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희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을 꿈꿔요”
전준희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을 꿈꿔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6.19 01: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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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희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 인터뷰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가 자살에 많이 투영된다고 생각해
사례관리자들 자살 늘어나면서 전문성에 대한 깊은 고민
사회복지사는 생명을 다루는 전문직이라는 생각 강해져
정신건강전문요원 센터 재직 고작 38개월…신뢰도 떨어져
전문요원 처우 부족은 자존감 떨어뜨리고 직업 정체성도 잃게 해
우리 사회가 가진 집단 트라우마를 공동체가 함께 어루만져야
사회복지학은 개인 삶을 너머 사회가 가진 병폐와 맞닿아 있어
강제입원 트라우마에 대해 국가가 먼저 사과해야
휴먼 서비스 제공자에 제대로 된 처우 않는 건 비인권적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을 전문요원이 맡으면 훨씬 효율적
현 전달체계로는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컨트롤타워 역할 못 해
민간위탁 대신 공공법인이 위탁을 맡아야 안정적 직장 가능해져
정신보건사회복지사는 정신장애인 삶 속에 존재해야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는 이후 정신병원에서 실습을 하면서 알음알음으로 지역사회정신보건사업에 대해 듣게 된다. 병원에서 의사들이 가운을 입은 모습과 전문요원들의 활동을 보면서 일종의 ‘선망’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고 싶었다.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노래 교실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가까이서 정신장애인들을 만나고 싶었다. 물론 그에게는 처음 접하는 정신병원의 정신장애인들의 삶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문화적 충격이었다. 게다가 실습을 간 정신병원에서 환자인 중학교 때 친구를 만나게 된다. 다시 충격을 받았다. 그 친구의 삶을 내가 대신 살아주는 느낌을 받았다. '정신장애인들을 위해 살아보는 게 어떨까'라는 실존적 고민을 했다. 지역사회정신보건사업에 그가 첫발을 내디딘 계기였다.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에서 가출한 청소년들을 돕는 일들을 하다가 이후 부천의 한 사회복귀시설에서 처음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위한 직업을 갖게 됐다. 30대 초반이었다. 여전히 지역사회의 인프라는 부족했고 개인적 ‘학문에 대한’ 갈증은 심해졌다. 이후 숭실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해 박사 과정을 밟게 된다. 태화샘솟는집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 그는 이 기관이 당사자와 직원들이 서로간의 경계선이 없이 함께 살아가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정신보건 사업은 그에게 천직이 돼 버렸다.

그렇게 20년이 넘게 걸어왔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그는 자신이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위한 인권적 감수성이 떨어질 때가 괴롭다고 한다. 현재 그는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센터장이 보통 비상근 정신건강 전문의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그의 직업적 위치는 어쩌면 특별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앞으로 오랜 시간을 일한 전문요원들이 센터장을 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더 경제적이고 더 인권친화적이라고 믿는다.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는 중앙정부가 추진 중인 지역사회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 사업의 정신질환자 부분에서 선도사업에 선정돼 지난 6월 초 2년 간의 사업에 들어갔다. 그의 일도 더 부산해졌다. 그는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도 맡고 있다. 전준희(49)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을 만난 건 17일 서울역 인근의 한 찻집에서였다. 그와 나는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카페 흡연실에서 담배를 한 대씩 피워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준희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전준희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정신보건사업에 관심을 둔 이유가 뭘까요.

“처음에는 알량한 목적이 있었죠. 좀 더 전문가다워보여서 그렇게 했지만 저도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많은 상태에서 실습을 했기 때문에 병원에서 이분들을 가까이서 보는 게 충격이었죠. 그리고 병원에서 실습 중에 병동에서 중학교 때 친구를 만났어요. 중학교 때 우리 반에서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였어요. 말도 별로 없고 따돌림도 당하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병원에 환자로 있는 거예요. 절 못 알아보더라고요. 그때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이게 내 삶의 다른 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내 친구의 삶을 살고 있는 느낌. 그러면서 이분들을 위해서 살아보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때 읽던 책이 일본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라는 유명한 책인데요. 지역사회에서 정신질환자들이 병원 중심의 삶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어울려서 사는 그런 가치들을 다룬 책이었는데 그걸 보면서 '이게 올바른 거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편견을 말씀하셨는데 어떤 편견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친구를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고, 그리고 병원의 치료적 환경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들도 있었어요. 정리는 되지 않지만 문화적인 충격이 제일 컸던 거 같아요. 정상적이다, 비정상적이다, 표현하기는 그렇지만요. 내 친구가 저렇게 살아가는 자체가 충격이었죠.”

-정신장애인과 처음 관계를 맺은 게 언제였습니까.

“그때가 군대 제대하고 스물여섯 살. 대학 졸업 즈음이었죠.”

-2005년 서울시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위기관리팀 자살위기자 업무를 맡았습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2위입니다. 실제 업무를 해 보니 어떤 문제가 보이던가요.

“그때는 우리나라 자살률이 급증하던 시기였어요. 처음에는 자살위기 대응팀을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니에요. 정신건강위기 대응팀을 만들려고 했던 거죠. 지역에서 정신과적 응급상황에 처한 정신질환자들을 돕는 목적으로 만들었던 팀인데 그때 2005년 영화배우 이은주 씨 자살사건이 벌어졌죠. 그러면서 언론에서 자살에 대한 관심이 확 높아졌어요.

자살도 결국에는 정신건강의 위기 상황이잖아요. 그러면서 그걸 맡게 됐는데 전문가지만 현장 경험이 없는 거예요. 저는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사회복귀시설에서 직업재활 업무들을 많이 했었는데 그것과 다른 자살 위기자들을 만나게 된 거죠. 거기서 나의 전문성 부족을 많이 경험을 했고 그러다보니까 현장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가까이 가서 돕는 것만으로도 자살 위기를 넘기더라고요. 그러면서 거기에 대한 확신도 들었고 일을 하면서 자살에 대한 공부들을 하게 됐죠. 그런데 이쪽 일을 하면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이 자살에 많이 투영돼 있다는 걸 느끼게 됐죠. 사회의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또 가족 문제가 되게 많잖아요.

한국사회가 전통적으로 정상적 가족에 대한 판타지가 있는데 현대사회가 고도화되면서 가족들이 많이 붕괴되고 특히나 IMF 이후에 붕괴됐던 가족들이 잘 회복되지 못했는데 사회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진행이 돼 왔던 거 같아요. 그래서 자살 문제가 심각해졌던 거 같고요. 그러면서 이건 우리가 현장에서 자살 위기자들을 만나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겠구나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2005년에 저희가 만났던 사례자 중에서 다섯 분이 자살을 했어요. 우리가 돕는 데도요. 그해 우리가 만났던 분들이 120명 정도 됐거든요. 다섯 분 자살하면서 충격을 많이 받았고 우리의 전문성이 부족하구나라는 고민을 많이 했죠.”

-그 자살자들이 다 정신장애인들이었습니까.

“정신장애인도 있었고 중독 문제도 많이 있었고요.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들로 인해 나락에 떨어졌는데 가족들이 서포트(지지)가 되지 못하는 거예요. 이미 가족체계도 붕괴된 채로 그런 위기를 갖게 된 분들이 결국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어요.”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어떤 자원들이 필요하던가요.

“자살 위기자들을 모시고 갈 만한 병원이나 의사들도 많지 않았고 또 자살 위험성이 있는 분들에게 우울증 같은 약물처방을 하는 사례가 많았지 직접 상담하는 게 부족했어요. 병원에 보내도 한계가 있고 지역사회는 자살 위기자들을 길게 봐줄 만한 시스템이 없는 상태였죠. 그게 제일 어려웠어요.

지금은 그래도 상담 체계도 많이 늘어났고 정신건강복지센터도 자살 위기자들을 도울 수 있는 전문성도 많이 높아졌죠. 그렇지만 그때는 자살 위기자가 지역사회에 있지만 우리 사회가 모르는 척 하기도 했었고 가족들이 알아서 해결하기 바라면서 이들을 제대로 도와줄 자원들이 많이 부족했죠.”

-2009년 현재의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로 오셨습니다. 오신 계기가 있습니까.

“그때 화성정신건강복지센터장으로 있던 선배가 학교로 가게 됐어요. 교수로 가면서 저한테 맡긴 거죠. 저는 그 전에는 서울에서 위기관리팀장을 했었고요. 강남구정신건강복지센터로 가서 직업재활 업무를 주로 했었죠. 그때 제 사례자가 자살을 했어요.

센터에서 일하면서 사례관리를 하거나 가정방문을 하면 클라이언트가 자살을 할 거라는 생각은 못했죠. 그런데 그분이 지금 제 또래 정도였는데 병이 20대에 발병해서 계속되는 자살 시도 때문에 장기간 입원했던 분이에요. 그런데 센터에 나와서 2년 정도 잘 지냈어요. 직업 재활도 성공했는데 자살을 한 거죠. 저는 충격이 너무 컸어요.

이분이 기능도 좋고 손상도 덜한 분이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분이 그때에도 자기의 병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았던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대학 동창들과 고등학교 친구들도 만나고 했는데 그러면서 우울감이 깊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제가 그것까지는 다루지 못했어요.”

전준희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전준희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담당하던 클라이언트가 자살한 후 사회복지사는 생명을 다루는 전문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입니까.

“그렇죠. 그렇게 생각하죠”

-정신건강복지센터 전문요원 재직 기간이 38개월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그게 안타까워요.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이 하는 일이 노하우가 쌓이는 일이에요. 그리고 지역에서 만나는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들이 38개월, 3년 정도 일하고 그만둬 버리는 거죠.

그러면 이분하고 같이 상담하고 어떤 목표를 같이 나누고 직업도 갖기 위해 노력했던 관계가 중간에 끊겨버리는 거죠. 그렇게 되면 정신장애인은 굉장히 당황하게 되죠. 일종의 관계의 상실이죠. 그런 문제가 자꾸만 발생을 하게 되니까 정신장애인도 사례관리자에 대한 신뢰를 충분히 못하는 돼요. 새로운 사람이 나를 담당하게 되는 이게 악순환이 돼요.

지금 현장에서 일하는 정신건강전문요원들에 대한 처우나 고용 자체가 불안정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오래 일하지 못하고 업무도 너무 과다한 거예요. 한 명의 전문요원이 많게는 100사례까지도 보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다 보면 자괴감이 많이 들어요. 내가 오늘은 이분을 도와줬지만 내가 또 도와드려야 하는 저분이 있는데라는 감정이 항상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어요.

업무가 있으면 끝이 나야 되는데 그게 아니라 항상 머릿속에 끝나지 않는 업무들로 가득해요. 그런데다가 사례가 많다 보면 안 좋은 분들만 만나게 되거든요. 증상이 악화돼 있는 분이 급하니까 빨리 찾아가야 돼요. 그러니까 결국에는 잘 지내는 분들은 등한시하게 되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발생하죠. 그런 와중에 재발을 하거나 자살을 하거나 다치거나 그러면 전문요원들이 충격을 엄청나게 받아요. 이게 100프로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나의 죄책감이 커져요.

그런데 그런 게 한 건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건이 되면서 결국에는 현장을 떠나게 되는 거죠. 우리나라는 이런 휴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제대로 처우하지 않는 것 자체가 비인권적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이 서비스를 받는 분들이 자꾸만 바뀌는 사례관리자, 그리고 충분하게 방문하고 상담하지 못하게 되는 구조적 한계를 갖게 된다는 거죠. 이게 해소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서비스도 좋지 않게 돼요.

그래서 미국에 있는, 대만에 있는 좋은 시스템을 가져와야 된다고 얘기하죠. 거기 가서 보면 하루에 사례 한 4명 정도 만나는 거예요. 오전에 두 명 만나 두 시간씩 상담도 하죠. 그리고 한 명의 사례관리자가 열 명 정도 담당하고요. 그러니까 훨씬 더 자주 갈 수 있고 자주 가니까 이분의 삶의 문제도 같이 얘기할 수 있잖아요.

꼭 상담자가 아니더라도 일종의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친구가 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돼 줘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잘 못하는 거죠. 그런 문제들이 이 일을 택했던 이들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직업적 정체성도 흔들리게 만들죠. 서비스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 서운하고 충분하게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죠. 결국 이런 체계가 돼 버린 거죠. 그래서 저는 그게 근본적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우울과 자살의 문제는 처리되지 않은 슬픔의 역사, 현대사에서 겪었던 트라우마의 사건들이 사회적으로 처리되지 않으면서 생긴 후유증이라고 했습니다. 날카로운 분석인데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사회적 노력이 필요할까요.

“그게 한국사회가 한국전쟁, 월남전 파병,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거쳐오면서 사회적 트라우마가 충분히 표현되지 못했어요. 우리 사회가 그런 트라우마에 대해 표현하는 자체를 등한시했잖아요. 한국전쟁 세대들이 같이 살아가고 있고 베트남에서 살아 돌아온 우리의 삼촌, 아버지들이 있는데 그분들이 겪었던 트라우마를 전혀 우리 사회가 돌보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 정도 되지 않는 트라우마는 말도 못 꺼내는 거예요. 정신장애인들의 삶이 힘들잖아요. 병원에 강제입원되면서 겪는 트라우마도 본인이 견뎌내야 하는 거죠. 아프고 힘들어서 내가 지쳤어요라고 이야기하는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그런 사회적 환경들이 이들을 좌절하게 만들고 깊은 우울에 빠져들게 만들어버리는 거죠.”

-어떤 해결책이 필요할까요.

“그걸 표현할 수 있고 보듬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돼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청산할 수 있는 게 필요해요. 지금 정신장애인 당사자들도 병원에 입원했던 트라우마를 해소하게 도와달라고 얘기하잖아요. 국가가 여기에 대해 당사자들에게 사과해야죠. 그것만 해도 상당히 많은 정신장애인들이 용서할 거예요. 국가가 그걸 해소하기 위해서 노력하겠다면 제일 먼저 받아들일 분들이 당사자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안 되다보니까 결국 그건 너의 문제야, 병이 생긴 건 네 탓이야라는 책임 전가가 돼 버리는 거죠. 전쟁에 참여한 사람 중에 멀쩡한 사람도 있는데 왜 너만 그래. 이렇게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부여해버리는 환경들이 우리 사회를 고도성장화 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 속에서 소외된 이들은 더욱더 힘들게 만들어버린 역사가 아니었나 싶어요.”

-사회복지는 배울수록 거대한 담론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개인의 삶에 관심이 있어서 사회복지를 했지만 결국은 그 분의 삶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진 병폐, 어떤 구조적 문제 등에 닿아있는 거라는 거죠. 그래서 더 큰 담론에서 해결해야 되는 거고.”

-어떤 담론입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저도 아직 해법을 찾고 못했어요. 진주 사건의 안인득을 봐요(지난 4월 경남 진주시 임대아파트에서 거주민 안인득이 자신의 집에 방화하고 대피하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0여 명이 사상했던 사건-편집자 주).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개인에게 모든 걸 짐을 부과해버리는 사회문화적 환경들이 결국 그 분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거잖아요.

그런 것에 대해서 사회복지사들이 외칠 수 있어야 된다는 거죠. 쉽게 말해 너무 밤늦게까지 일하지 말고 잠 좀 자라. 좀 한국 사람들 너무 오래 일합니다. 이런 것들도 얘기할 수 있어야죠. 그래서 좀 더 우리가 우호적인 환경에서 일을 하고 좀 더 개인의 삶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결국 사회복지사들이 거론해야 되는 담론이 아닐까 생각해요.”

전준희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전준희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화성정신건강복지센터는 특이하게 정신보건사회복지사가 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 다른 센터와 어떤 차별점이 있습니까.

“사회복지사가 센터장인 곳은 부산에 한 곳이 있고요. 상근 센터장은 전국에 두 군데밖에 없어요. 화성하고 여주시. 여주시 센터장이 임상심리사예요. 우리 둘은 상근 센터장이에요. 다른 센터들은 대부분 비상근 센터장이어서 일주일에 하루 나오잖아요. 정신과 전문의들이 센터장을 하고 있고요.

우리 사회는 정신건강복지센터니까 정신과 전문의가 센터장을 하는 게 맞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요. 외국에 나가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아요. 사례에 대한 자문도 해 주고 임상적인 조언도 해주는 그런 형태의 기관들이 많이 있어요. 저는 그게 더 합리적이지 않나 생각해요.

우리나라가 정신보건법이 1995년에 만들어지고 센터 초창기에는 어차피 센터가 몇 개 되지 않았죠. 그때는 정신과 전문의들이 비상근 센터장으로 일했는데 지금은 정신건강전문요원들도 20년 이상의 경력을 갖고 현장에서 일하고 있잖아요. 따라서 기관을 운영한다든지 지역에 대표성 있는 목소리를 낸다든지 하는 것들이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예전의 그런 의식들로 운영을 하고 있다 보니까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역할을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리더십이 없어요. 왜냐하면 어떤 회의 자리에 가도 센터장이 가지 못하고 팀장이 가서 기관을 대표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팀장이 기관 안에서는 리더이긴 하지만 모든 걸 다 책임질 수 없는 그런 구조적인 한계가 있죠. 조직이 충분하게 성장하지 못하는 측면도 거기에 있지 않나 생각해요.”

-센터장을 전문요원이 맡으면 그만큼 좋지 않은가요.

“그렇죠. 그게 합리적이잖아요. 매일 매일 나오고. 기관의 운영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회계행정도 잘 알고 있고.”

-화성시는 선도사업에 뽑히기 전에 2018년 6월 위기대응팀을 신설하고 경찰, 소방, 읍면동 맞춤형복지팀을 꾸리고 전문요원 현장 투입, 지역병원 핫라인 구축을 했습니다. 타 지자체보다 일찍 이런 사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 뭘까요.

“당시 보건복지부가 지자체 센터에 위기대응팀을 꾸리라고 했을 때 저희가 하겠다고 했어요. 인력도 좀 채용해서 운영을 시작했는데 위기대응팀은 기관 핫라인을 운영하는 거예요. 경찰, 소방, 복지관, 주민센터에서 의뢰되는 정신질환자들 혹은 자살 위기자들을 출동해서 도와주는 일들이고요.

밤 10시까지 저희 센터는 출동을 나가고 있어요. 10시 이후에는 지역에 있는 협력병원 두 군데가 출동을 나가지는 않고 전화가 오면 컨설팅 정도 해주는 역할을 하죠. 그러다 보니까 저는 지역의 정신과병원들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화성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데 경상도나 전라도에 입원해 있는 분들이 있다든지 해요. 근데 이게 결국에는 사설 이송단이 그쪽으로 데리고 가기도 하고 또 가족이 집보다 훨씬 먼 곳에 데려다놓기도 하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다가 또 외출 나와서 집에도 갔다 오고 퇴원하면 지역으로 돌아오기가 훨씬 좋죠. 정서적으로도 도움이 되고.

그래서 저희가 위기대응팀 일을 하면서 지역에서 발생하는 환자들은 되도록 지역 병원에 입원하도록 도와주고 있어요. 그리고 병원들도 지역 환자들이 더 늘어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관계에서 병원들과 협력이 잘 되고 있고 경찰들도 지금은 호의적이에요. 물론 저희한테 출동을 빨리 못 나온다 이런 얘기를 하긴 해요.

그렇지만 저희가 출동이 있다 보면 열 명씩 직원을 밤에 근무를 시킬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지금은 경찰측이 저희가 좀 늦게 오더라도 많이 이해해줘요. 또 과거에는 병이 심한데도 그냥 알아서 집으로 다시 데려다준다든지 혹은 아무 병원이나 데리고 갔지만 지금은 저희에게 연락을 주고 적절하게 이분을 도와드릴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래서 처음에는 경찰들이 귀찮아하다가 지금은 ‘아, 당신들하고 일을 하면 좀 귀찮기는 해도 제대로 도와주는 거 같다’ 그래요. 이런 피드백을 많이 줍니다.”

-보건복지부하고 지자체 하고 예산 배정이 50대 50 아닙니까. 예산이 여유가 있었나요.

“맞아요. 저희 화성시는 택지가 많이 개발되고 아파트가 많이 개발돼요. 화성시 재정 자립도가 경기도에서 제일 높아요. 그런 면에서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었죠.”

-화성시가 2010년부터 보건복지부 연계 행복상상 프로젝트를 운영 중입니다. 병원으로 직접 찾아가 퇴원 적정성 평가, 퇴원 사례회의, 퇴원 동기 강화 병원 프로그램 바깥보기, 지역사회 재비치 등을 지원 중입니다. 선도사업은 이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겁니까.

“맞아요.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도 저희가 하고 있는 건데요. 왜냐하면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이용하는 분들은 본인이 직접 찾아오거나 지역 주민센터에서 저희에게 연계하거나 이렇게 되는데 사실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되지 않느냐라는 게 저희 생각이에요.

특히나 단기 입원자 중에는 퇴원이 가능한데 지역에 어떤 자원이 있는지도 몰라서 오랫동안 입원한 이들이 계세요. 그런 고민들이 있었고 또 하나는 각 지자체는 의료급여관리센터라고 하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기초생활수급대상자 분들이 장기간 입원하지 않도록 하는 센터가 있어요. 의료급여의 의료비가 너무 많이 나가니까 그런 거거든요.

그런데 이 의료급여를 받는 장기입원자 중에 50%가 정신질환자예요. 국가적 차원에서는 굉장히 돈이 많이 들어간다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거기 가 보면 이들이 얼마나 오래 입원해 있는지 알 수 있어요. 화성 같은 경우에도 200명 정도가 장기입원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분들을 찾아갔고 그 해만 20명 정도가 퇴원이 가능했어요. 그래서 그 분들이 퇴원할 수 있도록 가족에게도 연락을 하고요. 그랬는데 그 분들 중에 절반 정도는 다시 입원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저희가 느낀 게 장기입원한 분들을 찾아간다면 이 분들 중에는 정말 간절히 퇴원하고 싶고 충분히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는 분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우리가 해야 될 역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정신질환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게 장애인복지과에요. 정신장애인 등록하면 장애인복지과에 리스트가 있는데 현재 장애인복지법 15조에 의해서 그분들이 서비스를 못 받잖아요. 그분들도 저희가 찾아가야 할 분들이라 생각하는 거죠. 이렇게 정신장애인에 대한 행정체계가 삼원화돼 있어요. 장애인복지과, 복지정책과, 보건부 이렇게 삼원화돼 있다 보니까 명단은 다 있는데 서비스는 안 줘요.

이 분들을 찾아서 저희가 서비스를 드리겠다는 거죠. 그런데 이분들이 당장 나와야 되니까 갈 곳이 필요하잖아요. 주거도 만들고 이용시설도 강화하고 이런 게 저희가 선도사업으로 생각했던 건데 이게 장기입원자 지역사회 재배치라고 했던 이유는 퇴원사업이라고 하면 되게 비판이 많이 나올 거 같아서였어요.”

-왜요?

“퇴원시키는 것을 싫어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또 가족들도 싫어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지역에 좀 재배치하자, 이 분들이 병원만이 아니라 어떤 분은 요양원에도 갈 수 있고 어떤 분은 공동생활가정으로 갈 수도 있는 거고. 그래서 그런 이름으로 사업을 했었죠.”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는 전문요원이 몇 분쯤 됩니까.

“36명이 일하고 있어요.”

-다른 지역 센터에 비해 많은 편이네요.

“네. 그렇죠. 그런데 경기도는 저희 센터보다 인력이 많은 곳이 한 여섯 군데 있어요. 왜냐하면 경기도는 잘 사는 지자체들이 있잖아요. 그런 지자체에는 예산 투입이 되는 거고요. 센터는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예요. 가난한 지자체에 사는 분은 정신보건서비스를 제대로 못 받을 확률이 높죠.

오히려 분당 같은 데 사시는 분들은 지자체 재정 자립도가 높으니까 서비스가 많겠죠. 수원은 워낙에 독특한 지역적 특성이 있고요. 이처럼 정신장애인들이 살아가는 데에는 수도권이 좋은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저희가 정부에 요구하는 것도 지방의 기초 지자체들에 예산을 투입해서 인프라를 강화해 줘야 한다고 계속 말하고 있죠. 그런데 쉽지가 않아요.”

-정부가 정신건강복지센터 전문요원들 인력을 확충하겠다고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그 많은 인력을 어떻게 충원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요. 지금 사람도 잘 안 뽑혀요. 이쪽 처우가 안 좋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지원을 안 하는 거죠. 우리가 직업하면 장기간 일할 수 있고 저도 오십 세를 바라보지만 한 10년 전에 저희 희망이 머리가 희끗희끗해질 때까지 현장에서 사례를 만나고 하는 일들을 했으면 좋겠다 그런 꿈을 꿨었는데 지금 잘 안 되고 있죠.

2018년에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정신건강전문요원 실태조사를 했어요. 보면 2015년을 기점으로 정신건강간호사,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건강임상심리사들이 배출이 잘 안 돼요. 급격히 감소하고 있어요. 이유는 뭐냐면 여기 와도 내가 직업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것도 있고 내가 제대로 일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많은 사례를 봐야 되고 그것만 보는 게 아니라 행정도 해야 하고, 홍보도 해야 되고, 캠페인도 해야 되고. 요즘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잖아요. 특히 젊은 친구들한테는 더 그렇죠. 어떻게 보면 직업도 20대가 있고 30대가 있고 각 연령대가 촘촘하게 있어야 장기적으로 오래 갈 수 있는 직업이 되는데 우리는 지금 역삼각형이 되고 있어요. 나이 많은 사람이 가장 많고 나이 적은 사람이 없는 거죠. 그런 구조가 될 거 같아서 정부나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이에 대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죠.”

전준희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전준희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정신건강복지센터는 기초 지자체 정신건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컨트롤타워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못하고 있죠. 전달체계상으로 보면 당연히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되죠. 우리 지역에서 발견되는 사례가 있으면 정신재활시설로 연계하기도 하고 혹은 입원이 필요하면 입원을 돕기도 하고 이런 역할들을 잘 수행해야 하는데 센터 인력들이 평균 9명 정도 되거든요.

저희가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게 4월 이전까지는 자살예방센터라고 해요. 자살예방 업무가 그때 너무 많으니까요. 시기에 따라서 이때는 중증정신질환 사업을 하고 이때에는 자살예방 사업을 많이 하고 이때에는 아동사업을 많이 하고 이렇게 돼요. 그러니까 이걸 적절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다 보니까 컨트롤타워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있죠.”

-지자체가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인력 확충, 예산지원 등을 하지 않는 이유가 궁극적으로 뭘까요.

“노인 쪽은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정신장애인들은 투표를 잘 안 하죠. 표가 제일 커요. 그리고 정신장애인 가족들은 내 아이가 정신질환이 있다고 이야기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분들이 얘기를 못한다고 해서 왜 그렇게 용기가 없냐라고 우리가 얘기하면 안 되죠. 국가가 이런 분들의 특성을 고려해서 이 분들이 목소리를 안 내도 이에 대한 예산을 어느 정도 확보를 해서 항상 이분들에게 써야만 되는 거예요. 그게 공공정신보건사업인거죠.

왜냐하면 시골에 어르신들이 병원가기 어려우니까 보건소 와서 약을 받아가요. 그런데 약을 받아가는 이들이 몇 분 안 된다고 그걸 없애면 그 분들은 약을 먹으러 갈 데가 없는 거예요. 그런 공중보건 사업이 중요한 것처럼 정신장애인들은 나라에 요구도 잘 못하고 그리고 장기입원해 있는 이들도 있고 가족들은 낙인에 쌓여서 표현도 못하니까 나라가 알아서 이분들의 수요도 들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죠.

기초 지자체장들이 다 투표로 결정되잖아요. 그러니 투표를 많이 하는 분들을 위한 정책을 더 많이 만들죠. 우리 사회가 국민소득도 높아지면서 정신건강에 대한 지역 정치인들의 관심도 많아지는 등 변화가 조금씩 있어요. 그래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아무래도 투표를 많이 하는 분들 쪽으로 정책들이 가는 경우가 많아요.”

-정신건강복지센터가 공공법인으로 전환돼 직영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직영화가 되면 다 문제가 해결됩니까.

“현재 민간위탁 구조잖아요. 민간위탁이 갖고 있는 한계가 지금 너무 많아졌어요. 왜냐하면 예전에는 센터 인력들이 열 명 이내로 구성됐고 정신보건사업 자체가 중증정신질환자 사례관리에 집중돼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사업의 양이 너무 많아졌고 사업의 종류도 다양해졌어요. 그리고 인력들도 되게 많아졌어요.

그래서 센터가 민간위탁 혹은 병원에 위탁되어 있는 구조만으로는 이분들의 고용을 충분히 안정시켜주지 못해요. 민간위탁은 한 3년 정도 지나면 위탁이 바뀌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대규모 해고가 막 이뤄지죠. 그리고 요즘 인력들은 노무 문제에도 굉장히 민감하거든요. 처우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한 요구들이 되게 많아졌어요. 그게 소송으로도 가기도 하고요. 결국 민간위탁으로는 이걸 해소를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다가 보건소 사업 중에서도 정신보건 사업이 순위가 굉장히 높아지기 시작한 거죠. 지역사회에서 위기 상황이 오면 저희가 나가고 경찰, 소방이 나와요. 그런데 저희는 공무원도 아니고 민간인이잖아요. 국민의 안전을 위한 어떤 상황에서 권한이 없는 사람들이 현장에 나가는 것 자체가 앞뒤가 안 맞죠. 그렇다면 이들을 다 공무원화할 거냐. 공무원의 숫자를 계속 늘릴 수는 없죠.

그럼 대안은 뭐냐. 계속 바뀌는 위탁이 아니라 공공법인을 만들어서 거기에 위탁을 한다면 훨씬 질 관리도 잘 될 거고 이직률도 낮추고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나갈 수 있는 거죠.”

-기존에는 경찰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응급입원 서류에 사인을 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요즘은 변화가 좀 느껴집니까.

“지역에서 경찰들이 응급입원을 위해 자기가 사인을 하게 되면 나중에 책임을 져야 되는 경우도 있나 봐요. 입원됐던 분들이 경찰을 대상으로 소송을 하기도 해요. 그렇게 곤욕을 치르다보니 본인이 그런 상황에서 안 하려고 하는 경향들이 있어요. 그래도 최근에는 많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진주 안인득 사건 이후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바뀌긴 했는데 그래도 경찰이 그런 상황에서 경찰관 개인이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도 문제예요. 그건 본인의 경찰관으로서 절대다수의 사람들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거기 때문에 한 거잖아요. 그리고 응급입원 기간이 3일이잖아요. 물론 입원을 당하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하고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지만 경찰에게 그런 권한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요.”

-센터를 구멍가게에 식당까지 들어선 상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업이 너무 다양하고 많아서요. 저희는 백화점이나 구멍가게 같아요. 백화점은 좋은 제품이라도 팔지 우리는 좋은 제품도 못 파는 구멍가게.”

-중앙정부의 지침이 좋아도 이를 집행할 자원, 예산이 없으면 소용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맞아요. 예산이 부족하고 건강증진기금으로 예산을 받고 있어요.”

-그건 무슨 말입니까.

“담뱃세 사업이에요. 담뱃세로 예산을 받아오기 때문에 기금사업인 거죠. 아직도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시범사업이나 마찬가지예요. 그 틀을 못 벗어나고 있죠. 그런데다가 거기에 매칭을 하는 거예요 지자체들이. (중앙정부가) 그 돈을 준 거에 50% 매칭을 하는 거죠. 혹은 70% 매칭을 해요.

그러니까 그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일반 회계 예산으로 예산을 확보를 해야 된다. 왜냐하면 그래야지 매년 조금씩 늘어나기도 하고 인력들의 호봉도 높아지는 것에 따라서 예산도 더 높아지는 거니까요. 그런데 이게 안 되지 않나.

한편으로는 일반회계로 가게 되면 예산을 더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차라리 기금사업이 있으면 그 예산을 쓸 수 있고 유연성이 있는데 일반예산은 그 유연성이 없다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지금 정신병원 예산투입을 중앙정부가 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중앙정부 예산을 끊어버리면 자연스레 탈원화가 이뤄진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호주가 주립병원들 다 없애고 거기 인력들을 지역으로 다 배치해 버렸어요. 그래서 멜버른 같은 경우에는 1980년대에 메인스트림 운동이라고 해서 길어야 보름 정도만 입원하고 지역사회에 서비스들이 다양해졌어요. 그래서 탈원화와 지역사회 서비스들이 같이 이뤄져야 가능하죠.

만약에 그거 없이 바로 탈원화가 이뤄지면 미국처럼 노숙인이 증가하고 또 정신장애인 자살로 많아지고 또 범죄도 많아지거든요.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되면서 입원이 어려워졌는데 그때 저희도 지역사회 탈원화 준비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좀 아쉽죠.”

전준희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전준희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회복된 당사자와 가족을 직원으로 둬야 한다는 요청도 있습니다.

“바람직하죠. 그것도 저희가 하나의 과제라고 생각해요. 저희 센터도 작년에 당사자 자조모임 같은 걸 해봤는데 직원들이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얘를 들면 당사자들을 직원으로 채용해 같이 일도 하고 같이 방문도 나가고 하는 자체가 직원들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거 같더라고요. 직원들이 반성을 많이 하더라고요.

특히나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하고 파도손도 다녀오면서 직원들이 충격을 많이 받고 반성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마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있는 종사자들의 평균적인 수준일 거예요. 앞으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정신건강복지센터가 훨씬 당사자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져야 돼요. 그리고 당사자 중심의 관점들이 좀 더 훈련돼야 한다는 거죠.”

-의외로 병원 퇴원 시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존재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는 병원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저희가 홍보를 잘 못하는 것도 있고요. 또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퇴원하시는 분들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뀐다고 해요. 그런데 그런 게 잘 안 됐던 거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대부분의 위탁이 병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센터 홍보를 적절하게 제대로 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있어요. 또 하나는 센터 서비스가 충분히 충족되지 못하는 측면들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정말 좋았다면 당사자들이 서로 홍보하고 알리지 않았을까 싶어요.”

-병원의 음모가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안 가르쳐주면 지역사회에서 그냥 있다가 재발했을 때 병원으로 더 올 수 있으니까요.

“저도 해봤어요(웃음). 그런데 그러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소극적인 건 있겠죠.”

-협회장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소명 의식을 느끼십니까.

“저는 이제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요. 그리고 정신장애인들이 있었기에 제가 20년 동안이 일을 해 왔고 또 그분들 속에서 저도 인간적인 성장을 했어요.”

-일하면서 어떤 순간에 무기력을 느낍니까.

“무기력감을 느낀 건 제가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죠. 저희가 커뮤니티 케어 선도사업 하게 됐잖아요. 그런데 4월에 진주 안인득 사건 터지고 하니까 주간재활 나오는 회원분이 저한테 심각한 표정으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평소에 그렇게 말도 안 걸던 분이에요.

센터장님 우리 그런 선도사업 안 하면 안 되냐고 그래요. 선도사업을 하면 우리가 건물도 생길 수 있고 주간재활도 일주일에 두 번밖에 못했는데 주 5일로 바꿀 수도 있지 않냐라고 말했어요. 그래도 안 하고 싶어요 그래요. 그러니까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관심이 높아지니까 평생을 그런 상황이 오면 숨고 후퇴했던 그런 게 몸에 배어 있었던 거죠.

오히려 선도사업하면서 나쁜 상황이 벌어질까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거 같아요. 저희 센터 입장에서는 정부 예산을 따오는 거니까 좋은 거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만 했어요. 그런데 우리 회원들은 나는 그런 좋은 거 안 가져도 돼요라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때 제가 ‘아, 20년을 넘게 일했는데도 아직도 내가 당사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많이 부족하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나 센터에 사업들이 많다보니까 다른 사업에 집중이 되고 그러다보면 정신장애인을 위한 사업들이 약해지잖아요. 거기에 대해 왜 이런 부분이 부족하냐라는 얘기도 안 하시고 주면 주는대로 그냥 받고 이렇게 지내는 분들이 너무 많은 거죠. 그래서 저희가 좀 더 세심하게 도움을 준비해야 하는데 20년을 일해도 여전히 부족한 거 같아요. 그때가 가장 무기력해요.”

-사회복지사의 태도와 철학은 어떤 게 있을까요.

“글쎄요. 정신보건사회복지사는 결국 정신장애인들 속에 존재해야 되는 거죠. 우리가 주인공이 아니고 이분들이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죠. 우리가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들을 인식될 수 있게 도와드리는 게 우리의 정체성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걸 위해서는 어떤 거라도 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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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제수민 2019-06-20 05:42:27
정신장애인의 수도 수원, 정신장애시범도시 화성 이라고 말하는게 실감난다. 경제적자립과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자체일수록 조현예산도 많아지는가 보다. 진주처럼 예산적고 인력모자란 곳에 사고가 나기 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경기도에서나마 조현활동이 신장된다는 것도 축하할 일이다. 당사자에게 행복이 돌아가는 화성 수원이 되야겠다. 시설이 커지고 예산이 많아져서 행복한건 아닐것이다. 기쁨을 만들수 있는 프로그램 사업이 많아야한다. 편견낙인이 사라진 조현이 사람답게 인정받고 대우받아야한다. 진정 컨슈머 소비자로 수요자로 서비스를 받아야한다.
전준희님의 희생과 노력에 감사드린다. 의사들이 대부분 센터장하는데 님은 사회복지사로 출발 협회장까지 한다는 건 각고의 노력과 주변의 지지가 있다는 것일 것이다.수원화성발전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