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스스로 스티그마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사회적 연대도 중요”
“환자 스스로 스티그마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사회적 연대도 중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05.19 0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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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조현병학회 20주년 학술대회 열어
시티그마의 원인은 무지(無知)에서 오는 것
성취하도록 몰아붙이는 회복 패러다임을 바꿔야
스티그마 경험은 가족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해
질환자의 예측불가능성을 이유로 스티그마를 확산시켜
스트럭쳐 스티그마는 집단의 불이익이나 권리의 침해를 의미
미디어가 스티그마와 차별을 키우는 원인
소외는 정신증 경험의 핵심적 본질

대한조현병학회 20주년 학술대회가 18일 서초구 쉐라톤서울팔래스강남호텔에서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는 대한조현병학회의 지난 20년을 돌아보고 전문가로서 사회적 책무를 지키고 학회의 나아갈 바를 모색하는 자리로 준비됐다.

발제에 나선 이중서 한림의대 교수는 “스티그마는 여러 가지로 분류되는데 스티그마를 어떻게, 누가 느끼느냐에 따라 셀프 스티그마, 환자의 가족이나 친족이 느끼는 콜터시 스티그마, 그 외 퍼블릭 스티그마, 스트럭쳐 스티그마 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티그마의 정의에 대해 합의된 것은 없다”면서 “그런데 조현병의 예를 들면 얼마나 만성적으로 지속이 되느냐, 대인관계에 얼마나 영향을 받느냐, 일반 대중이 조현병에 대해 얼마나 위험을 느끼느냐, 조현병 환자들의 겉보기가 어떤가, 조현병의 원인이 뭔가 하는 것들이 스티그마를 유발하는 주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해외의 한 연구단체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전 세계 299개국에 설문조사를 했다. ‘정신질환이 있는 환자들과 접촉하는가’라는 질문에 40%가 매일 정신질환자와 접촉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한국의 경우 정신질환 환자들이 난폭하다는 질문에 대해 세계 분포 중 평균적이었다. 또 정신질환이 신체질환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한국은 비교적 그런 경향이라고 답하 비율이 많았다.

“정신질환자들이 정신질환 자체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른 신체질환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국가에서는 ‘그렇다’는 응답이 상당히 낮게 나왔다. 미국이나 호주에서는 정신질환이 다른 신체질환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잘 이겨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응답률이 높았다.”

이 교수는 “뇌의 질병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70%가 ‘그렇다’고 답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뇌의 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상당히 낮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스티그마를 경험하는 대상은 대부분 가족과 친구와 같은 친밀한 관계가 가장 높았다. 이어 직업을 찾고 유지하는 부분과 개인의 사생활에서 스티그마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티그마 경험은 가족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해

이 교수는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스티그마를 겪는다”며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 가족의 50% 이상이 스티그마를 경험한다고 하며 이런 면에서 질병을 숨기려든다든가 우울하다거나 자살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환자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가족들도 많았다.

그는 “스티그마를 없애기 위해서 스티그마가 다른 신체질환과 마찬가지로 병이라고 하는 부분을 강조하면 질환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을 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환자의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 않겠느냐는 인식을 불러와 스티그마를 오히려 확산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환자들이 위험하다든지 또는 예측불가능 이런 인식은 늘어나고 있고 그런 점에서 환자들을 더 멀리하려는 결과가 나온다. 치료를 해도 잘 낫지 않을 것이라는 페시미즘이 더 심해진 것 같다.”

2012년 오바마 미 대통령은 총기 규제와 관련해 정신질환자들의 총기 구매만이라도 어렵게 만들자는 제안을 했지만 의회에서 부결됐다. 이 교수는 이를 ‘스트럭쳐 스티그마’라고 지적했다.

그는 “스트럭쳐 스티그마는 사회의 법과 제도, 혹은 공공기관이나 민간기관에서 스티그마를 받는 집단이 불이익이나 권리의 침해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은 정신건강복지법을 만들었으나 실제 운영에서 정신질환자를 공정하게 대하지 않는다. 법적·제도적 장치를 이용할 때 법 체계를 복잡하게 만들어서 실제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어제가 강남역 사건 2주기였다. 경찰은 범죄를 저지른 그 사람을 이틀 동안 면담해 조현병 때문에 발생한 범죄라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그 환자를 면담하더라도 이틀 만에 진단을 내리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이렇게 빨리 처리했다는 게 스트럭쳐 스티그마가 아닌가 생각된다.”

환자들의 경우 빠른 회복을 위한다면 약물치료를 권장 받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약물의 부작용이 올 수 있으며 이것도 스티그마를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스티그마는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사회 전반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당히 복합적인 문제”라며 “정신질환에 대한 스티그마가 없어진다고 하면 다른 스티그마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조현병에 대해 정신과 의사를 비롯해 정신건강보건 종사자들의 인식이 변해야 하고 이런 인식 변화를 토대로 환자들을 대할 때 태도라든가 어휘의 구사 등에 주의를 해야 한다”며 “사회제도와 법률들을 같이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예측불가능이라는 편견 때문에 스티그마 더 확산

최준호 한양대 의대 교수는 “스티그마는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며 “시티그마의 원인은 무지(無知)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스티그마와 차별을 만들어 내는 원인으로 미디어를 꼽았다.

“대중 매체는 이 질환에 대한 편견을 만들고 공정성과 객관성을 결여했다. 정신질환자를 두려워하는 건 자주 접하기 못하기 때문이다.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거나 해결책이 있으면 스티그마가 생길 리가 없는데 우리가 문신을 하듯이 스티그마를 한다. 인포메이션 시스템(정보 전달 체계)가 없는 것이다.”

최 교수는 “결국 미디어가 편견을 만들어내고 잘못된 믿음도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이명수 용인정신병원 진료원장은 정신의학의 발전 과정에서 질환 당사자가 소외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영국의 힌셸우드(Hinshelwood)라는 학자의 말을 빌려 “소외는 정신증 경험의 핵심적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소외라는 관점에서 내적 감정을 외부 투사하고 자신의 것으로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투사를 하면서 사회로부터 소외되기 시작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신증으로 입원하거나 진단명으로 존재하면서 소외가 되고 정신질환자 혹은 정신장애인으로 네이밍을 받으면서 역시 소외가 발생하게 된다.

그는 “서바이벌(생존)으로서의 환자는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당면 문제들을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시도들이 있어왔는데 정신의학에서도 정신약물학이 시작되고 환자들이 정신의학적 치료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했다”며 “어사일럼(Asylum·정신병원)이 더 이상 정신의학적 치료의 중심이 아니게 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약물 치료 시대에 접어들어 다른 의미의 ‘대상으로서의 환자’ 개념이 발생하게 됐고 서바이벌 단계에서 또 다른 형태로 환자를 대상화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21세기 정신의학은 서비스 공급자와 이용자 간 대화와 협력을 핵심으로 한다고 주장했다.

“리커버리(회복)의 하이라이트는 피어 서포트(동료 지원)인데 회복된 정신질환 당사자가 또 다른 누군가를 돕는다는 피어성은 중독 영역에서 활발하게 정의되고 있다. 그리고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재활시설에서 공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피어 서포트에도 딜레마가 있다.”

21세기 정신의학은 공급자와 이용자간 대화와 협력이 핵심

이 원장은 “회복이라는 건 낫는 걸 말하는데 모든 사람이 다 낫는 건 아니”라며 “역량 강화를 도모하는 시스템으로부터도 소외되는 정신질환자들이 있다. 그 잔류 증상과 약점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주거시설이 있어도 그 자체로 부족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신질환자들이 ‘시설에서 나가 주거시설에 가면 일이 번잡해진다’, 혹은 ‘일을 많이 시킨다’며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권리를 요청한다고 그는 언급했다.

항상 나가서 바쁘게 일을 해야 하는가, 노인 일자리 창출 사업에 반대하는 이유로 65세 이상 노인을 계속 일하라는 게 아니냐는 반론이 나오는 이유다.

그는 “바쁘게 직업 재활 한다고 계속 일을 시킨다. 그래서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주거시설이 있다면 들어가겠다고 한다”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부언했다.

그러나 주거시설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부 사회복지사업법에 근거한 평가지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회복이라는 관점도 다른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성취하도록 몰아붙이는 것만이 리커버리(회복)의 패러다임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유상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은 스티그마와 편견을 심화시키는 것은 국가의 원인이 크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 정책은 신체장애와 비교해 정신보건에 대한 투자가 인색하며 낙후된 정신보건시스템을 개조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게 그 이유다. 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일인당 60명의 환자를 진료하는데 이는 외국과 비교해서도 지나치게 많은 부담이 든다.

또 의료인들이 중증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정신질환자를 대하면서 의료인이 환자에 대해 일반인보다 부정적인 편견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보고도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의료인이 일반인보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 더 커

“국가는 스티그마, 편견이나 차별을 제재하는 강력한 사법 시스템을 운용하고 제도적으로 만성 중증 정신질환자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 환자는 스스로 스티그마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조현병 환자들의 입장을 옹호하며 그들의 치료를 돕고 사회복귀를 지원하고 사회의 현상을 모니터링해서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

의료인 역시 전근대적인 정신보건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국가와 사회에 투자나 변화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이어 “감동적인 스토리의 전달이 일반적인 지식의 전달보다 조현병에 대한 태도 변화에 효과적이라는 보고가 있다”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조현병 당사자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정석 대한조현병학회 재무부장은 ‘조기 진단이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그는 DUP(Duration of Untreated Psychosis·증상이 생기고 난 이후 치료받기까지의 시간)를 예로 들어 “DUP는 환자가 정신적 증후가 나타나는 걸 봐서 확실한 치료를 받기까지의 기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DUP가 객관적으로 효율적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조현병 환자들이 폭력적이냐. 폭력적이라면 조현병 환자들의 폭력성은 어떻게 할 것이냐. 많은 이들이 조기치료를 얘기하는데 결국 DUP와 관련된 얘기다. DUP가 짧으면 이 사람들의 폭력성이 덜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을 가질 수 있다. DUP와 바이얼런스(폭력)를 측정한 연구들이 있었는데 유의미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러나 “DUP가 길면 길수록 좋지 않고 짧을수록 기능이 좋아지는 것은 일반적 결론”이라고 말했다.

이봉주 인제의대 교수는 “스키조프레니어(조현병)은 굉장히 다양한 포스를 가진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 회복이 잘 되는 경우는 20% 정도다. 그 외는 포스 자체가 왔다갔다해서 트리트먼트(치료)가 잘 안 된다. 예후가 좋지 않다는 건 DUP와 관계가 있을 거라고 얘기한다. 치료를 시작하고 클리니컬, 리커버리 등 다양한 과정을 겪게 되는데 무엇보다 초발이 중요하다.”

그는 정신병의 조기 개입의 중요성으로 ▲새로운 사례의 조기 발견 ▲효과적인 치료에서 지연의 감소 ▲질환의 처음 몇 년 동안 초기 결정적 시기에 최적의 지속적인 치료 제공을 언급했다.

그는 이어 EIP(Early Intervention in Psychosis)와 관련해 국제협회가 14~24세 연령의 초고위험군 집단에 초점을 맞추고 정신병의 원인과 생물·신경과학·사회심리적 경험을 결합한 모델의 경험적 연구로서의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노르웨이의 경우 병의 조기개입으로 DUP와 음성증상이 감소했다. 홍콩 역시 DUP와 자살률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기개입으로 치료 지연 감소가 치유의 핵심

이 교수는 정신질환의 과정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조기 정신병에서 전문적 관리가 최소 3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영철 전북의대 교수는 디텍트(detect·질환의 발견)가 잘 되기 위해서는 정신보건 관련 관계자나 전문의 수련의 과정에 관련 교육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중매체를 통한 홍보도 중요하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각 나라별로 디텍트와 관련한 홍보 포스트를 내가 모아두었다. (프로젝트를 가리키며) 홍콩에서는 사이코시스를 사각실조증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 포스트는 싱가폴 건데 누가 따라오는 듯한 느낌을 그림으로 그렸다. 스페시픽한(특정한) 증상을 딱 표현해 준 거다. 근데 우리나라의 포스트는 굉장히 광범위하고 간접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많다. 외국처럼 직접적일 수 있는 내용도 과감하게 내세울 필요가 있다.”

그는 “조현병에 대한 라디오 캠페인과 애니메이션 등을 보면서 이 질환이 오픈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디텍트가 잘 되기 위해서는 조기 중재센터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지난해 청년 회복수기 공모를 했는데 염려했던 것보다 많은 이들이 투고를 했다고 한다.

그는 “시상식 때 수상자가 자신이 다니는 직장 동료들을 데리고 와 꽃다발을 받는 모습을 보며 굉장히 놀랐다”며 “우리 전문가들이 오히려 더 위축돼 있고 말하기를 꺼려하는 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했다”고 언급했다.

학회측은 이번 학술대회의 캐치프레이즈를 ‘Understanding Schizophrenia: From Patients to Science and Practice’로 정했다며 이는 조현병을 이해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학회의 정신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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