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입원과 강제 치료는 인간의 존엄성과 양립할 수 없어"
"강제입원과 강제 치료는 인간의 존엄성과 양립할 수 없어"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5.02 0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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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니우스 푸라스 유엔 특별보고관 특별 강연
유엔 CRPD 기초 강제적 치료는 금지돼야
인권침해와 관련 어떤 예외도 허용 안 돼
세계적으로 의료 전문가가 의사결정 절차독점
다수 국가의 정신건강 개혁은 사실상 실패
정신건강을 일반 건강관리에 통합시켜야
정신장애인 격리수용시설에 대한 투자 중단해야
지역사회 환경구축 실패가 장기입원 부작용 낳아
심리사회학적 관점을 포함한 패러다임 확장
치료와 복지는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지원돼야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출된 특별보고관 보고서의 핵심 권고사항은 정신건강서비스 정책 설계에 정신장애인의 참여를 확대하는 한편 수용시설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고 지역사회에 기반한 서비스에 투자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1일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열린 ‘21세기의 정신건강과 인권’ 심포지엄에 참여한 다이니우스 푸라스 유엔 건강권 특별보고관은 유엔 인권위 보고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푸라스 보고관은 지역사회 서비스에 통합되는 사회심리적 서비스에 투자해 사용자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이들의 자율권을 존중할 것과 대안적 정신건강 서비스 및 지원 모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특별보고관 보고서의 권고사항이라고 전했다.

유엔 특별보고관은 유엔 인권이사회가 임명하며 이들의 임무는 유엔과 회원국의 도전 과제와 문제점 등을 보고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권고안 마련 이행을 이행한다. 현재 80명이 특별보고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푸라스 보고관은 “정신건강에 있어 인권에 기반한 완전한 이행은 서비스의 확대, 예방, 재활, 치료, 회복을 모두 포괄한다”며 “정신건강에 효과적 투자를 하는 데는 시민단체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세계적으로 시민사회가 위축되고 있고 인권에 대한 공격이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신장애인의 자유권 박탈과 비자발적 치료의 역사적 과정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장애인권리협약에 기초해 의사결정 대리, 자유 박탈, 강제적 치료는 금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주류 정신건강의학은 전문의가 위험 예방을 위해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아도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은 이 불가피한 강압적 개입이 환자의 건강권을 실현하고 장애인이 존중을 받고 살아갈 수 있는 원칙이라고 주장해 왔다. 또 정신의학은 의학의 특수분야로 예외적 사항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들었다.

푸라스 보고관은 “인권침해와 관련해 어떠한 예외도 있어서는 안 된다”며 “정신장애의 정도가 심할 경우 학대와 고문에 해당하는 강제구금과 치료는 인간의 존엄성과 양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신의학 분야에서 인권 모니터링 및 보호를 위한 메커니즘이 존재하고 있지만 여전히 의료 전문가가 의사 결정 절차를 독점하고 있다”며 “정보에 근거한 동의 원칙은 간과되고 있고 실제 상황에서 적용되는 의학적 예외는 규칙이 돼 인권침해의 길을 열어준다”고 지적했다.

2001년 WHO(세계보건기구) 세계건강보고서는 비차별, 건강권 존중 등 명확한 메시지를 세계에 던진 바 있다. 하지만 정신건강 분야는 고립되고 낙인찍힌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푸라스 보고관은 분석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상당수 국가들은 보고서에서 제시하고 있는 권고 사항들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다수 지역과 국가에서 시도했던 정신건강 분야의 개혁은 실패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의 상당수 원칙들이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으며 전 세계 정신의학 분야의 이해 당사자들조차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푸라스 보고관은 “정신건강 시설 내 인권 보호를 위한 독립적인 모니터링은 여전히 상당수 국가들에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러한 인권 침해는 정신건강 서비스가 상당한 재정 지원을 받기 시작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신건강 관리 시스템 내 인권 침해 문제해결은 용납할 수 없는 수준으로 실패했다”며 “어디에 투자하고 어디에 투자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합의를 통해 더 나은 방법을 찾는 방법 모색에서 실패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신체건강과 정신건강 간의 동등성을 확보하려면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참여를 통해 정신건강을 1차 진료 및 일반 건강관리에 통합시켜야 한다”며 “지역사회에서 심리사회적 개입을 확대해야 하고 강압, 고립, 과도한 치료 문화는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적절하고 수용가능한 고품질의 사회심리적 개입의 기본 패키지를 보편적 의료보장의 핵심 구성요소로 개발해야 한다”며 “모든 강압적 정신과 치료 및 감금을 근절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면서 “인권 침해와 관련한 어떤 예외도 남겨서는 안 된다”며 “예외를 허용하게 되면 규칙이 되고 결국 그 규칙이 과도하게 오남용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푸라스 보고관은 “인간의 존엄은 절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강제입원과 강제치료는 인간의 존엄성과 양립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신건강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정신건강을 주류화하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격리 수용시설에 대한 투자를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문화적으로 적합한 사회심리적 개입이 최우선시돼야 하며 의학 교육 및 연구에서 불균형하고 편향된 지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푸라스 보고관은 “정신의학 전문가 집단은 기존의 정신의학 모델이 위기에 직면했음을 인식해야 한다”며 “신경생물학적 패러다임, 위험성에 대한 개념, 의학적 필요성 등 인권침해를 허용하는 관행 및 법에 대한 입장을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문제 해결 방법으로 정신건강서비스를 받는 현(現) 이용자뿐만 아니라 전(前) 이용자들이 구성한 비정부기구(NGO)가 필요하며 이는 시민사회의 역할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문민서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국장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 진정사건은 연간 1천~2천 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며 “그만큼 동의하지 않는 치료에 대해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그 처우에 대해 비인권적이고 굴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되면서 입원 절차의 강화로 입원율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측했지만 예상과 달리 4% 이내의 소폭 감소가 이뤄진 것에 의문을 표했다.

강문 국장은 “정신병원 이외에는 지역사회에서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지 못해 퇴원 이후 다시 입원이 반복되고 장기화된다”며 “현재의 정신의료기관은 6~10명이라는 비인간적인 과밀수용과 역할 환경, 동의하지 않는 과도한 약물 투약, 빈번한 격리와 강박의 문제가 대표적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신건강서비스에 대한 낮은 인식과 부족한 투자, 의료 중심적 패러다임, 위급하고 긴박한 상황까지 몰려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조차 관심을 갖지 못한 상황이 인권유린이라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이상훈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교육과장은 “인간의 질병은 사회적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생물학적 관점으로만 질병을 바라보기 보다는 사회적 관점까지 시각을 넓혀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정신질환의 생물의학적 모델에서 심리사회학적 모델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정신질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반정신의학적 관점으로 치우칠 수 있다”며 “정신질환에 대한 서비스가 생물의학적 모델에 치우쳐 있다면 심리사회학적 관점을 포함해 나가는 패러다임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과장은 정신의료서비스에서의 수용화, 의료화, 의료서비스에 대한 개념 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용화는 인신구속의 한 형태로 의료와 본질적으로 상관없는 개념이다. 공동체가 방임하거나 포용했던 정신질환자들이 유럽 산업혁명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수용소에서 관리해온 것이 그 본질적 시작에 있다는 지적이다.

의료화는 비의학적 문제가 의학적 문제로 정의되고 병리화된 것으로 사회적 맥락보다는 개인적 문제로 의학적 사회통제가 확대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1950년대 동성애가 의료적 문제로 정의됐다가 1963년 탈의료화됐던 예가 그렇다.

의료서비스는 의술로 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복지와 인권의 핵심이 내부에 담겨 있다.

그에 따르면 2007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비자의적 치료에 대한 반대 이야기는 없었다. 그런데 장애인권리협약 위원회가 2014년 일반논평을 발표하면서 ‘비자의적인 정신치료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는 해석이 들어가게 된다.

이 과장은 이 해석이 비현실적이고 극단적이어서 당사국들이 협약을 따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위원회의 의도는 제12조 법 앞의 평등에 대한 해석으로 장애 자체로 법적 능력을 부인하는 건 부당하다는 걸 지적한 것”이라며 “이는 의사결정능력이 손상된 경우 예외적으로 법적 능력을 제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되지 못하며 비자발적인 치료가 장애인 차별이 아니라 장애 자체는 중립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장애인권리협약 위원회 구성원이 법학, 철학, 신학, 사회복지학, 교육학 등 다양한 교육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그 구성원 안에 의료 전문가와 보건 전문가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이로 인해 위원회의 견해가 정신질환에 대한 의학적 이해가 없이 사회적 요소로만 치우치는 건 당연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 과장은 “국가인권위 자료에 따르면 실제 회복에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이 꾸준한 약물 복용과 정신과 입원, 외래진료라고 보고한 환자들이 58.6%였다”며 “장애인권리협약 위원회의 잘못된 발언은 장애인들을 오도하고 해를 끼치는 무책임하고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신장애는) 질병과 장애의 요소가 공존하기 때문에 초기 응급시기에 의료서비스를 받고 회복은 사회복지에서 담당하겠다는 주장은 질환이냐 장애냐에 대한 잘못된 이해”라며 “환자에게 의료 및 심리, 교육, 주거, 직업, 재활 등 모든 서비스가 치료 초기부터 동시에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신의료서비스의 발전 방향과 관련해 그는 “영국의 Home Crisis Resolution and Home Treatment Teams과 같이 정신과 의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임상심리사로 구성된 다학제 팀 서비스, 외래치료지원제, 낮병원 활성화 등 대안으로 보완돼야 한다”며 “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형태를 지역사회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립정신건강센터, 한국정신장애연대(카미)가 공동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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