음의집, 서울정신재활시설협회, 태화샘솟는집이 공동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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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2019-03-02 08:33:21
정말 좋은 내용이네요. 모두에게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