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의 “정신질환 범죄자 거리로” 기사를 규탄한다
문화일보의 “정신질환 범죄자 거리로” 기사를 규탄한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7.11 19:5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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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감호소 포화 상태?…병상 수 200개 오히려 남아돌아
현재 950여 명 수용…비정신장애 수용자 5만7000명의 1.7%
정신장애인 범죄가 정신건강복지법 때문?…지역 인프라 부재 때문
병상수 과밀이 아닌 정신과 전문의의 부족으로 접근해야

11일 문화일보 인터넷판은 ‘치료감호 수용능력 부족, 정신질환 범죄자 거리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행했다. 중간 제목에는 ‘살인죄 치료 가종료 출소자 2013년 33명, 2016년 77명’으로 달았다. 그리고 ‘정신질환자 범죄 증가는 인재(人災)’라는 극단적 용어까지 사용했다.

신문은 “정신보건법 개정에 따른 치료감호 수용 시설 부족 여파로 3년 전부터 정신질환 살인범 중 조기 출소자 수가 빠르게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신보건법 개정으로 강제입원 등이 제한되면서 2016년 이래로 발생한 정신질환 범죄자 수가 치료감호 수용 능력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범죄를 저지른 정신장애인(정신질환자)을 격리 수용해 치료하는 기관은 공주치료감호소(국립법무병원)가 유일하다. 이곳에는 950여 명의 범법 정신장애인들이 수용돼 있다.

기사를 쓴 문화일보 최재규 기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정신질환 범죄자 수 증가로 치료감호소가 수용 능력을 넘어서고 있다"고 했는데 <마인드포스트>가 공주치료감호소에 확인해 본 결과 현재 의료진과 인력 부족으로 오히려 200병상을 남겨두고 있다는 답을 얻었다.

그렇다면 최 기자, 당신은 어떤 근거로 해서 정신질환자 수용 병동이 모자라서 범법자이자 강력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치료받지 못하고 거리로 쏟아지고 있다는 표현을 쓴 것인가.

공주치료감호소 병상 부족은 사실 아냐

또 정신건강복지법(정신보건법은 구 법제용어)이 시행되면서 강제입원이 제한되고 입원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정신질환자 범죄자 수도 급증했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정신건강복지법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해 약을 먹지 않고 환청에 시달리는 개인적 문제일 뿐, 법이 약화됐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기사를 호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이들을 지지하고 치료할 기존 인프라가 한국에서는 미비하기 때문에 치료를 받아야 할 이들이 갈 곳이 없어 집에서 지내다가 증상이 심해져 바깥에서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모든 정신장애인이 정신건강복지법 때문에 치료를 못 받고 있다는 식의 보도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이 같은 비과학적 추측은 정신질환을 인지하고 빠른 시간 내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시민들로 하여금 정신과 치료를 꺼리게 만드는 ‘사회적 낙인’으로 재현되는 것이다. 정신질환자 범죄를 내세워 이들을 ‘범죄자’로 둔갑시켜 버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언론의 고질적 문제였다. 이 근본 문제에 대한 성찰은 왜 없는 것일까.

2017년 말 기준 전국 구치소에 수용된 인구는 5만7200여 명이다. 치료감호소에 수용된 범법 정신장애인이 950여 명임을 감안할 때 정신장애인이 범죄를 저지르고 구치소에 수용될 확률은 비정신장애인에 비해 1.7%에 불과하다.

그런데 유독 정신장애인의 범죄와 범법을 초점으로 삼아 이들이 나오면 모든 사회적 질서가 무너지고 길거리에서 칼부림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것처럼 호도하는 건가. 이건 언론이 가진 공정성과 객관성에 명백히 위배되는 보도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문화일보 기사는 경찰청 ‘치안전망 2019’ 보고서를 인용해 2016년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가 2015년 6980건에서 8287건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7년에는 9027명으로 1년 만에 700건 이상 늘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비정신장애인이 저지르는 범죄는 해마다 200만 건을 상회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공정하게 지적해야 하지 않는가.

해당 기사는 또 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보고서를 인용해 “2016년부터 정신질환자 범죄가 증가한 것은 정신보건법의 개정에 따른 인재(人災)”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개정법은 인권 존중에만 집중하면서 정신의학계 반하는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며 “개정법이 정신질환자의 사회 복귀는 늘리면서 거꾸로 입원은 막았다”고 지적했다.

그럼 물어보자. 1995년 제정된 정신보건법은 강제입원(비자의입원)의 요구 조건으로 두 명의 보호의무자 동의와 정신과 의사 1인의 진단으로 인신을 구속할 수 있었다. 국민이 가지는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법이 그 권리를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남용했던 법이 바로 정신보건법이었다.

정신질환자 범죄 증가가 정신건강복지법 때문?...왜곡된 접근

많은 정신장애인들이 ‘미쳤다’는 의료권력의 진단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정신병원에 갇힐 수 있던 시절을 거쳐왔던 것이다. 그 진단의 부조리함이 심했고 인간 존엄을 훼손해 버리는 법이었기 때문에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시민단체, 가족들이 그 법의 폐지를 피눈물로 요구해왔던 것이다.

국가가 개인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권력에 모든 권한을 위임해 증세가 심하지 않은 정신장애인도 인신이 구속돼 격리될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에 대한 ‘원통함’이 우리 정신장애인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 기자, 당신의 논지는 정신보건법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것인가. 정신건강복지법이 "인권 존중에만 집중했다"고 하는데 인간의 존엄의 가치인 인권은 오히려 아무리 강조되어도 모자라는 인간 존재의 마지막 보루처인데 이를 훼손하고 또 다른 비인권적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건지 물어보고 싶다.

기사는 또 “정신보건법 개정 등을 통해 정신질환자가 정신병원 등 전문기관의 관리를 받도록 하고 치료감호소의 수용 능력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법이 개정돼서 정신병원과 치료감호소라는 권력이 개개인의 정신 상태를 점검하고 이들의 일상적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되면 정신질환자의 범죄가 없어지고 사회적 안전이 담보된다고 생각하는가.

너무도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하게 법을 바꿔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결국 정신의료 권력이 생산하는 방식의 법 제정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미로 기자는 해석할 수밖에 없다.

기사는 살인죄 치료감호 중 가종료로 출소한 정신질환자 사례는 2013년 33명, 2014년 42명, 2015년 27명이었다고 보도했다.

독일의 경우 사형제는 인간의 존엄성을 배반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 이후 일찌감치 사형제를 폐지했다. 그리고 종신형을 선고 받는 경우에도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법집행이기 때문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대해서도 그 위법성을 인정했다. 그러니까 아무리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이도 일정 기간이 되면 ‘가석방’의 형식으로 이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가 보면 지나치게 관대하고 생명을 부정한 자를 국가가 보호하는 법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이런 법을 만든 이유는 나치가 저지른 인간성의 극단적 부정에 대한 독일 시민사회의 반성과 성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물며 정신장애인이라고 왜 예외가 되겠는가. 기사에서 살인죄를 저지른 정신장애인이 치료감호 수용 능력을 넘게 돼 가종료로 풀려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는데 일반 비정신장애인 살인범이 가종료 되는 경우는 없는가. 그것이 단순히 구치소 수용 능력의 부재(不在)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정신병원이 관리한다는 건 구 정신보건법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

2018년 인권위의 구금 시설 수용률은 2017년 말 기준으로 115.4%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100명을 수용해야 하는 공간에 115명을 수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잠재적 범죄자’인 정신장애인이 수용 과밀로 나가야 하는 거라면 똑같은 방식으로 수용 과밀을 겪고 있는 일반 비정신장애인 범법자들에게도 형집행 정지나 모범수로 사회로 내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공주치료감호소의 문제는 정신장애인 범죄자 수용의 거대한 포화 상태 때문이 아니라 정신과 의사와 인력의 부재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뒀으면 한다. 현재 이 감호소의 의사 정원은 20명이지만 열악한 근무 조건과 낮은 급여로 인해 11명만 근무하고 있다. 이중 정신과 전문의는 8명에 불과하다.

정신과 전문의들 역시 감호소에서 정신장애인 범법자들을 상담하고 치료하지만 그 인력의 부족으로 인해 상담자들이 충분히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문화일보 기사가 말하는 과밀 수용 때문이 아니라는 의미다.

결국 이 기사는 정신질환과 정신장애인에 대한 깊은 불신과 불안, 두려움이 섞여서 만들어낸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

언론은 정신장애인 이미지를 조작하지 말아야

정신장애인의 문제를 치안의 문제로만 포섭하고 정신장애인은 자유로운 인권적 존재가 아니라 시설과 병원에 구금되어 있어야 하는 ‘범죄자’의 표상으로만 기사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이 인식은 너무나 첨예하고 모순적이어서 우리 사회가 동시적으로 함께 외치지 않으면 끊임없이 정신장애인의 권리가 훼손될 수밖에 없는 약한 고리인 것이다. 언론은 공정성을 외치지만 일부 특정 인구 집단의 시각을 정신장애인에게 투사해 차별과 배제를 공고하게 만들어 버린다.

문화일보는 이 기사에 대해 답변하기 바란다. <마인드포스트>는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모독한 문화일보를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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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미 2019-07-12 09:14:44
남한테 큰소리한번 치지못해 그 상처를 끌어안아 병이 생긴 사람들한테 그런 아픔을 또주다니...

인랑제수민 2019-07-12 14:39:20
문화일보의 편집팀과 밥벌이만 위한 본 기사에 대해 규탄한다.
치료감호소에 갇힌 사람의 입장과 조현당사자들의 입장이 같으며 다른 점을 기자는 간과한다.
수용능력의 부족 없으며 빈 병상 많다. 치료의가 적다. 수용자에 대한 치료가 넉넉치 못하다. 밖에서 치료 받아야할 조현당사자가 많으므로 국립병원이 많아야 될 필요가 있다.
정신건강복지법 강제입원 조항 때문에 입원을 꺼리는 것은 아니다.
정신질환범죄가 많아졌다고 치안목적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구설수에 조현당사자를 희생시켜서는 안된다.
정신질환자범죄 수용자가 수형 종료하고 출소하여 주거와 취업이 제공되지 않으면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운건 자명하다. 구금시설수용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해서 잠재적 범죄자가 많아지고 조현당사자가 강제입원할 경우가 많아진다는 것도 과장이다