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숙 “왜 병원기반사례관리로 정신장애인에게 전자발찌 같은 족쇄를 채웁니까. 그건 인격 모독이죠.”
박영숙 “왜 병원기반사례관리로 정신장애인에게 전자발찌 같은 족쇄를 채웁니까. 그건 인격 모독이죠.”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5.22 01: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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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숙 한국정신장애인복지협회장 인터뷰
중고등학교에 정신과적 문제 상담하는 시스템 있어야
비과학적 치료법에 ‘천문학적’ 돈 투자…후회돼
우연히 환우모임 가족들 알게 되면서 정보 얻어
딸은 시골서 농사 지으면서 치유의 길로 들어서
딸이 경제활동하면서 자립했으면 하는 게 소망
치유 과정에 아쉬움 많지만 현재의 딸에게 잘해주고 싶어
부모 없이도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체계, 국가가 만들어야
정신재활시설 허가제로 변경은 환우와 가족을 죽이는 일
협회의 고민은 정신장애인에 복지 수혜 넓히는 것
탈원화 위해서는 독립할 일자리가 주어져야
가족이 당사자를 인격체로 대우를 해줘야 치유 빨라
정부가 예산을 병원에만 투자하는 건 잘못
병원기반 사례관리는 정신장애인에 전자발찌 같은 것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25살에 결혼을 해 이듬해에 큰딸애를 낳았다. 그 아래로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었다.

80년대 말에 강남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남들이 보면 순탄하고 부유한 삶이었다. 게다가 큰딸애는 공부를 잘했다. 내성적이었지만 어머니를 따르는 아이였다.

딸애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잘 씻지고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예민해진 행동을 보였다. 그게 입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엄마인 그녀는 생각했다. 성적은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어느 날, 딸애는 텔레비전의 선을 가위로 자르고 방바닥에 텔레비전을 내동댕이쳤다. 그때, 일찍 딸애의 조현병 증상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그녀의 후회다.

딸애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압구정동 아파트 2층에 살 때 딸애는 아파트 공터에서 누군가 쳐다본다면서 창문에 커텐을 치고 살았다. 그 딸애가 어느 날 홀로 정신과를 찾았다는 걸 안 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때 정신과 의사가 엄마인 자신에게 전화라도 해줬더라면 어땠을까. 조금은 더 일찍 딸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정신과 의사는 자신에게 전화하는 대신 딸에게 약만 줬다.

대학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녀는 일단 딸을 전문대로 보내고 4년제 대학으로 편입시키려는 전략을 짰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만약 그때, 딸의 상태와 맥락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그녀는 결단코 딸애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힘을 쏟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딸을 케어하는 데 더 집중했을 것이다.

18살에 발병한 딸의 조현병을 받아들이는데 10년이 걸렸다. 그 공백의 기간 동안 그녀는 딸애를 위해 불교의 의식인 천도재를 지냈고 나중에 정신과 코드가 남을까봐 정신과 상담도 의료보험 대신 일반 의료로 대체했다. 천도재에 수천만 원의 돈이 들어갔다. 굿도 빼놓지 않았다. 딸이 나을 수 있다면, 또 돈은 얼마든지 나중에 벌 수 있지만 우선은 딸을 정상으로 치유시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천문학적인’ 돈을 비과학적 치료법에 쏟아 부은 후에야 그녀는 딸애의 조현병을 받아들이게 됐다.

대학병원에 아이를 맡긴 후 그렇게 딸애의 병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과도 화해를 했다. 그 딸애는 이제 마흔두 살의 중년이 됐다.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딸애는 빠른 치유력을 보였다. 집의 텃밭에서 야채를 심고 강아지와 닭에게 모이를 주면서 일상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병에 대해 무지했을 때 알게 된 정신장애인가족협회의 K씨를 만나 병을 정확하게 깨닫게 되고 그 이후 협회에서 임원으로 일했다. 지금은 사단법인 한국정신장애인복지협회 상임대표로 일하고 있다.

박영숙(67·여) 한국정신장애인복지협회장을 만난 건 21일 오후의 <마인드포스트> 사무실에서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박영숙 한국정신장애인복지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박영숙 한국정신장애인복지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따님의 정신장애를 언제 알게 됐습니까.

“18살부터요.”

-그때부터 병을 아셨어요?

“네.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 나는 그걸 인정을 하고 싶지 않았고 의사 선생님 말씀도 잘 안 들어왔어요. 애도 그렇고. 얘가 난폭해서 여동생하고 남동생이 있는데 여동생을 많이 괴롭히는 거예요. 저한테도 폭력을 쓰고. 그건 있을 수 없는 거죠. 집에서 아빠가 폭력을 썼거나 그런 것도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순탄하게 지냈거든요. 중요한 건 부모가 그 병에 대해 몰랐다는 거예요. 학교 선생님도 모르고 그냥 수험생으로서 힘들어서 그러나보다 그렇게 여겼죠.”

-따님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 정신과에서는 연락도 없고?

“나는 그게 너무 섭섭해요. 이 병이 중·고등학교 때 많이 발병하잖아요. 요새는 학교에서 성교육 프로그램을 짜서 교육을 시키잖아요. 그것처럼 학교에서도 정신과적 증세가 있으면 상담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눈빛을 보거나 행동, 표정을 보면 이젠 얼추 알겠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아이 상태를 인지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답답했어요. 홍보가 됐으면 좋겠어요.”

-서울대병원 갔을 때 그때서야 조현병이라는 건 알게 된 거군요.

“그렇죠. 그런 걸 안 거죠.”

-따님 발병하고 2년쯤 지나서?

“그렇죠.”

-따님은 몇 번 입원하셨습니까.

“10번 이상은 했을 거예요. 들락날락.”

-거의 다 강제입원이었습니까.

“강제입원이었죠. 애가 폭력을 써요. 여동생이 자고 있는데 가위 갖고 가서 눈썹 위 머리카락을 잘라놓은 거예요. 머리만 자르면 상관이 없는데 아차해서 찌르면 어떡하냐고. 그러니까 입원을 안 시킬 수가 없어요. 그리고 저한테 폭력을 쓰는데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둘이서 같이 죽으려고 했죠. 죽자. 이렇게 살 바에는. 그러면서 병원에 강제입원하니까 애가 너무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는 거예요. 보통 두세 달 입원을 했죠. 그런데 그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나와요. 대학병원 1인실이나 2인실. 그리고 서울대병원 낮병동도 다녔어요.”

-낮병원도 돈을 내야 이용할 수 있습니까.

“그럼요. 거기는 한 달에 1천만 원 정도 들어가요. 비싸요. 또 절에 가서 천도재(薦度齋)까지 했어요.”

-천도재도 했습니까.

“말도 못하게 했죠. 천도재는 7·7이라고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일곱 번 지내는 거예요. 이 스님이 좋다 싶으면 이 스님한테, 저 스님이 좋으면 저 스님한테 갔어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어요. 그땐 인터넷도 활성화되지 않았어요. 소식이나 정보를 접할 데가 없는 거예요.”

-그 천도재를 일주일에 한 번씩 일곱 번을 했단 말입니까.

“그렇죠.”

-비용만 해도 엄청났겠네요.

“몇 천만 원이에요.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고 했지 그걸로 병이 낫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면 누가 그걸 하겠어요. 그런데 부모 심정은 돈은 또 벌면 된다는 생각이고 애를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에요.

그러다보니 둘째딸애하고 아들한테도 피해가 많이 갔죠. 사랑을 주지 못하고 걔들도 트라우마가 생겼으니까요. 둘째딸이 마흔 살인데 그러더라고요. 엄마는 엄마니까, 또 딸이니까 언니 편을 들지만 나는 남편하고 애도 생각을 해야 된다고요. 맞는 말이잖아요.

둘째딸애는 친정 와도 하룻밤 잠도 못 자고 그냥 가요. 언니에 대한 생각이 있어서 그래요. 지금은 큰딸이 좋아졌는데 둘째딸은 (트라우마를) 잊지 못하더라고요. 둘째애 결혼할 때 우리 큰애는 참석도 못했어요. 본인도 안 가려고 그랬고.”

-따님이 몇 살 때 조현병이라는 걸 받아들였습니까.

“우리 때는 조현병을 정신분열병이라고 했잖아요. 그 용어 자체도 무시무시했어요. 그러다가 2009년도 얘가 31살 때 받아들였어요. 그러니까 발병하고 거의 십 년이 넘어서.”

-무슨 계기가 있었습니까.

“그때 서울대학병원을 갔는데 거기서 K씨(당시 서울정신보건가족협회장)를 만난 거야. 서울대병원에서 가족 모임을 하더라고요. 갔는데 거기서 엄마끼리 소통이 된 거지. 처음 본 사람인데도 그랬어요. 그때는 누구라도 붙들고 의논을 하고 싶고 얘기를 듣고 싶은데 그런 소식통이 없었어요. 그 분이 여의도의 한 가정집에서 모임을 갖는다고 한번 가자고 그래서 갔죠.”

-대표님은 서울대병원 가서 부모 모임 알게 됐습니다. 그 모임이 서울대병원에 있었습니까.

“네. 서울대병원.”

-어떻게 알고 가신 겁니까.

“우리 애가 서울대병원을 계속 다녔으니까 애를 데리고 갔을 때 마침 그날 K씨를 딱 만나게 된 거예요."

-모르는 사람이었습니까.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그때 서로 벤치에 앉아서 답답하고 해서 그런 얘기를 하다가 알게 됐어요. K씨를 알고 나서 서울정신보건가족협회에 발을 들여놓은 거죠.”

-따님 아프실 때 이렇게 대처할 걸 하는 아쉬움은 없습니까.

“아쉬운 건 사전에 내가 지식이 있었다면 하는 거였어요. 그랬다면 억압적으로 애를 다그치지 않았겠죠. 또 요행을 바라고 종교를 찾지 않고 정석대로 치료를 받았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굿도 했습니까.

“했죠. 그럼. 굿하지. 기본적으로 굿을 안 하나. 안 다닌 데가 없어요. 정말 돈은 생각 안하고 막 썼어요. 정말로.”

-따님은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지금 지방으로 내려가 있어요. 충북 음성에. 내려간 지가 6년 됐어요.”

-뭐하는 곳입니까.

“거기는 우리 시댁이에요. 시어머니가 작년에 거기서 돌아가셨죠. 그래서 그 집에서 딸하고 남편하고 저하고 셋이서 살고 저는 서울에 집을 하나 얻어서 왔다갔다하죠.”

-거기는 뭐하면서 사십니까.

“지금 애가 너무너무 좋아졌어요. 아빠가 텃밭에 농사를 짓잖아요. 거기서 가축도 기르고 닭도 기르고 강아지를 좋아하니까 강아지 기르고, 밭에 뭐 심어 놓은 거 수확해서 갖다 먹기도 하고요. 애가 거길 내려가면서부터 마음을 열기 시작하더라고.”

(c)마인드포스트.
박영숙 한국정신장애인복지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따님은 지금 회복됐다고 생각하십니까.

“회복됐어요.”

-어떤 부분에서 그렇습니까.

“서로 대화도 나누고 살림도 제가 나와 있으면 자기가 다 해요. 반찬만 해 놓으면 본인이 압력솥에 밥을 해서 아빠 차려드리고 저도 먹고요. 강아지도 돌보고 닭도 돌보고 시간 맞춰서 그 가축들 밥도 주고 물도 주고. 온갖 살림을 다 하는 거지.”

-대표님은 서울에서 사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법인 운영 때문에요.”

-따님이 회복했는데 따님한테 원하는 게 있습니까.

“경제 활동을 했으면 해요. 돈을 벌어서 나를 달라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되잖아요. 물론 우리 아이도 본의 아니게 기초생활수급이 됐어요. 왜냐면 나이가 마흔두 살인데다가 본인 앞으로 재산도 없고 하니까 기초생활수급권자로 한 달에 60만 원 수급을 받더라고요. 그 정도 돈이면 본인이 살 수가 있잖아요.

그리고 아이가 시골에서 생활하는 게 직업을 가진 것과 똑같은 패턴이라는 거죠. 아주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거죠. 출퇴근만 안 하고 집과 밭에서 일하는 것뿐이지 마음도 편안해 하고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우리 식구끼리만 있을 때 그렇다는 거죠. 아직까지 어디 가는 건 싫어해요. 제가 바라는 건 자립을 했으면 하는 거죠.”

-정신장애인의 가족은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가족들이 일단 이해를 해야 해요. 제가 우리 당사자들이나 가족회원들한테는 어떻게 하라고 교육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한테는 그게 안 되더라고요. 둘째딸하고 아들한테 설명하기에는 애들이 받은 트라우마가 너무 강한 거예요. 그건 엄마 생각일 뿐이라고 치부를 해요. 그런데 아빠는 제가 하는 걸 이해하고 동조를 해 주세요. 수진(가명·첫째딸 이름)이가 엄마 아빠를 엄청 신뢰를 해요. 예전에는 불신을 했거든요.”

-따님을 보호하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괴롭던가요.

“괴로운 건 제가 가끔가다 스스로 우울증에 빠진 것처럼 기분이 가라앉아요. 그 이유가 사람이 말 타면 경마하고 싶다고 애가 좋아지다 보니까 또 좀 더 많은 걸 바라게 되더라고요.

마흔두 살이면 한창 좋은 나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 열여덟 살 때부터 마흔두 살이 될 때까지 누려야 될 그 모든 걸 얘는 못 누렸어요. 그 젊은 나이에 옷도 예쁘게 입고 싶을 거고 할 건데 그런 것도 전혀 못하고 오로지 약 먹만 먹었잖아요.

지금도 나이만 마흔두 살이지 보면 스물 몇 살처럼 행동해요. 애기예요. 그 나이에 머무르는 느낌을 받는 거예요. 나이만 어른이고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 들어요.”

-따님한테 어떤 감정이 드세요.

“애처롭죠. 내가 진작에 알아서 좋게 해줄 수 있었을 텐데 시기를 놓쳤다는 거. 그런데 그걸 제가 탓하기 보다는 주어진 환경에서 아이한테 좀 더 잘해 주고 싶어요. 그래서 언제나 저는 수진이 편이죠. 그런데 저도 나이가 있잖아요. 사후(死後)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조금 힘들어서 제가 눈높이를 좀 낮췄죠. 그전에는 눈높이가 높았다가 현실에 맞추고 그랬는데요. 전 우리 아이가 발병하고 나서 동창 모임을 안 나갑니다. 여태까지.”

-부끄러워서 그렇습니까.

“그 당시에는 부끄럽다고 생각했겠죠. 지금은 부끄럽지는 않는데 가면 얘기할 거리가 없고 소외감을 느껴요. 그래서 우리 당사자 가족끼리 만나는 게 더 편해요.”

-정신장애인에 대한 보호 의무를 가족에게만 강요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건 너무 불합리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저는 진작에 미리 알고 케어를 했으면 이렇게 비용이 많이 들지도 않고 한 사람의 인생도 망가지지 않았겠죠. 나쁜 말로 말하면 경제적으로 몰락이에요. 갈 데까지 간다는 거죠. 이걸 정부에서 100% 해달라는 말은 아니에요. 우리 애가 산정특례를 받아서 지금은 비용이 덜 들어가지만 처음에는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갔어요. 그런 것을 정부가 신경을 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애가 한 발짝 나가려면 나가서 할 수 있는 어떤 기틀이 잡혀 있어야 되잖아요. 지금은 (부모의) 테두리에 있기 때문에 애가 그나마 유지를 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엄마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없으면 애가 어떡하겠어요. 그걸 수진이가 굉장히 두려워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시스템을 정부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소통을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행동이 굼뜨고하니까 정상인들하고 소통하기가 어렵겠죠. 아까 제가 성인아이라고 했잖아요. 나이상으로는 어른인데 생각이나 행동은 아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국가가 이런 아이들이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나 터전을 만들었으면 해요.”

-어떤 공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러니까 그냥 앉아서 놀 수는 없고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요. 일을 하면서 본인이 시간도 보내고 사회에 적응도 해야 되잖아요. 부모 테두리에서만 살 수 없으니까.”

-경남 진주시의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 창원의 노인 살해 사건, 부산의 누나 살해한 조현병 당사자 사건 등 정신장애인의 사건사고가 터지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그건 소통이 안 됐다고 봐요. 당사자하고 가족 간에 이해도 부족하고 소통도 안 되는 거죠. 누나가 사망한 사건의 경우 누나가 동생을 케어하는 건 좋은데 동생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을 못했다는 거죠. 우선 약을 잘 먹어야 하는데 약을 안 먹었고요. 처음 발병한 사람은 약을 일정한 기간 안 먹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만성화가 되면 약물로 조정할 수밖에 없고요. 우리 수진이도 일반적인 약을 갖다 먹으면서도 불구하고 중간 중간 비상약을 먹어요.”

-비상약이 뭡니까.

“너무 상태가 안 좋을 때 제가 수진이 눈빛이나 표정을 보면 알아요. 본인도 그걸 알고 선생님이 이럴 때 비상약을 먹으라고 주셨더라고요. 그걸 항상 먹습니다.”

-현재 8만 명의 정신장애인들이 병원과 시설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들의 탈원화를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합니까.

“탈원화는 무조건 병원에서 나온다고 해서 탈원화는 아니고요. 병원이나 시설에서 나왔을 때 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어떤 공간이나 일자리가 있어야 된다는 거죠. 집도 있어야 되는데 그 모든 걸 다 한꺼번에 갖추기 힘들죠. 가족 간의 불상사가 나는 건 성인되면 개개인의 생활을 하잖아요. 그런데 동생이나 오빠나 그 사람을 맡을 수가 없다는 거죠. 누나니까 그나마 맡은 거예요. 누나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예요.”

-형은 할 수 없습니까.

“형은 그렇게 못 해. 제가 주변에 보면 여자 형제끼리나 남자 형제끼리는 라이벌 의식이 있어서 잘 안 돼요. 청소년기에 잘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힘든 일을 겪었잖아요. 그걸 해소를 시키는 게 없었다는 얘기죠.”

-해소시킨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병 때문에 그렇지 이 사람이 나빠서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인지를 시켜야 하는데 그걸 인지시키기에 세월이 너무 지나가버렸더라고요. 그래서 요새 정신장애인 사건사고와 관련된 뉴스가 나오면 시집간 딸은 불안해해요. 수진이가 엊그저께 그러더라고요. 남동생이 애를 낳아서 지금 일곱 살인데 조카 얼굴도 기억을 못한다고요. 왜냐고 그랬더니 처음이 조카를 낳았을 때 내가 좀 볼려고 그러니까 남동생이 못 보게 했다 그러더라고요.

왜 그랬냐면 수진이가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서 그렇대요. 그리고 애들이 우리 집에 잘 안 와요. 시집간 딸이나 아들이나 나는 만나러 와도 언니나 누나는 안 보고 싶은 거야. 왜냐면 뭔가 행동이 틀리고 얼굴 표정도 틀린 거라 생각하니까. 수진이가 약을 먹으면서 체중이 불어나잖아요. 그걸 정상적인 사람이 봤을 때 자기관리를 못하는 걸로 보는 거죠.”

(c)마인드포스트.
박영숙 한국정신장애인복지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탈원화를 위해서 뭐가 필요한지 여쭤봤습니다.

“탈원화는 본인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갖는 거죠. 또 거주할 수 있는 집이 필요한데 혼자서 있을 수는 없어요. 제가 요새 혼자 있다 보니까 그걸 느끼겠더라고요. 혼자 있다는 건 굉장히 두려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외롭고 대화할 사람이 없고 마음을 터놓을 곳도 없고요. 그러니까 스트레스가 쌓이고 또 몸이 아플 때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도 일고요.

그래서 우리 당사자들은 두세 명씩 생활을 같이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 수진이는 강아지하고 닭하고도 소통을 하는데 강아지하고 너무 얘기를 잘 하는 거야. 강아지도 사람을 알아봐요. 대화를 하는 것처럼. 그래서 사람이 아침에 눈을 뜨면 할 일이 있어서 어딜 간다는 것과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걸 해소할 수 있는 게 일자리거든요.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면서 소통을 하는 게 필요해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기능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당사자들은 상태가 천차만별이잖아요. 획일적으로 할 수는 없다고 봐요. 그래서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적재적소에 사람이 들어가야 되는데 의사들도 잘 모르더라고요. 그리고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의사들이 당사자를 진료할 때 가족들하고도 좀 상담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만 당사자들의 정확한 걸 알 수 있죠.”

-센터에 정신건강전문요원들 너무 부족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주장하는 건 정신건강복지센터에만 맡길 수는 없다는 거죠. 정신재활시설 있잖아요. 그걸 많이 늘려줘야 해요. 그리고 시설을 만들 때 처음부터 지원을 하는 게 아니라 3년 정도까지 자비를 들이라고 하잖아요. 그게 수익을 위해서 생긴 게 아닌데 말이죠.”

-무슨 말씀입니까.

“정신재활시설에 정부가 처음부터 보조금을 주지는 않는다는 말이죠. 옛날에는 지원 시점이 3년이었고 지금은 2년인가 그렇다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 돼죠. 저도 시설 운영을 해 봤지만 그게 수익이 나는 사업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걸 자비를 들여서 하라고 하면 편법이 생길 수도 있고 내용도 부실할 수 있다는 말씀이죠.”

-최근에 정신재활시설을 기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꾼다는 법안 발의도 준비 중이더군요.

“신고만 하면 됐었는데. 그건 더 강화를 하려는 거잖아요 .이유가 뭔가요.”

-지역 주민들이 싫어한다는 거죠.

“시설을 늘려도 시원찮을 판에 그건 있을 수 없죠. 불합리한 게 뭐냐면 사건사고가 날 때마다 우리를 좀 더 옥죄고 있거든요. 옛날에는 우리가 적절한 여건만 갖추면 시설을 설치할 수 있었잖아요. 그것도 저는 아니라고 보거든요. 그 시설에 국가가 바로 지원을 해줘야 돼요. 처음 발병을 했을 때 우리가 그걸 알았으면 이렇게 돈이 많이 안 들어간단 말이죠. 그걸 개인에게만 다 짐을 지우면 말도 안 되는 거죠.”

-부산 금곡동에서 정신재활시설 못 들어오게 주민들 집회하고 있고요. 오산 세교신도시에서는 정신과 폐쇄병동이 들어온다고 그걸 시위하고 집회하고 해서 어제 병동 설립이 취소됐습니다. 금곡동의 경우 부산 지역구 의원이 정신재활시설 허가제로 하는 법안을 조만간 발의합니다.

“안 돼요. 정말로 안 돼요. 우리 죽으라는 거죠. 다 죽으라는 거죠. 정신질환 자체가 백 명 중의 한 명꼴로 있다고 하잖아요. 오픈을 안 할 뿐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들을 빨리빨리 치료를 해서 사회로 나와서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길을 막아버리잖아요. 그런데 그걸 허가제로 한다? 점점 더 갈 데가 없어지는 거죠. 그건 정말 막아야 됩니다.”

-서울정신보건가족협회장을 지냈습니다. 그때가 처음으로 정신장애인 가족활동을 하기 시작한 때인가요.

“그때가 처음이었죠. K 회장 만나서 2009년에 서울정신보건가족협회에서 홍보이사로 2년간 일했죠”

-내부 다툼 같은 건 없었습니까.

“단체를 운영하다보면 서로 이견이 나서 다투기도 하는데 서울정신보건가족협회가 없어진 건 아니고요. 우리가 사단법인 한국정신장애인복지협회잖아요. 이게 대한민국에서 처음 만든 당사자 법인입니다.”

-부모님들이 만든 거 아닙니까.

“아니, 저는 상임대표고요. 당사자 대표는 박태훈 씨라고 있어요.”

-그럼 정신장애인들로 구성된 협회입니까.

“네. 서울정신보건가족협회가 한국정신장애인복지협회와 전신이나 똑같다고 보면 돼요.”

-서울정신보건가족협회가 없어진 건 아니다?

“없어진 건 아니죠. 그건 법인이 아니었어요. 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도 법인이 아니에요. 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는 역사도 오래됐고 또 전임자들이 일을 어떻게 했다는 걸 논하기 전에 우리에게 소중한 단체고 우리 나름대로 역사를 이어내려 왔어요.

그런데 어떤 일개 개인의 사욕을 채우는 걸로 많이 흘러갔어요. 그래서 보건복지부나 관공서에서 손을 뗀 상태이고요. 그래서 제가 서울정신보건가족협회 들어와서 법인화를 한 게 한국정신장애인복지협회입니다.

저는 그 법인을 서울시 장애인복지과에서 받았어요. 정신보건과가 아니라. 좀 더 큰 틀에서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정신장애인이 장애인 분야에서도 열세에 있으니까 장애인복지과에서 정말 받기 힘든데 힘들게 노력해서 받았어요.”

-한국정신장애인복지협회는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입니까.

“단체명을 보다시피 복지협회죠. 정신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복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만 되는가에 대해 고민을 하는 거죠.”

-협회 회원들은 다 당사자들입니까.

“당사자 반, 부모 반이죠. 당사자로서 치유가 된 사람들을 존중하지만 그분들이 모든 행정적인 업무를 보기에는 힘이 부족하니까 당사자 대표 따로 있고 상임대표 따로 있는 조직이 됐죠.”

-상임대표 아래에 어머님들이나 부모님들이 있습니까.

“이사님들이 계시고 어머니들도 계시고.”

-당사자 회원이 몇 분 쯤 됩니까.

“당사자 회원이 40명 됩니다. 부모님까지 합하면 지금 70여명. 당사자들이 나와도 부모님들이 안 나오는 분들이 계세요. 너무 연로해서.”

-협회가 주로 활동하는 건 어떤 겁니까.

“정보를 서로 교류하고요. 또 그 사람의 상황을 들어보고 어떤 도움이 필요하면 돕죠.”

-정보 교환이 있고 정치적 집회 같은 것도 합니까.

“하죠. 그래서 지난 3월에 워크샵도 했고요. 6월에는 이룸센터에서 ‘마음치유’ 세미나도 계획하고 있어요. 다른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정신 쪽으로 취약한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분들을 아울러서 세미나 형식으로 해보려고 해요.”

(c)마인드포스트.
박영숙 한국정신장애인복지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들 돌볼 때 가족이 주의해야 할 부분은 뭡니까.

“인격체로 인정을 해줘야 해요. 그 당사자가 말만 안 할 뿐이지 속에는, 잠재의식에는 다 갖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 표현을 잘 안 하더라고요.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를 주고 받으면 많이들 좋아지는 면이 있다고 다른 분들도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당사자를 인정해야 된다는 거죠.

얘는 정신적 질환이 있으니까 모자라다는 식으로 하지 말고 대등한 입장에서, 그리고 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서 우리가 해줘야 된다는 거죠. 너무 높게도 하지 말고 어렵게도 하지 말고 그 아이가 말을 하면 진실로 받아들여서 이해를 해야 해요.”

-정신장애인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요.

“일단 가족들의 힘이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가족이 지지를 해야 돼요. 약물 치료는 병행해야 하고요. 그리고 그 아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게 직장이죠.”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

“사람에게는 일이 있어야죠. 무위도식을 해서도 안 되고. 너무 할 일이 없으면 애들이 쳐지잖아요.”

-따님을 돌보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까.

“깨달은 건 처음에는 자책감을 많이 가졌지만 의사 선생님이 그게 저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러려면 부모들이 정보를 알아야 돼요. 정보 교환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요즘은 인터넷 시대라고 해서 인터넷만 있으면 다 된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인터넷을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뿐더러 인터넷에 나와 있는 게 100% 완벽한 정보는 아니더라고요. 일반적인 것만 있고 아주 디테일한 것은 없어요. 우리 당사자들은 천차만별이잖아요. 획일적으로 거기에 비교를 할 수 없다는 거죠.

검증된 정보가 필요해요. 그런데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너무 많이 돌아다니잖아요. 예를 들어 조현병 당사자인 남성 A씨의 경우 자신이 치유가 돼서 회복이 됐다고 하는데 당사자들에게는 힘이 되는 건 좋지만 본인 말이 전부는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부모들도 그걸 잘못 오해를 해서 저 사람은 저런데 너는 왜 못하냐고 하는 사람도 있단 말이죠. 저는 검증이 필요하다고 봐요. 요새는 언론이나 인터넷에 허위 자료들이 너무 난무하니까요.”

-대표님은 A씨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렇죠.”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됩니까.

“글쎄요. 치유를 하는데 그게 의지만 갖고는 안 된단 말이죠. 어느 누군들 의지를 안 갖겠어요. 그렇지만 의지로 하기에는 이미 정신적으로 손상이 된 상태란 말이죠. 그걸 갖다가 너무 과장되게 치유 이야기를 하는 건 지양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기사를 쓸 때도 그런 거를 조금은 검증을 했으면 합니다.”

-강제입원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주 없을 수는 없겠죠. 급성기에는 필요하니까.”

-입원의 적부를 가릴 사법입원제의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동료활동가를 하고 있잖아요. 동료활동가는 더 검증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지금 당장 입에 달다고 해서 그런 제도를 보조금을 받기 위해 활동을 하는 건 안 돼요. 검증을 해야 돼요.”

-어떤 식의 검증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동료활동가는 치유가 돼서 누구한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활동가잖아요. 신뢰도 있어야 하고. 그런데 누가 그 치유를 입증하느냐 말이에요. 국장님은 어떻게 보세요. 동료지원가가 필요는 해요. 병원에 애를 데리고 가면 거기서 만나는 환우가 있어요. 당사자들끼리 센터에도 같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소통을 해요. 자기네들끼리 소통이 돼서 똘똘 뭉쳐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형님 아우님 하면서요. 그런데 어떤 지식을 상대방에게 함부로 넣어줄 수는 없다는 거죠.”

-여쭤본 건 사법입원제에 대한 생각입니다.

“강제입원을 판사가 결정하는 거는 아니라고 봅니다. 판사가 전문성을 갖고 있냐는 거죠. 제가 재판을 받아보니까 판사는 뭐냐면 밑에서 서류가 올라오면 쭉 훑어보고 흑백만 가리는 거예요. 본인이 아는 선에서만 하는 거죠. 다 알 수는 없다는 거죠.

사법입원제를 하려면 전문성이 있는 판사가 해야죠. 판사라고 다 아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사법입원제를 하다보면 급성기 때는 어떻게 해요. 절차가 있잖아요. 우리 애도 별안간 밤에 난동을 부리니까 개인병원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너무 힘들더라고. 그래서 바로 데리고 나왔어요. 죽어도 우리 식구끼리 같이 죽자.

사법입원제를 하려면 절차를 갖고 판사 앞에서 판결을 받아야 되잖아요. 사법입원제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그걸 하려면 절차상으로 제대로 갖춰져야죠. 안 갖춰지면 우리를 정말로 두 번 죽이는 꼴이 되는 거죠.”

-어떤 절차를 말씀하신 겁니까.

“법이라는 건 그걸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자꾸만 다른 문제가 생기잖아요. 병원에 가면 우리가 6개월이면 6개월 치료받고 진단받은 뭐가 있잖아요. 의사 선생님 손에서 그게 진행되는 거고요. 또 동료활동가가 된다고 해도 어떤 기준을 삼을 것이냐 이거죠. 자격증이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러려면 과정이 있어야죠. 그게 필요하죠. 그리고 정 위험할 때는 강제적으로 경찰이 나서야죠.”

-OECD 국가들 중 정신병원이 2번째로 많은 나라입니다. 이건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까요.

“고쳐야죠. 정부가 재원과 예산을 병원에만 주니까 그렇죠. 그래서 병원에 가서 의사선생이랑 상담하다보면 3~4분, 길어야 10분. 10분도 너무 긴 거죠. 왜냐하면 많은 환자를 받아야 되니까. 그거는 안 된다는 말씀이죠. 가족끼리 얘기를 해도 30분은 얘기를 해야 되는데 어떻게 5분 갖고 되냐고요. 그러니까 그런 모든 게 병원으로 몰려 있기 때문에 그건 안 된다는 거죠.”

-해결책은 뭐가 있을까요.

“해결책은 수가를 조정하는 거요. 저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사회복지학과 오현성 교수님이 말씀하신 게 저는 공감이 가죠. 특히 수가 조정 같은 거요. 지금 예산 자체도 정신보건에다가 쓰는 게 별로 없잖아요.”

(c)마인드포스트.
박영숙 한국정신장애인복지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오현성 교수가 말한 건 정신병원으로 들어가는 국가 재정을 막아야 된다는 게 요지입니다.

“그거를 지역사회로 풀어야죠. 게다가 아까 정신재활시설 허가제라고 했잖아요. 어떻게 허가제를 하겠다는 거죠? 그러면 정부가 그 재원을 시설에 주는 건가요? 그게 돈을 버는 일이 아니잖아요. 수익사업은 아니라는 거죠. 허가제가 좋은 의미의 허가제면 상관이 없어요. 그 재원을 정신장애인 단체에 주거나 법인에다 줘서 관할을 한다면 몰라도 어떻게 허가제를 하냐 이거죠. 말도 안 돼요.”

-정부가 최근 병원기반사례관리를 정책 과제로 내놓았습니다. 정부의 어젠다가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퇴원자를 관리하는 거요. 그런데 병원을 이리로 갔다가 저리로 갔다가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한 사람을 거기서 고정적으로 하나요.”

-일정 기간 동안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정기간 동안. 예를 들어 병원에서 퇴원했으면 케어하는 걸 들여다보겠다. 그걸 어떻게 관리를 하죠. 그런 거를 알아야 그게 좋다 나쁘다 알 수 있죠. 사실 국회에서 토론회를 하든 법안이 올라오든 우리는 세부적인 걸 잘 못 들었어요. 법안을 만들 때 세부적인 것을 오픈하라는 거죠. 그게 공청회 아닙니까. 그런 거 없이 무조건 타이틀만 내고서 한다, 안 한다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리고 기분이 나쁜 게 뭐냐면 우리가 자유롭게 이 병원, 저 병원도 갈 수 있고 또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도 갈 수도 있는데 그건 결국 부정적 꼬리표가 딸려 다니는 거 아니에요. 성범죄 저지른 사람들 전자발찌하는 것처럼요. 그건 안 되죠. 그건 인격모독이죠. 그 사람이 치유가 될 수도 있잖아요. 거기에 왜 족쇄를 채우냐고요.”

-병원기반사례관리가 족쇄를 채우는 거다?

“그렇죠.”

-정신장애인 가족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가족 안에서 서로 이해를 해야 돼요. 보통 어머니들이 많이 희생을 해요. 가족의 형제자매끼리 서로 이해를 얻으려면 제가 백 번 말하는 것보다 사회적 인식사업이 진행돼야 해요. 이 병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해야죠. 그리고 과거에 이 사람이 뭘 잘못했다고 그것만 기억하지 말고 지금 있는 걸 봐라. 그런데 가족이 트라우마가 있다 보니까 그 의식을 못 바꾸는 거예요. 그래서 그 부분을 좀 더 이해하고 소통이 중요하죠.”

-주변의 정보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정보는 굉장히 중요하죠.”

-부모의 경우 아이만 보지 말고 정보가 있는 부모 모임도 찾아보고 해야겠죠.

“그렇죠. 그런데 우리는 정신과 질환이 있으면 일단 쉬쉬하게 되죠. 조현병 사건사고들 때문에 난리를 치니까 아이 병명이 뭐냐고 물으면 조현병이라고 말 못해요. 그냥 우울증이라고 둘러대요. 우울증은 보편적이니까. 그것만 해도 우리는 아직까지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거죠.

그리고 지금 언론에서 조현병 보도를 해대니 여태까지 없었던 게 요새 더 많이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정부에서도 정신과 질환으로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잖아요. 그렇다면 언론들도 말조심을 해야죠. 우리 수진이는 조현병 사고 나오면 뉴스를 안 들으려고 해요. 다른 대화를 하더라고요. 두려워서 그러는 거예요. 조현병 환우 어떻고 하면 자기도 그렇게 될까봐. 그리고 우리는 처음에 몰라서 평생을 고생하고 있잖아요. 그런 거를 중점적으로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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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제수민 2019-06-01 22:08:38
박영숙님 감사합니다. 눈물로 점철된 자녀와의 삶이 눈에 선합니다. 잘견뎌 살아오셨네요 승리하셨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당사자들, 가족들, 가까운 복지사들,, 왜 불의에 침묵할까요??

수많은 당사자들이 조현으로 견디지못해 자살 죽음을 택할 때 정부는,,,잠재적범죄자 싸이코패스에 열올렸지요, 전문의는 폐쇄병동에 가두고 가혹할 수록 공로인정 훈장받고요, 그들이25년을 기득권 누렸지요.

그 아래 숨죽인 그룹들. 눈치보던 사람들 삼삼오오 이권추구 힘있는곳 몰려 다니기를 철새처럼 살아야 했던 그들은 또 누구인지....단체조직 기관이 개별이기주의에 빠져 연대를 몰랐고 밥그릇만 챙기다보니.

이젠 안됩니다. 서울이든 지방이든 함께하며 전국조직해야죠. 대통령직속 정신장애위원회 가야죠, 조현여성리더가 입안세력이되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