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의 정신병동 일기] 정신병동에서 하루를 보내는 방법 (6)
[이수연의 정신병동 일기] 정신병동에서 하루를 보내는 방법 (6)
  • 이수연
  • 승인 2019.04.14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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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에서 일 년의 시간을 보내고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 작가 이수연의 첫 정신병동 일기

정신병동일기 6화

정신병동에서 하루를 보내는 방법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c) 놀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c) 놀

 

2016년 9월 00일

당시 그곳 사람들의 모든 관심사는 ‘어떻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인가'였다. 저녁 시간 놀이부터 시작해서 작게는 종이접기까지 정말 별별 놀이를 다 연구해가며 허락을 받았다.

그날은 약물 중독으로 들어온 언니가 법원에 가는 날이었다. 마약류를 복용해 경찰에 적발됐고 조사를 받아 법원까지 간 것이다. 병원에 들어온 이유도 그것이었다. 사실 마약 중독까지는 아닌데 법원에서 선처를 받기 위해 재활 의사를 보이는 거라고 말했다. 그런 목적으로 병원에 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도박도, 약물도, 대부분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법정에서 어떤 판결을 받았는지는 모르나 언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같이 4인실을 썼기에 모두가 언니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무엇을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기분을 풀 수 있을까, 모두가 함께 고민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퍼즐이었다.

보호자와 외출을 다녀온 알코올중독 언니가 천피스짜리 퍼즐을 사왔다. 우리는 홀 가운데에 퍼즐을 모두 쏟고 다 같이 모여 맞추기 시작했다. 법원에 다녀온 약물 중독 언니도 조심스럽게 불렀다.

언니, 지금 다 같이 퍼즐 맞추는데 같이 가요.

언니는 침대 위에 꿍하게 앉아있었다. 자신도 머리가 복잡했는지 알겠다고 말하고 한참 뒤에야 방에서 나왔다. 그리곤 같이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좋지 않던 표정이 퍼즐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천천히 풀려나갔다. 나중에는 법원 이야기도 잊고 다 같이 퍼즐 맞추기에 열을 올렸다. 어쩌다 한 개가 맞을 때면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며칠 동안 우리는 천피스 퍼즐을 맞추기 위해 모든 저녁 시간을 쏟았다.

 

한번은 게임 중독 오빠가 외출하고 병원으로 돌아오면서 체스를 가져온 적이 있다. 그 체스 덕분에 한동안 병동에서는 체스 열풍이 불었다. 모두가 둘러앉아 체스를 구경했고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배우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체스를 하지 않았다. 귀찮다는 이유였다. 다만 구경은 원 없이 했다. 말 하나에 다들 탄식과 환호를 하며 경기를 관람했다.

그날도 여전히 체스판이 열렸다. 자리에 앉은 것은 체스를 가져온 게임 중독 오빠와 도박 중독으로 들어온 오빠. 게임으로 가출까지 하곤 삼일을 꼬박 피시방에서 보낸 오빠와 도박으로 돈을 잔뜩 잃고 가족의 권유로 병원에 들어온 오빠였다. 둘이 자리에 앉아 마주 보고 체스를 두기 시작하자 알코올 중독으로 들어온 아저씨가 한마디를 던졌다.

도박왕 대 게임왕 대결이네.

그 말 하나에 우리 모두 웃음이 터졌다.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었다. 고작 체스 경기 하나에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우리는 흥미진진하게 체스를 관람했다. 둘 다 한 겜블러이어서일까. 경기는 아주 치열했다. 결국, 이긴 것은 게임 중독 오빠였다.

게임왕 승!

알코올 중독 아저씨가 소리쳤다. 모두 모여 손뼉을 치며 재밌는 경기였다고 말했다. 도박 중독 오빠는 크게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내가 이래서 도박으로 돈을 못 벌었나 봐.

앞으로 도박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도박 중독 오빠는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퇴원했다.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고 있을까. 이제는 도박으로 자신의 인생을 걸지 않길 바랄 뿐이다.

병원에 있으면서 상담은 주치의 선생님과 한다. 약을 처방해주고 관리를 한다. 하지만 서로 위로하고 보듬어주는 것은 환자들끼리 이뤄졌다. 우리는 같은 환자라는 이름으로 같은 병동에 들어가 함께 생활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힘들지만 마냥 힘든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아픈 사람들이라서, 서로에게 다정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알고 있기에 이해한다는 말이 편하게 받아들여졌을까. 병원에 있겠다는 의미는 병원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그들과 함께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환자였고 환자 이전에 아픔을 가진 사람이었다.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 가족보다 가까운 존재였다. 서로를 아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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