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하 “정신질환에 대해 알려야죠. 알아야 행동을 하고 도움을 줄 거 아니에요”
이철하 “정신질환에 대해 알려야죠. 알아야 행동을 하고 도움을 줄 거 아니에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7.01 23: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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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보러와요’ 영화감독 이철하 씨 인터뷰
감독 혼자 영화 만들지 못해, 스태프와 배우 배려해야
노년에 예술가로 존중받는다면 그게 삶의 ‘정상’일 것
산티아고 길 걸으며 영화란 무엇일까 근본 질문 던져
영화 ‘날, 보러와요’로 개봉된 해 최고의 흥행 작품 올라
나쁜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강제입원 가능한 법에 의문 가져
사회적 불편함 때문에 병원·시설 가둬놓는 건 불공평해
‘날, 보러와요’는 인생 터닝 포인트 작품…약자에 대해 사유하게 해
정신질환에 대한 가이드라인 만들고 교육 시켜야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언젠가 일간지에서 100세가 된 일본의 게이샤(藝者) 할머니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기모노를 입고 예능을 행하는 게이샤의 삶을 그녀는 싫어했다. 그렇지만 그는 게이샤의 삶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토로했다. “삶이란 참 이상해. 내가 하기 싫어 울면 울수록 그 일을 더 할 수밖에 없었어.”

기자는 그 글을 읽고 의문을 던졌다. 왜 인간은 자신이 바라는 일을 온전하게 찾아서 하지 못하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서 학력이 되지 않아서 막노동을 해야 하고 어떤 이는 머리가 좋고 운도 따라서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물론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고 거기에 월급까지 나오는 곳이라면 얼마나 좋은가라는 통속적 사유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이 오십이 다 된 지금에서야 나는 인간에게는 가야할 길이 다 다르다는 걸 느끼고 만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따라서 선택한다는 것은 하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어떤 것들을 버려야 하는 행위라는 것을.

우리가 가지지 못하더라도 지금의 일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삶. 그것이 인간이 가진 부조리의 한 지점은 아닐까.

이철하 감독의 영화 '날, 보러와요'
이철하 감독의 영화 '날, 보러와요'

정신병원이 가지는 폭력성과 정신의료 권력의 민낯을 드러냈던 영화 ‘날, 보러와요’(2016년 개봉)는 관객 100만 명을 모은 ‘히트작’이었다. 그 즈음,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정신보건법이 가진 문제점들이 하나 둘씩 지적되고 모순의 해결을 위한 또 다른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청들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그때 일부 진보적 시민단체는 졸속으로 법을 만들기보다 좀 더 오랜 성찰과 토론을 통해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어쨌든 이 같은 논의의 ‘도가니’ 속에서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이 태어나게 된다.

그때, 이 법의 탄생에 저 영화가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쳤던 것일까. 기자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시민사회의 법 개정의 요청들은 목소리가 아무리 낮더라도 정치적 행동들에 영향을 끼쳤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저 영화도 그런 의미에서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이 영화를 만든 이철하(49) 감독은 20대 광고기획사에서 일을 하다가 영화를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샌프란시스코 아카데미 오브 아트 칼리지에서 학생들을 위한 ‘컬리지 TV’상에서 2년 연거푸 수상을 하면서 자신이 가진 깊은 재능을 선보였다. 그리고 ‘선한 인연’이었던 이현승 감독을 통해 충무로에 데뷔하게 된다.

언젠가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내가 하고 싶다는 갈망이 강했고 그것을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라고. 그는 영화가 좋았고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하나의 전략적 방식으로서 영화를 선택했다. 젊은 시절, 음악을 좋아했고 뮤지션이 되고 싶었지만 변명하자면 삶의 흐름의 궤적이 바뀌었고 자신이 음악 다음으로 좋아했던 영화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모든 것을 선택했던 것일까. 그는 영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분명 그는 자신이 욕망했던 소망들의 어떤 부분들을 버려야 했을 것이다. 저 게이샤 할머니처럼 싫은 것이 하기 싫어 울어도 그 일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던 어떤 것들을 하나씩 버리면서 현재의 영화라는 생의 소재를 붙잡은 것이다. 게이샤 할머니도 이철하 감독도 삶이라는 큰 틀에서 원하던 것을 이루었고 그 자체로 축복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삶의 영광이 있기를 바란다.

이 감독을 만난 건 하늘이 어둑했던, 그렇지만 조금은 시원해진 날씨를 보이던 1일 오전 2호선 봉천역 인근의 한울정신건강복지센터 카페에서다. 일문일답.

이철하 영화감독 (c)마인드포스트.
이철하 영화감독 (c)마인드포스트.

-프랑스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가 본인이 꿈꾸는 연출가의 모습과 가깝다고 했는데 이 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60년대 생인데 드러머로 밴드생활을 하다가 음반도 내고 뮤직비디오 감독으로도 명성을 떨쳤어요. 아방가르드한 특이한 전위적 뮤직 비디오를 많이 만들다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죠. 프랑스 감독인데 할리우드에서 영화 쪽 활동을 했어요.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짐 캐리 배우가 나오는 특이한 멜로영화인데 그걸 만들면서 유명해졌죠.

지금도 영화 활동을 하고 있는데 히트작을 많이 만든 감독이에요. 저도 음악을 했거든요. 드러머였고 뮤직비디오 감독도 했고 다시 영화로 와서 일을 하면서 내가 공드리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구나. 닮고 싶다고 생각했죠. 닮기에는 너무 위대한 사람이라서(웃음).”

-그의 어떤 부분이 감독님이 추구하는 성향을 닮았던가요.

“기발한 생각의 전환이죠. 그 사람의 영화를 보면 일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아니거든요.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특이해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었죠.”

-학생들에게 연출에 대한 것보다 됨됨이를 얘기한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게 기본으로 돼 있지 않으면 감독으로서 존경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좀 노인네 같은 얘기인데요(웃음). 미셸 공드리처럼 특별한 시선을 가지고 창작하는 감독도 세상에 많죠. 하지만 대부분의 감독들은 상생을 하는 거고, 스태프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통해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저는 봐요. 배려와 존중이 없으면 힘들 거라 생각해요.

영화감독의 자질에서는 그게 중요해요. 영화감독이 스타 감독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봉준호 감독이나 박찬호 감독도 크리에이티브하지만 그분들 또한 스태프들과 배우들에 대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그렇지 않나 생각이 들죠.”

-예술가는 성격적으로 파격적이고 괴팍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있죠. 그런데 괴팍함이 일상과는 다른 거죠. 예술적인 시각에서의 괴팍함이지 일상에서 꼭 그럴 일은 없는 거죠. 저도 괴팍한 생각, 남다른 고집, 밀어붙임, 또 그걸 관철해내기 위해서 하는 건 똑같아요. 그게 없다는 건 아니에요. 그게 없다면 예술을 할 수 없죠.

그런데 영화는 100명 정도의 스태프들과 함께 하는 거고 그 분들이 저를 대신해서 저의 괴팍한 생각을 만들어주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제가 혼자 글을 쓰고 혼자 카메라를 잡고 영화를 찍으면 그거야 말로 저만을 위한 예술이 되겠죠.

영화는 그렇지 않죠. 자본이 50억, 100억이 들어가고 또 남의 돈이잖아요. 제 돈 갖고 하는 게 아니니까 일정 정도의 조율이 필요해요. 괴팍하다는 사람이 집에 가서는 안 그렇잖아요.”

-배우나 스태프들에게 배려해주지 않으면 원하는 영상이 나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어떤 부분을 배려합니까.

“당연하죠. 그 분들이 제가 그리고자 하는 영상과 스토리를 잘 만들어줘야 되는 거잖아요. 미술감독이면 제가 원하는 색상과 세트를 만들어줘야 되는 거고, 촬영감독은 찍어줘야 되는 거고, 음악감독은 음악으로 표현해 줘야 되는 거죠. 제가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래서 그들을 존중하는 게 필요하죠. 어느 순간에 고집부리면서 ‘내가 이렇게 했으니 내가 말한 대로 해’ 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게 많아지면 질수록 그 분들이 제 곁을 떠나겠죠. 큰일나죠(웃음).”

-‘저에게도 언젠가는 정상이 설 날이 오겠죠’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감독님에게 정상은 어떤 자리인가요.

“어려운 질문인데요. 제가 20대 때는 영화감독이 되면 최고라 생각했어요. 지금은 영화감독이 됐는데 다음 목표가 생겨요. 정상은, 잘 모르겠어요. 지금 계획에는 영화를 꾸준히 만들면서 70대쯤 갔을 때 제가 예술가로서 존중을 받는 날이 정상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은 칸에서 상을 타든, 아카데미 상을 타든 정상은 아닌 거 같아요. 천만 관객을 들이는 영화를 만들어도 정상은 아닌 거 같아요.”

-영화 시작을 서른 살 때 하셨습니다. 영화감독은 어떤 삶의 과정을 거치고 올라가야 하는 자리인가요.

“영상 일은 어렸을 때부터 했는데 영화라는 필드에 들어온 건 29살에서 30살 때. 영화계도 오래 있는다고 (감독을) 시켜주는 건 아니에요. 오랫동안 한 사람들 중에서 좀 잘한다, 성격 좋다, 제작자의 말을 잘 들을 것 같다, 뛰어난 창작예술을 가지고 있다, 그럴 때 거기에 맞는 제작자와 함께 영화감독이 되는 건데 요즘은 신인 감독들이 데뷔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예전처럼 도제(徒弟) 제도가 노동시장에서 의미가 없어지고 각자 자기의 일만 해요. 조감독은 조감독의 일만 계속하고. 그분들이 연출자의 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예전처럼 내가 버티면 영화감독이 될 수 있어, 노력하면 될 수 있어라는 거 하고는 다른 거 같아요. 요즘은 영화감독이 되려면 일단은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글을 잘 써야 할 것 같아요.

영화감독은 이야기꾼이잖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움직이는 영상으로 스크린에 보여주는 게 영화감독인데 그걸 하기 위해서는 보여지는 것만 잘 찍고 촬영 잘하고 배우들하고 친하다고 해서 감독이 되는 것 같지는 않고요. 이야기를 얼마나 잘 직조(織造)해 자기화하느냐. 남의 원작 이야기라도 자기화해서 표현을 잘 하면 빨리 영화감독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운도 따라야 합니까.

“당연하죠. 그건 영화계뿐만 아니라 세상 살아가는 데 운이 따라야죠.(웃음).”

이철하 영화감독 (c)마인드포스트.
이철하 영화감독 (c)마인드포스트.

-2010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롓길에 올랐습니다. 거기서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그때 공포영화 ‘폐가’를 찍고 난 후였는데 보통 영화 한 편 끝나면 다음 작품 뭐하냐 이런 연락을 제작자들이 해요. 한 영화사의 대표 분이 산티아고 순롓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호감이 갔고 하고 싶었어요. 그 영화를 준비하면서 제가 그 길을 걷고 온 거예요.

무슨 큰 결심을 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영화제작을 위해서 헌팅 차 갔는데 거기서 끝까지 걷다보니까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됐죠. 끊임없는 자기와의 대화요. 자기 인생에 대해 자꾸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산티아고 길을 하루 30킬로미터씩 총 800킬로미터를 걷는데 이건 몸이 힘든 건 둘째 치고 되게 심심해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요. 스릴이 있는 텍스트를 읽거나 무슨 질문을 하거나 하는 게 아니고 몸은 힘든데 정신은 그냥 가만히 아무 것도 없는 백지 상태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느꼈던 것들이, 그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똑같이 하는 말인데, 자기가 가지고 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해요.

그러다보니까 아, 내게 이 사람도 있었고 저런 사건도 있었지. 이런 좋은 일도 있었지 또는 생각하기 싫은 것까지 생각을 하면서 한 달 동안 걷는 거죠. 그때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인생을 돌아보는 깨달음이 있죠(웃음). 거기에 신체적인 괴로움이 더해지면 극도로 민감해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기억들이 용솟음을 쳐요. 어떤 이는 울기도 했다는데 저는 좋았어요. 영화를 만드는 게 과연 무엇인지 생각도 하게 되고요.”

-산티아고 가셨다가 귀국하고 와서 ‘날, 보러와요’ 만든 거잖아요.

“산티아고라는 프로젝트는 시나리오가 마음에 안 들어서 보류가 됐어요. 많은 영화들이 준비됐다가 보류됐다가 하니까 그건 특별하지 않아요. ‘날, 보러와요’의 처음 시나리오는 지금의 영화하고는 느낌이 달랐어요. 불타 버린 정신병원에서 발견된 일기장을 통해서 유추되는 정신병원의 나쁜 모습들, 정신병원 원장의 성폭행, 폭행 이런 것들이 가미된 폭력적 영화였어요. 19세 금의 폭력적인 영화.

잔인하고 여성의 신체가 노출되는 것도 많아서 저는 싫다고 했어요(웃음). 영화는 재밌는데 이걸 내가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데는 나의 방향과는 틀린 것 같다고 해서 (그쪽에서) 다른 식으로 고치고 하다가 잘 안 풀렸나 봐요.

그래서 저한테 와서 그럼 감독이 원하는 대로 풀어봐라 해서 정신병원의 현재 모습을 고민하고 실제에 가깝게 하려고 인터뷰도 많이 하고 해서 만든 거였죠. 원래 시나리오는 도시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에요. 먼 외딴 섬에서 벌어지는 얘기였어요.”

-‘날, 보러와요’는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습니다. 스스로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2016년, 투자 대비 흥행을 한 최고의 영화로 뽑힐 정도였죠. 사실은 강혜원 씨, 이상윤 씨가 훌륭하지만 한국 영화계에서 흥행수표가 되는 배우는 아직 아니거든요. 당시 받은 투자 금액도 크지 않았어요. 그 당시 10억 정도에 찍은 건데 관객 백 만이 넘은 건 수익률이 엄청 컸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성공 사례, 기적 같은 거라고 얘기를 많이 해요.”

-영화계에서는 관객이 몇 명 정도 넘어야 수익이 창출되는 겁니까.

“예를 들어서 10억 정도의 영화면 30만~40만 관객만 들어도 괜찮죠. 투자의 3배를 번 거니까. 그리고 50억짜리 영화면 250만 관객이 들어야겠죠. 한국영화가 보통 50억에서 만들어진다면 250만 관객의 세 배면 750만 들었다고 보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보기에 숫자 100만은 ‘이게 뭐’ 하겠지만 배율로 보면 엄청난 흥행수익을 거둔 거죠.”

-실화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두세 가지 사건을 보고 완성했다고 합니다. 사건들 중의 하나를 얘기해 주신다면요.

“이 시나리오의 기초가 됐던 건데 당시 사회 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등에서 정신병원에서 벌어지는 피해, 감금에 대한 주제들을 많이 다뤘거든요. 그래서 제작자는 초창기에는 방향은 폭력적이어도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스스로 정신병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은 들지 않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감금이 되고 행동을 조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억울함과 피해 사례들을 많이 인터뷰했던 거 같아요.

돈에 연루돼서 가족이라도 욕심 때문에 부모나 형제를 감금시킬 수 있다는 사례들이요. 솔직히 인터뷰를 하기가 되게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그분들이 원하지 않거든요. 방송 사례들을 보고 이야기를 만든 케이스라는 게 더 정확하고요. 저의 친구인 정신과 의사를 통해 많은 분들을 만났어요.”

-2015년에 개봉됐죠. 그 당시 정신보건법은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 1인의 진단이 있으면 인신을 보호받지 못하고 강제입원해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정신과 의사의 진단이라는 것도 그래요. 우리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진단서는 어떻게든 구할 수 있고 조작할 수도 있죠. 의사하고 합의만 된다면요. 그런데 아픈 사람 본인이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진단서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게 큰 문제였어요.

보호자의 동의와 의사의 사인만 있으면 (강제입원을) 할 수 있다는 게 사실 믿어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리 영화 개봉할 때쯤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씨가 이런 영화가 나오는데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저희가 한 번 테스트해 보겠습니다라고 해서 테스트를 했어요. 가족 중의 누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폭력을 휘두르는데 빨리 와서 감금치료를 해달라고 신고를 했더니 진짜 (사설응급이송단이) 온 거예요.

영화가 성공했던 큰 이유도 사회적 이슈, 그거 진짜야, 그 영화가 그런 얘길 다루고 있어라는 식으로 홍보 효과도 컸죠. 저도 그 뉴스를 보고 저게 진짜 저렇구나 싶었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를 찍기 전과 찍고 난 후에 정신장애인에 어떻게 다르게 보이던가요.

“제가 느낀 건 자기가 아픈 건 자기 자신이 잘 알잖아요. 감기에 걸리든 다리가 부러지고 암에 걸리든 본인이 알지만 정신질환은 본인이 인정을 한다, 못한다고 판단할 수가 없다는 거죠. 남인 의사가 판단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가 어디에 아프다는 건 의사와 주변 지인들의 증언으로 확인되잖아요. 그리고 치료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거고.

그렇지만 본인이 정말 (정신질환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물론 모든 사람들이 나쁜 건 아니지만 나쁜 시각으로 바라보면 굉장히 악용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막연한 생각보다 확신이.”

-영화 속에 강수아(강예원 분)가 대낮에 대로에서 납치돼 정신병원으로 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강예원 씨는 현실 세계에서 어떤 트라우마를 가졌다고 말하지는 않던가요.

“연기자로서 강예원 씨가 집중하는 스타일이어서 촬영 내내 혼자서 헤드폰 끼고 뭔가 자아를 다른 사람과 노출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독특한 건 아니지만 그런 연기자들이 많이 있어요. 그러니 굳이 그 연기를 통해 트라우마가 생기고 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웃음). 열심히 즐겁게 했어요. 그 장면 찍을 때가 기억나는데 이맘 때 되게 더울 때였어요. 사실 대역이었거든요. 실제로 끌려가는 몇 커트만 강예원 씨 얼굴을 보이는 거고 나머지는 스턴트 분이 거칠게 다룬 거죠.”

이철하 영화감독 (c)마인드포스트.
이철하 영화감독 (c)마인드포스트.

-정신병원에서 장기매매를 위한 수술 장면을 보면서 ‘설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장면은 상상력인가요, 아니면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반영한 건가요.

“그건 영화적인 허구예요. 진짜 그런 데도 있겠죠. 왜 없겠어요. 우리가 모르는 누군가는 그렇게 나쁜 짓을 하겠죠. 그건 의료행위가 아니고 범죄잖아요. 그렇다고 그걸 보편화해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고 영화적인 극적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서 상상력을 더한 거죠. 그렇지만 모르는 거죠. 요즘같은 무서운 세상에서는.”

-강수아가 정신병원을 탈출했지만 경찰에 의해 다시 정신병원으로 끌려오는 걸 보고 정신장애인의 삶에 몸서리를 치고 두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마치 염전을 탈출하는 지적장애인이 도움을 요청한 경찰에 잡혀 다시 염전 주인에게 끌려오는 느낌과 비슷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 장면을 말씀하시더라고요. 그걸 여의도에서 찍었는데 그 공간을 택한 이유는 딱 하나였어요. 원래는 강남역 아니면 여의도였거든요. 강남역은 젊은이들이 더 많고 젊은 거리인데 성형외과나 의료 시술들이 많이 벌어지는 곳이어서 아이러니한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에 정신병원 감금시설이 있으면 특이하겠다는 생각을 우선 했어요.

그리고 여의도는 금융도시잖아요. 굉장히 스마트하고 학벌 좋고 연봉 높은 사람들이 있는 공간인데 거기 큰 빌딩에 건강검진 받는 의료센터가 있거든요. 제가 본 적이 있는데 아, 그렇다면 이 유리로 된 큰 빌딩에 정신질환 감금시설이 있다면 되게 무섭겠다라는 생각을 하다가 후자를 택했죠. 그게 더 섬찟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잘 표현된 거 같아요.”

-여의도 같은 고급 이미지 안에서 공간에 잔혹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거기서 저 아픈 데 저 도와주세요, 저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라고 대낮에 나와서 도와달라고 하면 (어떻겠어요). 실제로 지하철 안에서 피 묻은 옷 입고 맨발로 나와서 도와달라고 하면 과연 누가 도와줄 수 있냐는 거죠. 그게 현실이고 그걸 영화의 주제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영화에서 장 원장(최진호)이 화를 내는 강수아의 상태를 보며 분노조절장애 등으로 진단하는 걸 봤습니다. 어쩌면 정신병원에 들어간다는 자체로 우리는 병이 있는 게 아니라 그 병을 그 안에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의사가 다 좋을 수 없잖아요. 특히 정신질환은 대화와 심리적인 교감이 더 필요한 거라서 치료를 목적으로 한 약물 처방이나 병명에 대해 기입을 할 때는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장면은 영화의 극적 상황인데 못된 원장이 딴 데 보면서 무슨 장애, 무슨 장애 하면서 (차트를) 간호사에게 건네주고 하는 건데 그런 악역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콜롬비아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 ‘나는 전화를 걸러왔을 뿐이에요’를 보면 비정신장애인이 정신병원에 전화를 하러 들어갔다가 꼼짝없이 정신장애인으로 낙인찍혀 정신병원 체제 안으로 포섭되는 해학적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정신병원은 치유의 장소일까요, 진단과 억압의 장소일까요.

“문제가 심각한 거죠.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나는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의 공동작업을 통해서 한 사람이 바보가 되고 인생이 망쳐질 수 있는 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신장애가 아니더라도 오진 같은 거 발생할 수 있잖아요.

암이 아닌데 암이라고 얘기해서 방사선 치료 받게 한다거나, 혹은 수술 안 해도 되는데 수술을 해가지고 장기에 손상이 간다거나 그와 비슷할 수 있지만 강도는 좀 틀리죠. 왜냐하면 (오진으로) 평생 정신질환을 앓게 될 수 있잖아요. 그 부분은 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할 수 있죠.”

-잭 니콜슨이 출연한 미국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처럼 ‘날, 보러와요’ 영화도 정신의료 권력이 가진 민낯을 보인 것을 아닐까요.

“그렇죠. ‘뻐꾸기’는 휴머니즘을 그렸고 저희는 공포, 스릴러를 그렸는데 같은 맥락에서 출발했고 우리 일상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를 원한 게 연출자의 마음이었죠.”

-정신건강복지법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정신보건법은 이 영화를 통해서 많이 들었고 인터뷰도 많이 했고 공부도 많이 했어요. 영화 개봉 이후에, 우리 영화 때문에 바뀐 건 아니지만, 계속 국회에서 관련 의안 발의가 있으면서 저희 영화가 흥행이 됐고 JTBC가 그런 방송도 하고 MBC나 KBS에서 비슷한 문제점들을 계속 제기를 했어요. 그러면서 국회 법안이 좀 더 힘을 받아서 개정을 하게 됐거든요. 그게 아마 겨울이었을 거예요.”

-2017년 5월에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복지법으로 바뀝니다.

“좀 더 디테일하고 철저하게 바뀌었죠.”

-그렇죠. 보호자 2명에 진단을 정신과 의사 2명.

“저도 영화감독인데 그 덕분에 국회에 가서 의안들 발의되기 전에 공청회도 참가하고 ‘영화감독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의도 받고 했어요.”

-정신건강복지법의 실질적 내용에 대해서 잘 모르시죠.

“깊게는 아니고요. 조금 더 인권적으로 업그레이드됐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죠.”

-현재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에 8만여 명의 정신질환자들이 입원해 있습니다. 이들이 지역사회로 나올 수 있을까요.

“나와야 되지 않을까요. 저는 거기에 대해 아직은 모르겠어요. 그건 동물원도 아니고 인간의 인권을 억지로 가두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남을 해치거나 사고를 내거나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더 많잖아요.

본인이 문제점을 알고 있고 그걸 충분히 해결할 수 있고 통제가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피하고 싶고 귀찮기 때문에 가둬놓는 거잖아요. 그냥 서로 불편할 뿐인데 우리 사회는 그런 불편한 관계가 굉장히 많잖아요. 그래서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밖에 있는 본인의 편의를 위해서 감금을 한다는 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인터뷰하면서 좀 더 인간을 바라보는 쪽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유럽이나 선진국은 환자들의 상태를 되게 자주 하더라고요. 1~2개월에 한 번씩. 이 분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전문가의 시각으로 보는 거죠. 그 병원과는 관계없는 전문가들이 와서 이 분의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굳이 여기 있을 필요 없다고 판단을 내려요. 우리나라는 그 확인시스템이 2년인가 그렇대요.

그럼 2년 동안은 내가 미치지 않았어도 약을 먹으면서 그냥 거기 있어야 되는 거예요. 멀쩡한 사람도 약 먹고 그 공간에 있으면 누가 안 미쳐요(웃음).”

-강예원은 ‘날, 보러와요’가 자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라고 했는데 무슨 의미라고 생각합니까.

“아무래도 강예원씨는 예전에 천만 영화 ‘해운대’도 했었고 큰 영화에도 출연도 많이 했죠. ‘날, 보러와요’는 본인이 주연한 영화이기도 하고 또 엄청나게 몰입해서 연기를 했었고 플러스 알파로 흥행도 됐고 해서 본인이 연기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강예원 씨는 악바리예요. 엄청 열심히 해요. 한번 자기가 목표로 한 것은 끝까지 해내는 배우라서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이철하 영화감독 (c)마인드포스트.
이철하 영화감독 (c)마인드포스트.

-감독님한테도 그 작품이 터닝 포인트였습니까.

“그렇죠. 이 작품 하나만 통해서 터닝 포인트라고 하기는 그런데 이전 작품이 안산시 다문화를 다룬 ‘안녕?! 오케스트라’였어요. 국적이 다른 엄마 아빠를 우리나라는 특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잖아요. 그들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사람들이 평등할 권리,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들을 많이 생각했죠. 그러면서 ‘날, 보러와요’를 하게 된 거거든요. 전체적으로 단순한 재미와 자극적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아닌 영화 스토리 안에서 약자와 강자, 불평등, 인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제 인생에서 그게 터닝 포인트였죠.”

-정신장애인들은 자기 병과 싸우다가 아까운 청춘을 다 떠나보냈다는 회한의 말을 하고는 합니다. 감독님에게 청춘은 어떠셨나요.

“일반적으로 청춘이라면 10대 후반부터 20대라고 칩시다. 그랬을 때 저는 음악을 하면서 대학가요제 나가고 싶었던 꿈이 있던 청춘이었어요. 그러다가 벽에 부딪힌 거죠. 음악인으로서는 내가 자질이 부족한 거 같다. ‘딴따라’ 기질이 없는 거 같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작품에 대해 표현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영화 쪽으로 가게 된 거죠. 특별히 피해를 본 건 없었던 거 같아요.

아쉬운 건 음악을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게 있죠(웃음). 제가 너무 쉽게 포기를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 당시 음악했던 친구들은 계속 음악을 하고 있거든요. 제가 영화감독이 되지 않았을 경우, 아니면 영화감독도 꿈꾸지 못하고 다른 직업을 택했을 경우, 대학교 선생이 됐거나 일반 회사원이 됐다면 하는 생각도 들죠. 차라리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걸. 석·박사 따서 회사 임원이 될 걸 하는 후회는 할 수 있겠죠.

지금은 영화감독으로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후회는 아직은 없어요. 어떤 후회가 있을지는 앞으로 남은 삶에서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질 수 있겠죠(웃음).”

-감독님이 스스로 정신장애인이라면 어떤 감정이 들 것 같습니까.

“상상하기 힘들 거 같아요. 저는 정신장애인분들 본인이 정신장애인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보통 인정하나요? 안 할 거 같은데 저는.”

-병식(病識)이 없을 때 인정하지 않고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구나 생각을 하는 거죠.

“제 친한 친구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어요. 그 친구는 20대 중반부터 시작해서 30대 초반까지 약물치료 했었거든요. 지금은 10년 넘게 안 하는데 요즘은 또 약물치료를 하고 싶어 해요. 그걸 보면 본인의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있고 치료가 가능할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 병에 대한 인식, 즉 이건 병이에요, 이건 병이 아니에요라는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교육이 있어야 할 거 같아요.

그런 게 없이 그냥 힘드니까 약물 먹어야겠어, 선생님 저 치료받고 싶어요라고 얘기한다고 해서 모든 게 정신병은 아니잖아요. 감기 기운이 있고 다리가 부러지면 병원에 가듯이 어떤 경우에 이게 정신적 병이라는 걸 일반 사람들도 알 수 있는 가이드라인 교육을 했으면 해요. 인터넷 동영상 강의도 있으면 좀 더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아픈 사람들이 내가 문제가 있구나하면서 주변사람들에게 병원 가서 상담해봐야겠다는 걸 정확하게 알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거죠.”

-감독님 나이가 이제 우리 나이로 쉰 살입니다. 어떻게 늙어가고 싶습니까.

“좋은 일 하면서 늙고 싶어요. 영화를 만드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계속 생각하게 되고 흔히 말하는 좋은 영화, 좋은 작품, 사회에 좋은 기운을 전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은 거죠. 예전 같으면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면 무조건 하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그런 거 말고, 성공을 위해서만 달리는 게 아니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즐겁게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게 저한테는 특별한 거 같아요.”

-정신장애인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첫 번째는 왜 저분한테는 어떤 사연이 있길래 아픈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 번째는 어떻게 치료가 될까, 정말 치료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거 같아요.”

-격리와 배제가 아니라 정신장애인의 인간적 존엄의 회복, 정치적 자유를 위해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까 제 친구 얘기도 했지만 그 친구가 자살 방지에 집중을 하는데 자살의 안 좋은 부분들과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식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계도하고 있거든요. 그런 것처럼 정신질환과 정신병원에 대한 인권, 정치적 자유도 알려야 되겠죠. 관련된 뉴스 프로그램도 필요하겠지만 국장님이 하시는 것처럼 인터넷을 통하든, 아니면 요즘은 사회관계서비스망(SNS)을 통해서 알리는 게 우선인 거 같아요. 알아야 뭔가 행동을 하고 도움을 줄 거 아니에요.”

-현재 제작을 끝냈다는 영화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오케이! 마담’이라는 제목의 코미디 영화예요. 서민 가족이 하와이 여행 이벤트에 당첨이 돼서 여행을 가게 되는데 그 비행기가 악당들에 의해 납치가 되는 거예요. 하이재킹(hijacking).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에요. 그래서 가족이 하와이를 가기 위해서 싸우는 코믹한 액션 영화.”

그가 차가운 커피를 다 마셨다. 기자도 마지막 한 모금을 넘겼다.

이철하 영화감독 (c)마인드포스트.
이철하 영화감독 (c)마인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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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제수민 2019-07-03 14:01:07
이철하감독과 무던히도 다투던 당사자 동료가 있었죠, 강예원이 연기 부족하고 날보러와요 내용이 왜곡되고 당사자 삶을 엉터리로 그렸다고, 몇달 드잡이 하더니 그 동료와 철하감독은 둘도없는 친구가 되었죠. 감독도 팩트를 알리고자 했지만 당사자 아픔은 그대로 전하지 못한게 한이다 당사자가 토로했죠.
그후, 영상 감독들이 복지부 공익광고도 만들고 서울대영상동아리가 인터뷰 영상 만들고, 유투브에 당사자와 전문의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죠. 배교수 경우 170개 넘는 조현동영상을 무료로 올리고 있죠.

이젠 종이신문, 인넷신문, 나아가 트윗, 펫북, 인스타램, 유투버의 시대임을 고합니다. 변화되길 바랍니다. 당사자가 멀뚱이 영화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 영상 속으로 걸어들어가기를 권합니다. 능력있는 분은 만드시길. 창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