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윤미의 낮은 목소리] "삶의 취약한 사각지대에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들을 때"
[백윤미의 낮은 목소리] "삶의 취약한 사각지대에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들을 때"
  • 백윤미 사무국장
  • 승인 2019.07.12 20:14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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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곁에 있는 보호자들의 이야기 담론화해야
요양원 실상 모르고 '전면 개방' 지침 내리면 비자의입원 받을 수 없어
정책과 현실 사이에 갈등 생기면 피해는 보호자에게 돌아가
가족의 상처는 대물림돼...서로가 서로를 아프게 해
옆 사람 눈물 닦아주지 않으면 메마름 부메랑으로 돌아와
가장 좋은 치료는 가족 안에서의 치유와 회복

<마인드포스트>에 정신요양시설의 현황을 알리고 원에서 돌아가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글로 풀어 놓은지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여기저기에서 비슷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사연을 보내주시기 시작합니다. 그만큼 이 사회가 약자의 보살핌에 대한 취약함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며 제2, 제3의 사각지대에서 목소리를 들어주시길 원하는 간절함들이 있다는 이야기겠죠.

제 기고문을 읽으신 후에 저에게 메일을 보내주신 한 보호자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개인신상의 보호를 위해 약간의 수정을 했습니다.

한 보호자의 작은 목소리

백윤미 사무국장님 먼저 손 내밀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서울정신요양원에도 몇 달 전 한번 전화상담 한 적이 있었습니다. 현재 정신요양원의 입소시 본인 동의가 아니면 입소가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병식이 없으시고 지금도 퇴원만을 주장하십니다. 연세도 있으셔서 아무래도 병원보다는 정신요양원이 덜 답답하실 것 같아서 계속 설득 중인데 이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저희 가족 이야기를 조금 여기에 적어도 될까요? 사실 들어주는 주는 곳도 없고 할 곳도 없어 답답하여 조금 적어보겠습니다. 시간 되실 때 읽어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광주에서 명문으로 통하는 A고등학교를 졸업 후 스카이(SKY) 대학교 3수를 도전하신 후 정훈장교로 군생활을 4~5년 정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군 생활 동안 조현병이 발병한 것 같다고 할머니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군에서는 쉬쉬했다고 하더군요. 외아들인 제가 출생하고 나서 얼마 안 돼 6개월 정도 서울 중곡동 국립정신병원(현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입원하셨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 아버지는 병이 없는 자신을 병원에 감금했다고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원망이 많으셨습니다.

제가 출생하던 즈음 몇 년 회사생활을 하셨지만 그 후로 특별히 직업이 없으셨습니다. 가게를 운영하다 망하기를 반복했고, 어머니는 행상으로 생계를 꾸려 저를 대학까지 보내셨습니다. 현재 저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올 9월이면 돌이 되는 딸 하나가 있습니다.

그 뒤로 아버지께서는 치료를 거의 받지 않으셨습니다. 할머니의 권유로 2010년도 초반에 한 3년 약을 처방받긴 했지만 약을 드시다 안 드시다를 반복하셨습니다. 돌봐드릴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병세는 더 심해졌고 2018년 7월 말 집 거실에 소변을 보시는 등 위생 관리조차 되지 않게 됐습니다.

결국 어머니를 수차례 폭행해 어머니는 제가 따로 집을 잡아 드렸습니다. 이후 인근에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계해 아버지를 설득한 끝에 근처의 정신병원에 외래진료를 한번 받자고 하여 모시고 갔고, 현재 강제입원 중이십니다.

어머니는 저만 바라보며 사셔서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어릴 적에 저는 하루 종일 누워계시는 아버지를 벗어나고 싶어 초중학교 때에는 놀이터와 친구 집으로 돌아다녔고, 고등학교 때에는 온종일 독서실이나 도서관에 공부를 핑계로 도피했습니다.

대학생 때에도 학교와 동아리 활동을 핑계 삼아 집으로부터 도피를 했는데 임용 후 군 시절에는 조금 철이 들어 어떻게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까 생각했었습니다.

제대 후 2010년부터는 아버지를 조금 이해해보려고 독학으로 심리학 공부를 했고, 그 때부터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조현병이다. 아프신 분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고쳐먹으려 애썼습니다. 아프신 게 아니라면 말이 안 될 정도로 아버지가 미웠거든요.

결국 제대 후에도 6개월 정도 집에서 살다가 친구네 집으로 가 자취생활을 하면서 도피하게 됩니다. 직장과 부모님 댁이 코앞이었는데도 말이지요.

제일 죄송한 건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입니다. 저만 바라보시는 어머니께만 저희 아버지 일을 맡기고 나와 버린 것이지요. 한편으로는 그것 또한 부부의 일이시고 어머니의 일이니 자식이 너무 나서는 건 별로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천주교 신자로서 타고난 성품이 착하시다고 해야 할까요? 참 여리신 분이십니다. 가족 상담을 받아보니 어머니께서 저를 너무 의지하고 계셔서 정서적 배우자로 여기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관계로 살아온 것이지요.

젊은 시절 아버지를 강제입원 시킨 것 때문에 아버지께 얻어맞으면서도 이혼을 안 하시고 행상으로 갖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일종의 죄책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2000년대부터는 앉아서 하는 장사를 하시겠다며 두 분이서 이것저것 여러 가지 사업을 하셨지만 다 잘 안됐습니다. 그 와중에 제가 신용불량 상태까지 이르게 된 아버지를 회생해드리고 사업으로 벌여놓은 채무관계를 수습하느라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머니는 2006년부터 관절염이라고 생각하고 진찰을 받은 것이 파킨슨병으로 밝혀져 지금까지 13년 넘게 약을 타 드셨습니다. 그러다가 2018년 12월, 제가 구해드린 원룸에서 사시다가 알아봐드린 주간보호센터에서 쓰러지셨는데 당뇨와 중풍이 한꺼번에 발병해 지금까지 왼쪽 편마비로 요양병원에 계십니다.

저는 몇 달 있으면 털고 나오실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네요. 당뇨인데 식단 조절도 못하신데다 파킨슨 약도 오래 드셨고 아버지와의 계속된 다툼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신 것이 영향을 미쳐 치매까지 발병하셨습니다. 현재 29킬로그램 나가시고 곧 돌아가실 얼굴로 계십니다. 혼자 계시게 하는 게 아니었나 싶지만 결혼하고 아기는 어린데 차마 모시고 살자는 말을 아내에게 할 수는 없었어요.

저는 김포에 살고 1주일에 한 번씩 두 분을 면회하러 각자 계신 곳으로 갑니다. 병원비는 두분 합하여 월 100만 원 넘게 나오고 있습니다. 와이프도 초등교사인데 육아휴직 중이라서 지금은 저만 외벌이를 하고 있어서 모든 생활비와 병원비를 감당하고 있어요.

종잣돈을 모으려고 3년 동안 부은 주택청약을 해지해 부모님의 15평 아파트에 잡혀있는 담보대출을 풀어드리고 나서부터는 아무리 돈이 생겨도 불안해요. 저는 지금 공무원 임대아파트에 월세로 살고 있고 부부가 둘이 몇 년동안 열심히 벌어서 집을 장만해보자고 꿈을 꾸었는데 모두 물거품이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저보다 어렵게 사시는 분도 많으시지만 말이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두 분이 안 계시면 어떨까 싶은 마음도 있어 죄스러워요. 제 딸은 저를 나중에 뭐라고 생각할까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의 조현병과 관련하여 여러 기관을 알아보고, 어머니의 파킨슨병 당뇨병 중풍과 관련하여 국립재활원도 알아보는 여러 가지 과정에서 저 또한 스트레스를 받았나봐요. 너무 답답해서 보건소에서 하는 상담도 받아봤는데 마침 상담해주시는 분이 B병원 정신과 병원 분이셨는데 아버지가 가실 곳이 없으면 연락하라고 명함도 주셨어요.

하지만 거기도 폐쇄병동이고 기존에 입원했던 시설보다 더 열악해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포기하고 직장 근처에 한 재활시설이 있길래 알아봤더니 그곳은 젊은 분들이 사회복귀를 훈련하는 곳이라고 하더라구요.

저희 아버지께서도 젊은 시절 그런 곳에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젊은 시절 강제입원했던 정신병원은 지옥같았다고 하더군요. 물론 아버지의 과장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요.

저도 작년 7월부터 지금까지 1년 사이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계속 살이 찌고 있습니다. 또 아버지가 입원하시던 날, 저도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는지 자다가 침대에 오줌을 쌌어요.

나름 취미생활도 열심히 하고 학교에서 부장도 맡아서 열심히 일하며 버티고 있는데 아버지의 조현병으로 인해 야기되는 너무 많은 변화가 힘이 듭니다. 결혼 4년 만에 얻게 된 딸은 축복이지만 이런 고민들은 저만 하고 싶고 딸은 몰랐으면 해요..

어쩌면 그 전에 준비하지 않아서 한꺼번에 저에게 숙제로 온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아서 휴직을 할까 생각했지만 저도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기에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다시 저희 아버지 말씀으로 돌아와서 현재 아버지께서는 인근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신데 3-3-6개월 입원 연장을 받아 현재까지 왔고, 또 6개월 연장을 받으셨어요. 초기에는 리스페리돈을 복용하시다가 클로자핀으로 바꾸었는데 크게 효과를 보고 있지는 않으십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소변을 누거나 하지는 않으신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요? 그게 최선일까요?

아버지께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원치 않는 입원이실까요? 아니면 사고가 나시더라도 자유롭게 혼자 지내시는 게 좋은 걸까요?

뒤늦게 저에게 닥쳐서야 이렇게 관심 갖는 것도 면목 없고, 또 2019년이지만 1984년부터 아버지와 같은 분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현실이 크게 나아지지 않은 느낌입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너무나 보호자의 절절한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습니다

갈 곳이 없어요

정신요양원에서는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 생활하실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저희 요양원에서는 보호자에 의한 입소(강제입소)도 받지 않기 때문에 보호입소를 원하시는 가정에서는 보호입소가 가능한 다른 곳을 찾아 헤매셔야 하겠지요.

정신요양시설 입소 정보가 명확히 나와 있는 데이터가 없으니 적절한 시설을 찾아가는 과정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 됩니다.

이메일을 보내주신 분의 아버님같이 만성적인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을 정신요양시설에서 모실 수 있는 것이 현재는 최선이자 최후의 방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소를 거절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글을 통해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현재 정신요양시설은 세간에서 의료시설과 복지시설의 중간시설쯤으로 판단되고 있습니다. 운영 재원은 국고 보조금에서 나오고 설치 근거는 사회복지법이지만, 운영 근거는 정신건강복지법의 정신병원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할하는 지자체의 판단이나 복지 정책에 따라 일반 장애인 거주시설처럼 “전면 개방하라”라는 구두 지시를 받기도 하는데요. 그렇게 되면 해당 정신요양원에서는 병식(insight: 현재 자신이 병에 걸려있다는 자각)이 없으신 분을 모시기가 어려워집니다. 전면 개방을 하게 되면 아침에 요양원 문이 열리는 순간 병식이 없으신 분들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할지 불 보듯 뻔하니까요.

정신건강복지법상으로는 정신요양원에서 얼마든지 보호입소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지도감독을 받는 지자체의 운영 방향에 따라 세부적인 운영 지침이 바뀌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전면 개방을 강요하는 지자체의 지도감독을 받고 있는 정신요양원에서는 보호입소를 비공식적으로 거부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됩니다.

요즘처럼 탈시설화나 커뮤니티케어를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정책적 패러다임 하에서 시설이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는 운영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지요. 정책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고뇌가 이어지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보호자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실무에 있다 보면 이러한 메일의 내용과 너무나 유사한, 무수히 많은 보호자들의 한숨과 사연을 접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에서 이러한 사연을 가지신 분이 마지막으로 읍소하실 곳은 매우 한정적이며, 제도권 내에서 도움을 받으실 수 있는 분들보다 제도권 밖에서 방치된 분들이 더 많습니다.

그나마 정신요양원에 입소하신 분들은 만성정신장애인 당사자와 보호자에게 정말 축복입니다. 정신질환과 말기암이나 희귀병 등 심각한 육체적 질병이 중첩되어 정신병원에서도, 노인병원에서도, 심지어 정신요양원에도 도저히 모실 수 없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런 분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계신걸까요. 저로서도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대물림되고, 끊임없이 주고받는 마음의 상처

아버님은 이유없이 군대에서 받은 폭언과 폭행으로 발병하시고, 또 같이 사는 가족은 아버님의 상처를 대물림 받아야 하지요. 평생을 상처 속에 살아 조현병이라는 보호막 안에 자기를 가둬 보호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던 기막힌 시간들. 그 길을 평생 걸어오신 분이니 그 분노와 억눌림, 슬픈 마음들이 오죽할까요.

이유도 없이 생겨야 했던 인생의 상처와 누굴 향해야 할지도 모르는 깊은 분노가 자기 자신에게, 같이 사는 가족에게 화살로 돌아가 서로가 서로를 아프게 하는 반복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아픈 시간들입니다. 상처가 또 다른 상처를 낳게 되고 계속 전염병처럼 돌고 돌게 되는 이 아픔을 어떻게 종식시킬 수 있을까요.

가족 안에서의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야

가족 구성원들을 아프게 했을지라도, 그래도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해준 통로인데 그런 분을 평생 정신병원에서 살게 하신다는 것이 패륜처럼 느껴져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으로 다가오시겠지요. 보호자가 아니면 절대 모를 먹먹한 마음입니다.

가장 좋은 치료는 가족 안에서의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치유의 때를 놓쳐버린 분들에게는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이 서로에게 따뜻한 포옹이 아닌, 고슴도치의 가시가 되어 서로를 찌르게 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서로가 서로를 감당할 수 없을 때 병원, 요양원을 택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어느 누구인들 자기 가족이 발병하여 병원이나 시설에서 평생 살아야 하는 현실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매일 소소한 일상을 나누면서 함께 웃어야 하는 것이 가족인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 불가능의 상태의 가족을 차마 끌어안을 수가 없기에 눈물 흘리며 이별하는 것이지요. 

김인종, 김영철님께서 공저하신 『죽고 싶지만 살고 싶다』의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폴(폴은 이 책에서 당사자와 보호자를 조력하고 지원하는 지원가입니다)은 어떤 경우 환자보다는 환자의 가족에게 집중했다. A씨 같은 환자는 정신질환자이지만 행, 불행을 느끼지 않으며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다.

분노와 불행을 느끼더라도 주변에다가 그 분노들을 퍼부어 대면서 본인은 별다른 상처없이 살아간다. 정작 환자의 가족들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으며 병들어 간다. 때로는 그 환자의 폭력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주변을 위험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환자의 가족으로서 여러 경우의 고통을 당해봤던 폴은 어떤 의미에서는 환자보다 환자 가족 보호가 더 중요하며 긴급하다고 본다. 폴은 조현병의 극단적 망상으로 A씨가 주변 가족을 서서히 죽게 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럴 경우 환자 A씨는 병원에 맡기고 그 가족들이 빨리 살아나야 한다."

경청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온 몸과 마음으로 듣는 것

제가 이 글을 기고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는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경험치와 지식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판단합니다. 좁은 식견과 듣지 않으려는 마음은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만드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더군다나 정책 수립, 예산 편성, 전달체계 등 나라 살림의 큰 흐름을 책임지시는 분들의 경우, 그 분의 시각과 판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게 되는 결과가 오겠지요.

우리가 눈을 돌려 옆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으면 결국 그 메마름은 나에게로 돌아올 수 밖에 없습니다. 당사자의 이야기, 보호자의 이야기, 시설의 이야기를 계속 끊임없이 들어야합니다. 들어야 생각하고, 생각해야 답이 나오니까요.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집단 감성과 집단 지성이 없다면 당사자와 보호자를 위한다고 기획되어지는 모든 정책과 예산과 전달체계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무자비하고 의미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불러다 자신의 침대에 눕히고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를 자르고 침대보다 키가 작으면 다리를 늘려 죽였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프로크루스테스가 시사하는 점은, 자신만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사람들을 평가했다는 점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불러다 자신의 침대에 눕히고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를 자르고 침대보다 키가 작으면 다리를 늘려 죽였다. 여기서 우리에게 프로크루스테스가 시사하는 점은, 자신만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사람들을 평가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필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주셨던 보호자님의 서신 중 일부를 다시 적습니다.

아버지께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원치 않는 입원이실까요? 아니면 사고가 나시더라도 자유롭게 혼자 지내시는 게 좋은 걸까요?

정신장애를 앓고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고뇌해야하는 아들의 마음과 윤리적 딜레마를, 우리가 함께 느끼고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백윤미 사무국장
백윤미 서울정신요양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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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수 2019-07-13 23:58:39
현장에서 경험하는 가장 괴로운 순간중 하나가 면회를 마치고 돌아서는 촛점없는 보호자의 눈빛을 보는 순간 입니다. 슬픔도 아니요, 걱정도 아니요 아쉬움의 그것도 아닌...
마지막 단락 "아버지께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원치 않는 입원이실까요? 아니면 사고가 나시더라도 자유롭게 혼자 지내시는 게 좋은 걸까요? "머리속에남아 지워지지 않네요.
오늘도 정신보건시설 최후의 보루 정신요양시설 각자의 위치에서 분투중인 모든 종사자분들께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권호동 2019-07-13 17:12:40
삶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자기만의 말못 할 고통을 갖고 살아가고 있고 사회에서 소외되어 남들에게 감추고, 주변시선이 따가워 혼자 전전긍긍하고 이렇게 글로써 나마 도움을 요청하는 보호자의 심정이 가슴절절히 다가오네요. 이렇게 나마 많은분들이 이 글을 읽고 인식개선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랍니다.

은정민 2019-07-13 14:52:46
이글을 보고서 정신장애인을 둔 보호자의 고통이 느껴지내요.
제가 정신요양시설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나지 않은 15년전 정도의 어느날 일을 적어 보려합니다
어느날, 한 아버지가 이제 막 스무살을 지났을정도의 건장한 아들을 데리고 요양원을 방문하셔서 상담후 아들을 입원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아들을 입원시키고 돌아가려고 할때 제가 아들을 모시고 현관앞에까지 나가서 배웅을 하던중 그 아버지는 돌아서면서 한마디 하셨습니다.

은정민 2019-07-13 14:51:56
‘아빠가 미안해’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아버지의 고통과 절박함, 그리고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그대로 제 가슴을 파고 들어 두 눈이 젖어 버렸습니다.
‘아빠가 미안해’
저도 그당시 자녀를 둔 아버지였기에 그 아버지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정신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보호자의 절실함을 시원하게 해결할수 없음에 마음이 더 답답합니다. 현실을 직시한 해결책으로 보호자와 정신장애인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강민 2019-07-13 13:14:26
병원과 요양원의 역할 차이에서오는 환경의 차이가 분명 존재하므로 이런 것에 대한 시스템의 개편과 동시에 당사자 혹은 가족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책이라는 것이 기존에 존재하는 대상을 아우르고 나아가 더 많은 대상자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재활시설 확충, 절차보조사업, 당사자 집단 지원 다 필요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위의 글에서 나오는 분들을 외면해야만 나오는 결과물은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