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위, 국민청원 “자발적이며 당사자의 입장에 중점을 둔 응급대응 체계 마련돼야”
공대위, 국민청원 “자발적이며 당사자의 입장에 중점을 둔 응급대응 체계 마련돼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4.25 2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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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청원글
정신장애인 사건 원인은 지역사회서비스체계 부재
국가의 공공건강복지체계 마련돼 있지않은 상태
위기대응 매뉴얼 부재, 전문역량 부재가 사건 키워
권역별 응급대응센터 구축...24시간 상담 시급
위기쉼터·상담센터·동료지원서비스체계 구축
정신건강복지센터, 위기대응 기능으로 전환해야

경남 진주의 방화·살인 사건의 원인은 조현병 당사자가 정신과 약물을 끊은 데 있기보다는 고립된 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지역사회 연결고리를 마련해 주는 서비스 체계의 부재에 그 본질적 원인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25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진주 사건, 막을 수 있었다. 지역기반 응급대응체계 구축을 바로 실시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정신건강서비스 정상화 촉구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다. 공대위는 지난해 12월 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 사회적으로 정신장애인에 대한 감시와 격리 이데올로기가 강화되자 이에 맞서 국가에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당사자 연대체다.

앞서 지난 17일 경남 진주 가좌동의 한 아파트에서 조현병 병력을 가진 안인득(42)이 자신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화재를 피해 계단을 내려오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바 있다. 또 지난 24일에는 경남 창원의 한 아파트에서 고교 중퇴생 A(18) 군이 윗층의 할머니(75)를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A군은 과거 조현병 진단을 받은 바 있다.

일각에서는 정신장애인이 일으키는 사건 사고의 원인으로 △약물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점 △강제입원 절차를 까다롭게 해서 응급시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는 등 국가 정신건강대응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강제입원의 절차 간소화와 입원치료에만 몰두함으로써 사건의 원인과 대안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번 청원글은 그 사건의 본질적 원인이 약물관리와 강제입원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치료의 연속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국가가 연결고리가 되는 공공건강복지체계를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어서 주목된다.

청원인은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에는 응급정신건강서비스 제공(제12조), 행정입원(제44조), 응급입원(제50조) 제도가 있지만 이를 작동시키지 못했다”며 “원인은 위기대응 매뉴얼, 위기대응 전문성 있는 지역사회 역량의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근본적인 문제는 정신건강복지체계가 정신건강 문제에서의 위기관리를 ‘강제입원’으로만 귀착시키려는 데 있다”고 비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에서 하듯이 지역사회에 권역별 응급대응센터를 구축해 24시간 상담하는 콜센터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위기 상황에서 바로 출동해 진정시키는 위기대응팀의 편제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청원인은 이를 위해 지역별로 위기쉼터, 상담센터, 동료지원서비스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원인은 “기초 단위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자·타해 위험이 적은 상황을 해결하는 ‘위기대응’ 중심으로 기능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또 강제입원과 관련해 “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하지 않으려 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며 “강제입원이 인권이 유린되는 끔찍한 공포로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강제입원 후 경험하는 강제적 약물 복용, 격리·강박, 신체·통신의 자유에 대한 억압의 후유증이 이들로 하여금 정신병원 강제입원을 거부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커뮤니티케어의 이념과 정책에 부합하는 틀 안에서 대안 나와야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이미 보건복지부가 추진중인 '커뮤니티케어'의 이념과 정책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정신장애인은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라 '관심과 돌봄을 받아야 할 주체로서의 이웃'이다. 후자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대안의 본질에 근접하는 것이다. 현재 쏟아지고 있는 개정안들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당사자들의 환경과 조건을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일단 제쳐둔 다음, 사회보호의 측면에서 강제입원의 요건만 강화하는 데 몰두함으로써 본질을 비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원인은 당사자를 위한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국가의 의무를 강조했다. 청원인은 “국가는 당사자가 입원을 거부한다면 당사자가 원하는 위기극복 대안을 마련할 의무가 있다”며 “당사자들이 정신적·물질적으로 힘들 때 지역사회에서 일상적으로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인 ‘일상쉼터’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위기상황에서도 선택의 다양성이 제공돼야 하며 자기결정권 존중은 필수”라며 “강제적인 것이 아닌, 자발적이며 당사자의 입장에 중점을 둔 응급대응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일각에서는 병원기반 사례관리를 대안으로 내놓기도 했다. 병원 기반 사례관리는 병원을 퇴원한 당사자에게 원 병원이 일정기간 약물관리, 사례관리를 지원하는 제도다.

청원인은 이 병원기반 사례관리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현재 정신건강복지센터의 대부분은 정신의료기관에 위탁돼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시스템은 ‘유사 병원형 사례관리’의 일부로서 도입돼 있다는 지적이다.

청원인은 “당사자 입장에서 퇴원 후에도 지속적인 병원의 관리 대상이 된다는 사실에 공포감을 느낀다”며 “지역사회 스트레스를 극복할 힘을 만들기도 전에, 조그만 어려움에도 다시 병원을 입원을 당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위기 관리는 민간에 이양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라며 “공공체계가 공적인 책무하에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사자들이 병원보다 선호하는 위기쉼터, 상담센터, 동료지원센터 등 공공인프라를 적극 확장해야 한다”며 “병원형 사례관리는 지역사회 인프라 구축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병원기반 사례관리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이 추구하는 장애인의 법 앞에서의 평등, 개인의 자유와 안전, 개인의 존엄성 보호 등의 선언에 위배되는 인권 침해라는 게 청원인의 주장이다.

청원인은 “진주 사건의 경우 정신과 약물을 끊은 것이 원인이라기보다 고립된 채 살아가는 사람을 위해 지역사회 연결고리를 마련해주는 서비스가 결여된 것이 근본 원인”이라며 “정신질환 관련 사건의 원인은 고립, 은둔, 배제 등과 관련돼 있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지역사회 서비스는 장애인복지 체계와 통합해 정신장애인 복지 수준을 발달장애인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며 “위기쉼터, 동료지원 등의 서비스를 조속히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청원 내용으로 ▲'커뮤니티케어'의 이념과 정책에 부합하며 당사자가 원하는 위기쉼터, 동료지원센터, 심리상담, 지원주택 등 지역사회 인프라 확장 ▲현체계의 유지에 불과한 병원형 사례관리의 즉각적 철회 ▲권역별 위기대응센터의 구축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공공성 확보와 기능 전환 ▲실무자 고용 조건 개선 통한 위기관리의 구심점 등을 요청했다.

따라서 이번 국민청원은 평소 정신장애인에 관한 사회적 관심과 돌봄의 부재가 이번 참극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하는 한편, 병원 기반 사례관리를 통한 일각의 시대착오적 접근에 대해 경각심을 제고한다는 측면에서 향후에도 계속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복지부가 추진중인 커뮤니티케어 정책 내에서 정신장애인에 관한 지형도를 어떻게 세분화시킬지에 대해서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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