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실효성 있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요구한 인권위 의견표명을 환영한다
[칼럼] 실효성 있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요구한 인권위 의견표명을 환영한다
  • 오현성 교수
  • 승인 2019.03.21 1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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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표명에 대하여

지난해 7월 경북 영양에서 '살인전과'가 있고 급성기 증상을 겪는 조현병 환자에 의해 경찰관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마자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온갖 개정안을 발의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올해 1월 25일에 발의된 윤일규 의원의 개정안은 화룡점정이었다. 이 발의안들은 공통적으로 3가지 특징을 공유한다.

첫째, 급성기 증상을 겪는 정신질환 환자가 폭력 범죄의 가해자가 될 위험을 낮추는 근원적인 정책들이 '전혀' 상기에 언급된 개정안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급성기 증상이 발생하는 환경을 개선하거나, 급성기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대하는 의료진과 경찰인력이 위기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교육/훈련을 제공하거나, 연구에서 효과성이 검증된 위기개입팀(crisis mobile team)을 운영하는 것 등이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으로 고려될 수 있다.

이런 효과적인 대책들이 탈원화된 서구 국가들에 의해 이미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선진적인 접근을 제시하는 내용은 개정안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임세원법'들, 급성기 대응 정책 논의 빠져

둘째, 지난 2017년 한 해 동안 살인범죄는 총 858건에 달했다. 필자가 이 자료를 발견하고 느낀 점은 살인사건이 정말로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루에 약 3건 가까운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이 가운데 약 373건(43.4%)은 술에 취한 사람들에 의해 일어났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살인을 이렇게도 많이 저지르는데도 '금주법'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해 7월에 조현병 급성기 증상환자가 살인을 저질렀더니, 갑자기, 무려 개정안 5개가 삽시간에 등장했다. 이 개정안들은 대체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제17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을 무시하고 있었다.

지난 촛불시위 당시 그렇게도 헌법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갔는데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은 2018년 하반기에 이러한 반(反)헌법적 행위가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편견과 혐오에 근간을 둔 포퓰리즘'이라고 부른다.

셋째, 증증정신질환을 가지고 살아가더라도 당사자들은 시시각각 급성기 증상이 발현돼 폭력적인 행위를 보이지 않는다. 잔류 증상이 일상기능에 영향을 미치지만 복약관리나 자신만의 증상 대처 및 통제 기술을 잘 활용한다면 일부 환자들은 급성기 증상을 겪지 않고 오랜 시간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

급성기 증상 발생 확률을 낮추기 위해서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상담치료, 동료지원가 서비스, 직업훈련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급성기 증상의 전조 증상이 느껴질 때면 안전한 공간에 가서 증상을 낮추는 서비스 등을 이용해야 하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광역 및 기초정신건강센터에서 일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원하는 수준에는 상당히 못 미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역사회 정신보건서비스를 늘리기 위해서는 정신보건 예산을 증가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다.

중앙정부에서 2019년에 1700억 원만 정신보건사업을 위해 예산 배정을 했으니 적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정신보건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재원의 대부분은 건강보험과 의료급여 제도에서 지출한다.

정신보건 예산 접근에 전문요원 소외, 다양한 서비스 못 만들어

지난 2017년 4조5천억 원을 정신 및 행동장애 치료를 위해서 사용했는데 이 정도 정신보건관련 지출이면 다른 OECD 국가나 소득이 높은 국가들에 비해 그렇게 적은 지출도 아니다. 대부분의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 지출은 정신병원 입원을 위해 사용된다.

나머지는 지역사회에서 급성기를 경험하는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지 않는 정신과 전문의 1인이 자영업처럼 운영하는 정신과 의원이 사용한다. 이 돈에 대해 의사 자격증을 갖고 있지 않는 정신보건전문가들이 접근하기 매우 힘들게 해 버리니 도저히 다양한 서비스들을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예컨대 급성기 증상을 경험할 위험을 낮추는 상담치료, 동료지원가 서비스, 직업훈련, 급성기 증상의 전조증상이 느껴질 때면 안전한 공간에 가서 증상을 낮추는 서비스 등이다.

정신의료기관이 2017년에 사용했던 사회적 자원의 약 4%만 정신재활시설에 주면서(2017년 현재 1890억 원) 어째서 퇴원한 환자들이 복약 관리도 제대로 못하고 다시 재입원하느냐고 정부와 언론이 윽박지르고 있는 것이 오늘날 모습이다.

이런 식으로 돈이 사용되면 정신질환을 겪는 환자들은 지역사회에서 급성기 증상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당뇨병이 진행되어 주기적으로 인슐린 주사가 필요한 환자에게 '인슐린 주사를 맞으려면 병원에 입원해서 맞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체계다.

개정안은 이런 현실을 내버려두고서 'F코드 진단을 받았으며 약을 먹지 않을 것 같다'는 지극히 의사의 개인적 생각으로만 개인정보에 대한 천부적 권리를 포기해버리라고 요구하는 파시즘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와중에 국가인권위원회가 훌륭한 결정을 했다. 인권위는 "정신질환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에 해당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률안 개정의 목적 달성을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필자는 "적합한 수단이라고 보기도 어렵다"에 더 무게를 둔다. 인권위는 아래와 같이 판단의 근거를 제시했다.

첫째, 개정법률안은 자・타해 위험성이 있거나, 특정강력범죄전력이 있거나, 치료중단의 위험성이 있는 정신질환자의 퇴원 사실 또는 특정범죄전력을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장 등에게 제공함으로써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하겠다는 것이므로 그 효과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전문인력이 해당 환자들을 충분히 사례관리 할 때 비로소 달성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정신건강복지센터 사례관리요원 1인이 평균 70~100명의 환자를 지원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대한 인력 보강 및 기능 강화 등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없이 동의도 하지 않은 환자의 퇴원 사실을 공유한다고 해서 입법 목적이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의견표명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의견표명

 

지역사회 정신보건서비스 강화하라는 게 인권위 명령

다시 말해, 개정안은 어줍잖게 입원을 더 쉽게 시키려 하지 말고 지역사회에서 환자들을 통제하려 들지도 말며 제대로 된 지역사회 정신보건서비스를 만드는 데 에너지와 노력을 쓰라고 인권위가 명령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 100% 동의한다.

현재 한국정신장애연대 카미는 인권위가 당부하는 내용에 부합하는 개정안을 만들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의견만 물은 다음에 깜짝파티처럼 등장한 민주당 윤일규 의원의 개정안과는 다른 방식을 사용해 입안 작성 중이다.

한국정신장애연대 카미는 법안을 만들면서 자체 조직과 연결된 다양한 사람들과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복수의 환자단체, 가족단체, 정신의학전문의뿐만 아니라, 다른 전문가 조직들 역시 이 법안의 골격을 살펴보고 있다.

이 법안의 내용에 대해 활발히 논의하면서 실질적으로 환자, 가족, 정신보건전문가, 경찰, 국민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혹시라도 좋은 생각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연락을 바란다. 최선을 다해서 반영할 것이다. (이메일 주소: hyunsung@asu.edu)

오현성 미 애리조나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오현성 미 애리조나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오현성 교수님은...

(사)한국정신장애연대(KAMI) 정책 및 연구 자문위원

마인드포스트 논설위원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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