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포스트가 여러분의 사랑으로 창간 1주년을 맞았습니다
마인드포스트가 여러분의 사랑으로 창간 1주년을 맞았습니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6.10 20:2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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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정신장애인을 비난하는 건 공포와 혐오 때문
비과학적이고 추정적 불안함으로 정신장애인 격리에 동의
마인드포스트는 아픈 것을 아프다고 이야기할 것
우리는 모두 존엄한 존재자들…차별·낙인 없애야

J씨에게

여여(如如)하신지요.

오늘(11일)은 <마인드포스트>가 창간된 지 꼭 1년째 되는 날입니다. 백석의 시처럼 ‘외롭고 높고 쓸쓸했던’ 시간들 같았는데 어느새 1년입니다.

그 기간 저 역시 정신장애로 인한 깊은 방황을 멈추고 신문사로 들어왔고 기자들과 신문을 만들면서 우리 신문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문득 우리가 신문을 준비하면서 견뎌야 했던 3년의 시간이 떠오릅니다. 정신장애인으로 구성된 편집부를 만들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기사쓰기와 취재 기술 등을 함께 배우고 공부했던 시간들 말입니다.

어떤 이는 열정적으로 하다가 어느 날 몸이 아프다며 모임에서 탈퇴했고 어떤 이는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라며 떠나갔습니다. 저는 그 자리를 지켜야 했고 그렇게 3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창간.

그때, 저는 얼마나 떨렸던지요. <마인드포스트> 창간사에 “오늘,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정신장애인의 신문 마인드포스트의 창간을 알린다”라는 서두로 시작했듯이 여전히 신문 만들기는 저에게 깊은 떨림을 안겨다 줍니다.

시인 이성복은 자신의 시에 ‘모두가 아팠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저 아픔의 형이상학적 의미는 정신적 고통과 고뇌, 즉 존재론적 고통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인드포스트는 정신장애인의 권리가 침해받은 지점에 대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 왔다 (c)마인드포스트.
마인드포스트는 정신장애인의 권리가 침해받은 지점에 대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 왔다 (c)마인드포스트.

아무도 아픈 것처럼 생각하지 않으며 아픔을 마주해 초극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과 고통을 마치 없는 것처럼 외면하며 우리는 살아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모두 아픈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일부는 자신의 아픔에 대해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는 아프지 않으니 아픈 건 너희들의 잘못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비난의 지점에는 ‘정상성’에 대한 물화된 요청과 아픈 자들에 대한 사회적 단죄가 개입돼 있는 것입니다.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정상성에서 배제되어 버릴 수 있다는 극심한 공포감과 수치심이 작동하는 겁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아픔을 상호 인정하고 함께 그 아픔을 공동체의 집단적 노력으로 예방하고 치유해 가야 하지만 공동체는 특이한 인구집단에 대해 낙인과 단죄를 씌움으로써 자신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숨기려 합니다.

정신장애인이 저지른 사건에 대해 공동체가 무언가 잘못한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비난하고 단죄하는 것은 혐오와 두려움 때문입니다. 신의 죽음을 공동체 모두의 잘못으로 돌렸던 미치광이의 노여움과는 달리 현재의 공동체는 정신장애인 사건의 공범이 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J씨.

우리는 우리의 시선으로 이 세계를 해석하고 싶었습니다. 지배계급과 지배 이데올로기가 만든 사회적 구성물에서 차별과 억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고 싶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차별의 최하부 집단에 정신장애인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미쳤다는 것’ 혹은 ‘광기’는 그 자체로 사회적 오염의 대상물이 되었고 사회적 생태계를 혼란시키지 않기 위해 ‘배제’와 ‘격리’라는 잔혹한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수용소(병원)에 갇히게 됩니다.

독일 나치는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담보하기 위해 ‘사회적 식충이’에 불과했던 유대인과 집시, 정신장애인을 가스실로 보내 절멸시킵니다. 1930년대에 이미 나치는 종족적 우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정신장애인 7만 명을 가스실에서 처형합니다. 처음에는 총과 칼로 살했지만 그 규모가 커지면서 집단 가스실로 내몬 겁니다.

혹시 우리 사회에도 이런 광기는 모습을 바꾼 채 떠다니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아프다는 이유로 잠재적 범죄자가 되고 고통스러워한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이 마지막 대안인 것처럼 끌려들어가야 하는 ‘고통의 희생양’이 정신장애인들은 아닐까요.

<마인드포스트>는 이 같은 사회적 의문과 함께 더 이상은 ‘침묵의 카르텔’ 안에서 죽어갈 수 없다는 이유에서 창간됐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정치공동체에 참여할 수 없는 낙인적 존재, 사회적 의제에서 배제된 광기의 집단, 이성적 집단이 틀어쥐고 있는 공적 공간에의 참여 불가, 우리의 이야기가 반영되지 않는 정신의료 권력의 문제들은 우리가 앞으로 해소시켜 나가야 할 하나의 이정표일 것입니다.

J씨.

존 로크는 시민사회의 시민을 ‘자유롭고 평등하고 독립적인’ 존재로 규정합니다. 홉스와 로크, 루소를 거치며 계약의 주체인 시민은 자유롭게 사인간의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을 굉장히 독립적 개체로 인식합니다.

그렇지만 공동체 안에 살면서 우리가 독립적인 것은 하나의 허구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타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불안정하고 의존적 존재가 아닐까요. 저는 그 의존성을 ‘성숙한 의존’이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정신장애인은 독립적이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한 비이성적 존재자이기 때문에 시민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이성의 밑바닥에 고인 엄격한 이데올로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신장애인은 살 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들일까요. 마치 나치가 우리를 모두 죽였듯이 말입니다.

모자보건법을 보면 낙태가 가능한 조항이 세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정신질환자로 태어날 가능성이 있을 경우’ 낙태는 합법화됩니다. 정신장애인은 살아가면서 차별 받지만 되돌아보면 태어나기 이전부터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격리되고 절멸돼야 할 존재로 차별받습니다.

삶이 시작되기도 전에 시작되는 차별의 근거. 그것은 어쩌면 ‘사회적 혐오’가 만들어내는 공포심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이렇게 차별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J씨.

저와 기자들은 저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동안의 여정을 걸어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치부되는 존재자들. 그것이 정신장애인들이며 사회적 값어치가 없고 사회적으로 혐오를 유발하고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자들. 그들이 정신장애인입니다.

한국 사회를 볼까요.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국가 비용, 병원에서 나가려 해도 지역사회에서는 아무런 준비도 돼 있지 않은 현실. 정신장애인에게 무엇이 우선순위로 중요한지 알기 보다 편리하게 병원 중심의 입퇴원과 관리라는 기계적 사유에 대해 <마인드포스트>는 비판을 가해 왔습니다.

문득, 저는 이렇게 한다고 해서 이 세계가 바뀔까라는 절망적 질문도 던져보고는 합니다. 최근 경기 오산세교신도시 정신과폐쇄병동 설립 반대 집회, 부산 금곡동 정신재활시설 설립 반대 집회, 관리와 통제에 치우친 정치인들의 법안들을 보면 일반 인구집단이 가지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두려움과 혐오가 동시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혐오감은 너무나 높고 두터워서 지금의 우리로서는 해체시킬 힘이 도저히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마인드포스트>는 그 두터운 벽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고 있는 걸까요. 끝내 깨어지거나 와해되지 않을 성벽을 향해 걸어올라가는 것. 그것이 <마인드포스트>의 시대적 역할일까요. 그저 시치푸스처럼 바위를 이고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것 외엔 대안이 없는 삶. 그게 우리 신문의 역할일까요.

마인드포스트 편집회의 (c)마인드포스트.
마인드포스트 편집회의 (c)마인드포스트.

J씨.

정신장애인은 늘 조롱과 모욕의 대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고통을 겪고 있지만 이를 서사적으로 풀어낼 언어가 없습니다. 수동적 진단명에 의존할 뿐, 우리의 아픔과 고통이 어디서 비롯됐는지에 대한 명확한 언술이 없습니다. 시인 김수영의 말처럼 ‘우리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그것이 우리의 싸움을 이토록 힘겹게 한다’는 말을 주목해 봅니다.

우리의 적은 누구일까요. 의료권력일까요. 아니면 편견을 가진 일반 국민들일까요. 아니면 관리와 통제의 법을 생산하는 정치권력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스스로가 우리 스스로의 적일까요. 그 싸움의 대상이 너무나 복잡하고 넓어서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우리가 지금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싸움은 이렇게 첨예하고 불분명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 복잡한 대상과의 싸움을 멈출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가 비록 사회적 하류계급에 처해 있고 이유가 불분명한 혐오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작동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적이 너무나 많다고 해서 이 저항의 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먼저 치유된 자들의 사명일 것입니다.

서산대사가 말했습니다. 눈길을 걸어갈 때 신중하라. 오늘 걸은 그 길이 뒤이어 오는 이들의 길이 될 것이라고요.

<마인드포스트>는 신중하게 걸어가겠습니다. 모두가 아프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았던 사회적 무고통에 대해 아프다고 소리치는 신문이 되겠습니다. 정신장애인이 취급받는 사회적 지위와 배제의 현실이 민주적 사회의 척도가 될 것이며 우리는 그렇게 고통의 담론을 정치화해 우리의 존엄을 요구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마인드포스트>를 아끼는 모든 독자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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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제수민 2019-06-13 18:30:22
격리배제의 대상으로 타자화된 정신장애인이 정치적 담론을 내놓기가 어렵습니다. 그길을 마인드포스트가 선구해주어 감사해요. 나도 내가 어떻게 살면 좋을 지 몰라하기 일쑤인데, 수많은 정신장애인의 아픔을 업고 마인드포스트가 길을 열어주니 더욱 감사하지요.
다른 장애운동보다 늦게 출발했으니 정신장애운동도 신문도 쉬우리라 생각했는데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더군요. 정신장애만의 고통도 있고 가족과 전문가들 의사들로 둘러싸인 환경도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님을 알았습니다.
지난한 싸움의 길이되겠지요. 우군을 많이 만들어야겠습니다. 윈윈할 수 있는 그룹이 많아져야지요. 한정자 파도손 카미 천둥과번개 사라의열쇠 그리고 개인 작가들 회복생존자들 마인드포스트링크로 응원합니다.

당사자를 빼고 당사자의 문제를 논하지말자구요~

권혜경 2019-06-11 10:24:42
그동안 수고많으셨어요.
마인드포스트가 있어서 든든하고 힘이 됩니다. 많은 당사자와 가족 전문가들은 아침에 신문보듯이 마인드포스트를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카톡플러스친구맺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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