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의 정신병동 일기] '아' 하세요 (3)
[이수연의 정신병동 일기] '아' 하세요 (3)
  • 이수연
  • 승인 2019.03.29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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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에서 일 년의 시간을 보내고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 작가 이수연의 첫 정신병동 일기

정신병동일기 3화

'아'하세요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c) 놀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c) 놀

 

2016년 8월 00일

 

나는 아주 어릴 적을 제외하면 병원에 입원해 본 적이 없다. 내겐 ‘입원' 자체가 낯선 일이다. 특히나 정신병원은 더욱이. 일반 병원 입원이 어떤지는 모르나 정신병원이기에 특이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일단 물건을 모두 검사한다는 것. 밖에 나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하나가 투약을 하고 먹었는지 확인을 하는 것이다.

첫날 저녁 투약시간이 됐다. 병원마다 투약 방식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본인 확인을 하고 투약을 한다고 알려줬다. 내가 있던 병동은 각자 병실에서 대기하면 카트를 밀며 간호사님이 병실을 돌며 투약을 했다. 투약 전에는 방송이 나오고 각자 컵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간다. 며칠 사이, 나는 방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은 채 그저 앉아있었다. 내 투약은 마지막 순서였다.

성함, 생년월일이요.

투약을 온 간호사님이 물었다. 나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댄 뒤 손목에 있는 팔찌를 확인하고 약을 받아 삼켰다. 약은 무엇이 그리 많은지 한입에 넣기도 힘들 정도였다. 무슨 약인지 설명은 들었으나 기억은 나지 않았다. 그저 주는 대로 먹는 것이었다.

'아' 하세요.

간호사님이 이어 말했다. ‘아?’ ‘아'를 왜 하라는 거지. 의아해하며 작게 입을 벌렸다. 간호사님은 입안을 한번 확인하고 나서야 병실을 나가셨다.

나중에야 간혹가다 약을 먹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한번에 먹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그 '아'가 얼마나 부담스럽던지. 나중에는 익숙해져 모든 병원이 그럴 거로 생각한 적도 있다. 그래서 일반 병원에 입원한 지인 분께 그곳도 약을 먹고 확인을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내가 아픈데 당연히 먹죠.

그 지인 분의 대답이었다. 나는 정신병원이라 그랬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물음도 나였기에 가능한 물음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일반 병원에 입원한다면 나는 습관적으로 '아'를 할 것만 같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병동의 어린 친구가 토를 하며 간호사님의 부축을 받는 모습을 보았다. 약을 숨겨놓았다가 한 번에 과다복용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확인을 해도 그런 상황이 펼쳐지는 곳이 정신병동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약을 먹고 억지로 토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입안에 숨겼다가 다시 뱉는 예도 있었다. 솔직히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아파서 먹는 약인데, 왜 먹지 않는 것인지. 그런 사람들은 약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다.

그런 약 먹으면 바보 된다. 나중에 약 끊기도 힘들대.

병원에선 쓸대없이 약을 많이 쓴댄다. 주는 대로 다 먹지 마.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약을 꾸준히 먹었다. 약이라도 없으면 잠을 못 잤고, 불안함에 손을 떨었다. 병원 밖이라면 술이라도 먹었겠지만, 병원 안에선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물질은 오직 제 시간에 나오는 약 뿐이었다. 약 기운에 잠에 드는 시간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때였다.

밤사이 끄지 않은 불에 눈이 부셔 제대로 못 잤다. 불을 끄면 안 되겠느냐는 말에 잘 때도 확인을 해야 하므로 안 된다는 답을 받았다. 자다가 병실에 들어와서 확인하는 간호사님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의료진은 ‘필요에 의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고를 치는 사람들을 보며 그것이 왜 필요한지 가끔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는 병실에서 바지로 목을 매려 했고, 누군가는 덜 깬 술에 병동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밤새 고양이가 있다며 환각을 쫓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 입원한 정신병동은 정말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빨리 밖에 나가고 싶었지만 무작정 퇴원을 얘기할 수도 없다. 보나마나 가족들에게 연락이 갈 테니까. 첫날에는 병동을 빙글빙글 돌며 걷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며칠만에 이유를 알 것 같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그렇게라도 걷기 위해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나도 함께 걷고 있겠지. 이곳의 하루는 길고 지루하다. 사람들은 TV를 보지만, 나는 TV도 싫다.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편하지만, 한편으론 막막하다.

드디어 저녁이다. 약을 먹고 잠이 들어야지.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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