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수의 Interview] 힘들어도 괜찮아...“부정적인 것들은 그냥 흘려버리세요”
[전인수의 Interview] 힘들어도 괜찮아...“부정적인 것들은 그냥 흘려버리세요”
  • 전인수 기자
  • 승인 2019.03.28 1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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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헤쳐나온 '유명조' 씨 인터뷰
고난을 겪으면 반드시 성장하게 돼
아픔 때문에 응급실 가는 거 두려워말아야
동료와 대화를 나누는 유명조 씨(왼쪽) (c) 전인수

자신이 잘못한 일이 아닌데도 증상은 벼락처럼 나타난다. 대상 없는 분노와 자기 연민 사이에서 헤매는 시간들은 쉽게 극복할 수 없고 공백의 시간은 그대로 상처로 남는다. 여전히 시계는 앞으로 향하고 세상은 저 의지대로 흘러간다. 남아 있는 것은 더 혹독해진 생활의 의무다.

​공황장애는 갑작스러운 발작과 신체 증상들을 동반한 불안장애다. 유명조(33) 씨는 2년 전 처음으로 발작을 겪었다. 죽을 것만 같던 불안에 수시로 응급실을 다녔지만 공황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공황을 겪지 않은 전보다 좋아진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고난은 결과적으로 성장을 담보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처음 증상을 겪은 건 언제인가요?

"​2년 전 처음 겪었어요. 처음엔 숙취인 줄 알았어요. 술 먹은 다음 날이었는데 손발이 저리고 숨이 안 쉬어져서 참다참다 응급실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아무 증상도 안 나왔어요. 그러고 집에 와서 쉬는데 또 숨이 안 쉬어졌어요. 다시 응급실에 갔죠. 의사 선생님은 과호흡 증후군인 것 같다고만 했어요. 같은 증상으로 두세 번 응급실을 갔어요. 아무래도 공황장애 같다고 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됐어요."

-주로 어떤 때 증상이 나타나나요?

"​사람 많은 곳, 넓은 공간에 가면 증상이 와요. 공황 진단을 받고 나서 부모님하고 대형 마트에 갈 일이 있었어요. 무빙 워크를 타고 마트에 들어섰는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시야에 사람들이 꽉 들어차면서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느낌? 그러곤 얼굴 쪽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어요. 그 순간부턴 한 발짝도 못 가겠는 거죠. 더 가면 죽을 것 같고. 혼자 화장실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이어폰 꽂고 소리는 최대한 크게. 괜찮아진 것 같아서 나갔는데 다시 또 증상이 나타났어요. 그래서 바닥만 보고 지하로 뛰어내려갔죠. 차 안에서 한참을 혼자 있었어요."

-공황장애의 증상은 다양한데 가장 힘든 증상이 무엇인가요?

​"저는 과호흡으로 와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숨을 쉬기 힘들어서 내릴 때가 많아요. 심하면 세수도 못해요. 얼굴에 물만 닿으면 숨이 막힐 때도 있었어요. 과호흡이 심해지면 마비가 오기 시작하죠. 처음에는 한쪽 마비가 오고 그 다음은 얼굴 그리고 입이 저려요.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더 심해지면 배 안쪽이 저리기 시작해요. 장기가 굳는 것 같은 느낌. 그때는 구급차를 부를 수밖에 없어요."

토론회를 경청하는 유명조 씨 (c) 전인수

-공황 발작의 불편함은 어느 정도인지 일반적으로 겪는 아픔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요?

"​비교할 수가 없어요. 거의 아무런 행동을 할 수 없는 증상이니까요. 저는 감기 이상을 앓아본 적이 없는데 공황은 생활이 불가능해져요. 굳이 비유하자면 누군가 계속 목을 조르고 있는 느낌하고 비슷해요. 죽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감이 들죠. 그러고는 온갖 생각들이 몰려오기 시작해요. 평소에 갖고 있던 온갖 고민거리들. 기억들."

-공황이 오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추정을 하자면 저 같은 경우는 일하면서 몇 년 간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했는데 잘 되지 않아서가 아닌가 해요. 공황을 흔히 연예인병이라고 하잖아요. 주변의 관심과 기대, 집안의 책임에 부응하지 못했고 거기에서 온 스트레스가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처음 시험을 봤을 때 1차만 붙었는데 전 만족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유명조 씨 (c) 전인수

-장애인 활동지원사(활동보조인)으로 일 하고 있는데 방해가 되진 않나요?

"​제가 직장에 다녔다면 아마 힘들었을 거예요. 활동지원사로 일하는 게 좋은 점이 있다면 대체인력들이 있다는 거죠. 평소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외부활동 나갈 때는 증상이 올라올 때가 있어요. 특히 행사가 있을 때 힘든 순간이 있어요. 장애인 당사자 분들 식사를 도와야 되는데 백여 명이 식사를 하고 있으니까. 그럴 땐 잠시 다른 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쉴 때가 있어요. 당사자분들도 배려해 주시고 같이 일하시는 분들도 배려를 해주는 편이에요. 그분들 배려 덕분에 다행히 계속 일 할 수 있었죠. 처음에는 이 일도 나한테 힘들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신뢰를 쌓았죠."

-2년 전과 비교하면 현재 증상은 어떤가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어떻게 좋아졌다고 생각하나요?

​"일단은 치료라고 생각해요. 제가 알기로는 대부분 정신과 치료까지 잘 안 가는 것 같아요. 아직도 정신과 치료라고 하면 불편해하고 기피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처방받은 약이 많이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이제는 많이 받아들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밖에 나가지 못하고 방에만 있는 사람들이 많이 이해가 됐어요. 엄청 큰 공포가 있었어요. 그때는 산책도 힘들었어요. 두근거리면 죽을 것 같으니까요. 그게 첫째 증상이에요. 이제는 당장 죽을 것 같아도 그게 아니란 걸 알아요."

-공황을 겪고 나서 달라진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남일에 덜 관심을 갖게 됐어요. 주위에 무관심해지려고 노력해요. 다른 사람 일에 관심을 두면 내 일이 되거든요. 어떤 때는 그게 좀 심한 거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가족 외식이 있어서 밖에서 부모님과 만나기로 한 적이 있어요.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고 제가 건너가는데 뒤에서 교통사고가 났어요. 큰 사고였는데 돌아보지 않고 건너갔어요. 사고를 보는 순간 그게 내 스트레스가 되는 게 싫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냉정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돼요. 주변에서 일어나는 스트레스에 노출되지 않으려고 해요. 그렇게 지내니까 더 편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좀 솔직해 졌어요. 하고 싶은 말을 담아두지 않아요. 예전 같은 경우는 대부분 참고 최대한 나쁜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이후로는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마음의 표현이 증상과 연관이 있는 걸까요?

​"의사들은 결과적으로 공황도 스트레스에서 온다고 추정해요. 스트레스가 쌓였다가 몸이 약해졌을 때 갑자기 찾아오는 거라고. 심리 검사 했을 때도 의사표현과 관련된 그래프가 바닥을 쳤어요. 그래서 최대한 표현하려고 노력하죠."

-공항이 일종의 경고 같기도 하네요. 스트레스 상황을 계속 견디지 말고 대응하라는 몸의 신호 같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공황을 겪기 전과 후를 비교한다면 어떤 쪽이 낫다고 생각하나요?

"​완치된 건 아니지만 겪어본 후가 나은 것 같아요. 사람은 어떤 것이든 고난을 겪으면 성장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좀 더 단단해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유명조 씨 (c) 전인수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요?

"​일단은 계속 부딪치려고 노력했어요. 증상이 나타나는 곳, 사람이 많고 넓은 곳들 그런 곳들도 계속 가려고 했어요. 제 성격이 어떤 일이든 대체적으로 받아들이는 성격인데 그런 성격 때문에 공황이 온 것 같아요. 그런데 공황도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러려니 하는 천성 덕분에 잘 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누가 나쁜 소리를 해도 그냥 저런 사람이 있으려니 생각하는 성격이에요. 세상에는 한 없이 좋은 사람도 많으니까. 그리고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까. 그건 그냥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어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능력이 더 늘었어요. 부정적인 것들은 그냥 흘려버려요. 그리 깊게 듣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이 들면 그냥 보내버리는 거죠."

-같은 증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응급실 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응급실 간 게 미안할 정도로 나올 때는 굉장히 멀쩡하게 나와요. 민폐 같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빨리 나아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응급실에 많이 가서 의사나 간호사 분들이 알아볼 정도에요. 가끔은 너무 금방 괜찮아져서 미안하고 뻘쭘하긴 하지만 치료가 먼저니 어쩔 수 없죠. 괜찮아 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돼요. 위급한 게 아니고 절대로 죽는 게 아니다. 그런 마음을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향후 다른 직업을 갖게 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계속 도전을 할 것 같아요. 공인중개사를 준비하면서 사람 상대하는 업종도 생각중인데 계속 해볼 것 같아요. 환경은 달라지고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계속 부딪치고 익숙해지는 방법 밖에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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