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김희정의 시] 엄마
[당사자 김희정의 시] 엄마
  • 김희정
  • 승인 2019.06.13 18:29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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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Bouguereau, Breton Brother and Sister, 1871. Oil on canvas.
William Bouguereau, Breton Brother and Sister, 1871. Oil on canvas.

 

 

저 물결에

한 나절 수고한 나를

쉬라고 띄워 보내놓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

시가 찾아온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상자에 담는다

엄마가 잘 하라고 잔소리를 하신다.

나는 “그냥 제가 하는 대로 두세요”라고 투덜댄다.

집으로 배달을 시켜놓고

윗층 백화점을 찾아 갔다.

싫다고 하시는 엄마를

억지로 팔을 잡고

모시고 올라갔다.

그제 우연히 봐둔

흰 부로치가 달린

엷은 하늘빛 점퍼를 떠올리며

마음이 급해진다.

엄마를 엘리베이터 앞

쇼파에 앉아 계시게 하고

백화점을 서너 바퀴 돌다가

돌아와 잠시만 더 기다리시라고

부탁드리고

이럴 줄 알았으면

상호를 보아둘걸

작은 백화점이라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후회하며 또 몇 바퀴 더 돌았다.

돌다가 옷 한 벌이 눈에 들어와서

엄마를 모시고 갔다.

마음에 안 들어 하신다.

내 마음도 그렇다.

눈에 선한 고운 점퍼를 떠올리며

다음에는 마음에 꼭 들면

그냥 사와야지

다짐을 한다.

엄마가 “인연이 아니라

그런 거다“라고 하신다

“작은 것도 다 인연이 닿아야 한다”고

인연이 무엇이길래

나를 이렇게 애태울까

나의 생각 말 행동 기도에서

맺어지는 것일 터인데

오늘 옷은

무슨 연유에서

인연이 되지 못했을까

내 경제적 분수에

안 맞는 것이었을까

누군가에게 가서

기쁨이 되어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쉽다. 엄마와

인연을 짓지 못해서

고운 옷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어릴 적

고르고 골라 어울리는

옷을 사 입혀주시던

기억이

이제는

내가 골라드려야지

등이 둥글어지시는

흰 눈처럼

고우신 우리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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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주임 2019-06-29 09:22:10
선생님의 시를 마주하고 갑니다ᆢ 여러번 읽다보니 절로 눈을 감게 됩니다ᆢ마음이 아프고, 아련해지네요ㅜㅜ
특히 선생님의 어머님 말씀 ᆢ"작은 것도 인연이 닿아야한다"는 말씀이 너무나 와닿네요ㅜㅜᆢ
오늘 아침, 귀한 시 한편 만나게 된 작은 인연에 감사하며,
부디 모두 평안하시길 응원합니다, 힘내십시요

인랑제수민 2019-06-15 22:49:11
참잘쓰시네요. 그대로 엄마모습이 또 그딸이 후닥닥 눈앞으로 달려들어옵니다. 이렇게 정감있게 쓴 글 마주보기 쉽잖았거든요. 늘 엄마하면 상투적이고 식상한 표현들이 많았지요. 등이 둥글어진 엄마가 너무도 정겹습니다. 하늘색 점퍼도 야속하지만 그 브로치만큼 빛나겠지요. 님의 마음이 벌써 엄마를 감싸고 훈훈하고 넉넉합니다. 그래서 엄마도 인연이 아닌갑다 말하시죠. 인연아니면 어때요? 백화점 몇바퀴 돌면서 어머님과의 끈은 이어졌으니까요.

당사자는 당사자의 끈으로 이어져가야겠어요. 엄마와 나와의 인연만큼은 안되겠지만. 당사자들 아픔을 이해하고 나누고 지지하는 삶들이 많아져야겠어요. 조현이 밝게 사는 세상이 곧 오겠지요. 희망을 품습니다.

토끼 2019-06-13 21:56:00
우아,,,엄마 그이름 듣기만해도좋네요

친구 2019-06-13 19:10:40
읽다보니 정다운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이 찡해옵니다.
행복하시길, 그리고 좋은글 .또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