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석 “멘탈헬스코리아가 소비자운동을 하는 최초의 단체가 됐으면 좋겠어요”
최용석 “멘탈헬스코리아가 소비자운동을 하는 최초의 단체가 됐으면 좋겠어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4.10 02:5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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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석 멘탈헬스코리아 대표 인터뷰
미국은 테라피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돼 있어
한국사회는 자기 약함을 드러내기에 편견 강해
병명은 의사·전문가가 만든 특별 용어…사람 자체 대변 못해
자기 증상을 속으로 비난하다 극단적 선택하기도
정신과 환자에서 정신서비스 받는 ‘소비자’로 재정의돼야
소비자로서 약물 선택권 주어져야
DSM은 이 세계를 약물로만 해석…사람이 빠져버려
위로의 한마디가 약보다 더 빠른 치유가 돼
미국에서는 자연스러운 정신 치료가 한국에서는 낙인
정신질환 경험자가 소비자로 초발 정신질환자에 도움줘야
청소년기에 교육하면 정신장애 예방 가능해져
조기예방, 조기치료로 사회적 비용 절감할 수 있어
소비자 권리 알려져야 입원 트라우마 줄어들 것
치유에는 공감이 가장 필요…정신질환 받아주는 사회 돼야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중학교 때부터 그는 왠지 모르게 사회사업가가 되는 게 내밀한 꿈이었다. 그 사회사업가가 뭔지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일기장에서도 사회사업가가 되겠다는 꿈을 적고는 했다. 그 당시 미국문화원에 가서 연극치료와 심리치료 관련 책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왜 그 책들이 그렇게 좋았을까. 그 중학교 2학년 때 그는 미국으로의 유학을 구상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떠났다.

연극치료와 드라마 테라피를 공부해야 한다는 분명한 꿈이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9·11 테러를 뉴욕에서 직접 목격했다. 기존부터 심리 테라피를 받아왔지만 그때의 충격은 컸다. 심리치료를 더 적극적으로 받았다. 미국 유타 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뉴욕 헌터칼리지 대학원에서 정신치료를 공부한 후 그는 8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동료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을 보고 다시 충격에 빠진다.

왜 그랬을까. 우울하다면 편하게 요가 운동을 가듯이 갈 수 있는 심리치료 시스템이 한국 사회에서는 부재했다는 걸 그는 느꼈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카이스트 사회적기업 MBA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을 모아 멘탈헬스코리아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다.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이 너무나 심한 한국사회에서 좀 더 편안하고 낙인이 되지 않는 사회 생태계를 만들고 싶었다. 그가 40대의 나이로 뒤늦게 카이스트로 들어간 이유다.

미국에서는 그토록 접근하기가 쉬웠고 친구끼리도 좋은 치료사를 소개하는 문화에 있다가 갑자기 마주한 한국의 정신치료는 너무나 열악했던 것이다. 그 생태계를 바꾸고 싶었다.

졸업 후 현재 그는 멘탈헬스코리아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정신장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었고 그 버전1, 버전2를 만들면서 수천만 원의 자기 돈을 투자해야 했다. 이 앱이 상용화되면 정신질환을 먼저 겪은 ‘상처입은 치유자’들이 초발 정신장애인을 지지하고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사회가 정착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는 정신질환, 정신장애가 아닌 ‘소비자(consumer)’의 개념을 한국사회에 도입하고자 한다. 의사와 환자라는 갑을 관계가 아닌 평등하고 소통 가능한 소비자로서의 선택권을 정신장애인이라 불리는 이들에게 부여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최용석(45) 멘탈헬스코리아 대표를 만난 건 비가 금방이라도 올 것 같은 9일 오후 봉천동의 한 카페에서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용석 멘탈헬스코리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최용석 멘탈헬스코리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미국 유학 중에 9·11테러를 직접 목격하셨다고요.

“대학원 때요. 근데 웃긴 게 항상 사람들이 똑같이 물어봐요. 질문이 '왜 한국에 다시 돌아왔어요?' '9·11테러 봤어요?' 이런 거만 물어봐요. 저는 직접 봤죠. 냄새가 아직 기억에 남아요. 트라우마는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생겨요. 텔레비전이 정확한 장면을 보여주죠. 미국에 있으면 정확한 장면보다는 멀리서 보니까 건물이 무너지는데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거고. 상황을 알게 됐을 때 머리카락 타는 냄새 있잖아요. 그게 한 달 동안 뉴욕에 자욱했어요.”

-그 트라우마 때문에 미국에서 정신과 치료 받았습니까.

“아니요. 물론 트라우마도 있긴 하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에요. 전 학부 때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았죠. 연극치료를 공부하다보니까 당연히 반대 입장이 돼 봐야 하잖아요. 문화적으로 정신치료를 받는 게 더 건강한 치료방법이죠. 한국처럼 술을 먹거나 나쁜 짓을 하거나 이런 거 보다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거든요. (미국은) 테라피에 대한 인식이 좀 더 확연하게 잡혀 있어요. 의료보험이 적용되니까 조금 더 쉽게 가고 퀄리티도 높죠.”

-미국에 의료보험이 적용이 됩니까.

“그렇죠. 의료보험 적용이 되고. 그리고 학교의 경우 무료로 되는 거고. 전 지금도 꾸준히 받고 있어요.”

-9·11 이후 심리 치료 받는 이들이 많았겠습니다.

“9·11 트라우마 때문에 불안하고 힘들면 긴급 사태 기금을 통해 (심리치료를) 무료로 받을 수가 있었어요. 관광 온 사람이건 지켜본 사람이건. 전 그렇게는 받지 않고 대학원에서 추천해준 유명한 사람들한테 받았어요.”

-미국의 정신과 상담 서비스 비용이 저렴하다고 했거든요. 한국에 비해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일단 테라피는 정신치료, 심리치료 서비스를 해 주는 곳이 여러 곳이 있기 때문에 선택해서 갈 수 있는 폭이 넓죠. 슬라이딩 스케일(Sliding scale)이라고 해서 돈 많은 사람은 많이 내고 치료받는 곳이 있고, 돈 적게 버는 사람은 적게 낼 수 있는 그런 곳이 있거든요. 학생이면 정신과 의사에게 갈 돈이 없잖아요. 그런데 어떤 곳은 무료로 받을 수 있어요.”

-미국은 사보험이어서 엄청 비싸지 않습니까.

“미국은 보험 있는 사람은 적용이 되고 보험 없는 사람은 적용이 안 되는 거죠.”

-대표님은 보험 적용이 된 거죠.

“보험에 따라서 틀려요. 사보험을 쓸 수 있고 그냥 내 돈으로 내도 되고.”

-보험 없이 내면 얼마 정도 합니까.

“75불에서 100불 정도. 10만원에서 15만 원.”

-한국이랑 비슷하네요.

“근데 50분에 질적인 상담을 해주는 거고요. 테라피스트는 그렇고,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갔을 때는 15분 정도에 75불 정도. 제가 만난 정신과 의사는 보험 적용 안 되고 75불. 약만 처방해주고 잠깐 얘기를 듣고.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있고 정신장애 등급을 받으면 거의 공짜죠. 입원도 그렇고.”

-한국에서 대기업을 다닐 때 동료들이 잇따라 자살했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외로움인 거 같아요. 사회적 지지망의 부재. 한국은 행복만족도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많이 떨어지잖아요. 그런 것들이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는 거죠. 필요할 때 얘기할 수 없고 자기 약함을 내보였을 때 지적받는 복합된 문제라 생각돼요.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과거의 얘기여서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다 쓸 수 있긴 한데 그런 점이 안타까워요.”

-입원하신 적 있습니까.

“그런 얘기도 해야 하나요.(웃음)”

-병명이 정확하게 어떻게 됩니까.

“저는 병명이 중요하다고 생각 안 해요. 병명을 쓰는 건 이 사람의 증상을 빨리 판단해서 도움을 주기 위한 수단일 뿐이죠. 병명은 의사나 전문가 집단이 만들어낸 특별 용어이지 그 사람을 다 대변해주지 않아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잡하게 만들어져서 그 사람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런 용어를 쓰면 편견과 낙인을 주잖아요. 제가 미국에서 공부했지만 이런 편견은 좋지는 않거든요.

흡사 인종차별과 같아요. 인종차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편견을 모두 가지고 있잖아요. 그것을 행동화했을 때 차별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그런 또 다른 차별이 한국에서는 정신질환에 대한 차별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제가 병명은 묻지 않겠습니다.

“편견을 깨기 위해서는 스마트하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협업해서 대중에 호소를 해야 돼요. (한국에서는) 인그룹(ingroup·내집단), 아웃그룹(outgroup·외집단)으로 나눠서 내 집단으로 오는 사람은 진단명이 있어야 되고 특정 조건을 갖춘 당사자여야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배척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과정에서 나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나의 아픔의 깊이나 종류가 판단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으니까 이게 너무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거죠. 원치 않는데 물어보는 자체도 블래임드 빅텀(blamed victim·비난받는 피해자)이라고 해서 피해를 받은 사람한테 이 시스템 안에서 또다시 물어보는 거죠.

강간 피해자한테 어떤 식으로 피해를 받았는지, 진짜 피해를 받았는지 의사, 기자, 형사가 와서 다시 조사하면 2차 피해로 가는 거죠. 아픔의 고통은 누군가에 의해 쉽게 판단되거나 평가될 수 없고, 이 아픔의 고통을 진단받지 않은 사람들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거든요. 자기 레이블링(labeling·부정적 꼬리표)가 너무 싫어서 숨고 숨기다가 증세가 심해지거나 극단적 선택을 해요.”

최용석 멘탈헬스코리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최용석 멘탈헬스코리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정신과 환자에서 정신건강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consumer)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경우 소비자에게 어떤 이익이 생깁니까.

“정신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자기 낙인(self stigma)을 줄일 수 있고 임파워(역량 강화)를 할 수 있어요. 자신을 정신건강 서비스 소비자로 생각해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당당해지고 영리해질 수 있어요. 환자라거나 질병 코드를 부여받았을 때와는 틀리죠. 갑을 문화처럼 의사 집단, 혹은 공급자 집단이 너무 일방적인 게 사실이에요.

미국은 그것을 인지하고 소비자로 가는 소비자 중심이 됐죠. 처음에는 patient(환자)로 하다가 client(클라이언트)로 가고 client에서 customer(고객)로 갔죠. 고객으로 갔을 때도 한정된 게 있는데 consumer(소비자)는 좀 더 평등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아요. 환자일 때는 의사는 나는 의사고 당신은 환자니까 약 먹고 그냥 버텨. 내가 더 잘 알아. 이렇게 되는데 소비자로 됐을 때는 전혀 틀려지거든요.”

-예를 들면 어떤 부분을 선택할 수 있습니까.

“환자였을 때는 감히 공급자들을 평가할 수 있는 권한조차 없는 존재, 수동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되는 존재였다면, 소비자는 공급자와 평등한 시선에서 평가할 수 있고 공유를 할 수 있고 더 많은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권한이 생기죠. 소비자가 됐을 때 치료에 더 적극적일 수 있고 (치료 결과도) 효과적으로 나올 수 있어요. 그건 이론적으로 정립된 거예요.

무엇보다 약물 결정권. 자신이 복용하는 약물에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그 상품을 살 때 소비자는 알아야 되잖아요. 그렇지만 이 부작용조차 3분 문진에서는 안 알려줘요. 약명도 잘 안 알려주거든요.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듣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오줌 안 나오고 입 마르고 머리가 멍해지는 부작용을 안 알려줘서 부작용인지도 모르고. 그럼 다른 좋은 약으로 바꿀 수 있는데 안 알려줘요. 그건 의사들이 소비자로 보지 않고 환자니까 내가 편한 약을 줘야 돼(라고 생각하는 거죠). 환자의 백그라운드에 대해서는 전혀 체크를 안 하고 자기한테 편한 약물을 주거든요.

그런데 소비자가 되면 ‘선생님, 저는 이런 알러지가 있어요’라는 걸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죠. 특히 부작용이 심한 약은 더 그래야 하거든요. 약을 조정하거나 해야 하는데 환자로 보게 되면 그냥 의사가 해 주는 약을 따라야만 하는 문제가 있죠. 그리고 우리나라 의대 교육의 99%가 약물 처방으로 돼 있기 때문에 (문제죠).”

-DSM(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으로만 접근하는 한국의 정신보건체계는 어떤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까.

“레이블링(labeling·부정적 꼬리표)이죠. DSM으로 하면 학위를 안 가진 사람도 3개 정도는 저한테 끼워 맞출 수 있거든요. 살짝 짜증낸 거 가지고 불안장애(로 분류해 버려요). 미국의 인종차별 폐지운동은 역사가 오래돼 (부정적 부분에 대해) 대비를 한 이유가 있잖아요. 우리나라는 초기에 있는 거 같아요.”

-어떤 초기요.

“인종 차별하고 똑같은 게 뭐냐면 초창기에 흑인들은 위험하다, 나쁘다 그렇게 차별하잖아요. 그래서 수영장도 백인 수영장, 흑인 수영장 쓰게 됐죠. 그리고 속설에 흑인들은 몸에 세균이 있다고 해서 물 먹는 것도 구별했죠. 오염이 된다고 했어요. 흑인들하고 같이 있으면 안 되고 그런 문화가 몇십 년 동안 있어 왔던 거죠.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흑인들이 조금씩 주류사회에 들어가게 된 거거든요. 아마 DSM으로 봤을 때는 모든 게 질병으로 되어 버려요. 이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편하니까요. 약만 주면 되니까.”

-멘탈헬스코리아가 작년 1월 28일 출범했습니다. 이 단체를 만든 이유는 뭡니까.

“제가 정신치료 쪽 공부를 혼자서 열심히 했죠. 미국에서 테라피도 많이 받아봤고 연극치료, 컨퍼런스 가고 해볼 건 다 해봤던 거 같아요. 그랬는데 저는 정신건강 때문에 힘들 거라고 절대로 생각을 못 해 봤어요. '설마 내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힘든 과정에서 저 혼자 있게 됐어요. 나 스스로에 대한 편견, 그러니까 내가 이거(정신장애)를 인정하는 순간 내 모든 게 없어지는 거예요.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했고 정신적으로 고통이 왔을 때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거든요. 그게 더 힘들었던 거 같아요. 얘기 안 할수록 더 힘들잖아요. 자살 시도도 했고요. 그때 알았죠. 공부했던 거 절대로 필요 없다. DSM-5를 알면 뭐해. 내가 나 스스로를 알지 못 하는데. 그냥 죽을 거 같은데 그걸 공부한다고 해서 소용이 없는 거예요.

그럴 때 주변에서 서포터(지지자)가 있어서 ‘아, 힘들겠구나’ 해주는 한 마디가 약보다도 더 도움이 되거든요. 죽을 거 같은 느낌은 똑같은데 이걸 어떻게 해. 그걸 공부한다고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거예요. 저는 정신치료를 (세션당) 12만 원을 주면서 같은 의사에게 오랫동안 받았거든요. 같은 사람에게 오래 받아야만 좋다는 걸 아니까요. (한국에서) 막 죽을 거 같아서 자살예방센터에 전화했는데 서비스가 형편없었어요. 물론 자원봉사자들이라 그렇겠지만 미국에 비해 서비스가 형편없어요.

제가 테라피를 공부했기 때문에 그렇게 대응하면 안 된다고 해서 까다로운 고객이 돼 버린 거예요. 전화 안 받으면 죽고 싶고 짜증나고. 제가 소위 대기업도 있었고 유학도 갔다 오고 그쪽 공부도 했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저 혼자 외롭고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이 있죠. 그리고 부끄러워요. 대기업 직장 다니는 사람한테 나 힘드니까 도와주세요, 절대 못 해요.

서비스를 다시 이용을 했는데 저를 환자로만 보더라고요. 그래서 멘탈헬스코리아를 만들자.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들이 제대로 얘기할 수 있고 소비자 파워도 만들자. 그럼 쿨하게 전파하는 게 뭘까. 그래서 늦은 나이에 카이스트 사회적 기업가 과정에 들어가게 됐어요. 43살에 들어가서 올해 2월에 졸업했어요.

일부러 카이스트를 선택했고 멤버들 전부 다 카이스트 출신들로 묶었어요. 왜냐하면 그래야만 대중이 들어줄 것 같았어요. 또 저 사람들이 뭔가 있는데 사기꾼들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하겠죠. 그렇게 하나 하나 설득해서 이사회 멤버를 그렇게 꾸렸어요. 제가 미국에서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이용했던 것도 미국에서는 그런 캠페인이 잘 돼 있기 때문에 스스로 낙인 없이 돈을 내고 서비스 가서 우울증 같은데 약 좀 주세요 하면 의사가 자연스럽게 샘플을 딱 주거든요. 그러면서 저 스스로는 ‘쿨(cool)’한 사람이다. 정신건강을 위해 요가를 하듯이 돈을 썼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서비스를 하다 보니까 낙인이 있어요. 대기업 다닐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병가를 냈거든요. 제가 규칙적으로 다니던 정신과에 가서 병가 내야 하니까 진단서를 좀 써달라고 해서 우울증으로 회사에 제출했는데 인사과에서 2주 이상은 안 된대요. 더 심한 걸(진단서)로 가져오래요. 미국에서는 그거면 충분하거든요. 그런데 인사과에서는 정신병원 입원을 하거나 더 심한 거를 요구해요.”

-멘탈헬스코리아 만들 때 초창기 멤버들이 모두 정신질환자들이었습니까.

“질환자라는 말 대신 소비자라고 써야겠죠. 질환자라고 하는 게 의사들이 만든 거고 저는 (기자를 향해) 국장님이거든요. 그런데 의사들이 보면 질환자로 보잖아요. 관점을 분리했으면 좋겠거든요. 충분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백 가지가 있는데 DSM 진단명을 붙인 다음에 이 사람이 다 그것인 것처럼 편견만 야기하는 것 같아서요.”

-그들 다 소비자들이었습니까.

“그렇죠.”

-진단 받은 소비자들인가요?

“진단 받은 사람도 있고 진단 안 받은 사람도 있고.”

최용석 멘탈헬스코리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최용석 멘탈헬스코리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비영리단체면 어떤 지원도 국가로부터 받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국가에서 받는 돈은 없죠.”

-어떻게 운영하십니까.

“저희들 개인 돈이죠. 지금은 기업체에서 하는 공모 사업이나 연구사업에서 자금 조달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비영리단체들은 다 기부금이나 후원금으로 돌아가잖아요. 아직은 저희 단체가 초기이고 후원금을 받기까지 준비할 것들이 있어서 향후에는 그런 것들을 늘려나가려고 해요.”

-지금 사무실이 어디에 있습니까.

“카이스트 학교 안에 있어요. 공짜로 줬어요. 제가 사회적 기업가를 간 이유는 학위가 목표이기도 했지만 이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갔거든요. 제가 재취직해서 다른 회사 가는 게 아니라 이것만 하잖아요. 그럼 사람들이 봤을 때 2년 동안 고생했다. 그걸 알리고 싶었어요.”

-멘탈헬스코리아의 최종적 목표가 뭡니까.

“소비자운동을 하는 최초의 단체가 됐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편견을 줄이고 조기 예방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쿨한 단체가 되었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선 피어 스포터(peer supporter)를 저희가 추구하는데요. 아파봤던 사람의 강점, 아파봤기 때문에 남을 도울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죠). 쿨하게 커밍아웃할 수 있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그런 단체. 그래서 카이스트 테크날러지에 기반해 이 사람들이 익명으로 활동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려고 몇천만 원을 썼거든요. 어플리케이션 기반, 포털 기반의 그런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어요. 온오프라인에서 피어 서포터 청소년들, 질환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활동할 수 있는 그런 (플랫폼을 만들려고 해요).”

-카이스트를 다닌다는 자체로도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더 커지 않습니까.

“사회적 성공은 운에 따른다고 생각해요. 네임 밸류(name value)는 무시할 수 없는 게 한국이든 미국이든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백그라운드를 알고 싶어하는 게 본성이잖아요. 그리고 아 이만큼 노력을 했구나 라는 신뢰감을 주는 데는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 다음은 본인의 노력과 운이라고 생각을 해요.”

-28일(28DAYS) 이내로 위로받을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한다고 했습니다. 28일은 정신과 처방 기간, 퇴원 후 4주 안에 자살할 확률에 영향을 받아 이 기간을 설정했다고 했습니다. 이 기간 안에 어떤 전문가를 양성하게 됩니까.

“그건 아니고요. 28DAYS라는 앱을 저희가 만들었어요. 시중화 되지는 않았는데 28일 동안 갈 데가 없잖아요. 그런 분들이 온라인에서 서로 서포터하고 약을 잘 먹었는지 매일 물어보거든요. 그랬을 때 28일마다 의사한테 갔을 때 그걸 쫙 보여주면 그래프화 돼서 약 잘 먹었고 기분 좋다는 걸 알 수 있죠. 이 앱의 이름이 28DAYS예요. 지금도 개발 중이긴 한데 그런 의미로 28일 중에 서포터나 가족이 없으면 서로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카톡이라고 봐야 할까요. 카톡에 그룹 만들어서.

“그런 거에 피어 서포터 커뮤니티 기능이 있고”

-그럼 전문가 양성하는 게 아니고 단순하게 도와주는 서포터 사업인가요.

“동료지원가를 양성하는 사업이 있어요. 그런데 양성된 동료지원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생태계가 극히 제한적이잖아요.”

-그 중의 하나가 28DAYS.

“네. 이름을 그런 의미로 지었는데 앱 이름이 여성들 생리 기간 같다고 해서 저희가 코코넛으로 이름을 바꿨어요. 넛(nut)이라는 영어가 ‘미쳤다’라는 의미가 있는데요. 우리 모두 어떻게 보면 다 미쳤고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 없는데 그렇지만 코(co) 함께하면 우리가 회복할 수 있다 이런 내용입니다.”

-전문가를 양성하는 게 아니고 피드백을 주는 앱인데 그러면 정신건강응급구조사는 무슨 의미입니까.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이 탯북이라는 앱인데 여기 보면 우울증 척도도 알게 되고 증상별로 조현병, 조울증 또는 죽고 싶을 때 긴급 의사 이런 게 뜨거든요. 그럼 지지를 해 주고. 교육 받는 동료지원가들이 이 플랫폼 상에 등록이 돼서 지지자 역할을 해 주는 거죠. 본인이 겪은 정신병원 입원 경험, 어떤 약을 먹었다거나 이혼, 성폭력 등 여러 가지 이슈를 해 놓으면 이 앱에서 기술적으로 매칭이 되는 거예요.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이 너무 죽고 싶고 힘들 때 여기 팝업이 떠서 이런 사람에게 지지를 해 줄 수 있느냐 이런 식으로 매칭을 하는 거죠.”

-내가 자살하고 싶으면 코코넛에 들어가서 도와달라고.

“내 기분, 내 상황과 비슷한 사람이 여기에 지지자로서 쫙 등록이 돼 있는 거죠. 그러면 바로 도움을 받을 수 있고요. 이 지지자들은 동료지원 교육을 받았고 또 자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증상에 대한 이해가 있고 그러니까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확률이 높잖아요.

어떤 사람이 환청이 막 들리는데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정신건강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다 보니까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게 아니잖아요. 그럴 때는 이 사람들이 경험해 봤던 소비자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요.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 그러면 잘 치료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게 없으니까) 발병하고 84주가 지나서야 병원에 찾아가게 되는데 (코코넛을 이용하면) 치료 기간을 훨씬 더 단축할 수 있어요. 조기 개입과 치료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는 면에서는 정신과 의사들도 반겨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이걸 특허 신청하면 되지 않나요.

“하려고 노력 중인데 워낙 자금이 많이 들어갔어요. 원래는 국가랑 하려고 했는데 그때 최순실게이트가 터져서 안 됐어요. 저는 영리 목적으로 시작을 안 했고 제 고통 때문에 이런 앱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 해서 (만들었어요). 그때 주치의가 최용석 씨는 똑똑하니까 이런 문제를 변화시켜보세요라고 저한테 희망을 줬거든요. 주치의가 약 처방으로 희망을 준 게 아니라 공감했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깨달았어요.

주치의가 추천해 준 해외 사이트에 들어가보니까 나 같은 사람이 수백만 명이에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괜찮다고만 해도 회복이 될 수 있구나. 나는 맨날 잘난 척하고 뉴욕 스타일에 쿨하던 사람인데 제 증상을 오픈하기가 부끄러웠어요. 그런데 외국 사이트에 들어가서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 게시판 보니까 완전 제 증상인 거예요. 안도감이 되더라고요. 이걸 좀 해야겠다.

그래서 제 돈으로 버전1, 버전2 만들면서 수천만 원이 들어갔어요. 그래서 멘탈헬스코리아를 만들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뢰감을 주기 위해 카이스트에 들어가야겠다 (생각한 거죠). 저는 농담으로 한국 학력이 고졸이어서 믿을 만한 게 없잖아요. 사회에 혜택을 주려면 진실된 게 있어야 되기 때문에 늦은 나이에 카이스트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스스로를 오픈하면서 소비자니까 괜찮습니다. 그걸 강점화시키는 거죠. 입원해봤던 경력을 이력서에 올리는 거예요. 그렇게 사고를 바꿈으로써 초기에 진입하는 분들에게 이를 알려주면 빨리 회복이 되죠.”

-동료지원제도가 시행 중입니다. 멘탈헬스코리아의 피어 서포터(peer supporter)와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비유적으로는 한국식 커피냐 미국식 커피냐 그 정도인 거 같아요. 도와주고 지지하는 건 맞는데 한국에서 확산되지 못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제가 사회적 기업가 MBA 하면서 느꼈던 건데 잘 안 되고 확산이 안 되는 것들은 혁신과 변화를 통해서 진행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점은 같으나 피어 스포터로 하면 글로벌한 느낌도 들고 괜찮은 용어인 거 같아서 사용했어요.

용인정신병원에서 절차보조인 사업을 한다고 하는데 대부분 중증정신질환, 만성이 된 분들에 집중돼 있거든요. 멘탈헬스코리아는 만성화되기 전에 조기 예방과 조기 치료를 하면 사회적 비용을 크게 절감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걸 언제 하냐면 25세 미만에서 해야 되는 거예요. (정신질환이) 10대, 20대 초중반에 발현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시기잖아요. 이 조기 예방과 개입에 포커스를 둔 저희는 동료지원가들 양성을 하는 거죠. 또 10대, 20대에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미디어라든지 앱이라든지 좀 더 디지털 쪽으로 혁신적 요소를 넣어서 확산이 가능하도록 하려 합니다.”

최용석 멘탈헬스코리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최용석 멘탈헬스코리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청소년 정신질환에 관심을 가진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제가 사회사업 대학원을 다닐 때 인턴십을 청소년들과 가족 대상으로 하는 걸 제일 먼저 시작을 했었요. 그리고 미국에서 연극 극단을 운영했는데 청소년들, 흑인, 히스패닉, 갱단 이런 애들 모아서 했어요. 제가 극단 대표였어요. 연극치료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꿈이었잖아요. 청소년들은 저에게 자연스러운 언어였던 거 같아요. 공부도 그런 쪽으로 계속 했었고. 그리고 그냥 사랑스러워요. 조기 예방적으로 청소년기에 교육을 하면 예방이 되겠다. 사회적 비용도 줄어들겠다 생각했죠.”

-지난해 11월에 처음 청소년 멘탈헬스 리더십 ‘스타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 피어 스페셜리스트 8명을 배출했습니다. 초기 지원자가 52명이었는데요 이들이 양성 과정에서 그만 둔 이유가 뭘까요.

“그만 둔 건 아니고요. 지원을 그렇게 했는데 1차 면접, 2차 면접을 통해서 탈락이 된 거예요. 선택받은 사람이 8명이에요. 초창기의 목적이 대충 와서 하는 게 아니라 자랑스럽게 느끼도록 저희가 졸업식도 성대하게 하고 자격증도 주고 주급도 주고 그런 이유가 있는 거죠.”

-주급을 줬다고요.

“주급은 5만 원씩. 16주 정도 진행을 했는데 빠진 날은 당연히 안 주는 거고. 꾸준한 참석한 친구들은 80만 원 정도 받아갔고요. 나중에 상도 받고. 이게 우리가 너희들이 불쌍해서 심리 지원해 준다는 의미보다는 완전히 차별화해서 이 활동이 리더십 프로그램이고 사회적으로 네가 기여하는 프로그램이다. 너의 활동이 주급을 받을 만큼 의미 있는 활동이다.

이 친구들은 경제활동을 처음 해 보는 거잖아요. 내가 하는 활동에 책임감도 느끼고 성취를 맛보니까 더 동기부여가 되는 거죠. 내가 아픔을 가졌는데 그걸 숨기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가 돈을 벌 수 있네. 이게 다른 사람을 돕는데 큰 나의 강점이 되겠구나를 깨닫는 거죠.”

-졸업을 했단 말이에요. 졸업하면 이들은 뭐합니까.

“동료지원가로서 청소년 피어 스페셜리스트 수료증을 준 거고요. 멘탈헬스코리아 소속 동료지원가가 돼서 활동을 하는 거죠. 저희는 소속사 같은 느낌이 되는 거고. 이 친구들이 지속적으로 돈도 벌 수 있고 하지만 지금은 그런 활동 반경이 제한적이잖아요. 이 친구들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싶어 하거든요. 그래서 학교로 돌아가서 자율 동아리를 만들어요. 동료지원 동아리를 만들어서 지역사회에서 이런 일들을 확산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죠.”

-정신질환자 퇴원 시 정신건강심사위원회를 통해 개인 정보를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통보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민감한 내용이죠. 편견이 심해질 거예요. 인종차별 운동이 1960년부터 케네디 대통령이 사인하면서 좀 달라졌는데 한 40년 뒤쳐져버린 그런 느낌.”

-한국이 40년 뒤쳐졌다고요.

“아니요. 인종차별에서 40년 뒤지는 그런 법안들이 있었거든요. 또 하나 9·11 테러가 났잖아요. 그때 미국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져서 평등 발언권에 대해 거의 40년 후퇴한 계기가 됐거든요. 그때는 아랍인을 향해 계란을 던지고 했어요. 9·11 전에는 그런 게 없었거든요. 임세원 교수 사건(지난해 12월 31일 내담자에 의해 사망한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건-편집주)에 비유할 수밖에 없어요.

9·11 테러 사건으로 가만히 걸어가는 사람이 계란을 맞고 갑자기 국가보안법도 강해졌어요. 또 테러와 관계 없는 아시안 불법 이민자들이 구금센터에 잡아넣어지고요. 강제추방도 당하고. 그때 (미국이) 양분화됐어요. 자유주의 미국인데 갑자기 후퇴한 거예요. 저는 역사에 대해 비유밖에 할 수 없겠어요. 역사에서는 배울 수가 있잖아요. 이민법이 후퇴하고 여러 법이 생겼는데 그런 것들과 비슷한 거 같아요.”

-강제입원은 여전히 논란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72시간 강제입원 시키는 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게 제대로 운영되려면 의료계의 서비스가 좀 더 올라가야 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인격적 트라우마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소비자 권리에 대해 얘기해 줘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없잖아요. 좋은 의사를 만나면 그렇게 해 줄 수 있으나 그게 무시돼 왔죠. 왜냐하면 너는 환자이고 위험한 상태니까.

(형법에도) 미란다 원칙이 있잖아요. 그 72시간 안에 인권이 지켜져서 최소한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알려만 줘도 트라우마가 줄어들 수 있겠죠. 그런데 그런 것이 없으니 더 심해지는 거 같아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신장애를 심리사회적 장애로 하자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동의합니다. 옛날에는 똑같이 크레이지 피플(미친 사람들)로 돼 있잖아요. 그리고 환자(patient)에서 이제는 사람(person)이 먼저 와서 person with mental illness(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으로 하잖아요. 사람을 질환으로 묶어서 정신질환자라고 할 때는 인격이 훼손되죠. 정신질환자는 괄호 치고 위험한 사람. 법적으로 운전면허증도 박탈되고 가위도 들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잖아요. 공급자 위주죠. 치료하는 것보다 가둬놓는 게 더 편하니까요. 정신질환자는 제3의 시민자 같은 느낌이 들어요.”

-치유를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합니까.

“치유를 위해서는 공감이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경험상 약물은 부가적인 수단이라고 느꼈거든요. 사랑과 공감인데 우리 사회가 너무 각박해서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가 좀 덜한 사회인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질환이 굉장히 심해지고 발현이 되고 나서 발견이 되는 그런 사회인 거 같거든요. 공감해줄 수 있는 사회가 치유인 거 같아요. 약물 먹어서 된다고 하면 수십 년 동안 약 먹은 사람들이 치유가 돼야 하는데 안 되잖아요.

그래서 스트레스가 있다고 했을 때 받아줄 수 있는 사회. 편견이 아니라 다르다는 걸 인정해 줄 수 있는 사회. 그런 것들이 법으로 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2005년 미국은 오바마법에 의해서 정신건강 질환자에 대해 차별을 하면 안 되게 돼 있거든요. 한국은 그런 게 전혀 없잖아요. 어떻게 하면 가둬넣을까만 생각하죠.

미국 남부에서 1930년대 행했던 차별법으로 백인과 흑인을 나눈 것처럼 한국도 강제입원과 정신병원으로 차별하는 거 같아요. 인종차별법에 대비해 보면 과거로 되돌아가 가는 거 같아요. 용어도 바꿔야 하고 여러 가지가 필요해요.”

-정신적 고통을 오래 겪은 후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게 됐습니까.

“옛날처럼 돌아가고 싶다. 이런 부분이 있어요.”

-옛날, 어디로 말입니까.

“지금처럼 불안하지도 낳고 스트레스에 너무 민감하고 예민해지지 않고 (하는 상태로요). 약을 먹어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 이 상태 말고. 그때는 행복감도 조금 더 있었거든요. 돌아갈 수 없으니까 이렇게 살아야죠. 대신 제가 이런 경험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시간 낭비, 돈 낭비, 자기 증오를 하지 않았으면 해요.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그렇게 반복되잖아요. 제가 몇 명이라도 도와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최용석 멘탈헬스코리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최용석 멘탈헬스코리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대표님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입니까.

“미안함이죠. 저는 IMF 때 유학을 가서 1달러에 2700원일 때 돈을 써서 그게 제일 미안해요. (그 돈으로 공부하고 나서) 제가 지금 거의 백수처럼 이거 하잖아요. 그 돈으로 금을 샀으면 저희 아버지는 지금 떼부자 됐을 건데 그 돈을 학비로 다 썼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미안한 느낌이예요.”

-대표님의 꿈은 뭡니까.

“심리치료가 보험이 되는 나라가 됐으면 하는 게 개인적 희망이에요. 그래서 소비자로 인지를 하고 서비스 공급자들의 퀄리티를 높이고. 보험화가 돼서 심각하게 고민하지 말고 누구나 자유롭게 요가 운동 가듯이 쉽게 치료를 받았으면 해요.

제가 미국에서 느꼈던 쿨한 느낌. 텔레비전에서도 테라피 받는 거, 약 먹는 거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서 편견을 낮췄으면 해요. 그래서 심각하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가지 않도록 옆에서 문제가 있으면 ‘야, 심리 테라피 조금 가 봐’ 하는 게 욕이 아닌 그런 게 됐으면 좋겠어요.”

-정신장애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본인 스스로 정신질환자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환자에서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로 한 번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장애인이라고 불러왔는데 어떤 증상 중의 하나일 뿐이지 그 사람을 대변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건 단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빨리 도움을 주도록 증상으로 이름을 부르는 거거든요. 진단으로 이름을 부르는 거지 그 이외에 병명으로 불리는 건 차별이라고 생각해요. 낙인과 차별이기 때문에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해야지 최용석이 먼저 가지 않고 질환이 먼저 가서 조현병 환자 ○○○, PTSD 최용석이 안 됐으면 좋겠어요. 또 스스로 질환에 대해 낙인을 찍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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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 2019-04-10 12:02:06
좋은 기사 감사드립니다. 많은 위안과 또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네요~~^^ 아직 갈 길이 멀었네요 ㅠㅠ

권혜경 2019-04-10 11:17:20
와! 대단하네요. 질환자가 아닌 소비자로!
최용석 님의 열정을 응원합니다. 기사 읽고용기 얻었어요.
또 앱게발 등에도 관심가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