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의 정신병동 일기] "고흐가 그림을 그려요"(4)
[이수연의 정신병동 일기] "고흐가 그림을 그려요"(4)
  • 이수연
  • 승인 2019.04.0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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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에서 일 년의 시간을 보내고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 작가 이수연의 첫 정신병동 일기

정신병동일기 4화

"고흐가 그림을 그려요."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c) 놀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c) 놀

2016년 9월 00일

주치의 선생님을 알게 되었는지도 석 달이 되지 않은 시점. 나는 주치의 선생님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고흐가 그림을 그려요.

일종의 해리 증상이었다. 나는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그저 내 마음속 안에 방 하나가 있고 그 방을 들어가면 귀가 잘린 고흐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느냐고 물으면 그냥 노란색으로 채우고 있다고, 그 방도 노란색이라고 말했다.

나는 진지했다. 진지하게 내 마음속엔 고흐가 있었고 매일 그림을 그렸다. 내게 말을 걸어오며 ‘너도 미칠 거야’라고 속삭이곤 했다. 그리고 언젠가 나를 죽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도 고흐를 따라 병원 안에서 그림을 그렸다.  스프링 없는 노트에 색연필을 칠했다. 온통 노란색으로 채우기도 하고 병실 안의 풍경을 볼펜으로 그리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정신이 그래서였는지 나는 고흐에 관한 책을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부탁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고흐에 관한 책을 쓸어담았다. 그의 일대기를 읽고 작품을 보았다. 왜 그렇게 고흐에 집착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나중에 주치의 선생님께서 고흐 책만 읽는 내게 와선 한 말이 있다.

고흐가 귀 자른 이유가 동생 때문이었대요. 그 기사 보니까 이수연씨 생각 나서요. 지금도 고흐가 그림을 그리나요?

지금은 그저 제 마음속에 있어요.

내 대답에 주치의 선생님은 작은 미소를 띄웠다. 아마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실이 내겐 너무 아팠던 걸까. 고흐 얘기 외에도 이인증이 왔다.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고 내가 나 같지 않았다.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바라보는 느낌. 공중에 붕 떠있는 듯한 느낌. 나는 그 느낌에 책조차 읽지 못했다. 그야말로 정신병원에서 더 미쳐가는 것 같았다.

선생님, 지금 창문 밖으로 떨어져도 죽지 않을 것 같아요.

내가 주치의 선생님에게 말했다. 내가 계속 입원해야 하는 이유를 내 입으로 계속 말하고 있었다. 내 말에 주치의 선생님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지금은 보호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주치의 선생님과 면담이 끝나고 나는 얼마 열리지 않는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얼굴을 박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뛰어내릴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뛰어내렸을 것이다. 나는 창을 더 열기 위해 밀었다. 당연하게도 창은 더는 열리지 않았다. 뛰어내리면 내가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현실과 멀어지는 나를 보고 ‘착지'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호흡법을 알려주셨다.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진심인데,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런 이인증은 이주일이 넘게 지속됐다. 나는 이유 없는 산만함에 미쳐가는 것 같았다. 정말 병원에 있지 않았다면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노력하기를 그만두었다. 벗어나려 할수록 나를 더 깊게 붙잡았다. 사람들과 대화하면 이런 이상한 나를 들킬까 싶어 사람들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병실에서 혼자 산만함과 이상한 충동에 싸우고 있었다.

내가 착지를 한 순간은 참 어이없다. 병원에선 실습하는 학생 간호사분들이 있었다. 그분들은 환자분들의 이야기를 같이 듣고 함께 게임이나 프로그램을 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학생 간호사분들은 나와 비슷한 나이대였다. 늘 병실에 혼자 있는 나를 위해 병실 앞까지 와선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학생 간호사님이 오늘은 함께 공기놀이를 하자며 공기를 가져왔다. 나는 어릴 때부터 공기를 정말 못했다. 못하는 내 모습에 학생 간호사님은 공기를 차근차근 가르쳐줬다. 나는 몇 번을 집중해가며 연습했다. 그게 뭔지,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아!

정말 이런 느낌이었다. 갑자기 ‘이건 현실이구나'를 인지한 순간. 저 창은 열리지 않고 떨어져도 나는 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 순간. 이 모든 것은 나였음을 받아들인 순간. 나는 그때부터 알 수 없는 산만함을 벗어나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정말 '착지'하는 느낌이었다.

현실이 너무나 아파서, 현실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 시간이었다. 무엇이 그리 아팠을까. 벗어나고 싶었을까. 나는 그때의 나에게 다시 묻는다. 그러나 답이 없다. 그저 내가 아팠던 거라고 할 뿐. 그 시간을 조금 지나고 나니, 아픔에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느낀다. 나도 다른 사람의 아픔에 "왜?" 라는 말보다 "그렇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길. 나를 통해 조금씩 배워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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