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앤디 워홀은 저장강박증이었다
[리뷰] 앤디 워홀은 저장강박증이었다
  • 김근영 기자
  • 승인 2019.07.04 2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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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디아 캘브, 『앤디 워홀은 저장강박증이었다(Andy Warhol was a Hoarder: Inside the Minds of History's Great Personalities)』, 김석희 옮김, 모멘토, 2019.

창조적 천재, 찬란히 빛나는 지성, 탁월한 지도력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근저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은 앤디 워홀을 포함한 12명의 역사적 유명인의 간추린 전기가 실려 있다. 저자는 이들의 내면세계를 '정신질환'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 보고, 현대의 의학적 연구성과와 전문가 인터뷰, 각 인물들에 관한 역사적 사실과 정보를 이용해 오늘날 우리가 정신질환으로 알고 있는 증상들을 검토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도발적 제목과는 달리 통속 심리학이나 정신병에 관한 연구 보고서가 아니다.

책의 저자는 과학자나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저널리스트다. 따라서 저자의 주안점은 정신질환 자체가 아니라 정신질환의 증상을 겪은, 혹은 겪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다양한 삶이며, 그 삶의 양상들은 품위있는 서술 덕분에 더욱 인간성을 부여받고 있다. 말하자면 저자는 12명을 정신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심리적 프로파일을 제시하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경우, 저자는 워홀이 '타임캡슐'에 저장해둔 온갖 물건을 언급하고, 그렇게 강박적으로 저장한 이유를 찾아낸다. 이로써 워홀이 정신병을 창조의 요소로 받아들인 저장강박증 환자라고 결론짓는다.

실제로 워홀은 1954년부터 198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년 이상 골판지 상자에 온갖 잡동사니를 닥치는 대로 채워넣고 그 상자를 보관했다. 워홀이 죽은 뒤 뉴욕에 있는 저택은 물건으로 가득 차서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태였다. 오늘날 정리수납전문가들도 그곳에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것이다.

하지만 600개가 넘는 타임캡슐과 그 안에 들어있는 약 50만 개의 물건은 지금까지 남아서 피츠버그의 앤디 워홀 미술관에 어엿한 예술작품으로 보존되어 있다. 학자들은 그것을 면밀히 조사하고, 관람객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거기에 매혹된다.

이러한 저장강박을 현대미술로 승화시킨 미술가로는 마오쩌둥 시대에 절약과 검소가 모든 가정의 생존 미덕이 된 시절 어머니의 저장강박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중국 출신 쑹둥(Song Dong, b.1966)이 있다.

저자는 미술가에 국한된 인물만을 정신질환의 안경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메릴린 먼로(경계성 인격장애), 하워드 휴스(강박장애), 다이애나 세자빈(신경성 폭식증), 에이브러햄 링컨(우울장애), 크리스틴 조겐슨(성별 불쾌감[트랜스젠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자기애성 인격장애), 베티 포드(물질사용장애), 찰스 다윈(불안장애), 조지 거슈윈(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도박장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아스퍼거 증후군) 등 각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매력적인 인물들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책에 실린 12편의 약전들은 그 주인공들의 다양한 분야만큼이나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개별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놓고 보면 "천재와 광기는 종이 한 장 차이인가?"라는 물음으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하지만 저자는 정신병이 창조성에 기여하는 긍정성만 강조하지 않는다. 저자는 심리적 장애가 창조적 노력을 어떻게 비극적으로 끝장내는지도 고찰하고 있다. 메릴린 먼로부터 하워드 휴즈에 이르기까지 어린 시절의 경험이 어떻게 궁극적 비극의 무대가 될 수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12명의 삶과 정신, 그들이 지녔다고 판단되는 장애들에 관한 저자의 이야기는 생생하고 다채로우며,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흥미로운 사실들로 가득하다. 이 책을 위해 저자는 두 세기에 걸친 기록들을 섭렵했고, 정신건강 전문가와 전기 작가, 사회학자 등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다.

그녀의 예리하고 다면적인 분석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인간의 뇌와 행동이 얼마나 복잡미묘하게 얽혀 있는지를 실감하고, 오늘날 사회문화적 담론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여기 등장한 역사 인물들을 보는 새로운 관점, 우리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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