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열린토론... “정신건강복지법 안에 ‘사법입원제’ 끼워넣는 건 부적절”
KBS 열린토론... “정신건강복지법 안에 ‘사법입원제’ 끼워넣는 건 부적절”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5.07 00: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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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교수, “국가 잘못을 정신질환자 탓으로 돌려”
위험 초래의 경우 형사정책적으로 커버해야
지역사회 돌봄 서비스에 예산·인력 지원해야
강제입원율 하락 불구 지역사회 인프라 없어 입원 유지
급성 입원의 경우 국가와 사회의 역할 중요
사법입원제가 인신구속의 면죄부 되선 안 돼

정신건강복지법 안에 강제입원을 결정할 사법입원제를 넣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KBS열린토론(4월 30일)에서 “치료보호법이나 보호관찰법처럼 형벌과 치료목적의 관련 법들이 이미 있다”며 “강제입원이 범죄 예방과 직접적 연관성이 있느냐와 관련해서는 제가 볼 때 정신건강복지법으로 관리하는 건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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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범죄를 일으킨 정신질환자든 그렇지 않든 니드(욕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포섭할 수 있는 법률 개정을 해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현재의 사회적 이슈가 자의입원이냐 강제입원이냐로 수렴이 되는데 이건 적절하지 않다”며 “국가가 위험관리를 못해 발생한 걸 정신질환자에 대한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치료를 받는 정신질환자는 충분히 사회생활이 가능한데 이 문제를 정신건강의 문제로 수렴시키면 답이 안 나온다”며 “법무 행정에서 빈틈을 메우고 경찰이 할 수 있는 역할의 한계를 두고 필요하면 법원과 검찰이 해야 하는 일을 세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또 “입원은 교도소와 마찬가지로 사회로부터의 격리인데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사회의 재활은 실패한다”며 “입원 기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정신보건의 철학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밤에 약 먹고 자는 건 병원에서 해도, 낮에는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활동을 해서 자발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며 “문제는 퇴원을 하면 지역사회로 던져버리는 상황에서 가족도 준비가 안 돼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른 채 약만 먹으라는 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영미법 국가들은 경찰에 응급입원을 비롯한 법집행의 재량권을 많이 부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재량권이 제한돼 있고 응급입원을 진단하고 입원을 판단하는 건 경찰 스스로도 업무의 한계를 넘어서는 조치로 인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안인득 사건처럼 정신질환자들이 지역사회에서 공적 서비스를 받기를 원하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위험을 초래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형사정책적으로 커버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인득 사건’은 지난 4월 17일 경남 진주시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안인득(42)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화재를 피해 대피하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을 말한다. 안인득은 기존에도 사고를 일으켜 치료감호소에서 편집증적 조현병 진단을 받은 바 있다.

권오용 정신장애연대 사무총장은 “지역사회에 정신질환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들이 있으면 힘들 때 찾아가서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예산은 모두 병원 위주로 집중돼 있다”며 “이런 접근이 약해서 중증으로 발전해 입원하고 지역사회로 나오면 서비스가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지역사회 돌봄의 다양한 서비스들이 개발돼 있는데 정부가 여기에 예산도 투입하고 인력도 배치하는 제도적 서비스 개선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권 사무총장은 또 “정신보건법이나 정신건강복지법은 환자 중심이 아니라 병원, 요양원, 전문가들의 공급자 중심이었다”며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복지서비스에 관한 장이 들어갔지만 임의 규정으로 돼 있어 예산이 거의 배정이 안 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해 전국 정신병원에 대한 실태조사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강제입원률은 37%로 정신보건법 시대보다 낮은 수치의 입원률을 보였다. 그러나 실제 지역사회로 나온 정신질환자는 4%에 불과했다. 이유는 뭘까.

권 사무총장은 “이들이 나가서 살 곳도 없고, 할 것도 없고, 준비도 안 돼 있는 상황에서 지역사회에 나가서 살아도 될 사람들이 병원 안에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백종우 경희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안인득 사건'에서 불거졌던 입원이 가능하지 않았던 상황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안인득은 사건 2주 전에 그의 형이 강제입원을 시도했지만 부모에게 한정되는 직계비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병원에서 거절을 당했다. 이후 경찰에 의한 응급입원도 작동하지 않았고 가족이 있을 경우 행정입원을 할 수 없는 규정 때문에 세 차례의 강제입원이 모두 무산됐다.

백 교수는 “입·퇴원의 결정이 대부분 보호의무자의 손에 맡겨져 있는데 환자 본인과 가족, 다른 사람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를 가족이 결정하는 게 맞느냐”며 “급성으로 입원이 필요할 경우 국가와 사회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강제치료는 인신구속으로 가족과 의료진이 아닌 법원이 이를 결정해야 한다”며 “사법입원 제도가 있는 영미권의 경우 입원을 권하기 전에 외래치료지원제를 먼저 권하고 사법입원을 신청하는 것과 자의입원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고 말했다.

홍선미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의 국공립의료기관이 상당히 적어 민간 정신의료기관에서 치료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며 “결과적으로 강제입원이나 장기입원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입원을 해야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보다는 필요할 때 입원하고, 치료가 되면 퇴원하고 회복이 되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지역사회는 회복의 과정을 지켜낼 사회적 투자도 없었고, 정신질환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공유할 사회적 망이 없었다”고 분석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현재 정신재활시설을 비롯해 지역사회 복귀를 돕는 인프라는 지방 이양이 100%다. 지자체가 운영을 부담하는 시스템이다. 곧 지자체가 시설 운영비와 인건비를 지출해야 하는데 단체장들이 봤을 때 정신질환자들은 자신의 ‘투표’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인구집단이다. 또 지역사회 주민들 역시 정신질환자와 어울려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결국 정신질환자 관련 사업은 우선순위에서 늘 밀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홍 교수는 퇴원한 환자의 개인정보를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알리는 법과 관련해 “개인정보를 줄 때는 내가 거기에 부응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할 때 기꺼이 줄 수 있다”며 “정부가 요구하고 이관하는 정보는 낙인을 받을 수 있고 삶의 주홍글씨와 같아 이 부분을 요구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법입원제도에서 판사가 전문성을 충분히 갖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며 “형식적인 통과의례처럼 인신구속의 장치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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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제수민 2019-05-09 21:19:47
이지적인 논리를 가진 분들이 잘해 주시네요. 의료권력가들에게 편지로 복사해 보내야할 글입니다. 기득권을 설득해 녹여낼 방법은 없는지 당사자가 뭉쳐 나갑시다. 호소도 해보고 진정도해보고 투쟁도 해보고 협상도 하면서. 우리의 전략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