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정신장애인이 자기결정권 있고 자기결정 능력 있어…그게 실존주의적 관점”
조성민 “정신장애인이 자기결정권 있고 자기결정 능력 있어…그게 실존주의적 관점”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3.13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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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자격증 우후죽순…법적 기준 정해 자격증 강화해야
임상심리사 되려면 석사 마쳐야…이후 자격시험도 합격해야 가능
정신과 의사들 약물 트레이닝만 받아 심리상담에 취약
인지행동보다 두 배 비싼 지지요법 수가…인지치료 선택 못해
문재인케어 문제는 정신장애 감수성 없는 공무원들 문제
심리사 활동의 법적 근거 마련 필요…‘심리서비스법’ 필요
임상심리사 커뮤니티케어 투입되기에 인력 부족
윤일규 법안 의료적 접근에 치중…전면 폐기해야
전문요원, 학제간 협업과 고유업무 보장해줘야
커뮤니티케어 성공 위해 응급쉼터, 중장기공동체 만들어야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최대한 보장되는 시스템 돼야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고등학교 시절 그는 합창단과 문학서클에서 ‘노는’ 아이였다. 고3 학력고사에서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 어머니는 대학 가지 말고 공장에 가서 일하라고 했다. 막막했다. 방안에서 울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어느 날 방 서재에 대학에 다니는 형이 보는 심리학개론서가 눈에 보였다. 왠지 모르게 재미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다 읽어내려가면서 유독 임상심리학에 대한 설명문이 눈에 깊이 각인됐다. 그의 말대로 ‘속에서 갑자기 바람이 휙 불어오는’ 기분을 느꼈다. 가슴이 뛰었다. 아, 이걸 해야겠다.

전공을 이과에서 문과로 바꿨다. 종합반 재수학원에 등록했고 심리학과에 들어가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하는 걸 목표로 했다. 19살의 그때 꿈과 결심은 변하지 않았고 그는 심리학으로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KARF(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에서 8년간 일하면서 그가 조현병과 중독에 관심을 가진 건 필연이었을 것이다. 그 두 문제의 핵심은 그 증상이 길고 오래간다는 것이다. 그것을 단기간에 고치겠다고 치료가 개입되면 당사자는 더 망가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단계적으로 당사자 상태에 맞는 개입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장기적으로 문제를 짚어내고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사자 스스로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게 관건이다. 도움과 치료의 연속성이 중요한 이유다.

이후 그는 국무총리 소속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산하의 도박중독예방치료센터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서울 가정법원에서 음주문제와 가정폭력이 같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담하고 KARF로 인계하는 역할도 있다. 이 모두가 그가 십대에 꿈꾸었던 ‘임상심리사’에 대한 길고 긴 꿈과 실력의 결과였다.

조성민(53) 마음산책심리센터장을 만난 건 12일 충무로 골목길 안에 있는 마당이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였다.

조성민 마음산책심리센터장 (c)마인드포스트
조성민 마음산책심리센터장 (c)마인드포스트

-전문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심리상담 자격증이 남발되고 있습니다.

“상담이라는 단어로 된 민간등록 자격증이 3천여 개나 됩니다. 또 심리 단어가 붙은 게 4천여 개 해서 거의 7천 개쯤 됩니다. 예를 들어 교회 목사 중에 유학 갔다 온 분들이 목회상담을 배워 와요. 그리고 자체적으로 목회상담 교육과정을 만들어서 진행하고 거기에서 자격증을 줘요. 우후죽순으로 막 생긴 거죠.”

-보건복지부 등 관할부처에서 이를 인정하지는 않는 거죠.

“할 수가 없겠죠. 심리나 상담이라는 용어가 들어간 민간자격증이 그렇게 많은 건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심리치료나 심리상담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는 것이 있고요. 다른 관점은 심리서비스에 대해 국가가 법률로 기준을 잡은 법적 기준이 부재하다는 점 때문에 문제가 생기죠.”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무자격자들이) 신뢰와 타당도가 검증되지 않은 걸 써서 그걸로 돈만 받아먹고요. LGBT라고 해서 여성 동성애자, 남성 동성애자, 성 전환자 들이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게 병이 아니죠. 자체 모습이에요. 거기에 대해 제대로 된 심리학적 교육을 안 받으니까 LGBT 상담하러 온 사람에게 ‘사탄이 씌었다’, ‘치료 받아야 된다’고 얘기하는 거죠. 그럼 더 상처받죠. 그런 문제들이 생깁니다.”

-정신건강임상심리사는 심리학 석사 학위 이상의 학력이 필요하고 1~3년의 임상수련을 요구합니다. 실제 그렇습니까.

“한국심리학회에서 주는 임상심리전문가라는 자격증이 있어요. 정신건강임상심리사 1급하고 임상심리전문가는 석사를 반드시 마쳐야 해요. 수료도 안 됩니다. 졸업을 해야 해요. 그리고 3년 이상 현장에서 수련을 해야 임상심리전문가 혹은 정신건강임상심리사 1급 자격시험을 볼 수 있는 응시 자격이 생겨요. 그 시험을 보고 통과해야 합니다. 떨어지면 재시험을 봐야 돼요.”

-합격률은 어느 정도 됩니까.

“제가 알기로는 정신과 의사들 전문의 자격시험 합격률보다 현저히 낮아요. 그래서 좀 많이 붙여주자는 여론도 형성된 적이 있어요.”

-북미하고 유럽 선진국에서는 석사 외에도 1~5년까지의 임상수련을 요구하더군요.

“5년까지 하는 건 학위 과정이 짧은 걸로 알고 있어요. 우리처럼 어느 나라나 석사를 하고 3년 정도 수련을 받습니다. 미국과 비슷하죠.”

-선진국의 임상심리사의 사회적 위상은 어느 정도 됩니까.

“선진국은 국민들의 심리사회적 건강을 위해 다층적이고 접근성도 높은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심리학자들이 하는 역할이 굉장히 크죠. 막대한 영향력도 미치고요.”

-임상심리사는 인지행동치료만 하는 겁니까.

“인지행동치료는 심리치료 기법 중의 하나입니다. 인지행동치료사라고 부르면 오류죠. 그렇게 부르면 안 되고요.”

-기자는 정신병원에서 임상심리사에 의한 인지행동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는 걸로 기억됩니다. 대신 개인적으로 상담소에서 미술치료, 음악치료, 모래치료 등을 받았습니다. 정신병원에서 인지행동 치료를 제공합니까.

“병원에서 인지행동치료가 이뤄져야 하는데 제대로 공급될 수 있는 여건을 안 만들어 준 거죠. 저희들이 전문적 트레이닝을 받고 병원에서 일하는데 써먹을 수 있는 구조를 안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의사들은 잘 못해요. 왜냐하면 그들은 의학을 배우지 심리학을 배우는 게 아니니까요. 병원 안에서 심리학자들이 심리치료를 할 수 있도록 심평원에 수가 신청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든가 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 하는 거죠.”

-정신과 의사들이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걸까요.

“아닐 겁니다. 정신과 의사니까 심리치료 상담을 하고 싶겠죠.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있어요. 첫 번째는 환자 한 명 당 15분 이상 붙들고 앉아 있으면 수익이 안 돼요. 두 번째는 정신과 전문의 수련을 받는 4년 동안 심리치료 분야에서 깊이 있는 트레이닝을 받지 못하는 거 같아요. 인지행동치료를 못한다는 말이 ‘배웠는데 못해요’가 아니라 그런 트레이닝을 많이 받지 않은 거죠. 주로 약물치료 위주로 트레이닝을 받기 때문에.”

(c)마인드포스트
조성민 마음산책심리센터장 (c)마인드포스트

-정신요법료를 보면 인지행동치료는 정신과 의사나 3년차 전공의 이상만 할 수 있도록 규정됐습니다. 이는 무슨 문제를 야기할까요.

“정말 큰 문제죠. 그분들이 진료를 봐야 하는데 진료 보는 시간이 한 명 당 50분씩 되면 몇 명이나 진료를 보겠어요. 짧은 시간에 끝내야죠. 인지행동치료든 게슈탈트 치료든 50분이 걸리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잖아요.

작년에 법이 바뀌면서 수가 책정이 인지행동치료는 4만여 원, 지지적정신요법은 8만여 원 돼요. 문제는 약물치료 이외의 요법을 두 가지 이상 올리면 수가를 하나는 못 받아요. 비약물치료에 대한 건 하나만 인정해 준다는 거죠. 그러면 동일한 시간에 4만여 원짜리 인지행동치료를 하겠어요? 아니죠. 지지요법을 하겠죠. 그러면 인지행동치료를 받고 싶은 분들이 받을 수 없는 구조가 되는 거죠.

문제는 정신과 의사나 레지던트만 할 수 있는 문제는 뭐냐가 아니라 인지행동치료 시행 주체에서 심리학자들이 배제된 문제는 뭐냐가 정확하죠. 가장 큰 문제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본인들이 기대하는 서비스를 다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거죠.”

-인지행동치료가 급여화되면서 임상심리사가 배제돼 버린 건가요.

“그 영향이 있죠. 문재인 케어의 핵심이 국민들이 돈을 덜 들이고 더 많은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거잖아요. 그 전에는 병원에서 비급여로 해서 의사가 했다고 사인하고 의사가 같이 일하는 심리학자들한테 이 사람을 상담해 주세요, 인지행동치료해 주세요 이렇게 맡기는 경우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급여화되면서 그 책정 수가가 4만여 원이거든요.

사실 필요한 건 고품질의 서비스를 적은 비용으로 받는 거잖아요. 그런데 적은 비용이라는 것에 방점이 찍히면서 품질이 떨어져 버린 거죠. 제가 볼 때 문재인 케어는 정책의 문제가 아니고 문재인 케어를 구현하는 실행 단위 공무원들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은 정신질환 당사자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당사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거죠.”

-신경과 전문의를 인지행동치료의 시행 주체에 넣었더군요. 정신과와 아무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어이가 없는데 의사들은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치매나 만성정신질환으로 오랫동안 요양원에 있었던 분들은 사회적응을 위한 최소한의 일상생활이 안 되는 분들이잖아요. 이분들에게는 심리치료나 상담이 아니라 인지재활훈련이 필요하거든요. 그 재활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게 심리학자들이에요. 그런데 치매라는 게 신경과의 진단을 받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의사들이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걸로 넣어버린 거예요.”

-한국심리학회가 ‘심리서비스법’ 입법화를 요청했는데요. 아직 국회에 계류돼 있습니까.

“국회에 계류돼 있는 게 아니고요 '그걸 해야겠다'라는 겁니다. 조현병하고 중독의 공통점은 문제가 오래 간다는 거죠. 이걸 고치겠다는 마인드로 달려들면 사람을 더 망가뜨리는 거죠. 핵심은 당사자가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상태로 가도록 도와주는 거거든요. 문제가 만성화된 이들을 위한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계속 고민하는데 우리가 인지행동치료에서 배제되는 일이 발생했죠.

우리는 활동할 준비가 돼 있고 활동을 하고 싶은데 계속 배제되는 거죠. 왜 그럴까 고민해 봤더니 저희들이 활동하는 것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어요. 의사들은 의료법에 따라 움직이잖아요. 정신건강사회복지사들도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라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어요. 그 모법(母法)이 있으니까 이들이 행위에 대해 법적으로 촉진하든 제한하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게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 법을 우리가 만들자 한 거죠.”

-임상심리사를 위한 모(母)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말씀입니까.

“단순히 임상심리사가 아니고 개념이 확대되는데요. 지금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 발의안이 문제가 되는 건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한 거잖아요. 그런데 국민의 심리사회적 건강은 중증정신질환자를 위한 서비스만 존재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요. 중독 쪽에서는 보호의 연속성이라고 하는데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분들은 약간의 전문적 도움만 받아도 잘 해나가거든요. 그럼 재활의 연속성에서 서비스가 배치되고 분절되지 않고 치료의 연속성이 연계된다면 훌륭한 서비스가 되겠죠.

이 전체가 정신의학 하나만 가지고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자격증에 대한 법적 기준을 세우고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법적으로 인정받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그 취지로 심리서비스법을 만들려는 겁니다. 발의는 아직 안 됐고요.”

-심리학회하고 임상심리학회는 따로 나뉘어져 있습니까.

“아닙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은 모(母)학회라고 부르는 한국심리학회가 있고 그 학회 산하에 분과 학회들이 있어요. 분과 학회에는 임상심리학회, 상담심리학회, 중독심리학회, 사회문화심리학회도 있어요. 한국임상심리학회는 한국심리학회 분과 학회입니다. 가장 큰 분과 학회 중의 하나죠.”

-한국심리사협회는 어떻습니까.

“사실은 미국의 APA(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나 우리나라의 한국의사협회 같은 모학회는 학회라기보다 협회의 기능을 합니다. 학술적 활동만 하는 학회가 아니라 회원들의 권익도 신장시키고 회원들이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적 기여도 하고 분과 학회들이 학술학회 기능을 합니다. 우리나라는 심리학자들이 공부하고 연구는 열심히 하는데 협회 식으로 움직이는 걸 잘 몰라요.

그러다보니까 권익도 침해당하고 공익에 기여할 기회도 빼앗기고 배제됐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한국심리사협회를 만들었어요. 이건 임상이나 상담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다른 심리학 전공 분과 전공자들도 기여할 수 있는 게 많아요. 건강심리학회 자격증 있는 분들은 건강 문제에 대한 장기적 상담을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당뇨를 진단받아서 식단 관리하고 운동 관리를 해야 하는데 의사가 그걸 권하잖아요. 그런데 의사는 거기까지지 그걸 일상 속에서 지켜가는 건 스스로 해야죠. 그게 잘 안 되잖아요. 그걸 도와주는 역할을 건강심리학자들이 할 수 있죠. 중독심리학자, 발달심리전문가, 학교심리전문가들도 있고요. 이들이 국민들의 심리사회적 건강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분야가 도처에 있어요. 치료의 연속선상에서 보면 여러 단계에서 개입해서 도움을 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우리 권익도 챙기고 공익에 기여도 하자 해서 만든 게 한국심리사협회입니다.”

-작년에 준비하셨죠.

“아직 법인화는 안 했고요. 지금 이런 움직임은 버텀업(bottom-up)으로 밑바닥에서 일어나야 하니까 힘이 모이기를 기다리는 상태입니다.”

(c)마인드포스트
조성민 마음산책심리센터장 (c)마인드포스트

-현재 임상심리사는 2760명입니다. 임상심리사는 포화상태인가요 아니면 여전히 모자랍니까.

“부족하죠. 저희뿐만이 아니라 정신건강사회복지사도 정신건강정신간호사도 많이 부족하죠. 탈원화가 되려면 커뮤니티 케어의 기반이 마련돼야 하는데 그 기반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은 건 아니에요. 현재 243개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만들어졌는데 기능을 못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커뮤니티 케어의 강화란 정신건강복지센터를 많이 만든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니죠. 정신건강을 위한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들이 필요하다는 거죠. 예를 들어 조현병 당사자들을 위한 응급쉼터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건 병원보다 훨씬 저비용으로 더 많은 효과를 냅니다. 낙인효과에 대한 두려움도 매우 적을 수 있고요. 그런 시설들이 제대로 만들어지려면 아직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은 적은 인력이죠.”

-정신건강전문요원 수는 1만5천여 명입니다. 직역간 겹치는 부분이나 직역 이기주의는 없습니까.

“기득권을 가진 분들의 기득권 옹호가 문제입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자신들이 컨트롤타워에 앉아서 나머지 직역을 지휘하는 형태로 가고 싶어 한다는 거죠. 이게 직역간의 갈등이죠. 사실 심리와 사회복지, 간호 간에 갈등이 있기도 어려워요. 왜냐하면 너무 취약한 구조에서 시키는 일 하기도 바쁜데요. 예를 들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임상심리사가 거의 없잖아요.

이유는 너무 급여가 적은 것도 있겠고요. 또 센터에 가면 임상심리사로서 고유 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 전혀 다른 공통으로 해야 될 업무가 있거든요. 이를 위해서는 학제적 팀접근인 inter-disciplinary로 가야 하는데 요즘 의사들이 말하는 건 multi-disciplinary잖아요. 이건 inter-disciplinary와 달라요. 그런데 이걸 혼용해서 헷갈리게 만들어요.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이 학제간 공통된 업무를 하면서 고유 업무를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커뮤니티 환경이 안 만들어져 있어요.”

-임상심리사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인지치료를 하지 않습니까. 중증정신질환의 경우 치료의 영역에 넣을 수 있습니까.

“이성에 기반을 둔 건 아닙니다. 인간의 심리적인 작용이 일어나는 데는 사고와 정서, 행동이 상호작용을 하잖아요. 생각을 바꿔서 감정과 행동이 변할 수 있는 접근을 하는데 깊이 들어가보면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념만 있어서 그렇게 되는 건 아닙니다. 인지행동치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대한 알아차림을 해가도록 돕는 것. 그 알아차림은 이성이 아닙니다. 내가 진짜 나하고 접촉하는 거죠.”

-임상심리와 게슈탈트 상담심리는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게슈탈트도 역시 임상심리학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심리치료 접근법 중의 하나입니다. 정신분석도 심리치료 접근법 중의 하나고요. 인지행동 치료도 그렇고요. 인본주의상담, 현실요법도 그렇고요. 치료자들도 자기 성향에 맞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더 개발합니다. 그래서 조현병이든 중독이든 내가 어떤 치료를 선택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치료자들도 그 수많은 방법들 중에 주로 쓰는 것들이 있어요. 물론 그것만 쓰지는 않습니다. 제대로 훈련받은 심리치료사는 통합적으로 쓸 수 있도록 훈련을 받습니다. 쉽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주로 쓰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랬을 때 내담자가 자기가 필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이 보장될 수 있죠.”

-의료중심의 치료 시스템은 어떤 방향으로 변해야 합니까.

“의료적인 접근이 불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필요한 부분이 분명히 있죠. 문제는 지나치게 의료중심 접근만 강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바꿔야 되느냐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죠. 문제의 해답을 얻으려면 왜 이런 질문이 나오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윤일규 의원 법안은 다 입원을 강화하는 쪽이에요. 입원만 시키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착각을 줘요. 결코 그렇지 않거든요.

지나치게 입원과 약물치료라는 의료적 접근만 강조되는 쪽으로 법안이 만들어지니까 이걸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와요. 그렇다면 답은 매우 쉽죠. 커뮤니티 케어가 강화돼야 하고 커뮤니티 케어가 강화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치료 혹은 보호의 연속성입니다. 굳이 의료적 접근이 아니더라도 지자체에서 할 수 있고 학교에서도 할 수 있어요. 다양한 단위와 단계에서 다양한 심리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거죠.

커뮤니티의 중증정신질환자를 위해서는 그들을 위한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들이 만들어지고 쉼터도 필요하겠지만 장기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는 생활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는 거고요.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이 제공돼야 합니다.”

-정신병원에 쏟아붓는 의료급여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미국에서는 지나치게 병원 입원기간이 길어지면 국가가 지원을 안 해주거든요. 우리가 고려해 봐야 할 중요한 방법론이라고 생각해요. 그쪽으로 안 가면 당연히 커뮤니티 케어 쪽으로 쓰일 수 있는 흐름을 만들겠죠.”

-2017년 보건복지부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기초생활수급 비율이 54.7%입니다. 전체 장애유형에서 가장 높습니다. 이들이 비싼 인지행동치료를 받을 여건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안 되죠. 지금 243개 만들어진 정신건강복지센터들이 1996년부터 만들어지면서부터 목표로 했던 게 그분들이에요. 국가에서 만든 시설이잖아요. 국가에서 그분들을 위해 만든 센터니까 그쪽에 와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죠. 그리고 장기적으로 그분들이 병원에 가서 인지행동치료나 심리치료를 받을 때 급여화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필요하고요. 바우처 제도도 만들어서 예산 편성을 하는 등 시스템을 다양하게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정신요양시설 수용자 65%가 입소 10년 이상입니다. 이들에게 심리치료만 한다고 해서 치유된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저는 정신요양시설이 계륵(鷄肋) 같은 느낌이 들어요. 지금 정신요양시설이 많아지고 있잖아요. 커뮤니티 케어의 다양한 시설들, 응급쉼터, 중장기공동체 생활할 수 있는 곳들이 없으니까 병원을 나가도 살 곳이 없어서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는 수용의 개념으로 흘러가 버린 거예요. 이 왜곡된 방식이 만들어낸 왜곡된 현실의 비대화라고 생각해요.”

-임세원법은 여전히 전문가 중심의 치료모델입니다. 이를 어떻게 바꿔야 합니까.

“윤일규 의원 발의안은 일단 무조건 철회돼야죠. 그 발의안이 나온 과정을 들어보면 더불어민주당의 정신건강정책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랑 협의를 했잖아요. 그런데 정신건강복지법에 보면 정신건강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만 있는 게 아니에요. 심리학자도 있고 사회복지도 간호사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당사자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원하는지 가족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보지 않고 의사들 얘기만 듣고 만들었다는 자체가 문제가 있어요. 임세원 교수 피습 사건이 있었다고 해서 법안을 빨리 만들려고 하지 말고 장기적 안목에서 진짜로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위한 정책과 시설을 만들어야죠.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말 안전하고 인권적인 회복 환경을 만들어주면 되는 거예요. 정신건강정책 환경 혹은 심리사회적 건강 환경을 위한 장기적 안목의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위원회를 만들 필요가 있어요. 그 위원회에는 반드시 당사자와 가족, 인권단체가 들어가야 되고요. 그 다음에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사회복지학자, 간호학자, 보건학자, 법학자, 행정학자, 관료 들이 들어가서 원탁으로 운영되는 회의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피라미드 구조로 만들어져서 정신과 의사가 컨트롤타워에 앉아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흘러왔거든요. 그런 피라미드 구조 말고 당사자와 가족, 인권단체 목소리가 더 많이 담길 수 있는 원탁 회의체를 마련하고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제대로 논의해야죠. 충분한 공청회를 거치고 장기적 안목으로 법안을 만들자는 겁니다.

이탈리아에서 바살리아법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리고 그걸 구현하기 위한 후반 작업도 꽤 오래 걸렸죠. 단시간 내에 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단시간 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까 장기적으로 방향성을 갖고 접근할 수 있는 건강한 회의체를 만드는 게 우선적이죠.”

(c)마인드포스트
조성민 마음산책심리센터장 (c)마인드포스트

-정신병원은 다 폐쇄돼야 합니까.

“그거는 아니라고 봅니다. 바살리아법에서도 이탈리아에서 정신병원에 다 폐쇄된 게 아니거든요. 일단 국립 정신병원들이 폐쇄되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진행이 됐거든요. 지금 당장 정신병원 폐쇄하면 분명히 정신요양시설에 기댈 수밖에 없어요. 기형적 구조가 나올 거예요.

다만 정신병원 입원과 약물치료가 최우선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아야죠. 그리고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이 최대한 보장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죠. 제가 안타까운 건 만성 정신질환자들은 자기결정 능력이 없다고 본다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거든요. 환청이 들리고 현실감각이 없을 수는 있지만 나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할 때 그게 싫고 좋고는 충분히 판단할 수 있어요.

자기 자신이 회복되고 싶고 잘 지내고 싶은 욕구는 본인이 가장 잘 알아요.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게 해 줘야죠. 지금 막 발작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충분히 진정시키고 나서 이야기를 통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충분한 설명 후에 그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죠. 그렇게 되면 누가 외래치료를 안 가겠습니까.

지금 보건복지부가 외래치료명령제를 시행하면서 정신건강복지센터에 개인의 정보를 전달하게 했잖아요. 이건 독재시대에 있었던 사회방위법에 다름 아니에요. 철저하게 인권을 유린하는 법입니다. 왜 자기 명단이 지역사회에 가고 외래치료를 받으라고 하는 걸 정신장애인들이 싫어하겠습니까. 그곳에 가면 내 결정권하고 무관하게 입원을 당하거나 약물치료를 받거나 강박을 당한 트라우마가 있잖아요. 그 트라우마가 있는 곳을 누가 가고 싶겠어요.

내 이름이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간다. 그러면 감시받는다는 생각을 당연히 하죠. 그렇지 않아도 그런 것에 예민한 분들인데. 그러면 그건 더 숨으란 얘기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더 안 오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건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 윤일규 법안은 일단 철회부터 시켜놓고 봐야 합니다.”

-정신장애인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어떤 가치가 필요합니까.

“정신장애인이 자기결정권이 있고 자기결정 능력이 있다고 바라봐야 합니다. 인간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인본주의적 관점이고 실존주의적 관점이에요. 예를 들면 입원재심사도 전문가들이 앉아서 서류만 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만나봐야죠.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의사를 듣고 퇴원을 해야 한다면 지금 준비된 도움 중 어떤 도움을 이용하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게 해야죠. 그런 것이 준비되고 나면 이분들이 왜 필요할 때 병원 올게요라고 얘기를 안 하겠어요.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자기결정 능력이 있고 자기결정 능력이 일시적으로 없는 순간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금방 회복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그 능력이 있건 없건 자기결정이라고 하는 권리가 그 분들에게 있어요. 일시적으로 자기결정 능력이 취약해진 상태라고 해도 자기결정권은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죠. 그게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정신장애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당사자운동이 중독 쪽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시작됐어요. 당사자운동이 조현병 쪽에서 오히려 좀 늦은 편이죠. 그게 늦은 데에는 낙인효과가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이 사람들에게 자기결정권 능력이 없다고 낙인을 찍는 거잖아요. 자기결정 능력이 없다 보니까 자기통제 능력도 없고 그러니까 언제 위험한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시민들에게 유포하는 거잖아요. 이 낙인이 내면화된 부분도 있어요.

많은 조현병 당사자들, 만성 조울증 당사자들이 내가 그렇게 당사자운동을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없었던 거 같아요. 내가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게 불과 몇 년이 안 되지만 지금 조현병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게 저는 감사해요. 안타깝게도 전문가들이 이걸 다 도와줄 수 없거든요. 그런데 당사자들이 당사자운동도 시작하고 마인드포스트처럼 당사자 언론 매체도 만들고 한 게 반갑고 어떻게든 힘을 실어주고 응원을 해 드리고 싶어요.”

박사까지 마친 그에게 학교로 가지는 않을 생각이냐고 물었다. 그는 “이 구멍가게(심리센터) 일 열심히 하면서 제 명함에도 있듯이 춤추는 목수가 되고 싶어요. 상담하다가 시간 나면 마당에 가서 가구 만들고 나무 조각하고 그게 취미에요”라고 말했다. 그와 헤어지고 지하철 안에서 그의 명함을 꺼내봤다. 명함에는 ‘춤추는 목수가 되고 싶은 심리학자’라고 적여 있었다.

(c)마인드포스트
조성민 마음산책심리센터장 (c)마인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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