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게 묻는다…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심리학에게 묻는다…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4.02 0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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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회 ‘심리서비스 활성화’ 토론회 개최
한국 사회 20대 여성들의 자존감 가장 낮아
유엔 세계행복보고서는 단순 평가…개인 행복 반영 안돼
행복감 낮은 연령대의 원인 분석과 정책 나와야
국가 정책에 경제적·환경적 고려 넘어 주관적 경험 들어가야
한국인 65%가 정신건강 문제 경험…국가 수준의 심리지원 필요
전문심리사 OECD 인구 10만 명당 26명…한국은 1명 불과
전문심리사, 선진국은 대학원 이상의 학력 요구
무분별한 심리전문가 자격증 남발…국민의 공적 피해 불러와
정신장애인 탈원화에 심리전문가 역할 중요

국민의 행복을 위한 심리서비스 활성화 방안 토론회가 1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렸다. 토론회에서는 20대 여성의 자존감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고 물질적 가치를 따지는 물질주의 역시 20대 여성에서 높게 나타났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발제에 나선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제학자 케인즈의 일화를 소개했다. 케인즈는 대공황이 오기 직전인 1928년 대학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경제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강연을 했다. 그때 케인즈는 100년 후 변화될 사회적 현상으로 소득이 8배 늘어날 것이고 노동시간은 하루에 3시간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소득의 부분은 맞았지만 3시간 노동은 예측을 빗나갔다.

그리고 공황을 거치고 자본주의적 모순을 첨예하게 겪으면서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근원적 질문을 하게 된다. 현 경제적 지표만으로는 국가의 발전과 개인의 번영을 측정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더 나은 삶의 지수(Better Life Index)’를 만들었고 이 측정에 개인적 삶의 만족이라는 주관적 부분을 넣게 된다. 이 같은 정치적 맥락에서 심리학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던져지게 된다.

최 교수는 심리학의 3가지 가능성을 지목했다. 첫째, 국민의 행복을 잘 측정하는 것. 둘째, 국가 정책들이 국민의 행복을 위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예측하고 평가하는 것. 셋째, 구체적인 심리서비스의 제공.

거시적 행복감보다 미시적 개인 행복 챙겨야

지난 3월 21일은 ‘세계 행복의 날’이었다. 유엔에서는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를 작성해 매년 발표한다. 올해 역시 핀란드가 행복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에 올랐다. 하위 순위는 대체로 내전과 기근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부분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올해 54위를 기록했다.

최 교수는 이 행복 순위도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이 각 나라의 인구 1000명을 대상으로 일회적인 질문만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행복의 의미를 담아낼 수 없다는 이유다.

최 교수는 “매일매일 행복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 수 없고 주가(株價) 지수처럼 행복이 수시로 변하는 게 특성인데 그걸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람들의 행복을 리얼타임(실시간)으로 측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대체 어떤 사건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상에서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내고 어느 지역 사람들이 특별히 행복한지를 설명할 수 있는 변수들을 알아내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을 심리학은 할 수 있다.”

그는 카카오와 협업해서 행복 측정을 할 수 있는 문항 10개를 사이트에 올렸다. 2017년 9월부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150만여 명이 참여했다. 결과적으로 가장 행복한 도시는 세종시와 제주도였다.

특히 인터넷 특성상 외국에서도 참여할 수 있었는데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 남성의 행복은 ‘바닥권’이었다. 반면 외국에 거주하는 여성들의 행복감은 높게 나타났다. 최 교수는 “이는 한국사회가 아직도 여성에게 친화적이지 않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5.8점이다. 그렇지만 소수의 인구를 특정해 행복지수를 만드는 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카카오의 행복 측정 문항에 응답한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의 데이터를 종합하면 분포도를 그릴 수 있다.

최 교수는 “이 분포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 정도는 북유럽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감을 누리고 23% 정도는 아프리카 수준의 행복감을 누린다는 것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낮은 수준에 있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행복 구현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데이터에 따르면 행복감은 U자형으로 초반에 행복감이 떨어졌다가 중년 이후 증가하는 패턴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20대에 행복감이 급격하게 하락하는 분포를 보였다. 30대에도 비행복감이 유지가 되다가 40대부터 조금씩 반등했다.

가장 행복한 세대는 10대 남성이었으며 20대 여성이 느끼는 비행복감은 전 세대를 통해 가장 높았다. 물질주의도 20대가 가장 높았다. 물질주의는 행복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가치관으로 알려져 있다.

최 교수는 “심리학자들은 20~30대 여성들의 행복감이 낮은 이유에 대해 이 데이터를 통해 정책적 제안을 할 수 있다”며 “데이터를 모으면 우리가 집중해야 될 타겟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한국인 20% 북유럽 수준 행복감...23%는 아프리카 수준

사회적 지지를 측정했을 경우 나이와 함께 감소하는 걸로 나타났다.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의 문제가 크게 나타났다. 따라서 20~30대 여성과 노년층에 대한 정교한 측정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국가 정책적 접근이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 교수는 “실증적 측정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에 관한 특성을 여러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해 줄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좀 더 신경써야 할 계층이 나오고 단순히 병리적 관점에서만 해결할 문제가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우리 사회가 정책을 결정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준이 경제적 타당성 평가다. 그 다음에 환경영향성 평가다.

최 교수는 “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이 두 가지 지표와 함께 정책들이 사람들의 주관적 경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심리학자들은 현상을 정확하게 측정을 할 수 있다”며 “국가의 중요한 정책들이 어느 것이 우선시돼야 되는지는 경제적 고려, 환경적 고려뿐만 아니라 주관적인 사람들의 경험이라는 관점에서도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영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사회의 정신건강 현황을 잘 드러내는 지표로 높은 자살률을 지적했다. 또 우리 사회 심리서비스 현황을 드러내는 자료로 정신질환 입원 병상수의증가를 들었다. 한국의 정신병원 병상수는 2008년을 기점으로 OECD 평균을 넘어섰다.

이 같은 한국 정신건강과 심리서비스 현황에 대해 당시 보건복지부는 필요한 정책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을 OECD에 요청했고 OECD 경제 분석관과 주요 국가의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팀을 구성해 한국 정신건강 체계에 대한 세 가지 권고안을 담은 보고서를 2013년 발표했다.

권고안은 입원 중심 치료에서 지역사회 기반의 치료로 전환을 제안한다. 이어 전 국민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심리서비스의 보편화 필요성을, 마지막으로 관리체계의 개선과 범부처적 리더십의 필요성을 각각 제안한다.

최 교수는 “그렇지만 한국의 현 정신건강 지표들은 크게 호전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2017년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시행한 국가건강 현황 3차 예비조사에서 응답자의 65%가 정신건강 문제의 경험률을 보고한 것은 광범위한 심리적 지원이 국가 수준에서 제공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국민의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공적 영역에서 심리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가의 수가 턱없이 부적하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정신건강 체계 내에서 활동하는 전문 심리사의 수는 인구 10만 명 당 1명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인 26명에 비해 심각하게 적은 숫자다.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정신건강임상심리사가 법제화된 인력을 명시하고 있지만 활동이 중증정신질환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전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한 활동을 논의하기에 제약이 크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OECD 국가들은 심리서비스 전문가인 심리사들에게 정부가 공식적 면허를 부여하고 관리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심리서비스가 늘어가고 있고 제도적으로 양성된 전문 인력 시스템이 취약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전문심리사 OECD 10만 명당 26명 vs 한국은 1명

“국가가 심리서비스를 공급하는 전문 인력과 이들의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심리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직역에 대한 법률적 활용 방안이 부재한다면 심리 서비스의 수혜를 누려야 할 국민들에게 적정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고 피해가 돌아갈 것은 자명한 일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들은 공인된 교육 과정을 통해 대학원 이상의 학위 과정과 실습 경험을 거쳐 심리서비스 지식과 기술을 갖추도록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극단적으로 나흘간 교육을 받으면 사설업체가 자격증을 남발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최 교수는 “심리서비스가 제도화되지 않음으로 국민들이 입을 수 있는 피해는 민간 영역에서 비전문가들에 의한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사적으로 입는 피해와 제도 및 서비스가 비효과적이어서 국민들이 입는 공적 피해로 나뉜다”고 지적했다.

권오용 한국정신장애연대 사무총장은 “(비전문가들에 대한) 규제를 만들라는 게 아니라 우리도 서비스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서비스 비용을 달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필요한 비의료인들의 서비스는 심리서비스도 있고 사회복지서비스도 있고 당사자들의 피어 서포터도 있다”며 “문제는 정신의료가 (서비스를) 완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심리학회가 강력한 권위를 갖고 있다. 어떤 문제가 되는 사안이 있으면 그 정신의료의 비효과성을 입증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게 관행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정신건강 책임자는 심리학자다. 이 심리학자는 강제입원 치료의 전면적 폐지와 자기결정권 존중을 선언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 총회에서 결의된 MI 원칙(정신장애인 보호와 정신보건의료향상을 위한 원칙)을 따르고 있다. 이 MI 원칙은 비자의입원(강제입원)을 허용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이 원칙은 2006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서 비자의입원의 폐지를 규정함에 따라 타당성을 잃게 된다. 그렇지만 한국은 여전히 이 MI 원칙을 따르고 있다고 권 사무총장은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신장애인들의 탈원화에 심리사들이 같이 나서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탈원화는 정신병원 문을 닫아야 되고 병상수를 줄여야 한다는 세계적 가치이자 이념”이라며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도록 하려면 병상은 통합적으로 관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심리서비스는 중요한 서비스이고 초기에 (병적 징후로) 혼란스러울 때 심리서비스를 받고 안정을 찾으면 약을 안 먹어도 회복이 된다”며 “내가 회복된 것도 약이 아니라 심리적 동기에 있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카드빚 300만 원 때문에 자살을 하는데 그때 정신과 의사들이 약 처방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그는 문제제기를 했다. 그 경우 그 카드빚은 갚는 걸로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그런데 근본 문제를 둔 채 약물만으로 이 사람의 심리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게 권 사무총장의 의견이다.

권 사무총장은 “병원에 있던 사람들이 탈원화해서 지역사회에서 살려면 다양한 도움이 필요한데 그중 심리전문가들의 도움은 굉장히 중요하다”며 “초기의 혼란스러운 분들에게 심리학이 개입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심리 서비스의 효용성을 이야기하고 그 근거를 토대로 의료보험과 의료급여 재정에서 심리 전문가들에게 배정을 해 줘야 한다”며 “소비자 단체들도 그에 대해 적극 찬성하고 협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토론회는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심리학회가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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