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의 정신병동 일기] 저 적응하고 있는 건가요? (5)
[이수연의 정신병동 일기] 저 적응하고 있는 건가요? (5)
  • 이수연
  • 승인 2019.04.08 2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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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에서 일 년의 시간을 보내고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 작가 이수연의 첫 정신병동 일기

정신병동일기 5화

저 적응하고 있는 건가요?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c) 놀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c) 놀

2016년 9월 00일

 

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 주치의 선생님은 내게 새로운 제안을 하셨다.

자서전을 써보는 건 어떠세요?

‘싫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어 순순히 알겠다고 말했다. 거절을 못하는 성격도 한 몫했다. 이전에 홀에서 자서전을 쓰는 것도 퇴원으로 가는 방법의 하나라는 얘기를 사람들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병동 치료의 과정 중 하나가 '자서전 써보기'라는 것이다.

 

그날 저녁 간식신청 시간에 노트 하나를 주문했다. 다음날 간식 시간이 되자 전날 주문한 노트가 내 손안에 들어왔다. 얼마 만에 보는 초등학생 노트인지. 코팅된 제일 앞 장을 펼치자 빈 줄이 가득했다. 이 줄을 채워야 한다. 하나하나, 손으로. 무엇으로, 어떤 단어로 채워야 하는 걸까.

막막함에 한동안은 글을 쓰지 못했다. 주어진 기한은 일주일. 일주일 동안 어떻게든 열 장은 채워야 했다. 사실 쓸 말이 별로 없었다. 어디에서 태어나고 학교를 어디 다니고 학교 다닐 땐 어땠고, 모두 적고 나니 다섯 페이지 남짓이었다. 병원 입원 전까지 나는 글을 써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쓰는 거라곤 고작 일기 정도. 나는 퇴원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꾸역꾸역 벌을 받듯이 글을 썼다.

 

노트를 건네고 며칠이 지났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내가 쓴 글에 형광 팬으로 표시를 해서 내게 다시 건네셨다. 좋지 않은 기억마다 표시를 하고 좋았던 기억은 다른 색으로 표시했다. 줄을 치며 하나하나 읽으셨다는 생각에 쓰기 싫어한 것이 조금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이어 말씀하셨다.

행복한 기억 세 개로 불행한 기억 하나를 지울 수 있어요. 이수연씨는 불행한 기억이 너무 많아요. 이제부터 행복한 기억을 늘리는 연습을 할 거에요.

행복한 기억을 표시한 부분은 아주 적었다. 다 합치면 반쪽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불행한 기억에는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내가 쓴 글의 반 이상이 노란색 판이었다. 내 머리와 마음에 남은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좋은 기억을 늘리는 법을 얘기하셨다.

노트 뒷면에 좋았던 일과 행복했던 일을 자세하고 길게 다시 적어보세요. 다시 떠올리면서요. 지금보다 더 많은 좋은 기억이 있을 거예요.

다시 노트를 받은 나는 자서전의 뒷장에 행복했던 기억을 늘려 적는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조금씩 행복했던 기억이 늘어갔다. 불행했던 기억을 모두 지우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하나는 지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중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내가 지금 조금씩 잊어가는 아픔이 그 기억이지 않을까. 행복했던 기억이 지워주는 건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 머릿속에 우울보다 그때의 기억이 가득했다.

 

또 오늘은 프로그램에 처음 참여했다. 차모임이었다. 차모임 시간에는 각자 개인 컵을 들고 프로그램실로 모인다. 간호사님은 끓는 물과 믹스커피를 하나씩 나눠주신다. 유일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이어서 사람들의 참여도도 가장 높은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프로그램에 들어간 것은 커피 때문은 아니었다. 실습 간호사님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라며 나를 찾아와 얘기한 이유도 있었고 함께 방을 쓰는 언니들이 차모임에 가자고 얘기한 이유도 있었다. 항상 거절만 하다가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고 친해지면서 권유를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프로그램실로 들어갔다.

 

차모임에선 각자 잔에 커피를 타 마시며 얘기를 했다. 건의 사항이나, 불편 사항을 얘기하고 하고 싶은 말을 나눴다. 의료진의 입장과 환자의 입장을 모두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화가 끝날 즈음 수간호사님께서 말했다.

이제부터 퐁당 퐁당을 할거에요.

퐁당퐁당 이라니. 그곳에 모인 대부분은 중년이었다. 나보다 어린 사람은 한 명 뿐이었고 성인 병동이었기에 청소년도 있지 않았다. 그런데 다들 차를 들고 모여 퐁당퐁당을 했다. 노래를 부르고 손뼉을 쳤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무언가 부끄럽기도,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이미 퐁당퐁당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퐁당퐁당을 마지막으로 모두가 손뼉을 치며 차모임이 끝이 났다.

 

차모임을 나오며 생각했다.

다시는 프로그램 참여 안 해야지.

하지만 나는 간호사님의 권유에 못 이겨 그 뒤로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조금은 유치한 게 이게 뭐가 나아지나 싶기도 한데 나와 가깝게 지내던 알코올 중독 언니가 음악 치료에 참여한 뒤 내게 한 말이 있다.

정말 처음에는 이게 뭔가 했는데, 하다 보니까 마음이 나아지네.

다들 그런 말을 했다. 프로그램은 조금은 단순하고 유치한 듯 보였지만 모두 그것에 참여하면서 마음을 조금씩 풀어나갔다.

 

그 외에도 약물 교육, 상담, 종이접기, 가족 교육, 금연 교육 등이 있었다. 약물 교육은 정신과 약에 대한 약물에 대해 환자에게 교육하는 것이고 가족 교육은 정신과 환자 가족을 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었다. 초반에 내가 프로그램에 조금씩 참여하자 주치의 선생님께서 한 말이 있다.

이수연씨가 그렇게 나아질 줄 알았어요. 근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지금도 나는 주치의 선생님을 힘들게 하고 있다. 나아질 듯 나아지지 않으면서. 그래도 병동에 있는 동안, 사람들과 함께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아픈 사람들 사이에서 위로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상처를 받은 사람끼리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낯을 가리는 나도 어느새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화를 하고 있다. 신기하다. 이렇게 나는 정신병동에 적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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