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남한강은 그렇게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풍경] 남한강은 그렇게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 김희범
  • 승인 2019.05.1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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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김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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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예일대 연구 실험에서 죽은지 4시간이 지난 돼지의 뇌에 브레인엑스라는 기계로 영영분과 산소를 투입하자 놀랍게도 죽은 돼지의 뇌 신경계가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출근 중 고개 숙이고 핸드폰만 보며 걷던 멋진 중년 남성이 전방주시를 못한 그 잠깐 동안에 택시에 치어 머리가 2/3 가량 함몰된 채 뇌사 상태에 빠졌다.

불행중 다행이랄까? 다행중 불행이랄까?

사고 장소가 대형병원 근처라 5분 여만에 바로 수술로 이어져 뇌사 식물 인간이 되었지만 첨단 의학 덕분에 지금도 여전히 심장은 뛰고 있다.

한 순간에, 아니 찰나에, 시골의 많은 재산, 예쁜 아내, 좋은 직장 등 그를 둘러싼 수많은 배경이 그림의 떡보다 못한 그저 불쌍함과 안타까움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24시간 간병비만 월 300만원. 처제가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온갖 잡스러운 병원업무를 거들고 있다. 수면제 2알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언니네 가족을 돌본단다.

더 불행한 것은, 뇌가 대부분 함몰되어 없기 때문에, 뇌를 살릴 브레인엑스도 기적같은 희망도 꿈꿀수 없다는 것이다. 그저 서서히 서서히 심장이 멎어지기만 기다릴뿐 그 어떤 조치도 처방도 없는 것이다.

시골 사는 노부모와 천사 같은 아내의 사랑이 썩어가는 육신이라도 바라보기 위해 아직도 산소를 강제로 입 안에 넣고 있을 뿐이다.

세상사는 게 뭐라고 약 1년 만인 어제 그 친구를 찾았다.

친구는 내가 왔다는 걸 무의식 속에서 알고 있었는지, 친구의 눈에 잠시 눈물이 흠뻑 젖었다.

영혼의 친구인 나는 그대 앞에서 한 없이 한 없이, 마음속에서 눈물만 눈물만 흘러내렸다.

(c) 김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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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마음을 부여잡고 여주 신륵사를 다녀왔다.

또 다른 삶...

여주에서 제일 높은 황학산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황토흙과 나무 냄새에 취하며, 온갖 자연식을 버무려 화룡점정 참기름 한 방울 넣은 한 숟가락을 허기진 위 속에 허겁지겁 밀어 넣었을 때, 꿀맛을 넘어 세상을 다 가진 행복감에 휩싸였다. 솔직히 사람이란 이러한 속물 근성이 있었기에 인류가 멸망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살아남기 위해 원초적 본능이 다 그렇다고 애써 위안 삼으며 참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다.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가 없어, 우여곡절 끝에 택시를 불렀다. 수백년 동안 도도하고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을 굽어보며, 왠지 애처롭고 쓸쓸한 신륵사에 발길이 닿았다.

여주 도자기 축제 등 수많은 사람들과 문화재가 서로 뒤섞여 이리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지만, 무심히 흐르는 저 남한강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어리석은 인간들아!

쇳덩어리로 이리저리 만든 자동차에 생명이 들어오면 어느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생명이 있듯, 한줌 먼지가 잠시 사람이란 형체로 자연이란 형태로 번뇌하다 몸부림치며 사라지는 것이 삼라만상 세상의 원리이니, 너에게 주어진 운명과 숙명을 사랑하라.

네가 너의 삶의 주인일 때, 바보처럼 웅크리지 말고 대도무문 큰 그림을 그리며, 자신있고 멋지게 살다가라. 그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너에 대한 우주의 마지막이자 최고의 선물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남한강은 그렇게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c) 김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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