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수의 Interview] "산후우울증...그 원인을 알고 나서 해결할 힘이 생겼어요"
[전인수의 Interview] "산후우울증...그 원인을 알고 나서 해결할 힘이 생겼어요"
  • 전인수 기자
  • 승인 2019.04.04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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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잠 못자고 1년 뒤 우울증 시달려
누군가를 책임지는 건 어렵고 무서운 일이라 생각
우울증 겪으며 문제해결 능력 제로...고통스러웠던 기억
(c) 셔터스톡

 

출산을 하고 나면 산모는 신체적·정신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의 통증과 호르몬의 변화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는 쉽게 산후우울증으로 이어진다. 남편 등 주변 사람들에게 충분한 지지를 받지 못할 경우 증상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2~3주 안에 우울감이 가라앉지 않는다면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자책이나 자학은 금물이다. 산모는 이미 아이에 대한 책임감으로 인해 막대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갖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회가 어머니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것과 달리 오히려 어머니는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24시간 쉬지 않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는 엄청난 체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김지현(가명.여.33) 씨는 한때 산후우울증으로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을 견뎠다. 지현 씨는 증상을 느꼈을 때 무엇보다 전문기관에 상담을 받는 것이 중요다고 말한다.

-어떤 증상을 겪었나요?

"남들은 임신하면 잠이 온다고 하는데 저는 반대로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임신 5주부터 20주 까지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입덧을 계속해서 몸무게가 8kg 정도 줄었죠. 정말 하루가 다르게 줄어 병원에 가면 몸무게를 속여 적을 정도로 무섭게 빠졌어요.

임신 기간 내내 잠을 못자고 수액을 맞아도 입덧에 두통 부종까지 엄청나게 고통스러웠어요. 출산을 하고 나서도 잠을 못 잤어요. 잠을 못 잔지 1년이 넘어가자 이때부터 우울증이 시작된 것 같아요."

-산후우울증이라고 자각한 계기가 있었나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한 달도 안 돼서 입원을 했어요. 조리원에서 RS바이러스라는 것에 옮아왔는데 저는 그때 아이가 죽는 줄 알았어요. 퇴원하면서부터는 모든 것이 스트레스였죠. 모든 사람들이 바이러스 병균 덩어리로 보여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아이에 매달렸어요. 24시간 긴장을 놓을 수 있는 시간이 없었어요.

계속해서 최고조의 스트레스였고 아이는 신생아라 당연히 잠을 자지 않았죠. 하루 1시간 이상 못 자게 되니까 이상하게 잠을 자면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몰려왔어요. 나중에는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도우미를 1주일 정도 쓰게 됐어요.

그런데 도우미가 아이를 봐주는 동안 잠에 들려하거나 눈을 감으면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소리를 지르며 문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심장이 빨리 뛰고 당장 죽을 것 같은 공포였어요. 발작 같은 증상은 몇 개월 지속되다가 호전 됐지만 몸이 아프고 잠을 못자니 우울감은 계속됐어요."

-당시의 기분을 설명해 줄 수 있나요?

"당시에는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 생각만 했어요. 아무한테도 이야기 하진 않았지만 정말 죽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있으니 이 아이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죽을 수도 없었어요. 웃긴 건 그 책임감 때문에 또 죽고 싶었다는 거죠.

그때는 아이가 저에게 너무 큰 부담이었어요. 이때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 일인지 알게 됐어요. 매일매일 새로운 문제가 다가왔고 저는 그걸 해결 할 수 있는 힘이 없었어요."

-당시의 자신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면 뭘까요?

"물 먹은 솜? 일단 몸이 회복되지 않아 면역이 약해 계속 아팠어요. 타이레놀이 없으면 하루를 버틸 수 없었고요. 몸도 무겁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어요."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나 혼자 생명을 책임진다는 부담감이 가장 힘들었어요. 고통을 나눠 가질 사람이 없는 거죠. 또 처음 아이가 아팠던 것이 정말 큰 트라우마로 남았어요. 그래서 바깥세상이 너무 무서웠어요. 모든 게 다 더러운 것들이라 생각해서 5~6개월가량 아이와 둘이 집에만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더 우울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모든 일이 처음이라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아이의 작은 울음소리 하나도 저에겐 정말 큰 스트레스였고 고통이었어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나요?

"저도 주위 사람도 제가 우울증이 있었다는 걸 몰랐어요. 그저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죠."

 

(c) 셔터스톡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제가 발작 같은 증세를 보이거나 우울감을 보였을 때는 몸이 안 좋아서, 잠을 못 자서, 아이 낳은 지 얼마 안 돼서 당연히 그러는 줄로만 알았어요."

-남편이나 가족들은 어떤 도움을 주었나요?

"친정에서 많이 도와줬어요. 말동무가 돼 주시거나 집안일을 도와주시기도 했고요.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가다가 넘어져 발 인대가 늘어났을 때는 병원을 갈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셨어요."

-스스로 해결하려고 어떤 노력들을 했나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일단 몸이 안 좋고 잠을 못 자는 상태가 오래 되다 보니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었어요. 문제 해결 능력이 제로에 가까웠어요. 그래서 더 고통스러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모유 수유를 해서 먹을 수 있는 약도 없었어요."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돌 전까지는 아이가 하루에 4시간 정도 통잠을 자고 거의 깨어 있었어요. 그리고 두 돌까지는 이가 나서 잠을 거의 안 잤어요. 두 돌이 지나니 아이가 자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저도 자게 되어서 상태가 조금씩 호전됐죠. 또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지 궁금해 전문기관에서 상담을 받게 됐는데 그때 제 상태가 정확히 어떤지 알게 되면서 나아졌어요."

-지금은 많이 호전이 되었나요?

"아이가 두 돌이 지나고 세 돌이 가까워졌는데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어떻게 호전됐다고 생각하나요?

"전문기관의 상담을 받게 되고 몸이 예전보다 회복이 되면서 호전된 것 같아요."

-같은 문제를 겪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제가 겪는 고통이 아이가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겪는 과정 중에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사회에서는 엄마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고 남성들은 육아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배우자의 고통을 모르고 지나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힘들다 목소리를 내면 애 하나 낳은 것 갖고생색내는 사람이 돼버리곤 해요. 그러다보니 저처럼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힘들면 적극적으로 힘들다고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만약 주위에서 도와주지 않는다면 전문 상담기관을 적극 활용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전문기관에 가기 전까지 제가 정신적으로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몰랐어요. 제가 힘든 원인을 알게 되면서 그 문제를 해결 할 힘이 생긴 것 같아요. 상담하면서 위로도 많이 받았고요."

 

*인터뷰이의 요청으로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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