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일 “치유요? 현재의 익숙함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보는 거죠”
김진일 “치유요? 현재의 익숙함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보는 거죠”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3.28 01: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일 경기도정신건강복지센터 가족대표단 대표 인터뷰
가족모임 ‘패밀리링크’ 통해 정신장애 교육 받아
장기지속형 주사 맞으면서 치료 효과 극대화돼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존재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예산,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삶에 써야
일당정액수가제 해체하고 행위별수가로 변해야
강제입원을 의사가 결정하면 의사 수익 창출에만 도움
퇴원 후 지역사회 계획 짤 기관이 부재…도움 못 받아
아픈 당사자가 도움 받을 곳 없어 집에만 있어
당사자 존중하는 말투와 겸손한 질문 태도 지녀야
정신병원 안 가려는 건 열악한 환경의 트라우마 때문
결혼은 양가 부모가 투명하게 알고 어려울 때 도움 줄 수 있어야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딸은 대학교 4학년 때 휴학을 했다. 쉬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신장애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던 그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복학해서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 믿었다. 딸은 집에 오면 조용히 있는 편이어서 증상을 눈치 채지도 못했다.

어느 날, 딸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딸이 헛소리를 하며 이상하다고 했다. 그 친구는 자신이 자주 다니는 약국의 약사에게 딸의 증상을 얘기했다.

마침 약사의 남편이 정신과 의사였다. 정신과 의사는 정신질환이니까 빨리 입원시키라는 연락을 해왔다. 딸의 증상은 더 심해졌다. 아파트 위층에서 자신을 감시를 하고 있다고 중얼거리며 형광등을 뜯어내기도 했다. 천만다행이었을까.

자식이 정신장애가 생기면 부모는 우선 당황하거나 멍해 한다. 이건 뭘까 싶은 것이다. 그리고 굿을 하고 기도원에서 치료라는 이름의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어쩌면 아이가 나을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듯 전국의 이름난 무속인이나 종교인이 있다면 아이를 데리고 찾아간다. 그리고 그 찾아감이 모두 무의미해졌을 때, 그때서야 부모는 아이를 정신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다.

그는 다행히 딸의 친구를 통해 정신과 의사를 바로 만날 수 있었고 별다른 우회의 과정 없이 ‘바로’ 딸을 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입원 이후부터 가족은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상하게도 병원에서는 지역사회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았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이의 퇴원 이후의 삶이며 그것은 재활의 의미를 지닌 정신건강복지센터로의 전략적 연계가 필요하지만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 역시 버스운전을 할 때 시내 플래카드에 적힌 정신건강증진센터라는 명칭을 발견하고 그곳에 전화를 했고 그때서야 센터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후 딸은 센터를 다니면서 회복의 길로 들어섰다. 결혼을 했고 딸의 딸인 손녀는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돼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삶의 소박함에 대한 감사를 알게 된다. 2주에 한 번씩 가족들끼리 모여서 식사할 수 있다는 것, 일반인들과 같은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 것. 그것은 딸과 보내야 했던 어두운 시간들을 밀어내면서 스스로 찾게 된 생에 대한 감사 의식이었다. 지금은 살고 있는 경기 화성시 가족대표로 일하면서 동시에 경기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31개 시군 가족대표단 대표로 정신장애인 인권 활동을 해 나가고 있다.

김진일(66) 대표를 만난 건 27일 수원 성균관대역 인근의 너른 마당이 있는 찻집에서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진일 경기도정신건강복지센터 가족대표단 대표 (c)마인드포스트
김진일 경기도정신건강복지센터 가족대표단 대표 (c)마인드포스트

-의사에게 직접 가서 상담을 했습니까.

“두 번 세 번. (딸의) 친구가 소개해 준 데요. 그 당시에 정신과 병원을 몰랐죠. 이걸 어쩌지 하면서 알아보거나 하는 과정 대신 딸 친구가 알려준 병원으로 가서 바로 상담했죠.”

-남들처럼 우회하지 않고 바로 정신병원으로 갔네요.

“병원에 딸이랑 같이 가야 되는데 그때 안 가려고 거부를 하고 발버둥을 치니까 (처음에는) 그냥 집으로 돌아왔죠.”

-따님은 몇 번 입원했습니까.

“다섯 번요. 거의가 강제입원이었죠. 강제입원 기준을 표현하기 그렇지만 우리 아이는 그런 (강제입원) 상황이 벌어지면 사설응급이동반도 이용할 수 없었어요. 처음 그러다가 나름대로 수용을 하면 자기 발로 걸어가죠. 처음 과정만 그렇게 심했던 거죠.”

-따님이 병을 알게 되면서 심정이 어땠습니까.

“처음에는 멍했죠. 이게 뭐지 이렇게.”

-따님의 병을 받아들이는데 수개월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짧은 기간에 병을 받아들이신 거 아닙니까.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고 중간 정도. 그 당시만 해도 병원의 입원실이 열악했어요. 그 정신병원은 다세대주택을 리모델링 안 하고 그대로 쓰고 있는 거야. 같은 층의 여자들만 있는 병동에 우리 딸애 같은 환자가 있으면 괜찮은데 증상이 더 심한 사람이나 알코올중독자들이 자꾸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심하면 서로 의견충돌이 되잖아요. 입원 3주 후에 면회를 가니까 딸이 울면서 퇴원시켜달라고 하더라고요. 한 달 반 만에 퇴원했어요.”

-따님이 어떤 계기로 그 병을 받아들이게 됐습니까.

“첫 번째 입원한 병원에서 치료가 잘 되고 회복이 좋아서 퇴원 후 일 년 동안은 외래를 잘 다녔어요. 그러다가 남자친구가 생겨서 결혼을 시켰죠. 외래 잘 다니니까. 결혼하고 임신이 돼서 약을 6개월 끊으니까 (재발) 증상들이 나타났죠.”

-26살에 발병하고 결혼은 몇 살 때 했습니까.

“28살에 결혼했죠.”

-임신을 하면 약을 안 먹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성인이면 아름아름 알게 되더라고요. 약은 안 먹고 산부인과는 주기적으로 다녔죠. 발병을 하니까 입원을 시켰죠. 입원하고 나서 산부인과에서 진단을 받아보니까 아이가 2주 정도 성장이 늦다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거기서 감당을 못하니까 아주대병원 산부인과로 연결을 시켜줬죠. 아주대병원 초진 갈 때는 가족들하고 정신과 환자니까 입원했던 정신병원의 담당자하고 같이 갔죠.”

-정신병원 가서 약은 복용한 겁니까.

“먹었죠.”

-임신했는데?

“그렇죠.”

-위험하지 않습니까.

“의사 선생이 어느 정도 자신을 하더라고요. 약 먹어도 안전하다고. 너무 걱정말라고 (했어요).”

-임신하고 6개월 정도 있다가 발병해서 입원했다가.

“자연분만했죠.”

-따님은 초등학교 5학년 딸까지 있다고 했습니다. 정신장애인 중 사회적 재기에 성공한 경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죠. 그 과정들이 보여지는 것과 보여지지 않는 부분이 있잖아요. 보여지는 부분은 편안하고 행복한 부분이고 보여지지 않는 부분들은 부부싸움도 하고 세상 사람들 살아가듯이 하며 살잖아요. 그렇지만 잘 극복해 나왔고요. 제가 신경을 많이 썼죠. 2012년에 누가 패밀리링크를 가르쳐줘서 교육을 받고 딸아이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 거죠. 그 배움의 길이 저에게 많은 선택의 길을 열어줬어요.”

-약 복용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본인이 안 먹으려고 하니까. 왜냐하면 약을 먹으면 무기력 때문에 힘이 드는 거야. 아무것도 하기 싫은 거죠. 정신과 약을 먹는 사람들이 그런 걸 표현을 잘 못하잖아요. 가족들도 모르는 경우가 있죠. 쟤가 왜 저러지? 왜 게으르지?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해요. 자기는 약을 먹는다고 해도 가족이 보면 약을 안 먹고 있다는 걸 알잖아요.

의사하고 상담해서 사실을 이야기해도 소통이 안 돼요. 제 말을 믿어주지 않아요. 자기가 볼 때는 잘 지내니까 의사 책임을 다 했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병원을 옮겼어요. 패밀리링크 가족들이 소개를 해 줬어요. 입원을 시키려고 딸애 신랑이랑 논의했죠. 신랑은 결혼할 때 딸이 환자라는 걸 몰랐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알 게 된 거죠. 병원에서는 신랑이 보호자니까 신랑에게 전적으로 맡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신랑하고 병원 담당자와 면담을 해서 입원 계획을 잡고 입원을 했어요.”

-한 달에 한 번 맞는 장기지속형 주사를 맞으면서 치유가 시작됐다고 했습니다.

“입원을 하면 환자 면담도 하고 가족면담도 하는데 의사 선생이 따님이 약을 안 먹어서 재발을 하니 주사제로 바꾸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잘 부탁합니다라고 말했어요. 한 달쯤 지나서 면회를 갔는데 잘 지내더라고요. 효과가 있었죠.”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다른 분들에게 소개시켜줄 마음도 있습니까.

“그렇죠. 많이 광고를 해줬죠. 그때는 보급률은 5%였어요.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쓰는 병원들이 거의 없었어요.”

-부작용은 없었습니까.

“전혀 없었어요.”

-따님이 발병하고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찾아간 게 5년 뒤라고 했습니다. 그 전에는 그 존재 자체를 몰랐나요.

“몰랐죠. 누가 얘기 해 주는 사람도 없고. 그때는 제가 시내버스 운전을 했었어요. 수원대에서 분당을 가는 코스예요. 수원 시가를 지나는데 도로변 옆에 소방서 건물이 있고 거기 정신건강증진센터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어요. 그걸 보고 전화를 했죠. 뭐하는 곳이냐고 물으니까 정신질환자들을 등록해서 관리하는 곳이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사는) 화성시에도 있냐고 물어보니까 있대요. 그래서 화성에 등록을 했죠.”

-따님 병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많이 달라졌죠. 무엇보다 가족들 서로간의 관심이 커졌어요. 서로 무관심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식사를 한다든지 하면서 소통을 많이 했죠.”

김진일 경기도정신건강복지센터 가족대표단 대표 (c)마인드포스트
김진일 경기도정신건강복지센터 가족대표단 대표 (c)마인드포스트

-경기도정신건강복지센터 31개 시군 대표자 회의에서 지난해 경기도광역가족회장으로 선출됐습니다. 이 조직은 어떤 일을 합니까.

“정신보건법이 있다는 소리만 들었지 가까이 와 닿지 않았어요. 장애인복지법 15조 때문에 우리는 혜택을 못 받는다는 말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걸 가족들이 이해하고 알아듣게끔 풀어서 얘기해 주는 분들이 없었어요.

정신건강복지법 만들어지니까 전문가, 의사, 교수 들이 큰일났대요. 잘못된 부분이 많다고. 그러면서 전문가들이 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더라고요. 그래도 와 닿지 않았어요. 당시 국회나 단체에서 세미나나 포럼이 많았어요. 거길 다니면서 이런 거구나 하고 알게 됐죠.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시행되면서 저희가 경기도청에 경기도 31개 시군에 도가 책임을 지고 교육을 시키게끔 해 달라고 요구를 했어요.

2017년 11월에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부센터장을 만났는데 이 분이 앞으로 경기도는 가족의 소통을 단일화하겠다고 해요. 정신장애인 가족이나 패밀리링크 가족 교육 등이 서로 혼란스러우니까 단일화하고 선거를 하겠다고 했어요. 정신건강복지법에 의해서 행정도 변화가 온 거죠. 그리고 정신건강 증진 관련 업무를 했던 사람들은 가족들보다는 훨씬 많은 걸 알고 있잖아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고 가족들에게 방향 제시를 해 준 거죠.”

-정신건강복지센터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센터와는 업무적으로 밀접한 관계죠. 우리는 다른 단체와 다르게 공공성의 단체대표에요.”

-전국 최초의 시군정신건강복지센터 연합입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센터의 역할은 중증질환자 회원들을 관리를 국가 차원에서 하라고 만들어준 거 아니에요. 근데 이것이 제도권 안에 있지만 위탁이나 계약직이라는 거 때문에 현상 유지만 하지 성장이나 활성화가 안 되는 거예요.

제가 들어가서 보니까 센터 내 가족의 비중은 20~30%밖에 안 돼요. 가족의 역할을 활성화시켜주면 가족의 비중도 늘어나겠죠. 그러면 정책적인 계획을 가족들이 정부에 요구를 할 수 있는 거죠. 저는 가족이 주도가 돼서 센터와 회원이 같이 동반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와 관계가 있습니까.

“아무 관련이 없어요. 정신건강복지센터는 공공성 있는 정부 라인이잖아요. 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가 우리 센터와 연관이 깊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서 도움이 받은 게 1%도 없어요.”

-정신장애인 의료급여 환자들이 일당정액수가제로 평등권이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비참한 거죠. 복지부 홈페이지에 청원 게시판이 있어서 의료수가 개선방안 관련해 의견을 받아요. 그래서 전문가, 가족들이 합해서 제한을 했어요. 장기입원하면 일인당 150만 원이 병원에 들어가잖아요. 그 돈이면 얼마든지 지역사회에 나와서 생활할 수 있어요. 우리는 그런 사람은 일 년에 한 명이라도 시범적으로 사업을 해야 한다고 얘기했어요.

법이 바뀌면서 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거죠. 가족들이 정신건강복지법 생기고 나서 많이 바뀌었어요. 복지부도 2022년까지 정액제로 묶여 있는 걸 행위별수가제로 전환한다고 말했죠. 의료수가제 묶여 있는 사람들이 화성에도 많아요. 통계적으로 보면 병원 입원 환자의 70% 이상이 의료급여환자예요. 복지부가 현실화시키는 걸로 단계적으로 해 나가기로 얘기가 됐어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강제입원 심사를 가정법원이 하도록 하는 사법입원제를 최근 보류시켰습니다. 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미국 같은 경우에는 사법입원을 판사가 결정을 내려주는 거잖아요. 그러면 당사자가 입원을 했어도 판사하고는 연결고리가 없잖아요. 판단만 정당하게 하는 거죠. 그런데 의사가 판단해서 강제입원을 하면 수익이 의사에게 늘어나는 거죠. 이런 차이점이 있죠.

공정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법부가 관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년 하반기에 복지부가 통계치를 내놨는데 강제입원 몇 퍼센트 줄고 입원환자 몇 퍼센트 줄고 하는데 전 그걸 믿지 않아요. 줄어든 그 몇 퍼센트가 어디서 어떻게 됐다는 내용이 없잖아요. 실제 준 건지 늘어난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 중에는 병원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도 있잖아요. 퇴원 일정이 돼서 퇴원해야겠다고 병원 스스로 내보내는 것도 있고요. 애당초 병원에 없어도 되는 사람들을 내 보낸 거잖아요. 통계적 숫자로 복지부가 얘기한 거지 실질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국가인권위가 당사자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넘기는 걸 기본권 침해로 규정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잘 한 거죠. 병원에서 퇴원해서 그 이후 센터와 연결 시켜주기 위해서는 본인에게 충분한 전달을 해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렇지 못한 병원이 많아요. 그렇게 사람한테 하나하나 매달려서 방향 제시를 해주는 곳이 많지 않다는 거죠.”

-방향 제시가 무슨 말씀입니까.

“예를 들어 내가 퇴원을 하면 나름대로 계획을 짜서 어디를 가야 되고 하는 걸 알려줘야 하는데 그런 데가 하나도 없잖아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기능이 약하고 인력도 부족하고 예산도 없습니다. 어떻게 바꿔야 합니까.

“저도 어떻게 바꿔야 할까는 수년간 고민했는데요. 예를 들어 화성의 경우 제가 7년차 가족대표 일을 하고 있어요. 꾸준하게 보건소, 의회 다니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정신건강복지법에 보면 복지서비스가 33조부터 38조까지 내용이 있는데 국가가 해야 될 일도 많이 있지만 지자체가 책임지고 할 수 있는 내용들이 훨씬 많아요. 전문가들 얘기가 맞아요.

복지법을 만들어 놓고 복지부는 돈 일 원도 내놓지 않았잖아요. 그러면서 지자체가 알아서 하라고 유연성을 부여했죠. 그 부분들은 가족들이 만들어가야 해요. 2018년 경기도가 서울에만 있는 전환시설 포천, 김포, 수원 등 3곳을 만들었어요. 전환시설은 퇴원해서 집으로 바로 갈 수 없는 사람을 3~6개월 훈련시켜서 내 보내는 거죠. 큰 의미가 있죠.

여태까지 경기도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복지법이 만들어지면서 밑에서 이걸 꼭 해야 된다고 해서 관철이 됐다는 거죠. 공무원에게 요구를 할 때도 근거를 가지고 타당성과 필요성을 갖고 제시를 해야 돼요. 그런데 얘기를 하면 관련 부서에서 듣는 사람은 한 쪽으로 듣고 한 쪽으로 흘려요. 그걸 흘려듣지 않게 쐐기를 박아주는 게 누구냐면 가족들의 활동이에요. 가족의 역할이죠.”

-정신장애인 치유에 가족의 역할이 90%라고 했습니다. 이 경우 가족에게만 치료의 짐을 던져놓는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아픈 내 아이가 갈 곳이 없잖아요. 그럼 그 아이는 할 일이 없으면 거리를 떠돌아다니든지 집에만 있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가족이 다 안고 가는 식이잖아요. 센터도 옛날에는 주간재활 프로그램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했어요. 이걸 3일로 줄였어요.

처음에는 저희도 몰랐어요. 가족들이 아우성이 났지. 그걸 논리적으로 풀어주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센터 가면 이렇게 방침이 바뀌었어요 그러면 끝이야.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센터에 다른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프로그램 시간을 빼다가 다른 업무를 하기 위해 줄인 거예요.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중증정신질환자를 위해 만든 거잖아요.”

김진일 경기도정신건강복지센터 가족대표단 대표 (c)마인드포스트
김진일 경기도정신건강복지센터 가족대표단 대표 (c)마인드포스트

-가족은 정신장애인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합니까.

“우리가 정신장애인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을 받아야 해요. 아이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알아야 해요. 알려면 뭐가 필요하냐. 단체나 기관에서 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죠.

사실 문제는 가족 내에서 편견이 더 심하다는 거예요. 제가 정신건강복지센터 가서 ‘우리 아이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얘기를 하니까 담당 복지사가 ‘아버님, 따님은 환자예요. 절대 아버님 기준으로 보지 말아요’ 하는 거예요. 말을 조용히 한 게 아니라 아주 힘을 실어서 아버님이 잘못하고 있다는 걸 꾸짖듯이 말하더라고요. 눈물이 쏟아졌어요. 아주 송곳으로 찌르는 그런 아픔을 느꼈어요. 이건 내가 너무 몰랐구나 싶었죠.”

-환우를 존중하는 말투와 행동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우리나라 아버지 어머니들이 얘기하는 걸 보면 ‘하지 마, 왜 그래, 가만있어, 가지 마’ 이런 말투거든요. 환우들이 증상을 가지고 있으면 자존감이 없어요. 자존감이 없는 사람들은 뭘 시키면 ‘못 해요, 싫어요, 안 돼요’ 이 세 마디만 한단 말이에요. 일반인도 자존감이 낮으면 그래요. 이런 사람들에게 현재 사용하는 일반적 용어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더 상처가 되고 당사자들이 입을 더 닫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질문하듯이 겸손하게 이야기를 하라는 거죠. 잘못을 했을 때 꾸짖는 것도 ‘엄마가 보기에 이렇게 해서 잘못된 거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떠니’ 이렇게 물어보라는 거예요. 초등학교 학생이 매번 50점 받다가 80점 받으면 기분이 좋아서 엄마한테 얘기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보통 엄마는 ‘니네 반에 80점 받은 애들이 몇 명이야’ 이렇게 묻는단 말이에요.

그때 말투를 어떻게 해야 하냐면 ‘그래 네가 80점 맞은 건 너무 좋은데 너는 얼마나 좋겠니. 엄마보다 더 좋지 않니’ 이렇게 해야죠. 그렇게 안 하고 ‘다음에는 너 100점 받아야 돼’ 이러는 거예요. 무엇을 이야기할 때도 항상 자연스러운 답이 나올 수 있게 대화를 하라는 거예요.”

-성인 정신장애인에 대해 가족이 너무 아기 취급을 하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많죠. 아주 잘못 된 거죠. 교육을 통해서 고쳐야 돼요. 어머니나 아버지들은 자기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자꾸 쟤는 내가 보살펴야 된다면서 간섭하잖아요. 성인 대접을 해 줘야죠.”

-따님을 치유시키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뭐가 있습니까.

“너무 무지해서 몰랐던 점이죠. 딸이 엄마한테 엄마가 친엄마 같지 않았다고 얘기해요. 어린 시절에 오빠에게 생선의 좋은 부분을 주고 자기는 나쁜 부위를 줬대요. 계란 후라이를 해도 오빠는 예쁘게 해 주고 나쁜 부위는 자신에게 줬다고요. 뭐든지 오빠만 챙기는 게 아이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들이 말투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거 다 커가지고’ 이렇게 책망하는 말투를 고쳐야죠.”

-정신장애인 가족들은 낙인 때문에 대중적이고 집단적인 정치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잘못된 생각이죠. 누군가가 20년 전부터 정신장애인 가족들을 위해서 정확한 리더 역할을 해줬더라면 지금쯤은 많이 발전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여태까지 없었어요. 그래서 뭐 하라 그러면 그냥 우루루 왔다가 끝났어요, 가라 하면 다 우루루 가고.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글와글 대겠죠. 그런데 그것에 귀 기울이고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전혀 없었어요. 지나가면 끝이야.”

-정신병원이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위탁 운영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위탁을 하는 자체는 나쁘다고 생각 안 해요. 그런데 복지센터를 운영하려면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 되는데 위탁업체가 하나의 센터장을 세우고 일은 부센터장이 다 하잖아요. 또 센터장은 비상근 근무잖아요. 업무의 비효율화를 없애야죠.”

-장애인복지법 15조는 정신장애인이 장애인복지관 등 시설을 이용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정신장애인복지관을 지어달라고 그러지 말고 현재의 복지관에 들어가서 확대를 시켜달라고 얘기하는데 그건 비합리적이에요.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만의 특성이 있어요. 그 (신체) 장애인들하고 어울리기에는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죠. 그 공간에 가면 정신장애인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공통이잖아요. 분리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 나름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느리더라도 어떤 훈련 기관이 필요하죠.”

-정신장애인들은 정신병원을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환경이 좋지 않죠. 정신과 환자들은 다른 환자들하고 다르죠. (당사자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병원에서도 생각하고 가족도 생각하고 일반인도 생각하잖아요. 근데 말을 안 할 뿐이지 당사자가 느끼는 건 일반인들보다 훨씬 커요. 그런데 환경은 아주 열악하잖아요.

집에서는 혼자 자다가 한 방에 서너 명씩 자야 되잖아요. 거기다가 똑같은 유형의 환자들도 아니잖아요. 강제입원의 환경을 보면 자기 권리 주장과 정상적 대우를 못 받는다고 느끼는 거죠. 심한 환자들을 독방에 분리시키거나 폭행당하는 부분들이 트라우마로 남겠죠. 환경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그 트라우마가 심하게 남아 있는 거죠.”

-정신장애인의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 같은 경우는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결혼이라는 건 어느 정도 상태가 양호해졌을 가능한 거잖아요.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사람은 결혼할 수 있으면 좋죠. 또 많이 원해요. 그런데 가족들한테 얘기를 안 해요. 의사 선생들에게도 말 안 해요. 얘기할 기회도 없지만 자기 속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딸 가진 부모님, 아들 가진 부모님들하고 얘기해 봤는데 본인들이 결혼을 시켜달라고 요구를 많이 한대요. 결혼을 하게 되면 100% 투명하게 양가에 부모님들이 다 이해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그걸 돌봐줄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는 거죠. 인간의 욕망 중의 하나가 결혼이에요. 단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김진일 경기도정신건강복지센터 가족대표단 대표 (c)마인드포스트
김진일 경기도정신건강복지센터 가족대표단 대표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을 오래 돌보다 보면 가족은 지치게 마련입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사람마다 다르죠. 우리 가족들이 하는 얘기가 ‘이 아이를 내가 두고 죽으면 안 되고 또 이 아이를 내가 죽으면 돌봐줄 곳을 찾아내야 된다’ 이런 걱정을 얘기 많이 하죠. 그럼 그런 가족들은 그동안 뭘 했는지 묻고 싶어요. 헌법에 나와 있잖아요. 헌법 10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요. 그걸 가지고 정부나 지자체에 요구를 해야죠.”

-아이가 아프면 자기 때문이라는 죄의식을 느끼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습니까.

“교육을 받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교육 속에 다 담겨져 있어요. 우리 경기도 31개 시군에서는 가족교육사업을 시작해요. 경기도 지원이 있어서 4월부터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어요. 교육을 할 때도 여태까지 전문가들이 약이나 상태를 놓고 많이 얘기를 했는데 가족이 움직여야 된다는 말씀도 많이 해요.

그런데 가족이 나서서 어떻게 움직여야 되는지 방향 제시를 해 준 적이 없어요. 가족이 나서서 활동을 하면 어떻게 되느냐. 많이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어요. 가족들이 교육사업을 새롭게 하려고 하면 패밀리링크가 있는데 왜 하려고 하느냐 하는 경우도 있고요. 말하기 묘한 감정들이 있어요.”

-딸이 발병했을 때 ‘빛이 없는 어두운 시절’이라고 했습니다. 따님의 치유 이후 느껴지는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삶의 의미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누구도 느낄 수 없는 자신감하고 행복이죠.”

-어떤 자신감입니까.

“이제는 간섭을 안 해도 참견을 안 해도 딸이 스스로 가정을 꾸려가고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다음에 행복한 건 2주에 한 번씩 가족들끼리 만나는 즐거움. 일반인들과 같이 생활할 수 있다는 것. 안심할 수 있는 것들.”

-정신장애인과 가족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현재의 익숙함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보는 거요. 도전을 해 보는 거. 이게 상당히 중요한데 이걸 하기 이전에 지역사회에서 제도화돼 있어야 해요. 정신장애인들이 여가활동,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잖아요. 주간재활시설에 등록된 사람들은 센터 아니면 갈 곳이 없어서 집에만 있는 거거든요.

이분들이 매일 갈 수 있는 시설들. 장애인복지관이 있어서 때로는 거기서 운동도 하고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수영도 하고 이럴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집에 가만있으라고 해도 안 있죠. 그런 터전이 필요하고 그런 것을 스스로 한 번 찾아보는 거. 익숙함을 벗어나는 훈련도 필요하죠. 그게 하루아침에 안 되겠죠. 상당한 시간이 걸려요. 가족모임에 나오기 전하고 비교를 해 보면 아이가 많이 달라진 걸 볼 수 있어요.

어떤 정신장애인 동생은 언니가 케어하는데 동생이 언니만 졸졸 따라다녀요. 센터에 2년 정도 다니면서 가족들의 지지를 보고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인식을 하는 거예요. 내가 언니를 쫓아다니지 않아도 내 생활을 할 수 있구나. 그걸 배우는 거죠. 그리고 가족들도 여태까지 받았던 교육이 아니라 가족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교육을 가족이 가족에게 해 주는 곳에서 공부해야 돼요. 삶의 어떤 방향을 제시한다고 그럴까요.”

 

인터뷰가 끝나고 집에 오니 그가 내 전자메일로 파일 하나를 보내 왔다. ‘정신건강복지센터 가족교육에 대해서’라는 A4 세 장 분량의 글이었다. 기자는 천천히 읽어 보았다. “정신건강의 출발은 정신건강교육으로부터 시작된다. 가족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경기도정신건강복지센터 가족교육지원단을 구성하였으며 경기도 내 31개 시군구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가족교육을 지원할 것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기자는 그 부분을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